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결말'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3.28 '추노' 언년이 캐릭터 실패 이유 네가지 (96)
  2. 2010.03.27 '추노' 업복이, 좌의정의 어디를 쏘았나? (29)
  3. 2010.03.26 '추노' 마지막회 깜짝반전, 송태하의 죽음암시? (81)
  4. 2010.03.25 '추노' 세 커플 키스신에 담겨있는 결말의 비밀 (13)
  5. 2010.03.25 '추노' 업복이와 초복이 노비키스에 담긴 의미 (32)
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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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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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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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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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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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10




다 끝난 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참 재미없어요.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것같기도 하고... 지난 글로 추노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사실 이 글은 추노의 작가와 감독, 그리고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씨가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천성일 작가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실패였고 본인의 실수라고 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독의 손을 거쳐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이요. 저는 서운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언년이 캐릭터가 실패한 것은 작가가 언년이 캐릭터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다해의 연기력 도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소재는 언년이 몽타주와 돌멩이였어요. 대길이가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묻고 다녔던 한장의 그림은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그리움의 상징이었고, 꼭 찾겠다는 의지였어요.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대길이, 언년이, 송태하 세사람의 애정라인의 실패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면서 팽팽한 애정라인의 긴장선이 의미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남의 아내가 된 언년이를 더 이상 쫓을 명분도, 추노질을 할 명분도 없어져 버렸고, 추노의 사랑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혼례를 올려 버린 여인을 쫓아다니는 대길이는 잘못하면 추노꾼이 아니라 스토커가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원손을 안고 있던 언년이가 황철웅 수하의 칼에 찔렸는데 저는 이 때 언년이가 죽었었더라면 마지막 대길이의 죽음도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배를 구해 놓고 기다리던 대길이 달려왔을 때 이미 언년이는 칼을 맞은 상태였고, 송태하가 황철웅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언년이가 죽음을 맞이 하면서 대길이가 고백을 했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치명상을 입은 대길이 언년이를 향해 기어가다 죽고, 설화가 언년이와 대길이의 손을 포개주는 것도 나름 멋있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마지막까지 언년이를 살리려 했던 감독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년이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손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애 정도만 보여주었을 뿐이에요. 차라리 설화가 강한 여인으로 마지막에 태어났지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설화의 인생에 중요한 각성이었거든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 배우지 못해 천한 대접받지 않겠다는 각성이라고도 보여지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이 부분은 사실 여러가지로 글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다해의 언년이 캐릭터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 글이 비공개 처리당하는 일이 있었던 지라 새삼 거론하는게 조심스럽지만, 비판도 수용하는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말 하지 않겠고, 아마 언년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언년이를 연기했던 이다해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기자들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키겠지만, 저는 딱 한가지만 충고하고 싶습니다. 극에 흐르는 대길과 송태하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고자 했다면, 아마 언년이 감정선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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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07:32




추노 최종회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고, 인상깊었던 업복이의 최후는 드라마 추노에 관통하고 있는 분노, 울분, 설움, 희망,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의 과제까지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업복이와 초복이라는 노비들, 가장 낮은 자 민초들이었습니다.
화려한 짐승남들의 저잣거리 무용담 속에서도 노비들의 이야기는 조용히 진행시켜 왔어요. 특히 과거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업복이였음에도,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은 민초들이 그만큼 힘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호랑이의 포효보다 강한 분노 한 방을 위해 숨죽이고 살게 했었지요. 하지만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업복이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 낸 이름없는 영웅이었습니다. 
추노 최종회 최고의 명장면은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화승총을 날리고, 붙잡혔던 15분여의 장면이었습니다. 대길이의 죽음은 뜨거운 사랑을 받은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것에, 그리고 이대길을 연기하는 장혁의 눈부신 연기에 감정선을 끓어오르게 했다면, 업복이는 그 담대함과 죽음 자체에 대한 의미가 컸던 부분이었어요. 제가 업복이의 죽음 부분을 따로 정리한 이유는 추노의 메시지가 업복이에게 함축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같은 노비가 있었다"
초복이를 월악산 영봉으로 보내고, 노비당 동지들을 향해 장례원으로 간 업복이는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들의 시신과 수색하는 관원들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 숨 한자락이 붙어있던 끝봉이로부터 이 모든 것이 그분 그놈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지요.
"업복이랑 도망 가 둘이 살아. 무섭다, 그 놈들 정말 무서운 놈들..."이라며 끝봉이가 숨을 거둘 때 업복이의 그 울음이 아직도 눈물나게 합니다. 업복이 공형진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 올라오는 슬픔과, 끝봉이 이름만 애타게 부르면서도 슬픔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절절함을 소름끼치게 표현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터져 나오는 곡성을 참으며 입만 벌리던 그 상황이 너무나 가슴 절절하게 와닿은 장면이었어요. 공형진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업복이는 노비당 그분이 무엇때문에 '노비들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 '양반세상을 뒤엎고 노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라며 노비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희망을 주었는지, 왜 노비들을 이용해 양반사냥을 했었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겠지요. 일을 꾸민 좌의정 이경식과 그분(그놈)을 죽여 버렸으니까요. 
업복이는 봤어요. 선혜청 습격의 성공으로 들떠 궁궐로 쳐들어 가자며, 내일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흥분하고 기대에 찼던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요. 홀로 가 본 궁궐의 담장은 성처럼 높고 견고했고, 지금까지 가장 커 보였던 주인양반집 문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고 컸다는 것을요. 또한 좌의정이 그분을 시켜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리려 했음을요. 
