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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5 '인생은 아름다워' 혈압 돋우는 바람둥이 할아버지 쫓겨난 사연 (26)
2010.04.05 07:09




체조를 하던 시아버지를 본 시어머니의 역정은 대단했습니다. 며느리 민재에게 시어미 게거품물고 쓰러지는 꼴을 보고 싶느냐는 막말까지도 서슴지 않았어요. 결혼 이후 여자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팔순의 시어머니도 결국은 여자였음을 눈물로 보여 주었지요. "새 계집은 양단 치마저고리 입히고, 새끼 셋 배골려 가며 나는...."이라며 끝내 그 분통터진 지난 세월을 말로 잇지도 못하는 시어머니입니다. 길게 말하면 화병에 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은 사연, 듣지 않아도 다 짐작이 갈만한 속사연이었을 겁니다.
절대로 집에 들일 수 없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아버지 자식인데 어떡하느냐" 며 "자식 키우면서 자식한테 부모 나몰라라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는 자식들의 말에 시어머니는 주저 앉고 맙니다. 할아버지가 민재네 집에 들어 온 이유가 이번회 밝혀졌는데요, 경로당 과부랑 눈이 맞아서 그집 드나들다 쫓겨났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당장에 쫓아 버리고 싶더군요. 혈압 상승이에요.
남자들 열 여자 마다않는다고 하지만 제 버릇 개 못주는 시아버지가 못마땅하네요. 숯검댕이 빈가슴으로 한평생을 살아 온 시어머니의 원통한 심정도 이해가 되고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서는 바람 피우다 쫓겨 온 갈데 없는 아버지를 거리로 내모는 행동은 용납하기가 힘들겠지요. 파렴치한 아버지라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을 끊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죽어도 한 울타리에서 못살겠다는 시어머니에게 둘째 아들(김상중)이 타협안을 제시했지요. 눈 감고 참고 받아들이든지, 아파트를 따로 얻어 주고 매끼 식사 나르고 봉양하게 하던지, 마당있는 집 준비해서 모실테니 몇 개월 참고 지내는 세가지 안 중에 택일하라고 합니다. 이에 시어머니(김용림)는 기어이 분통을 참지 못하고 본인이 끌어내겠다며 안채로 들어가지요. 이충에서 내려오던 시아버지가 뛰어들어 온 본처를 보고 놀라 헛발질을 하는 바람에 엉켜 넘어지는 것으로, 이번회 다음 라운드를 예고 하며 끝났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물론 드라마이지만 이런 시어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집어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섯명의 첩을 거느리고 한 번도 자식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은 아버지를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내 집안의 문제로 마주하게 되면 난감하기 이를데 없겠지요. 평생을 버림받고 살아 온 어머니가 가여워서라도 쉬운 문제는 아닐 것 같아요. 본부인의 입장에서 역시 마찬가지일테고요. 사실 요즘 세상에 이런 남자는 거리로 나앉고 쪽박차기 십상이지만, 과거에는 이런 아버지가 아주 없었던 일도 아니었을 거에요. 열 계집 거느릴 재력과 체력이 따라주면 그것도 남자 능력이라고 생각되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뭐 지금도 이런 남자들 없겠어요? 드라마 속 할아버지처럼 주색에 빠진 남자들이 요즘도 있을 겁니다만...암튼 인간취급하고 싶지는 않은 부류들이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인간 취급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가 드라마에 나왔으니 깊게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어졌네요. 양로원에다 모실 수도 없고, 따로 거처를 마련해서 홀로 살아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 말이지요. 한 집 걸르면 누구네집 강아지가 새끼를 몇마리 낳았는지 까지 알 수 있는 제주 작은 동네(제주도가 작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에서, 체면을 유지한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집 속사정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번듯한 아들이 셋인데, 게다가 다른 첩들에게서 난 자식까지 합하면 열 다섯이나 된다는 노인네를 길거리에 내몰았다는 것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밑반찬이 돼버리는 게 세상 인심이고, 불효막심한 자식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 사회에 흐르는 효에 대한 정서일 것입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김수현 작가가 효도가 도리인지 의무인지를 묻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드라마 속의 '바람둥이 아버지를 받아들이겠느냐', '알아서 사시라고 하겠느냐'는 설문을 실시한다면 아마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듯 싶어요. 만약 그런 설문을 할 수 있다면 연령별로 통계를 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성별 통계도 내보고 싶고요.
