'천지호'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0.04.18 '하이킥 결말 처참했다', 신세경의 고백을 보고 (49)
  2. 2010.03.18 '추노' 좌의정 이경식 손아귀에 놀아난 혁명 (16)
  3. 2010.03.13 '추노' 대길과의 인터뷰 7문7답, 속마음을 물었다 (21)
  4. 2010.03.12 '추노' 무거운 사랑에 가벼워진 혁명 (27)
  5. 2010.03.11 '추노' 송태하, 언년이와 의리 지킬 수 있을까? (15)
2010.04.18 07:18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 신세경이 한 프로그램에서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이 처음에는 마음에 와 닿았는데 돌이켜보니 처참했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고, 뭐랄까 반가운 고백을 들은 것 같았어요. 사실 결말부분에 대해 신세경이 죽음으로 가자는 의견을 함께 했다는 기사를 보고 굉장히 실망했고 충격 또한 컸었어요. 신세경은 제 아들과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제게는 딸같은 나이인데, 그런 결말을 생각했다는 데에 당혹스러웠거든요. 저는 어떤 이유로든 죽음에 대해 미화하거나, 작품을 위해 억지 죽음을 넣는 드라마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이 삶을 넘어서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지금도 감독의 충격적인 결말을 위한 강박관념이 낳은 어거지 죽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두 번다시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결말이에요. 제게는요.
세경과 지훈의 죽음은 추노에서 주인공 대길의 죽음과는 다른 죽음이에요. 많은 사랑을 받은 대길의 죽음은 설득력과 당위성이 있는 죽음이었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또한 있었지요. 대길의 죽음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무게까지 짊어지고 간 죽음이었기에, 죽어도 죽지 않은 여운과 감동이 남았었지요. 업복이의 최후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추노가 끝나고 이다해와 오지호의 인터뷰를 보니 극 결말에 자신들도 죽고 싶었었다고 하더군요. 주인공들의 죽음은 그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에 그런 욕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다 죽을 수 있는 상황들이었어요. 황철웅과 관군들에 의해 쫒기는 상황이었고, 삶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웠던 절박한 상황이었지요. 그럼에도 작가는 희망을 남주고 싶은 이유로 대길에 의해 이들을 지키게 했어요. 

그런데 세경과 지훈의 죽음은 거창하게 각성이라는 말로 포장은 했지만, 죽음으로 이어질만한 숭고한 사랑도 아니었고,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런 무게를 가진 사랑도 아니었어요. 더구나 지훈이 각성했다고 까지 붙일만큼의 뒤늦은 깨달음도 아니었고요.
하이킥 결말의 문제는 각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준에다 죽음을 끼워넣었다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차라리 황당스럽게도 공항가는 길에 빗길사고로 죽어버렸다는 식의 설정이었다면, 충격까지는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재수없는 사고사를 당해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결말 역시 납득이 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각성이라는 말로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신세경의 뒤늦게 생각해보니 지붕킥의 결말이 처참했다고 고백한 것에 반갑다고 한 것은, 제 아들같은 나이의 젊은 여배우가 드라마라는 이유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빠져 죽음을 합리화시키려 했던 자신을 돌아봤음에 반가웠어요. 또한 신세경이 지붕뚫고 하이킥의 전체적인 부분을 돌이켜 봤다는 것에 반가웠어요. 신세경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그리고 신세경이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더 자세한 내용은 기사에 나오지 않았기에 모르겠지만, 신세경도 극중 동생 신애와 아버지, 그리고 지훈이의 가족들 등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극중 세경이의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을 테고요. 또 하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받았을 충격에 대해서도 시청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생각해 봤을 거라 짐작됩니다. 
제가 아는 이웃 중에 하이킥의 결말을 본 이후 충격에 그 후 드라마 리뷰글을 더 이상 올리기 싫어졌다는 분도 있고, 하이킥 팬 중에는 그동안 받아 두었던 파일들을 전부 삭제해버렸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모든 분들이 결말에 허무감과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이킥의 충격적인 결말에 대한 후유증이 컸다는 것은 그만큼 하이킥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파급효과가 컸음을 반증하는 예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드라마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영상물의 재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 드라마를 보며 막장이다 명품이다 라는 식의 평가를 하겠어요? 그것은 드라마가 우리 이야기를 담고 있고,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에 공감을 끌어내고, 또한 일종의 사회의식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하이킥은 시트콤이라는 형식을 빈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때로는 신랄하게 문제점을 꼬집어 주기도 했어요. 88세대들의 문제점이나 권력의 방송장악,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과 부에 대한 편견까지 해학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하이킥에 열렬히 호응했던 이유는 가난한 세경이의 모습이 나이든 어머니들의 젊은 날의 초상이었고, 세경의 성장과 행복을 통해 희망적인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정음의 모습이 오늘날 88세대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했기에 취업의 높은 장벽때문에 좌절하는 젊은이의 모습도 봤고요.
제가 특히 세경과 지훈의 죽음으로 감독에게 충격받았던 것은 과연 세경이 죽음을 통해 사랑을 이룬다고 행복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어요.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사랑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사람도 있겠고, 돈이 행복의 기준인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 명예, 자식들의 출세 등등 저마다 행복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극중 세경의 행복 우선 순위는 뭐였을까요? 처음 하이킥의 제작의도에서 밝힌 것은 세경의 성장이었어요. 그리고 세경은 서울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의탁할 곳 없는 동생과 다행스럽게 순재옹네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며 적은 월급이지만, 그돈으로 신애 뒷바라지할 적금도, 그리고 못다한 공부를 계속할 꿈도 키우고 있었어요. 지훈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으로 세경이 힘들기도 했지만, 세경은 봄이 오면 아버지와 함께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도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세경의 강한 모습에 세경의 행복을 열렬히 응원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지훈이 못돼 보이기도 했었지요. 저도 처음에는 지훈이와 세경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훈이 정음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고,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굳이 사랑하는 사람을 세경의 시선에서 떼놓으려고 하는 것이 무리다 싶어 지훈과 정음을 지지해 주기로 방향을 틀었어요. 왜냐면, 세경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에서 지훈과 세경의 러브라인을 지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훈의 입장에서는 정음과 사귀는 것이 행복한데 지훈에게 세경을 봐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내가 좋아하는 세경이라는 애가 지훈이 너를 지독히 좋아한다, 그러니 너도 세경이를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훈과 정음라인 속에서도 지훈이 속으로는 세경을 좋아했는데, 깨닫지 못했다고 설정한 것은 감독만의 컨셉이었을 뿐, 시청자가 납득하고 복선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 것은 감독의 착각이었고, 억지였어요. 시청자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춘 결말들의 예에 비추어 예상했을 뿐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을 세포분석하듯이 파헤치는 시청자들이야 감독의 성향을 알아서 그런 예측들을 하겠지만. 처음으로 김병욱 감독의 작품을 본 시청자거나, 아무런 분석없이 던져주는 대로 보는 시청자들이 감독의 성향까지 분석해가며 하이킥을 봤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말도 안되는 결말에 분노하고 다시는 김피디의 작품을 보지 않겠다고 보이코트까지 선언하는 하이킥 시청자들도 있었겠지요.