죽은 끝봉이에게 업복이 울며 말하지요. "내는 초복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야, 갸가 먼저 가서 기다린다 그랬는데...." . 기다리고 있는 초복이에게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조용히 숨어 둘이 일콩달콩 살고 싶었을 업복이에요. 하지만 업복이는 알았어요. "그럼 세상은 누가 바꾼대요?" 라며 동지들에게 보냈던 초복이가 누구보다 자신의 결정을 잘했다고 할 것이라고요.
"내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거라니,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을 거라니, 그렇게만 되면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초복이에게 전해지지 않을 말이었지만, 여느 장수보다 멋지고 여느 혁명가보다 뜨거웠던 노비 업복이의 출정식 결의였어요. 총 네자루를 지고 광화문을 향해 당당하게 선 업복이는 광화문 수문병을 총으로 쏘고 궁궐로 진입했지요. 궁궐로 들어가는 업복이의 표정은 두려움없이 담대했고, 화승총을 든 손은 한치의 떨림도 없었어요. 양반들을 죽이면서 수없이 고민했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주춤거리기도 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업복이의 모습이었어요. 궁궐로 들어가면서 반짝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지었던 쓴웃음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업복이의 표정같습니다.
그 분을 시켜 노비들을 이용한 우두머리가 좌의정임을 알게된 업복이는 좌의정을 향해 총을 겨눴습니다. 수하 뒤에 숨는 좌의정의 공포에 떠는 모습은 좌의정의 죽음보다 통쾌해 보였어요. 칼을 들고 덤벼드는 그분을 향해 한방, 변절자 조선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방, 그리고 좌의정을 향해 한방을 쏘고는 붙잡히고 말았지요.
바닥에 누운 업복이와 궁궐 밖 반짝이 아버지의 시선이 교차되는 장면, 그리고 반짝이 아버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장면은 추노에서 하고 싶었던 말, 드라마에 시종일관 흘렀던 민초들의 분노, 꺾을 수 없는 희망과 의지를 보여주었던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양반의 저녁 노리개로 팔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슬픔이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반짝이 아버지였지요. 반짝이 아버지의 주먹은 새로운 업복이로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순종하는 역사가 아닌 항거하는 역사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업복이는 닫혀가는 궁궐 밖 세상을 향해 외쳤어요. "노비도 사람이다" 라는 것을요.  '분노하지 않는 순종은 굴복이며, 희망도 없다'는 것을요.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이 나오지 않은 이유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총을 쏜 사람은 그분과 조선비, 그리고 좌의정 이경식을 향해서 였어요. 이들 세사람을 향한 업복이의 총구가 달랐어요. 그분과 조선비를 향해서는 관동명포수답게 한 번에 심장을 명중해 버렸지요. 그런데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 장면은 좌의정을 향해서 총은 쐈지만, 좌의정 이경식이 쓰러지는 장면과 굴러떨어지는 관모만으로 좌의정의 죽음을 암시했지요. 저는 감독의 연출이 이렇게 담대하고 세심하게 함축적인 메시지의 복선을 깔았다는 데서 놀랍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업복이가 죄의정을 쏜 부위는 어디였을까요? 바로 좌의정의 머리였어요. 양반들 대갈통에 구멍을 내겠다는 말을 업복이가 늘 했었지요. 좌의정은 양반계층의 최고 지위에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그 양반들 대갈통을 향해 업복이가 총을 쐈던 것이지요. 드라마 추노는 매회 선혈이 낭자한 죽음이 이어졌지만,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만은 화면에서 처리하지 않았어요. 굴러떨어진 벼슬아치들의 상징인 관모로 좌의정의 죽음과 함축적인 의미, 그 모든 것을 보여 주었어요. 
도망노비와 양민들을 추쇄해서 그들을 북방으로 올려 성을 축성하자는 의견을 인조 임금에게 주청하고 나오던 좌의정 이경식을 죽인 곳은, 놀랍게도 조선의 중요한 정치를 논하던 근정전 입구인 근정문 앞이었습니다. 업복이는 좌의정의 몸뚱아리가 아닌 양반이라는 지배계층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어요. 업복이는 양반들의 지배논리와 의식,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썩어빠진 정치를 향해 쏴 버린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혁명을 노래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업복이의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썩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 좌의정을 죽였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은 한걸음 가까워졌기 때문이에요.

가볍지 않은 업복이의 죽음
또 하나 업복이의 최후를 보며 새삼 놀라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업복이의 죽음은 비록 화면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업복이가 최후를 맞이 한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네, 바로 높디 높은 대궐,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고 나오는 궁궐 안이었어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출생과 함께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가장 비천하고 힘없는 사람, 이름자 하나 제대로 짓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개똥이, 사월이, 오월이, 초복이, 업복이, 언년이로 불리웠던 노비가 조선에서 가장 큰 집, 가장 큰 힘을 가진 대궐 마당에서 죽었다는 것, 저는 이런 드라마 속 의미들이 너무 멋진 연출들이었고, 그 상징적인 의미에 박수를 치고 싶더군요. 