궁금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아빠라면? 이라고 물으니 머리 빠개지게 고민된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되묻는 겁니다. 엄마가 아빠가 그랬다면 받아들이겠느냐고요. 저야 당연히 노땡큐입니다.ㅜㅜ
그런데 남편이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겠고, 아니 때려서라도 쫓아내고 싶은 심정인데, 드라마 속 민재처럼 며느리 입장에서는 선뜻 나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런 심정이 도리인지, 의무인지, 체면유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받은 부모님에 대한 효의 의무감때문에 당연히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발대발하는 시어머니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고, 자식으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식들 입장도 십분이해됩니다. 할아버지 문제로 집 분위기가 쑥대밭인데 3세대들 민재의 자식들이 우중충한 마음에 와인을 마시는 장면도 공감이 가더라고요. 이 3세대들은 우선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일이 아니니, '모셔야 한다', '아니다'로 왈가왈부할 문제들은 아니지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모두들 연기 내공이 있는 연기자들이라 말과 표정이 너무나 일치하는 것에 놀라는데요, 며느리 민재역의 김해숙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겠고, 이번회 시어머니 김용림의 분통을 보며 울컥했습니다. 팔순에도 여자임을 보여주면서도, 젊어서 받았던 상처를 울컥 토했다가 다시 집어 삼키는 듯하는 모습은 그만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면 표현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40대 혹은 50대로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 온 어머니였다면, 아마 그 장면에서 끓는 분통을 몇 마디로 끝내지는 않았을 듯 싶더라고요. 구구절절 사연을 눈물과 함께 쏟아냈을 겁니다. "니들이 내가 살아 온 것을 알기나 해, 니들 배 안 골릴려고 안해 본 일이 없고, 젊은 첩년들 뒷치닥거리까지 해 온 내 심정을 아느냐? 니들은 모른다, 내가 어찌 살았는지. 니들 아버지가 이러저러한 인간이다..."라며 마음에 담은 모진 말들을 밤새도록이라도 쏟아낼 듯 싶었는데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늙은이" 라는 말 한마디로 압축해 버리더라고요. 잠시 제가 그 나이라면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늘어 놓으며 숯검댕이 속을 보여줄까 생각해보니, 저 역시 나이들면 구차하게 여러말 하는 것도 기운빠져서 못할 것 같더군요. 나이들으니 속이 끓어도 말하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많거든요.
드라마에서 할아버지를 매몰차게 거리로 내쫓지는 않을 것이고, 이래저래 팔순넘은 정없는 노부부가 부딪치며 살아야 할텐데, 이들 노부부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예고편에 할머니가 경대앞에서 화장품도 찍어 바르는 모습이 보였는데 여자는 백발성성해도 여자인가 봐요. 
친정할머니가 아흔에 돌아가셨는데, 친정할머니의 모습도 언뜻 보이더라고요. 여든이 넘어서도 크림 하나에도 마치 젊음을 되찾으신듯 열심히 바르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르신들 사이에 한창 귀뚫는 것이 유행일 때가 있었어요. 그때 할머니가 친정어머니께 "친구 중에 누가 귀를 뚫고는 머리가 안아프다고 하더라" 며 귀 뚫어달라고 압력(?)을 넣으시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어려서는 귀여워 보이기도 하면서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나이가 드니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셨구나 싶어요. 여자나 남자나 다 마찬가지겠지요.
경로당 과부랑 눈 맞아서 쫓겨난 할아버지가 갈데없어 본처집으로 들어왔는데, 그간 행적을 보니 정말 혈압돋우는 진상인데, 정신 차릴지 기대되네요. 생과부로 살아 온 시어머니 인생이 가여워서라도 쉽게 용서가 안되기는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 제목처럼 팔십 넘은 노부부의 모습도 아름답게 귀결되었으면 싶네요. 평생 본부인 가슴에 못 박은 것 만큼 조금 더 당했으면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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