신세경의 충격고백, 의미가 큰 이유
주인공이었던 신세경이 하이킥 결말에 대해 돌이켜보니 처참했다고 한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경이 죽음으로 가자는 결말을 제의했든, 감독의 의견에 따랐든 신세경이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배우 신세경 개인에 대해서 안티가 되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20살밖에 안된 여배우의 생각이 이뤄지지 못할 사랑에 대해 죽음이라는 소아기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충격이었거든요. 따지고 보면 지훈과 세경이 죽음으로 맞설만큼 이뤄지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어요. 까놓고 지훈이 세경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 우습지도 않은 각성을 했다면, 세경을 데리고 도망이라도 쳤을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에게 당당히 폭탄선언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지훈이 각성했기 때문에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내고 세경과 동반죽음을 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문제는 김병욱 감독이 지훈의 각성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결말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부분을 보고, 그리고 세경에게 달러를 넣어 둔 데미안 책을 보며, 감독의 소년적인 감수성에 놀랐을 뿐이에요. 젊은 시절,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것이 헤세에게서 보여지는 허무주의 혹은 나르시즘일 겁니다. 저는 감독이 여전히 젊은 시절의 감수성에서 머물러 있구나 라는 생각에 실망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나이들어서도 그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순수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이킥 결말에 대해 감독에게서 보여지는 허무주의와 죽음을 미화하면서 까지 세경에 대한 지독한 감독의 짝사랑을 볼 수 있었다는 글도 올렸는데, 여하튼 충격만을 위한 결말에 대한 김감독의 외골수적인 고집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겠네요.

그런 점에서 신세경이 늦게나마 하이킥 결말에 대해 처참했다고 말한 기사를 접하고 신세경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덜어낸 것 같습니다. 신세경의 하이킥 결말에 대한 고백은 김병욱 피디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김피디 작품의 결말이 하나같이 죽음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없었고, 충격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에 끔찍하기도 했었는데, 그 중 지붕뚫고 하이킥이 가장 끔찍했었거든요. 김피디는 감독으로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세경의 고백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감독의 손을 떠나 방송으로 내보내는 순간부터는 시청자와 함께 하는 것이지, 감독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이 시청자에게 공감을 주고, 기억에 남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결말로 기억에 남게 하려는 것에서는 이제 졸업했으면 싶습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마지막회 충격적인 결말이 아니었어도, 그전 에피소드들 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작품이었어요. 마지막회는 보기 좋은 케이크에 초가 아니라, 칼이 꽂혀져서 기억하고 싶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버렸지만요.
드라마에서 죽음으로 결말을 내는 것은 많이 있고, 흔한 장치들입니다. 하지만 하이킥의 경우는 죽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사랑의 자각이라는 문학적 감수성을 죽음의 무게와 동일선상에 놓아 버렸기에 위험하기까지 한 결말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죽음이 삶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각이었든 진실한 사랑이었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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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09:21