업복이는 죽어가며 닫혀가는 궁궐문 안에서 반짝이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어요. 우리가 주인되는 세상, 사람이,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 그 세상에 누워 있다. 나는 죽지만 죽지 않는다. 아저씨가 있고, 월악산에 남겨 둔 초복이가 있고, 또 다른 끝봉이, 개놈이가 있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포기하지 말자고요. 희망은 포기하는 순간 내 것이 될 수 없고, 꿈을 꾸는 순간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요. 초복이와 은실이의 대사가 업복이가 궁궐에서 죽어가며 전해 준 메시지인 것이에요.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우리 거야. 왜냐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업복이는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이루겠다며 혁명을 꿈꿨던 송태하는 동지들의 죽음과 불분명한 명분으로 결국은 원손의 목숨과 언년이를 지키는 것도 작은 희망이라며 개인의 각성으로 이어졌습니다. 대길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양반 상놈 없는 세상에서 언년이와 평생 함께 살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꿈이고 희망이었던 언년이를 잃고 사랑만 쫓는 추노꾼이 되고 말았어요. 물론 송태하나 대길이의 각성과 그 의미가 결코 작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업복이는 사랑하는 초복이에게 결국 가지 않는 길을 택했어요. 대길이나 송태하는 사랑을 택했지만, 업복이는 남은 초복이를 위해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 지엄한 궁궐을 홀홀단신으로 들어가 가장 부조리한 사람 좌의정을 쏴버렸습니다. 좌의정 이경식같은 인물들은 반복해서 나오겠지요. 오포교의 자리에 더 악랄한 육포교가 앉았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업복이와 초복이가 나오듯이 업복이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민초들의 노래
저는 송태하도 죽었을 거라고 지난 글에서 예상했는데, 여하튼 대길이, 송태하, 업복이는 같은 지점 죽음에서 만났습니다. 죽음을 가장 강하게 거부했던 대길이에게 황철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지요. 대길이 "저 놈이 세상을 바꾼대잖아, 이 지랄 같은 세상" 이라고 대답해 줬을 때 황철웅은 무너졌어요. 이들이 달리는 이유, 희망의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대길이 역시 새 세상을 위해 죽었어요. 송태하가 바꾸겠다는 세상, 그 세상과 언년이가 같은 무게였고, 같은 의미였기에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대길이는 설화에게 이렇게 좋은 날이라고 했을 지도 몰라요. 대길이 그랬지요. 누구나 죽을 수 없는 이유 하나쯤은 있는 거라고요. 대길이가 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언년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대길이는 또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에요. 언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마지막 대길의 죽음은 언년이와 함께 사는 앙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 송태하가 꿈꿨던 세상, 업복이가 꾸었던 세상과 명분을 함께 했어요. 청으로 도망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 송태하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송태하 역시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떳떳한 죽음을 택함으로써 언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어요. 언년이는 늘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 했고 답을 바라고 있었어요. 그래야 자신도 나리를 따르지 않겠느냐고요. 언년이에게 송태하가 "청으로 가지 않습니다" 라고 했을 때 고맙다고 했던 이유는 송태하가 또 다시 도망자의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을 겁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있지요. 드라마 추노는 이 희망을 놓치지 않는 한, 희망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살아있는 한 실패는 있어도 절망은 없음을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마지막 대길이가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끝나지 않은 혁명, 민초들의 노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업복이나 대길이는 죽었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긴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죽음으로 희망을 말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에 살아있고,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누이, 형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추노 시즌 2로 그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으면 싶네요. 
추노의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수고하셨다는 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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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4 Comment 29
2010.03.26 08:17




예상은 했지만 추노 마지막회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봐야 했네요. 드라마가 끝났다는 실감도 들지 않고 계속 눈에 대길이와 업복이의 모습이 어른거리는게 죽음이 아니라 죽음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길이 쏜 화살이 제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초복이와 은실이 바라보던 떠오르는 태양이 제 가슴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궁궐로 총을 들고 간 업복이 때문에 울고 추노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대길이의 죽음때문에 울고, 마지막에 최장군과 왕손이 농사짓는 깜짝 서비스에 결국은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던 추노였습니다. 한동안 추노의 긴 여운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추노의 주인공들과 함께 뛰고 쫓겼던 시간, 그리고 길게 여운으로 남겨 준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대길의 모습은 오래도록 인상깊은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추노 최종회는 주인공들 각각과 이별하는 회차이니만큼 엔딩장면도 각각의 의미를 담아 보여주었지요. 가장 많이 울렸던 업복이 공형진의 죽음은 추노가 던지는 메시지와 함께 별도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요.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우선 가장 떠나 보내기 힘들었던 대길이의 죽음부터 정리해야 겠네요. 대길을 뒤를 추격하는 관군들을 향해 송태하가 멋지게 활을 날려 방어해주고 함께 갈대밭을 뛰어가는 모습은 우정을 넘어서 시대를 함께 달리는 모습이었어요. 씨익~ 미소까지 주고 받는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짝귀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용인 조비산이에요.
"언제부터인가 둘이 같이 달리고 있는 것 아나?" 라고 송태하가 물었지요. 도망노비 송태하를 쫓았던 대길이 언년이가 함께 있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두 사람의 목적이 같아져 버린 것이지요. 언년이와 언년이 가슴에 안긴 원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대길이와 송태하는 언년이를 사이에 두고 같은 운명을 가진 공동운명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대길이와 함께 하는 동안 송태하는 대길이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지요.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 무게보다 언년이라는 여인의 무게가 대길이라는 남자에게는 더 컸다는 것을요. 그런 의미에서 송태하가 대길이에게 "그대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도 다 운명이 아니던가" 라며 속내를 털어 놓는 장면은 송태하의 진중함이 와 닿았어요. 
"대길아, 언니랑 산적질이나 하며 한평생 희롱하다 가자. 세상도 잊고 언년이도 잊고 따라와"라는 짝귀에게 "내 갈길은 내 가야지..." 라며 발길을 돌리는 대길이었지요. 대길이가 발길을 향한 곳은 이제 조선을 떠나면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청나라 먼 곳으로 떠나는 언년이의 뒤였어요.
자석에 이끌린 듯 언년이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나 도련님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때문이었겠지요. 비록 송태하의 부인이 되었지만, 언년이도 10년을 품어 온 도련님에 대한 정리를 한 순간에 끊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처지가 언년이의 사랑 색깔이에요. 너무 슬퍼서 한처럼 가슴시린.... 그런데 드라마에서 언년이의 그런 세심한 감정표현이 부족한 것은 두고 두고 아쉬운 부분이네요.
모퉁이 갈대밭에서 나온 대길이를 보고 언년이 어떤 마음으로 웃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언년이도 마지막 조선을 떠나면서 도련님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요. 송태하는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웃는데 대길이 표정은 '에이 쪽팔려' 하는 표정이더라고요. 시선도 피해 버리고요. 아무튼 극 중간중간 웃겨주는 대길이 때문에 일희일비하며 미친 사람처럼 드라마를 보게 하니, 장혁의 귀여운 모습, 애처러운 모습, 남자다운 모습, 짐승처럼 포효하즌 모습, 그리고 길바닥 마초같은 모습때문에 추노를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대길이라는 캐릭터가 좋았노라고 고백을 못할 것 같아서 주책스럽지만 속마음을 써봤습니다. 본론으로 다시 들어가죠.
안성천으로 가는 중간에 송태하가 원손을 데리고 용골대 수하와 얘기를 나눈다며 잠시 자리를 피해 주었지요. 대길에게 언년이에게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라고 일부러 자리를 내주었는데, 대길이는 잘 살아야 된다며 이제는 도련님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도령같은 것 아니라고 언년이에게 차갑게 말을 해버리지요. 나를 잊고 잘 살아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하는 대길이에요.
"난 말이다. 난 말이다" 그리고는 뒷말을 바로 잊지 못하고 울컥해지는 대길이 "네가 정말 그리워서 찾아 해맨게 아니야. 그저 도망노비 찾아 다닌 것 뿐이다"라고 말해 버립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라는 언년이의 말에 헛웃음 짓고는 대길은 배를 구할테니 그리 전하라며 자리를 뜨고 말지요. 이렇게 가슴 아픈 사랑 고백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요. "네가 정말 그리워서 해매고 다녔다" 는 말을 언년이 알아 들었는지 못알아 들었는지, 극중 언년이에게 묻고 싶을 정도에요. 아마 언년이도 알아 들었겠지요.
강나루에서 송태하 일행을 기다리던 대길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오지 않자 불길한 마음에 뛰어가지요. 언년이에게 주고 싶었던 꽃신을 남겨둔 채로요. 대길이가 달려간 곳에는 황철웅이 송태하와 언년이를 공격하고 있었고, 언년이도 송태하도 부상을 입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되었지요. 대길의 눈에 불꽃이 일고 대길은 미친듯이 황철웅과 결투를 하지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니 놈 부인이랑 니놈 아들 싹다 죽일 참이냐? 니놈은 그저 잘 살면 되는 거야. 살아서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그래야 다시는 우리같은 사람 나오지 않지" 라며 송태하에게 어서 떠나라고 말하는 대길, 눈물이 흘러서 차마 그 장면을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언년아... 꼭 살아라... 니가 살아야 나도 산다. 어여 가거라" 라며 대길이 황철웅을 향해 달려 들고 언년이는 송태하를 부축해 떠나지요. "또다시 도련님을 두고 이렇게 떠납니다.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도련님 죄송합니다". 전하지 못하는 언년의 방백이 이어졌지요. 결국은 엇갈릴 수 밖에 없었던 운명, 살아서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두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었나 봅니다. 
황철웅이 대길에게 묻지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요. 대길이 황철웅에게 "저 놈이 목숨 한 번 살려 줬거든, 그리고 이 지랄같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자 황철웅은 검을 내리고 맙니다. 송태하에게 가졌던 자존심의 상처는 송태하에게 병자호란때 목숨을 빚지고, 송태하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황철웅은 배신의 칼을 들었던, 그래서 결코 송태하를 이기지 못했던 황철웅의 2인자의 패배의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황철웅이 마지막에 대길이를 막지 않았던 것은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이었어요. 끝까지 자존심에 자신이 이겼다고 하지만, 황철웅은 처참하게 부숴진 자신의 모습을 그제서야 알게 된 거에요. 그의 부인 이선영의 일그러진 모습은 황철웅 자신의 모습이었어요. 황철웅이 부인 이선영 무릎에 머리를 떨구고 울었던 것은 황철웅이 굴절되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각이었어요. 황철웅은 아마 송태하의 뜻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나레이션을 황철웅의 목소리로 했는데, 그는 살아 남아서 바꾸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송태하가 죽음으로 바꾸려 했다면 황철웅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역사 한 모퉁이 작은 돌멩이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봤습니다.
몰려오는 관군을 향해 뛰는 대길이 방백으로 했던 말은 잊혀지지 않을 대길의 명대사였어요.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 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나의 언년아...나의 사랑아...."