추노 21회를 보며 이 드라마가 벌여놓은 것이 너무 많아 정리하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합니다. 이번 회 보여 준 내용은 언년과 대길, 송태하 그리고 설화의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애절한 사랑과 송태하의 하나남은 부하 곽한섬의 죽음을 큰 축으로 다뤘습니다. 특별한 대사없이 주구장창 열심히 달리는 황철웅도 간간히 존재감을 드러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무엇보다 이번회 주목을 해야 할 인물이 좌의정이었어요. 베일에 싸여있던 좌의정의 음모를 직접적인 설명으로 보여주었지요. 좌의정과 그 수하 박종수의 대화를 통해 좌의정이 꿍꿍이를 드러낸 것이지요. 노비당도 결국 좌의정의 탐욕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는 살인도구일 뿐이라는 것도 여실히 밝혀졌지요. 저는 좌의정이 노비당 그분의 배후 인물이 아니기를 여러 의미에서 바랐지만, 희망과 권력의 갭이 너무 컸네요. 노비당 그분이 자발적인 각성에 의해 움직이는 가장 낮은 자들의 분노였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드러난 좌의정의 속셈은 권력도, 왕권에 대한 도전도 아닌 부의 탐욕이었습니다. 청과의 전쟁을 유도해 그동안 모아 온 물소뿔을 매수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자 함이었지요. 좌의정의 말을 빌어 보겠습니다.
"원손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가 일어난 터, 원손은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시지... 이로써 조정은 우리 목소리만 낭자하게 될 것이야. 그 후로는 마지막 한 가지만 남게 되시지. 대대적인 호적정리로 노비들을 모아 북방으로 올려 보내셔야지. 본격적으로 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 물소뿔을 푼다"
좌의정의 음모는 인조의 어심을 읽어 청을 징치코자 함도, 원손의 복위를 통한 반정을 저지하려 함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탐욕을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에요. 띠웅~ 그동안 추노에 담겨진 메세지를 찾고자 나름대로 드라마를 연구하다시피 분석해 왔던 저는 헛수고 했나 싶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좌의정을 보며 드라마 추노에 흘렀던 민초들의 항거, 혹은 좌절된 희망에 대한 길바닥 사극의 기획의도 자체가 실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심한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좌의정 이경식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 밖에는 안됐으니까요.
추노가 시작된 발단부터 집어보기로 하지요. 물론 대길이 언년이를 찾는 것은 언년에 대한 대길의 지독한 사랑, 그 개인적인 의미였으니 일단 제껴두기로 하지요. 언년이가 송태하와 엮이면서 대길이도 원손이라는 정치적인 상황에 휩쓸리기는 했지만요.
우선 혁명을 담당했던 한 축 송태하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게 순서겠군요.
송태하가 마방관노로 떨어지게 된 것은 황철웅의 간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어진 임영호를 제거하기 위한 좌의정의 술책이었지요. 송태하의 목숨을 담보로 임영호의 정계은퇴라는 목적을 좌의정은 성공했고, 고속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 좌의정이라는 자리를 꿰찼지요.
좌의정의 다음 단계는 원손의 제거였어요. 어린 원손을 빌미로 반정의 씨앗을 제거한다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큰 것이었지요. 즉 조정에 반청세력들만 남기겠다는 뜻이었어요. 좌의정이 계획하고 있는 일은 청과의 전쟁이었으니 말이지요. 원손을 따르는 세력, 엄밀히 말하자면 소현세자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좌의정은 제주도의 참상을 그린 그림을 유포했지요. 소현세자의 잔당들을 색출하기 위한 좌의정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동굴에 불을 지피고 여우를 잡 듯 말이에요. 어린 석견이 상주가 된 모습을 본 유생과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여, 원손을 왕위에 올리고 썩은 정치를 혁파하겠다는 혁명의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송태하의 도주가 있었고, 좌의정은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에게 송태하를 추쇄하는 일을 맡겼지요. 한편으로는 사위 황철웅에게도 송태하와 원손을 처리하라는 명을 내렸고요. 유생들의 수장이었던 조선비를 회유해 변절케하고, 남은 세력과 수원의 이재준 대감까지 명단을 입수하고, 이번 회 이재준 대감을 제거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곽한섬이 비명에 가버렸네요. 곽한섬의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는 이뤄주는 CG로 궁녀 장필순과 함께 고이 하늘나라로 모셔 주었습니다. 곽한섬과 장필순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충직한 곽한섬에 대한 예우였는지 생뚱맞게 환시를 통해 가는 길 고이 모셔 주어서 감동적이었다고 해야하는지, 판타지스러웠다고 해야 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만. 
좌의정은 전쟁을 통해 조선의 영토를 확장시키겠다 혹은 임금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 준 청에 분노함도 아닌, 자신의 배를 채울 꿍꿍이만 했었던 것 뿐이었어요. 악의 축 중심인물의 꿍꿍이가 자신의 곳간에 있었다니, 그리고 우리는 좌의정 곳간때문에 조선팔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나 싶습니다.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임금의 옥좌도 당파싸움도 세자자리도 아닌 좌의정 곳간이었습니다. 좌의정을 보니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 등 전쟁을 통해 무기판매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나라가 생각나더군요. 
결국은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좌의정의 탐욕에서 비롯된 쫓고 쫓기는 얘기에 희망이니 혁명이니 세 세상이니 하는 꿈을 주인공들과 함께 꾸었나 싶어 허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재벌들을 위해 개미처럼 일하지만, 고용불안으로 늘 생계의 위험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 배부르는 것은 거대 재벌이고, 서민들의 생활은 팍팍하기만 한... 
좌의정의 손아귀에 놀아난 송태하의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작이 좌의정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에요. 좌의정이 짜 준 판에 송태하가 들어가 일단 원손을 구하고 보자며 칼춤부터 췄으니, 송태하가 혁명관을 세우기도 힘들었고, 송태하와 부하들이 준비한 거사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변절한 조선비가 오히려 영리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大를 희생하고 小를 건졌는지, 小를 희생하고 大를 건졌는지 그것은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추노의 한 축을 움직였던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이 좌의정 이경식의 탐욕에서 비롯되었고, 그 끝 역시 좌의정에 의해 좌절된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네요. 노비를 해방시켜 북방으로 올려 보낸다는 좌의정의 계획은 무모한 무리수로 까지 보입니다. 판을 이 정도로 짤 정도의 권력이라면 군권을 장악해서 북진을 추진할 수도 있을텐데, 노비들을 신분해방시켜 북벌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은 늙은이 망발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소뿔을 팔기 위해 노비들의 호적정리까지 단행하겠다니 좌의정이 어찌보면 신분해방의 선봉장으로 봐야 하는지, 사리사욕에 눈 먼 저승길 가까운 노인네의 탐욕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추노 속 송태하를 축으로 한 희망은 좌의정의 농간에 놀아나 앞뒤 분간없이 일을 진행하다 이재준 대감과 곽한섬의 죽음과 함께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좌절되었고, 남은 희망은 대길이의 사랑에 걸어볼까 합니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꿈꿌던 대길은 그나마 좌의정의 탐욕과는 관계없이 희망을 노래했던 파랑새였으니 말입니다. 언년이에 대한 사랑 하나로 새 세상을 꿈꿨던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었으니까요.
파랑새들의 터전 월악산 산채, 그곳이 제가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추노의 희망입니다. 삶의 가장 저변에 있는 밑바닥 인생들의 평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쥐도 구멍을 내 주고 쫓는다고 하지요. 조선의 인구 절반이 도망노비로 전락해 가는 암울한 시대, 삶의 팍팍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해 도망가야 했던 그들이 숨어들 곳 하나는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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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3 07:42




추노 속 인물들 중 속내를 좀처럼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인물을 들라면 대길이를 꼽고 싶습니다. 대길이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몸으로, 그리고 굵은 눈물로 그 감정 모두를 보여주는 조선 최고 추노꾼이자 일편단심 순정파지요. 송태하가 긴 설명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면 대길이는 속과는 다르게 거친 말투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차단해 버리는, 상처투성이의 인물이에요. 언년이를 잃고 사람과 대화하는 법마저 대길이는 저잣거리 거친 남자로 변해갔지요. 월악산 산채에서 일을 도모하기 위해 송태하가 잠시 혼자 떠나겠다며 대길이에게 언년이와 원손마마를 부탁한다고 했었는데요, 대길이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생각에 잠겨있었어요. 혼자 있는 대길이를 만나 속마음도 알 겸 몇가지 질문을 했어요.