관군을 뚫고 피투성이가 된 대길은 설화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고 말지요. 이렇게 좋은 날, 노래나 불러 달라고 했던 말은 대길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설화의 구슬픈 타령을 들으며 대길이는 사랑하는 사람만 쫓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다 바쳐 뜨겁게 사랑하다 가버렸네요. 봉분도 없이, 돌무덤에 설화가 지어 준 옷은 대길이 무덤의 비석이 되고, 천지호 언니 무덤도 새로 만들어 주지 못하고, 이천에 사 놓은 땅에서 옆에는 최장군, 길목에는 왕손이랑 오손도손 살기로 했는데, 언년이 데리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700냥 빚만 지고 떠났어요. 왕손이 최장군 집값은 다 지불하고 정작 대길이 자신의 집은 잔금도 못치루고.... 마지막까지 이렇게 멋지게 떠날 줄은 몰랐어요. 평생 언년이만 쫓다 사랑도 이루지 못하고 가버린 대길이,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 이 다음에 다시 환생하거든 꼭 이뤘으면 싶어요. 

감독의 깜짝반전, 송태하의 죽음
그런데 제가 글 제목으로 송태하가 죽었을 거라는 것이 감독이 연출한 깜짝반전일 것이라고 추측했는데요, 아마 드라마에서는 송태하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송태하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송태하가 관군과 황철웅을 상대하면서 꽤 깊숙이 찔리는 장면이 나왔어요. 황철웅이 이겼다며 송태하 뒤를 쫓지 말라고 했던 장면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황철웅처럼 칼을 쓰는 무사는 송태하를 베었을 때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철웅의 마지막 목표는 송태하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황철웅이 마지막에 대길이에게 칼을 들지 않았던 것은 칼로는 이겼지만, 송태하나 대길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의지와 열망에 졌기 때문이었어요. 송태하나 이대길은 가고자 하는 길이 있었지만, 황철웅은 길이 없었지요. 오직 송태하를 쓰러뜨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던 황철웅은 송태하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모든 것이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 거에요.
송태하의 죽음이 암시된 부분은 언년과의 마지막 대화 부분이었어요. 언년이에게 자신의 뜻을 따라 주겠느냐며 청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지요.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을 것 같다고요. 언년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자 송태하도 "고맙습니다, 부인. 그리 말씀해 주셔서. 금방 회복될 겁니다. 다 나으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혜원이,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그런..."이라며 다시 일어서서 언년의 부축을 받고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 송태하와 언년이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부상의 고통이 아닌 죽음을 알고 언년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처럼 보였어요. 곽정환 감독이 배우들도 대본에도 없는 깜짝 반전이 있다고 인터뷰를 했다는데, 그것은 연출로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저는 그 깜짝반전이 송태하의 죽음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곽감독의 의중이 제 생각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송태하는 마지막에 이대길과 마음으로 친구가 되었어요. 대길이이게 언년이가 없는 세상은 죽음이라는 것도 마음으로 읽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용골대 수하를 데리고 가서 나눈 이야기도 아마 언년을 두고 간다는 말을 미리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대길에게 굳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며 함께 하리라 믿는다고 안성천을 강조한 것도 언년을 두고 떠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언년이 다시는 홀로 두고 가지 말라는 말에도 송태하가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황철웅에게 칼을 맞은 이후 대길이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라면서 어서 가라고 할 때도 송태하가 부상 와중에도 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는데요, 송태하는 아마 언년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결코 대길을 혼자 두고 도망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길에게 빚을 지고 미안했던 마음, 그것은 언년이의 남편이 되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언년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더 미안한 일이 되는 것이었죠.  
감독은 마지막 회에서 대길이와 송태하를 언년이를 사이에 둔 공동운명체 친구로 만들어 주었던 것 같아요. 물론 복선적인 연출이었지만요. 대길이나 송태하나 결국 언년이는 꿈이었어요. 저는 감독이 왠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것에 대해 송태하의 의리를 복선으로 보여주려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송태하의 죽음으로 대길에 대한 송태하의 우정과 사랑을 존중해 준 의리같은 트릭을 숨겨 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송태하가 황철웅을 대길이 혼자 상대하게 하고 그 자리를 뜬 이유는 대길이의 목숨이었던 언년을 지켜주고 싶었던 대길에 대한 우정이었고, 자신의 부인 혜원을 지키고자 했던 사랑이었고, 원손 석견을 보호하는 마지막 소현세자에 대한 충절심이었습니다. 송태하 역시 죽어가면서 언년이와 원손을 지켜낸 것이지요. 송태하의 죽음암시, 이게 바로 곽정환 감독이 말한 연기자들도 모르는 깜짝반전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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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15:05




추노에서 주 애정라인을 끌고 갔던 커플은 대길이와 언년이, 송태하와 언년이, 업복이와 초복이 세 커플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언년이 이다해의 노출신이 화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노의 애정신은 많지가 않았어요. 마지막회 한 회를 남겨 두고 더 이상 키스신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추노에서 지금까지 나왔던 키스신은 딱 세번이었어요.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여종 언년이와의 키스, 송태하와 언년이가 제주도 절벽에서 나눈 절벽키스, 그리고 23회 업복이와 초복이의 기약없는 약속키스 키스 세 번이었지요.
세 커플의 키스신은 각각 그 의미가 다른 키스신이었어요. 그 중 너무 처연해서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승화되었던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신이 가장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에 대해서는 이전글<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의 의미>에서 언급을 했었는데, 이번 글은 세 커플의 키스신이 담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추노 종방을 앞두고 드라마를 통해 보여 주었던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추노와도 이제 이별을 해야 하니까요ㅜㅜ.

대길이와 언년이의 신분을 넘어선 키스 - 한계, 과거를 말하다
대길이와 언년이의 키스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회상속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장면이었지요. 혼사를 하라는 대길이 부친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둔 처자가 없다는 이야기에 실망한 언년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있을 때 대길이 다가와 언년이의 발에 꽃신을 신겨주며 "평생 살거다... 너랑" 이라고 말하던 장면이 있었지요. 부엌을 나가는 대길을 쫓아 나가 언년이 대길에게 먼저 입맞춤을 했었지요.
대길이와 언년이는 양반과 노비라는 하늘과 땅 차이 신분에서의 키스였어요. 신분제가 엄격한 조선에서 대길이와 언년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신분의 벽을 넘어 선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가장 절망적이어서 슬플 수 밖에 없는 키스였을 겁니다. 대길이 양반 신분을 버릴 수도 없었고, 언년이 양반이 될 수도 없었던...
아이러니 하게도 대길이는 언년이 오라비 큰놈이로 인해 양반이라는 신분을 버렸고, 언년이는 공명첩을 사들여 가짜 양반이 되었어요. 결국 두 사람은 신분적으로 숙명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10년간을 언년이만을 품고 살았던 대길이의 사랑이 우리를 가슴 절절하게 아프게 하는 이유는 대길이의 한 여자밖에 몰랐던 일편단심과 과거 두 사람이 이루지 못했던 신분의 한계에 있었을 겁니다.

송태하와 언년이의 절벽키스 - 선택, 현재를 말하다
황철웅으로부터 원손을 구하고, 한섬에게 원손을 맡겨두고 송태하가 달려간 곳은 칼을 두고 왔던 자리였어요. 무사가 칼을 두고 간 것은 다시 오겠다는 뜻입니다 라고 말했던 그 약속을 언년이에게 지켰지요.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언연이와 송태하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 아찔한 절벽위에서 키스를 했었어요. 그 갑작스러운 전개에 쌩뚱맞은 키스신이었다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송태하와 언년이의 키스신은 송태하에게도 언년이에게도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키스는 두 사람에게 아득한 현실에서의 구원의 의미였어요.
혼례를 치른 첫날밤 도망 나온 언년이는 정작 집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었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송태하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도 명분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었어요. 다만 소현세장의 하나 남은 혈육 원손을 지키고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는 막연한 희망밖에는 없었습니다. 믿었던 친구 황철웅의 배신과 좌의정이라는 거대한 실세의 힘 앞에 무기력한 송태하는 언년이에게 달려가는 순간 혁명이라는 대의명분을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전쟁 속에서만 살았던 자신이 정작 지켜야 할 아내와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은 송태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악몽과도 같았어요.
우연히 동행하게 되었지만 언년이라는 여인을 새롭게 가슴에 품으면서, 송태하는 두 번 다시 아끼는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릅니다. 언년이는 긴 시간 송태하를 괴롭혔던 아내와 아들에 대한 죄책감의 탈출구였을 겁니다. 이 여인만은 지켜주겠다는...
불가능한 꿈과 같은 한 혁명, 새 세상에 대한 열망도 결국은 한사람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현실적인 자각이었던 것이지요. 
혁명의 방향을 잃어 버린 송태하에게 사랑은 현재였고, 언년이의 가출은 노비도 양반도 아닌 사람 김혜원으로 살겠다는 선택이었지만, 친정집에서는 오라버니가 호위무사를 풀어 자신을 뒤쫓고 있었고, 혼례를 올린 최사과가 푼 자객의 추격까지 받아야 했던 쫓기는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만난 송태하와 언년이는 서로가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선택이었던 것이지요.
양반이라는 신분에서 노비로, 다시 도망노비로 떨어진 송태하, 그러나 자신이 노비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던 노비양반 송태하와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리고 노비도 양반도 아닌 도망나간 새색시 언년이는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져 버린 채 도망쳐야 했었지요.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었던 공감대는 도망자라는 것이었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동반자로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 - 희망, 미래를 말하다
노비라는 낙인이 짙게 찍힌 업복이와 초복이는 가장 현실적으로 맺어지기 쉬운 커플이었어요. 둘 다 노비에 처녀 총각, 이 보다 찰떡궁합일 수는 없습니다. 신분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완벽한 조합인 이 커플앞에 놓인 장벽은 노비라는 신분의 굴레였어요. 주인에게 종속되어 목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재산가치일 뿐이었고, 값을 후하게 쳐주면 소 한마리에 거래되는 물건일 뿐이었어요. 사람으로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천한 것에 불과한...
이 완벽한 한 쌍의 커플은 주인의 명령이 아니면 그 어떤 선택을 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목숨에 불과했어요. 주인의 마음에 따라 파리 목숨이 되었다가 소한마리값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주인의 마음에 따라 사랑도, 살 집도, 값도 정해질 뿐이었지요.

마음에 담은 초복이가 남의 집 팔려가 시집을 갔다는 말에 업복이는 비로소 왜 낫을 들어야 하고, 총을 들어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노비당 그 분(나쁜놈)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이유없이 양반을 죽이면서도 죄책감과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던 업복이가 비로소 신분제도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된 것이지요. "양반을 종으로 부리면 지금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 며 양반사냥에 의구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뇌해야 했던 추노 속 휴머니즘의 상징 업복이가 바라던 세상은 세 끼 굶지 않고 살면 되는 세상이었어요. 초복이가 차려주는 밥상 그것이면 족했던 인물이었지요. 그런데 그 소박한 꿈마저 노비라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는 사치임을 알았을 때, 업복이는 비로소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업복이가 깨달은 것은 "노비도 사람이다"는 각성이었어요. 