질문 1. 언년이를 구하기 위해 관아로 갔을때 사또를 인질로 잡았었던 장면이 있었는데요, 뒤따라온 송태하가 관졸들과 싸우고 있을 때, 공중제비돌기로 멋지게 언년이 앞으로 빙글 돌아 다가섰었지요. 그때 언년이의 턱을 들어 언년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싸우러 갔었지요. 그 때 언년이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셨나요?
대길: 그게 심정이 좀 복잡해. 서원에서 막상 딴놈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이를 마주하고, 네깟 종년을 왜 찾았겠느냐고 모진 말을 해버렸어. 근데 언년이가 송태하의 칼을 가로 막더라고. 날 죽이지 말라고 말이야. 송태하 그놈을 향한 내 칼도 언년이가 막았지. 지 남편 죽이지 말라고 말이지. 그런 언년이를 보며 생각했지. 언년이 네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송태하의 칼에 죽어도 여한은 없다. 내가 죽으면 언년이 네가 편안해질 거다.
송태하랑 한 판 붙었는데, 죽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싸워보고 죽겠다고 생각했소. 그냥 칼 맞고 죽어버리면 내가 너무 쪽팔리잖소. 헌데 송태하가 한수씩 접어 주더라고. 그 놈 소문대로 조선팔도에서 칼로는 당할 자가 없다고 하던데 칼 제법 쓰더구만. 그런데 그 송태하라는 놈이 언년이가 우리집 종이었다는 말을 듣더니 무너지더라고. 이성보다는 감정의 주먹을 날리니 나도 주먹으로는 송태하를 이겨볼 수도 있겠더라고. 솔직히 칼로 끝까지 갔으면 내가 베였을게요. 송태하 속은 잘 모르겠지만 순순히 붙잡혀 주더라고.
그런데 알다시피 4살배기 애새끼를 봤느냐며 나까지 감옥에 쑤셔넣어 버렸어. 모른다고 발뺌하니 뭐 천지호 패거리를 죽였다느니 해가면서 교수형에 처해 버린다고 하더구만.
그리고 진짜 죽을 뻔 했어. 밧줄이 목에 걸려 숨통을 조여 오는데 이게 끝이구나 싶었지. 언년이랑 평생 살겠다고 했는데, 언년이 찾기 위해서 추노질해 가면서 개차반 소리까지 들으며 짐승처럼 살아왔는데, 이대길의 삶도 그렇게 한방에 가는구나 싶었소. 억울해서 소리도 고래고래 질러보고 양반놈들 욕지거리도 해줬지만, 밧줄이 목에 감기는 순간 끝이구나 싶었소. 그런데 그 때도 언년이 생각밖에 안나더라고. 눈이 사락사락 내리던 날 언년이와 입맞춤했던 그 날, 물동이 이고 방문앞을 지나면서 곱게 웃던 언년이 그 고운 얼굴밖에는 생각이 안나더라 말이지. 내 인생을 이꼬라지로 만든 년인데 말이오. 
아, 왜 언년이 얼굴을 들여다 봤느냐고? 당연히 언년이가 아무 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관아에 붙들려 와서 그 고운 얼굴에 생채기라도 났으면 어떡하나, 정말 살아있는 언년이가 맞는지 내 눈으로 내 손으로 확인하고 싶었거든. 아마 언놈이 언년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흠나게 했으면 관졸놈이건 사또건 아작을 내버렸을 게요. 언년아, 똑똑히 봐라, 도련님이다. 내가 널 꼭 살릴거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언년이 눈을 보니 다 알아 들은 것도 같더이다.

질문 2. 언년이와 송태하, 그리고 원손마마랑 빈집에 숨어있을 때, 언년이가 송태하에게 한때는 언년이라는 종이었고, 그 언년이는 죽었고 김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고백을 할때 자리를 피해버렸지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김혜원이라는 이름자만 쓰며 멍하니 앉아 있었지요. 그때 심정은 어땠나요?
대길: 한마디로 지랄 같았지. 언년이는 죽었고 김혜원이라 하니, 그게 나 들으라고 한 말이잖아. 땅바닥에 김혜원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언년이는 없다, 죽었다 이렇게 내 머리에도 팍팍 새기고 싶었는데, 그때 언년이가 나오더라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송태하한테 원손인지 임금손자인지 맡기고 혼자 가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가슴은 언년이를 붙잡는데 차마 말이 안떨어졌어. 언년이라고 불러야 하나 혜원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 때 송태하 그 노비양반이 나와서 기다려 달라고 붙잡아 버렸어. 에이, 김샜지. 닭 쫓던 개새끼마냥 뻘쭘해져서 들어가고 말았는데,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자 울었어. 이게 운명인가,  나는 왜 이 염병할 미련을 놓지 못해 이 지랄을 떨고 있나 싶기도 했고 말이오. 

질문 3. 월악산 산채 짝귀를 찾아가 짝귀한테 막무가내로 얻어 터졌는데, 왜 뒷짐지고 맞기만 했나요?
대길: 그게 우리들 인사법이우. 뭐 남자들 인사라고 쳐도 되고. 짝귀 언니랑은 한양에서 한솥밥을 잠시 먹기도 했고, 내 무술 스승이기도 하오. 곡절이 있어 짝귀언니 귀 한쪽을 댕강 잘라먹기는 했는데, 두고 두고 미안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맞아줬어. 도둑놈이니 화적떼니 손가락질 받고 숨어지내는데, 내가 어려운 살림에 군입들을 여럿 보냈거든. 사정 딱한 도망노비 몇은 안돈하라며 짝귀언니한테 보냈는데, 그 정도 인사는 받아 줘야지. 몇 달 전에 국경에서 잡아 온 도망노비 모녀도 보냈는데, 이번에는 원손이니 뭐시니 하는 애새끼에 언년이... 아 그 노비양반네 부부까지 신세를 져야 하니...
그리고 짝귀언니와 나랑 한양에 퍼진 소문은 앙숙처럼 나있지만, 짝귀언니와는 비밀리에 주고 받은 약속도 있고 사실 친한 사이야. 짝귀언니 겉은 개차반이지만 속은 여리고 착하거든. 시대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무관벼슬이라도 했을 게요. 우리 최장군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들처럼 칼 쓰고 주먹쓰는 놈들은 상대 기술이 녹슬었는지도 그런 식으로 서로 확인하기도 해.

질문 4. 최장군과 왕손이 만났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대길: 말도 마.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라 그래.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고, 아들까지 턱하니 낳고 사는 모습을 보고 추노질도 다 그만 두고 한양으로 올라 가려고 했어. 이천에 사둔 땅에 정착해서 최장군이랑 왕손이랑 같이 부대끼고 살아야겠다고. 그 때는 그 애새끼가 언년이 아들인줄만 알았어. 그 때 물어보기라도 할 걸...지금 와서 후회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말이야.
최장군과 왕손이는 내 피붙이 같은 형제들이야. 내 살점을 떼줘도 아깝지 않을 내 가족들이라고. 최장군이랑 왕손이가 죽은 줄 알았는데, 귀신인가 싶었지. 송태하가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인 줄 알고 덤벼들어 어찌어찌 송태하를 압구정 높으신 양반한테 넘겨 버렸는데, 그게 최장군과 왕손이에 대한 복수였어. 차마 언년이 남편이라 죽이지는 못하겠더라구. 언년이 남편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더라고. 그놈을 죽이든 살리든 내 알 바 아니잖아?
이천에 땅이 몇천평이 있으면 뭐해? 함께 살고 싶었던 언년이도, 최장군도, 왕손이도 없는데... 내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돼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왕손이랑 최장군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더라고. 최장군 어께를 만져보고 얼굴을 꼬집어 보고서야 진짜 살아 있다는게 실감이 나더라고. 내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흘린 눈물 중에 가장 기뻐서 흘린 눈물어었소. 어제도 자면서 이놈들 진짜 살았나 싶어서 왕손이 볼도 비벼보고, 최장군 손도 슬쩍 잡아봤어. 둘다 세상 모르고 골아 떨어져서 몰랐겠지만...

질문 5. 대길이 오라버니를 찾아 설화가 월악산까지 왔는데, 설화에 대한 감정은 어떤 건가요?
대길: 그게 말이지. 아, 머리 아파.. 됐고! 그 년 때문에 사실 마음이 많이 아파. 설화 그 꼬맹이년 정말 불쌍한 애잖아. 사당패질에 어린 나이에 이놈 저놈한테 몸 굴리며 살다 처음으로 좋아진 남자가 나였다니 슬픈 일이지. 꼬맹이 마음 알지만, 언년이.....에 대한 내 맘이 움직이질 않고, 모질게 볼따구까지 때리며 떠나라고 했는데 말도 안들어 처먹고... 내가 남자는 때려도 여자는 안때려. (한숨) 참 답답해. 불쌍하기도 하고.
아까는 언년이 보는데서 설화를 안아주기까지 했어. 나 이렇게 다른 여자한테 마음 있다. 그러니  더이상 나 신경쓰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언년이 마음 잡으라고 애써 연기도 했는데, 설화 꼬맹이한테 미안하고 내가 못된 놈이지.
언년이 종년 웃는 게 뭬 그리 우아하다고 그것까지 따라하고, 그 년 그거 정신줄 나갔어. 따라한다고 언년이가 되냐 말이야. 그 꼬맹이 거둬줄 남자가 있을까 싶어서 인생이 가여운데, 솔직히 나는 더 이상 여자한테는 내 줄 가슴이 없어. 다 언년... 암튼 다 줘버리고 남은 것마저도 타서 재가 돼버렸거든. 왕손이 녀석이 제격인데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고... 꼬맹이년 생각하면 머리가 우지끈 아파. 버릴 수도 없고 데리고 살 수도 없고. 그냥 여기 월악산 일 정리되면 이천으로 데리고 올라가 왕손이랑 여곽이나 같이 했으면 좋겠구만, 그 년이 나만 바라 보고 살까봐 그것도 마땅치 않고... 아, 골치아프니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질문 6. 송태하가 돌아와서 언년이와 원손마마를 데리고 가면 그 다음에 뭘 하고 살건가요?
대길: 그게 말이지. 처음에는 짝귀언니한테 그 사람들 잠시 돌봐 달라고 하고 바로 떠날라고 했어. 최장군이랑 왕손이 데리고 말이우. 꼬맹이 설화는 월악산에 남아서 살라고 하고. 근데 최장군이랑 왕손이 부상이 심해서 바로는 떠날 수 없겠더라고. 그래도 언년이 보면서 괴로운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달구지에 태워서라도 떠나려고 했어. 근데 그 노비양반이 내 속을 오락가락 헛갈리게 하네.
그 자식 아무래도 죽을 자리 보고 덤비는 것 같은데, 나야 도망치고 쫓고 숨고 사는 데는 추노질 몇년에 도가 텄지만, 송태하라는 놈은 그런 재주도 없어 보이고... 숨어 살라고 하는데도 굳이 끝장을 보겠다니, 느낌이 쎄해. 송태하랑 원손마마인가를 찾겠다고 팔도 검둥개들이 쫙 깔렸는데 앞 뒤 분간없이 나대니 큰일이야. 지놈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언년이가 걱정이 돼서 말이오.
언년이는 말이오, 절대 죽으면 안되거든. 10년이나 못보고 살았는데, 이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자락이 편해졌는데, 어딘가에서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뜻대로 안되면 세상 정말 지랄같잖아?
송태하가 올 때까지는 지켜 줘야지. 이대길 내 인생도 참 드럽다. 언년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텐데... 보고 또 보고 내 눈 속에 박히도록 봐 둘 게요. 이제는 언년이 몽타쥬를 그려다닐 수도 없고, 지나가는 놈들한테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라고 물을 필요도 없어졌으니 내 눈 속에다 심어둘라고. 그렇게 할 시간을 주니 송태하 그놈한테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송태하가 돌아오면 미련없이 다 두고 앗쌀하게 떠날거야. 가는 길에 돌로 가매장했던 불쌍한 우리 천지호 언니, 배산임수에다 햇볕 잘 드는 양지바른 명당자리 잡아서 다시 묻어 줘야지. 발꼬락 긁어달라던 그 개차반 천지호 말이오.
사형장에서 탈출한 몸이라 이젠 뭐 한양에 가서 추노질도 못하겠고, 이름 바꿔서 어찌어찌 이천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최장군이랑 왕손이랑 데리고 가서 농사나 짓고 살거야. 가을이면 추수해서 월악산 짝귀언니한테 쌀 몇섬 날라다 주고, 왕손이 여곽해서 돈 벌면 쬐금(?) 달라고 해서 돈도 갖다주고. 짝귀언니 식솔들이 많아서 눈먼 행인들 푼돈 도둑질만으로는 살기가 팍팍스럽거든. 또 보낼 노비들도 생겨날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혁명이니, 새 세상이니, 새 임금이니 떠드는데 솔직히 난 관심없어. 혁명이 별거야? 새 세상이 뭐 금은보화 주렁주렁 매달리는 나무가 있는 별천지냐고? 살기 힘들다고 도망치는 놈 없고, 그런 놈 잡으러 다니는 나같은 놈 없고, 양반 상놈 구분없이 그냥 사람답게, 사랑하는 사람과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면 그게 제일 좋은 세상인거야. 궁궐안 나랏님이나 양반들이야 지네들 밥그릇 싸움하느라 우리한테 신경쓸 겨를이 있어? 그런데 이 지랄맞은 세상은 그것도 허락이 안돼. 난 그렇게 생각해. 나 같은 생각하는 놈 열명이 생기고, 백명, 만명 수백만명이 생기면 그게 바로 새 세상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일급비밀인데, 이천에 가게 되면 나라를 세울 거야. 이천 이 아무개 땅은 양반도 상놈도 노비도 없는 곳이라더라. 이런 말이 나오는 나라를 세울 거라고. 세경도 많이 주고, 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겉으로야 내 땅 부쳐먹는 일꾼들이지만, 나는 다 같은 사람으로 대할 거야. 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배 곯지 않고, 살기 힘들다고 도망하는 놈도 한나도 없고, 신분이 다르다고 사랑도 못하는 그런 지랄맞은 세상은 안되게 할 거야. 소문은 내지 마. 잘못하면 포청에 끌려 가서 사상불온자로 찍혀서 진짜로 죽을 수도 있어. 어디가서 말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거야. 그러니 어디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쉿!