업복이의 각성이 중요한 것은 업복이의 분노가 개인을 넘어 제도적인 각성에 이르렀다는 대목이에요. 초복이를 월악산 영봉 노비들이 숨어산다는 곳으로 보내면서 업복이가 물어보지요. "그냥 아무도 모르는데서 그냥 살까... 나는 호랑이 잡고 너는 농사짓고, 호랑이 팔아서 큰 값 받으면 꽃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가고...그렇게 그냥 살까?"
마음으로는 그렇게 하자고 백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싶은 초복이지만 "그럼 세상은 누가 바꿔요?" 라며 업복이를 노비당의 거사에 보냈지요. 업복이와 초복이는 알았어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요. 꽃놀이 물놀이가 하루 잠시 꾸었던 현재의 행복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자신들과 같은 업복이와 초복이는 나올 것이라는 것을요.
내일의 또 다른 업복이와 초복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버려야 했던 업복이와 초복이의 눈물의 노비키스는, 다음 또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질 희망에 대한 약속이었어요. 추노에 나왔던 키스신 중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가 가장 아름다웠던 이유는 과거 속에 붙들린 것도, 현재의 불가피한 선택도 아닌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보내야 했던 초복이와 가야만 했던 업복이는 추노가 담고 싶었던 이름없는 역사의 주인공들이었고, 희망이었고,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 대길이 죽는다는 결말이 나왔다는데, 이 세 커플의 키스신에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의 비밀을 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길의 과거를 상징하는 언년이와의 키스는 송태하의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이를 보고 더 이상 지킬 것이 없어졌기에 삶의 의미도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대길이의 사랑이 죽음에 대한 복선이 돼버린 셈이지요. 또한 현재를 상징하는 송태하와 언년이는 살아가야겠지요. 지켜내야 할 의미이기 때문이에요. 가장 중요한 업복이는 미래이기 때문에 지금 불투명한 상태에요. 초복이와 업복이의 행복한 결말을 바라지만 희망을 남겨두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업복이까지 포함되어 있는지는 최종회에서 확인되겠지요.
<관련글: 업복이와 초복이 노비키스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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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07:37




긴 시간 함께 해왔던 추노가 이제 마지막회를 남기고 있습니다. 추노의 결말은 누가 죽고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천성일 작가와 곽정환 감독은 추노의 메세지를 단 한컷에 담아 추노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 그 한 컷에 추노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함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대길이도 송태하도 언년이도 아닌, 바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우리들이었습니다. 노비의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업복이와 초복이의 모습을 닮은 우리들이 바로 추노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노비당을 이끌었던 그 분이 예상했던 대로 좌의정의 수하였고, 비열하고 추잡한 인간이었음이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 그 섬뜩한 웃음이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 분의 정체가 아니라 그 분의 대사때문이었어요. "냄새 나, 가까이 오지 마" 그리고는 개놈이를 사정없이 죽여버리지요. 어안이 벙벙한 끝봉이가 왜 우리한테 이러세요? 라고 물었지요. "모자란 놈들이라 다루기가 쉬우니까" 라고 그 분이 대답했는데, 저는 그 분이 지었던 싸이코같은 웃음보다 그 대사에 치를 떨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렇게 예리하게 대놓고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지, 그 대담성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민초를 대변하는 바닥인생들, 그들은 하나같이 모자라고 무식하고 우매한 민중들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글을 깨우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달콤한 사탕발림에 죽도록 이용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자각없는 민초들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였습니다. 무식하고 모자라면 당한다는... 결국 붓든 자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이름없는 개놈이와 끝봉이, 강아지들이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추노의 메세지를 담아 낸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 이야기를 드라마 속에서 하겠습니다. 선혜청을 습격한 후 하루를 산속에서 자고 온 업복이는 초복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초복이 어디갔느냐고 묻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초복이가 시집을 갔다는... "누가 시집을 갔대요? 초복이가 왜 시집을 가요?"  왜 마음대로 시집을 보내느냐며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니들이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팔아 라고 업복이가 주인양반을 향해 울부짖고, 그 분노는 기어이 업복이 손에 낫을 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목숨을 살려달라는 말도 양반이랍시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자구절만 읊어대는 주인양반에게, 업복이가 알아듣게 얘기하라는 대목에서는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결국 무릎을 꿇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모습이 통쾌하기까지 했네요. 주인 양반을 위해 풀질하고 곡식 추수하던 낫이라는 연장이 업복이라는 노비의 손에서 신분을 거역하는 분노의 의미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초복이의 남편이 될 노비가 업복이의 얼굴에 새겨진 노비낙인을 보고 도망친 적이 있었느냐고 묻지요. 초복이는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며 추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도망치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초복이는 자신의 남자가 있다며 첫날밤 합방을 거부하지요. 초복이는 여전히 당차고 야무졌습니다. 초복이는 정해 준 운명을 거부할 줄 아는 여자였어요. 노비의 운명은 주인이 정해 준 것이었어요. 시집가라면 가고, 남의 집으로 팔려가도 힘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해야만 하는 가장 수동적이고, 자신의 의지가 없는 계층입니다. 초복이는 이렇게 남이 정해 준 운명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하려는 인물인 게지요.
자기 남자가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순간 업복이의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초복이는 업복이가 자신을 데리러 와줄 것을 믿었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던 "어디가면 어련히 찾아갈려고..." 했던 말을 놓치지 않았어요. 양반들처럼 업복이가 구구절절 연애편지로 마음을 전한 일도 없었지만, 다리 아프다고 업어달라면 정말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 줄 알고 등을 내밀었던 무신경한 아저씨 같았지만,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업복이의 순진한 사랑을 초복이도 다 알고 있었어요.
월악산 영봉으로 초복이를 홀로 보내며 업복이도 남자로서, 약한 개인으로서의 고민을 합니다. 끝봉이가 오늘 밤 장례원을 치기로 전했던 말도 다 잊고 싶은 업복이입니다.
"초복아, 우리 그냥 도망가서 우리 둘이 살까? 나는 사냥하고 너는 농사짓고...  호랑이 잡아서 큰 값에 팔아서 꽃놀이도 가고, 물놀이도 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애기도 낳고... 우리 둘이 그냥 그렇게 살까? 그렇게 살길 바라나?"
이 말을 듣는 초복이도 속으로는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아저씨랑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살며, 해저녘에는 아저씨 등에 업여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쌀밥에 고기반찬이 아니어도, 강냉이 죽에 푸성귀만 먹어도, 다른 사내에게 팔려가지 않고 아저씨랑 사는 행복을 초복인들 어찌 꿈꾸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초복이는 업복이를 장례원 약속 장소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럼 세상은 누가 바꿔요? 가서 싸워야지요" 초복이는 남편이 될 뻔한 사람에게도 당당히 말했지요. 도망치며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요. 도망치며 살지 않을 거라고요. 초복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도 혁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여자에요. 세상을 바꾸는 일에 왜 여자는 안되느냐고 따지고, 때로는 좋은 일을 위해 나쁜 사람과 손을 잡기도 하고 손을 놓기도 해야 한다는 가장 강하고 실존적인 여자에요.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면서도, 큰 일을 하라며 동지들을 배신하지 말라는 초복이에게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고 하는데, 초복이와 업복이의 이별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믿음직스러웠어요. 두려움 앞에 가장 먼저 도망칠 것 같았던 초복이와 업복이는 가장 강한 인물들이었어요.
초복이 업복이에게 오실거냐고 물었지요. "내가 널 거기다 혼자 두고 어찌 혼자 사나? 꼭 가겠다" 고 말한 업복이가 초복이를 찾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마지막회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요. 사람 취급도 못받던 노비 업복이에게 노비가 주인되는 새 세상에 대한 꿈을 말해 주었던 그 분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개놈이 끝봉이 모두에게 칼을 들이 댄 사실을 알고, 업복이 어디를 향해 그 분노를 터뜨릴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것이라 했던 업복이의 말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게 되고요.
동지들을 향해 가던 업복이 걸음을 멈추고 초복이에게 키스를 했는데, 저는 그 장면이 지금까지 추노에서의 장면 중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업복이와 초복이의 볼에 새겨진 노비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드러났던 노비키스는 드라마 추노의 메시지였어요. 업복이와 초복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도망노비들이에요. 초복이는 상전의 명령을 무시하고 팔려 간 집에서 도망나왔고, 업복이는 초복이를 팔아 넘긴 주인을 살해하고 도망나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업복이와 초복이의 도망은 이번 한 번이 아니었지요. 초복이는 과거에 도망쳤던 전력으로 낙인이 새겨졌고,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지금의 도망은 도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의 도망은 노비로서의 현실적인 고달픔으로 인한 도망이었지만, 이번의 도망은 꿈을 꾸기 위한 도망이었거든요. 사람답게 살겠다는 희망을 향해 현실을 거부하고 나온 것이에요. 
업복이가 주인양반에게 했던 말이 있어요. "니들이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팔아?" 업복이의 자각은 '사람'이라는 이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짐승처럼 취급받으면서도 노비라는 이유로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스스로 낮았던 자가 사람임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메세지는 작가가 언년이의 입을 통해서도 전했어요. "세상에 노비라는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답니다"  
마지막회 한 회를 남기고 많은 시간 업복이와 초복이의 애절한 이야기에 할애한 것은 마지막 엔딩장면 노비 문신이 각인된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신을 위한 것이었어요.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는 이별의 키스가 아니었어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초복이, 그냥 도망가서 살까? 라고 물었던 업복이에게 도망치지 말자고 말한 초복이,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쳐서 숨어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가서 싸우라고 말한 초복이,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며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과 함께 슬프게 웃는 업복이, 두 사람의 노비키스가 이 드라마가 말하는 희망의 메세지였습니다.
대길이 말했지요. "세상에 매여있는 것들은 말이야, 그게 다 노비란 말이지" 라고요. 돈, 권력, 세상적인 욕망들에 매여사는 우리 모두는 현대판 노비인지도 모릅니다. 알게 모르게 좌의정과 그 분으로 대변되는 권력에 농락당하고, 이용당하는 노비당 노비들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노비당 그 분이 좌의정에게 "심지어는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놈도 있다"라고 말하자, 좌의정 이경식이 "그건 곤란하시네.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야지. 그게 신념으로 바뀌면 아니 될 일이야"라고 말했지요. 좌의정의 말을 온 몸으로 거부한 이들이 업복이와 초복이었습니다. 초복이가 업복이의 "그냥 우리 둘이 살자"는 말을 거부하고 동지들에게 보낸 것, 그것은 세상이 언젠가는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어요.
드라마 추노는 노비키스를 통해 21C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노비처럼 살것인가, 아닌가" 에 대해서요. 희망과 신념을 버리지 않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업복이와 초복이, 가장 신분이 낮았고 약했지만, 가장 강한 사람들로 태어 난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가 드라마 추노의 핵심이자,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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