질문 7. 이건 좀 어려운 질문인데요, 언년이를 아직도 사랑하나요?
대길: 언년이는 말이야, 내가 살아가는 이유야. 나는 평생 언년이랑 살거야. 여기 내 가슴에 담고 말이우. 몸뚱아리가 곁에 없다고 언년이가 없는 것은 아냐. 여기... 이 가슴에 나랑 평생 살거야. 언년이 품에서 원손마마를 빼앗아 오면서 언년이에게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고 했었지.
나 이대길이야. 난 안 죽어. 그러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년이도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해. 언년이의 죽음은 곧 대길이의 죽음이니까. 아직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되었나?

*대길이를 만나 가상인터뷰를 했는데, 몇 개 질문하고 싶은 것이 더 있었는데 참았어요. 대길이 또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제가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이 황철웅인데, 이분은 시간도 안내줄 뿐더러 입 잘못 놀렸다가는 칼맞을 것 같아서 무서워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다음에 황철웅 인터뷰도 꼭 성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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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07:43




애초부터 길바닥 사극 추노에 혁명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조선의 피폐한 역사 속에 도망노비가 속출하고, 그 노비를 쫓는 인간사냥꾼 추노꾼이라는 재미있는 소재가 드라마 줄기였고, 부수적인 양념으로 소현세자와 그 아들 원손 석견을 끼어넣어 혁명이라는 곁가지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줄기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쫓고 쫓기는 안타까운 사랑이겠지요.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 그 사연 하나만으로도 추노라는 소재는 성공적인 사극멜로드라마지요. 그러나 혁명을 얘기하기에는 의미가 퇴색해 버렸습니다. 혁명보다는 사랑에 그 무게중심이 쏠렸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혁명과 사랑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두었다하여 드라마가 수작이다 혹은 졸작이라고 평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드마라 추노는 사랑에 무게중심이 쏠려도 긴장감과 추노 특유의 코믹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으니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추노에서 그리고자 했던 혁명이라는 부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에요.

드라마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실패입니다. 원손 석견을 왕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고, 혁명의 중심인물로 세운 송태하를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 두번째 실패 요인입니다. 
우선 원손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혁명이 실패한 첫째 이유라고 했는데요, 원손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라는 명분싸움에서는 합당한 혁명의 논리가 되겠지만,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 외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린아기가 세자가 되고 다음 보위에 내정된 것은 조선 왕조사에서 수없이 있었던 일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는 일입니다. 원손 석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점이겠지요.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로 잡혀가서 8년만에 조선에 돌아와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에, 그리고 독살이라 의심되는 부분때문에 석견을 왕위에 옹립한다는 것은 타도의 대상이 그 의문의 중심에 있는 패륜적인 왕 인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선비와 송태하의 혁명론에 대한 탁상공론으로 그친 혁명만이 있었을 뿐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조선비와 송태하를 대변하는 사대부들의 한계만을 노출시킨 채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그들의 혁명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반정을 위한 거사는 황철웅이라는 희대의 슈퍼맨으로부터 봉쇄당했고, 임영호나 20회 말미에 예고로 보여준 곽한섬이 만난 이재준 대감 역시 임영호의 역할정도 밖에는 그려주지 못할 것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송태하가 스승이라 따르는 임영호는 이름만 드높았을 뿐 어떤 사고를 가진 인물인지 드라마에서 드러내 준 것이 없기에 그를 따르는 유생들과 송태하와 부하들은 임영호 팬클럽 회원쯤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추노의 혁명관의 실패는 임영호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기에 오는 혼란일 것입니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이재준 대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그럼 임영호가 준비했다는 시대적인 소임을 누구를 통해서 보여줬어야 했느냐? 바로 송태하였어요. 그런데 송태하는 드라마 20회가 진행되는 동안 구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원손을 지키고 소현세자의 유지를 받드는 충절심있는 한때의 장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제는 신분에 대한 각성까지 해야 하니 숙제가 많은 인물이지요.
가장 영웅적으로 그려졌어야 할 송태하가 가장 답답한 캐릭터로 나오고 있으니, 도망노비나 쫓는 추노꾼 이대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요. 언년이에게 약속한 앙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사 하나로도 이대길은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 돼버렸고, 정작 새로운 세상을 세우겠다,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았던 송태하는 원손과 언년이를 데리고 조선팔도를 도망치는 신세만 되고 말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저는 송태하에 대한 기대는 많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미약했고, 그가 세우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드라마에서 계속 미적거리며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끝까지 송태하가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은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린 송태하의 상황때문이겠지요. 부하장수들을 다 잃었고, 조선비는 변절해서 동지들 이름을 팔아버렸고, 송태하 혼자서 칼을 들고 궁궐로 쳐들어 갈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지금 잠시 몸을 의탁한 월악산 산채의 녹림거사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일테고요. 저라도 안싸우지요. 이유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 가겠냐고요. 차라리 숨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백번 나아보이니까요.
송태하는 드라마에서 가늘고 길게 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혁명을 꿈꿀 때 부터 그는 굵고 짧게 사는 운명을 택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대길이나 천지호, 짝귀같은 인물은 늘 칼부림이 난무한 저잣거리에서 살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가늘고 길게 살자가 인생 모토인 것도 같습니다.
20회에서 호기심 많은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지요. 대길이랑은 왜 같이 다니게 된 거냐? 여기에 얼마나 머무실 요량이냐? 청에서 무엇을 배우셨는냐? 승하하신 저하는 어떤 생각을 하셨느냐? 등등... 언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차게 물어봤지만 송태하는 이번회에도 답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멋드러지게 칼을 꺼내 뭔가 결심한 듯 폼만 잡다 말았어요. 이러니 시청자가 한 번 예상해보라는 질문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작진이 송태하의 갈 길을 송태하의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 근 10여회를 뜸을 들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제가 송태하라면, 아니 작가라면 어떤 방향으로 송태하의 앞길을 그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는 송태하의 생각이 그 테두리가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처음 원손을 왕위에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큰 테두리의 혁명이 아니라, 그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송태하 나름의 각성이고 혁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 중심에는 원손과 부인 언년이가 있겠지만요.
송태하가 중요한 단서를 흘렸는데요, 대길이에게 혼자 떠날 것이라며 부인과 원손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지요. 대길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는 말에 "난 한번도 우리 백성을 죽인 일이 없다" 라며 조선 최고의 무사, 애민정신이 투철한 장군의 모습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평생 도망칠 수도 숨어살 수도 없으니 끝을 봐야겠다며 월악산 산채를 나가겠다는 말을 대길이에게도 언년이에게도 했어요. 송태하가 가는 곳은 아마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타협점을 찾거나 수원에서 거사를 위해 만나기로 한 다른 동지를 만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송태하의 말이 크게 달라진 곳이 두군데가 있었어요. 하나는 대길이 앞에서 내 부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감옥에서나 그 이전에는 항상 "내 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냥 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점이에요. 대길이와 언년이와의 관계를 알게 된 연유이기도 하겠고, 대길이에 대한 감정적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거리감도 느껴지더군요.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한 말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 부인이라는 말로 언년이는 자신의 여인이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대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같기도 하고요. 물론 억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두번째는 원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송태하가 주장해 왔던 것은 처음에는 원손의 왕위 옹립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원손의 복귀, 그리고 원손의 사면이라는 식으로 송태하의 입장이 계속 바뀌고 있었지요. 동굴에서 언년이에게는 원손을 왕위에 올릴 것이라고 했고, 조선비와의 대립에서는 왕위가 아닌 복권을, 그리고 대길과 함께 교수대에서 처형될 위기에 처한 이후에 용골대와 만나서는 봉림대군에게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겠다는 의중을 폈습니다. 그런데 이번회에서 송태하는 언년에게 "마마님이 숨어사는 왕족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씩씩하고 굳건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송태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송태하는 더이상 원손을 내세운 혁명이라는 기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니까요. 이는 송태하가 언년이 노비였음을 알고 난 이후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각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태하는 왕을 새로 세우겠다는 혁명가에서 백성을 지키는 혁명가로 거듭나고, 그 현장에서 죽고자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송태하가 언년이에게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어요. 백성의 고충을 깨닫고자 했으나,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않았으며, 노비가 되어서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옳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기다려 주겠느냐고 말이지요. 
송태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원손을 왕위에 세운다느니 썩은 정치를 갈아엎겠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노비로 떨어져 살아본 그 민초들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월악산에 모여든 막바지 인생들, 그 민초들 역시 자신이 보듬고 가야 할 백성이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범주에 넣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송태하가 마지막에 칼을 빼든 장면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칼을 사람 그림자 없는 월악산 속 요새까지 숨어들어야 했던 바닥인생들을 지켜주기 위해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림대군을 만나기 위해서든지 곽한섬이나 다른 누구를 만나러 산채를 나가든, 황철웅으로 부터 월악산이 공격을 받게 되면, 송태하는 아마 미친 듯이 칼춤을 출 것입니다. 원손도, 언년이도 아닌 자신이 한번도 백성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월악산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송태하의 혁명관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월악산 산채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를 중심으로 한 혁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드마마의 무게 중심도 언년이와 대길이, 그리고 송태하, 설화의 사랑으로 초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애초에 추노에 혁명이 곁가지로 끼어들어간 셈이니 뭐라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왠지 그 사랑이 더 무겁게만 느껴지네요. 남의 여자가 된 언년이를 여전히 놓지 못하는 대길이, 10년을 자신을 찾기 위해 개차반 추노꾼이 되어 팔도를 뒤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년이 고민도 커지겠지요. 두 사람의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송태하, 그리고 대길에게 용감무쌍하게 들이대는 설화까지 사랑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 사랑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혁명의 이야기는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재미없어진 것도 아니고, 월악산 산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울고 웃게 하니, 그렇게 숨어서라도 오손도손 평화롭게 살았으면 싶어요. 힘들겠지만요. 허풍쟁이 월악산 짝귀와 급코믹해진 최장군때문에라도, 추노는 끝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상을 뒤집는 것도 혁명이지만 자기로부터의 혁명도 혁명이랄 수 있겠지요. 대길이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에 있지만,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백성에 있을 것 같습니다. 노비라는 밑바닥 삶을 경험한 그가 가장 밑바닥 민초들을 위해 칼을 든다는 각성이야말로 송태하다운 혁명의 완성이 아닐까요? 혁명에 대한 그림이 큰지 작은지, 성공이냐 좌절이냐 하는 것들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위해 칼을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작은 혁명에 대한 모습이라도 드라마 추노에서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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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1 10:05




추노의 무대가 호기심 만빵 월악산 짝귀의 산채로 옮겨가면서 결말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시작된 쫓고 쫓기는 관계가 결국은 이곳 월악산에 집결시키기 위한 과정들이었다고 봐야겠지요. 꿈과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원손 석견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들면서 모두가 쫓기는 자, 혹은 쫓는 자의 입장이 돼 버렸습니다. 대길이 쫓던 언년이와 도망노비 송태하는 더 이상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닌 서로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돼버렸고, 좌의정과 황철웅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돼 버렸지요.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정인 대길이의 세상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 남자는 높은 벼슬을 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여자를 위해 세상을 바꿀 용기를 가졌던 분입니다. 죽은 줄 알고도 그 분을 잊지 못했고, 나리를 만나고 혼례를 올렸지요. 나리와 혼례를 올린 것은 양반이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나리가 양반이기 때문에 이제는 제가 물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든다 하셨지요. 그 세상은 신분이 다르다 하여 사람의 정마저 비참하게 잘라내는 세상은 아니겠지요. 다시는 저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언년이의 입에서 언년이라는 여자는 예전에 죽었고, 김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대길이는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어요. 그토록 찾아 해매였던 언년이가 자신 앞에서 스스로 죽었다고 말하는 순간 대길이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눈앞에 있는 언년이가 자신이 사랑하는 언년이가 아니라고 하는 말을 결국 참아내지 못하고 나와버리지요.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써보는 낯선 이름 김혜원... 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스스로 부질없음을 새겨보려 하지만 허사가 돼 버립니다. 송태하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온 언년이를 보는 순간 말이지요. 언년이라 부르며 붙잡아야 하는지 혜원이라 부르며 붙들어야 하는지 대길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송태하가 뛰어나와 언년이를 붙들었지요. "백성의 고충을 깨닫고자 했지만,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올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기다려 달라" 며 언년이를 붙잡았어요. 의리를 지키자고요. 
원손을 데리고 길을 떠난 세 사람은 기찰에 걸리고 맙니다. 송태하가 포졸들과 싸우는 동안 대길이 언년에게서 원손을 빼앗아 들고 가버렸지요. 대길이 원손을 빼앗아 든 것은 봉림대군을 만나려고 하는 송태하를 막기 위함이었어요. 송태하와의 의리때문에 혜원이 송태하 곁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원손과 동행한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대길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년이를 위험하게 할 것이라는 것도요.
언년에게 월악산 영봉에서 짝귀를 찾으라며 신신당부를 하는데 언년이 입에서 10년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 나옵니다. "도련님..." 돌아서서 언년을 향해 "넌 반드시 살아야 된다" 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글 돌았어요. 드라마지만 대길이라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에게 꼭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모습, 반하지 않을 수 없네요. 
송태하는 대길에게 무술에서 이길 수는 있다하더라도, 세상을 바꾸고 하는 대의명분과 힘이 있다하더라도, 사랑에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송태하도 언년이가 대길이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손을 데리고 간 대길을 따라 월악산 영봉을 향해 달려가면서 언년이 걱정하지 말라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지요. 송태하는 대길이 딴 마음(관아에 원손을 데리고 간다는 것이겠죠)을 품지 않을 것을 안다며, 부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송태하는 대길이 언년이를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굳이 사랑의 승자와 패자라는 말로 송태하와 대길이의 사랑을 논할 필요는 없어 보여요. 송태하의 언년에 대한 사랑 역시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지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상과 사랑의 양자택일이라는 순간에 두 사람이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송태하는 세상을, 대길이는 사랑을 택할 것이라는 것을 송태하도 대길이도 알고 있어요. 대길이 송태하 곁에 있는 언년이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가 송태하가 세상을 택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원손을 데리고 있는 대길을 송태하가 믿는 것 역시 언년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추노 19회를 보면서 과연 송태하가 새로운 생각을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언년이가 바라는 그런 세상과 부합되는 것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글 제목으로 송태하가 의리를 지킬수 있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는데요, 이는 부인으로 인정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닌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을 꿈꿀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저는 의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인으로 인정하더라도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까지는 꿈꿀 수 없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비천한 노비로 떨어졌으면서도, 한번도 노비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던 송태하는 언년의 말에 크게 깨우친 것이 있었어요. 언년에게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 자신의 말의 뜻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은 그 구체성이 없었어요, 소현세자의 혈육인 석견을 보위에 올린다는 명분, 그리하여 썩은 정치를 쇄신하겠다는 것이 송태하가 이루려는 세상이었어요. 그러나 송태하의 세상은 자신도 한때 노비로 살았던 노비계층, 자신의 부인이 된 언년이로 대변되는 피지배계층을 위한 세상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배계층을 위한 개혁이었고, 임금을 바꾸려는 혁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송태하의 각성이 송태하를 지지하는 사대부들의 각성까지 끌어낼지는 의문이에요. 송태하의 지지기반의 한계이자 현실이며, 송태하의 딜레마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송태하가 항상 대길이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그대와 나는 갈길이 다르다.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
저는 송태하의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송태하와 대길이는 같은 길을 갈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송태하의 길은 세상을 바꾸는 길이고, 대길이는 사랑을 찾는 길이라는 묘한 경계선이 있음을 느끼거든요. 송태하는 결코 세상을 포기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대길이는 사랑, 즉 언년이를 포기할 수 없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길이가 송태하에게 감옥에서, 나같이 사랑도 마음대로 못하는 지랄 같은 세상이나 한번 바꿔 보라" 고 하면서 "그것도 아니면 꽁꽁 숨어 살던가..."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송태하는 꽁꽁 숨어살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가 목숨을 걸고 가고자 하는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역사이기 때문이에요. 원손을 보위에 올리고, 부패한 조선의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송태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자 목숨을 걸 대의입니다. 마방관노로 떨어져 절름발이 행세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녹슨 칼을 꺼내 들었을 때, 송태하는 역사를 바꾸기 위한 장부의 길을 달렸습니다. 언년이를 만나면서 송태하는 세상에 눈을 떴다고 볼 수 있어요.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있던 송태하의 혁명에 대한 당위성,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누구를 위한 혁명이냐, 어떤 세상이냐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요.

따라서 송태하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를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언년이와의 첫만남에서 송태하는 쫓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는 그 대상이 원손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을 위해 달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비라는 말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고 했던 언년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했던 언년이를 위해서 말이지요. 송태하와 대길이의 같고도 다른 길인 셈이지요. 송태하는 언년이를 위한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대길이는 언년이를 지키기 위해 달려가니 언년이가 대단한 인물일 수 밖에 없네요. 두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게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송태하가 결국 언년이를 대길이에게 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는 역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은 이상적이지만, 송태하와 함께하는 세력들이 추구하는 세상과는 아직은 한참 멀리 있는 세상이지요. 송태하도 가슴으로는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을 깨닫지만, 머리는 현실에 발을 딛어야 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송태하는 신분해방을 기치로 내걸 수는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기 때문이에요. 비록 송태하가 혁명가 개인으로서 각성을 했다하더라도, 송태하로 대변되는 사대부들의 각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한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송태하가 마지막 결전에서 이런 이유로 대길이와 언년이를 살리려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자신은 앙반 상놈없는 평등세상, 종도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혁명의 기치로 내세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대길, 그대는 조선의 미래를 위한 희망으로 살아 남아라. 그리하여 그대와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 노비라는 말을 무서워 하는 언년이라는 여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 " 이런 당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요.
결국 언년이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되겠지만, 송태하라는 인물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지금 추노 속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는 조선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혁명가이기 때문이에요. 노비당이 꿈꾸는 세상, 대길이가 꿈꾸는 세상은 그로부터 몇백년이 더 필요하지요. "자신이 변화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지식인 송태하의 각성은 비단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2010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이기도 합니다.
대길이와 송태하가 감옥에서 나눴던 대화 중에 송태하가 그랬지요. "누구나 죽으니 죽는 것이 억울할 것은 없다. 다만 죽을 때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송태하의 각성은 그 때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고, 멈출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태하는 실패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언년이를 대길에게 보낼 것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비록 신분적인, 세계관에서의 한계를 다 깨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송태하의 각성이 중요한 이유이자, 그가 언년이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할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찌보면 송태하가 언년이에게 의리를 지키는 송태하식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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