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2.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6회' 강채윤이 감춘 군나미욕, 글자에 숨겨진 비밀은? (3)
  3.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4회' 웃기는 세종 한석규, 허를 찌르는 완벽한 반전 (1)
  4. 2011.11.11 '뿌리깊은 나무' 신세경-장혁, 가슴을 적신 감동연기 (23)
  5. 2011.11.04 '뿌리깊은 나무 10회'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23)
2011.11.12 09:4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장성수의 죽음과 함께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밀본, 세종을 흔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입니다. 무휼에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하게 흔들리는 세종 이도였지요. 그리고 이도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똘복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궁녀 소이가 자신을 잡아줬었지요. "전하의 탓이 아니옵니다"라며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 8회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세 사람을 대조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이도를 향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강채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소이,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 이도가 꿈꾸는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잠 못 드는 세종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지요.
가히 미친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한석규의 연기는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핏발을 세우지 않고 목소리의 강약만으로도 분노와 불안, 그 내면심리까지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배우 한석규는 걸음걸이마저 세종에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군요.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한석규는 용포 속 고뇌하는 고독한 군주 인간 세종 자체였습니다.

경회루에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글귀와 함께 실려온 장성수의 시신에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누구보다 세종 이도의 충격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수를 청하고, 주위를 물리는 세종이었지요. 이방원의 망령과 싸우는 세종. "군왕이란 그런 것입니까?" 이방원은 세종을 또다시 비웃습니다.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겠다고? 그게 사람의 길일 줄 아느냐?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거라고, 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비웃는 듯하지요. "예, 참혹합니다. 허나 소자는 아버지와 다르옵니다. 의심하고 낚고 베고 죽이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연을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연장으로 간 세종은, 엉뚱한 주제로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회의안건은 "세법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신들에게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13년 고을민의 반대로 부결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세종입니다. 세법혁파야말로 대신들과 유림의 기득권 문제가 걸린 사안이었기에, 광평대군마저도 세종의 저의를 의심하고 걱정하지요. 반발세력을 걸러내 밀본을 추리겠다는 숙청의 의도로 받아들이는 광평대군이었지요. 광평대군에게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라고 일축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상소문을 다시 읽는 세종. 무휼 역시 흔들리는 세종을 걱정합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라"는 말에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세종.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할 때도, 대명(大明)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국고가 낭비된다, 신분질서가 어지럽혀진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야."

한석규의 연기에 입을 쩍 벌리고 들으면서도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세종이 세우고자 하는 조선은 자주 조선이었으며 실용의 조선이었고,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가 등용되는 조선이었으며 백성의 애환을 살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을 세우겠다는 세종을 왜 반대하고, 밀본이라는 개떡같은 조직이 조선을 흔들려고 하는지 세종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장성수의 시신과 함께 보낸 밀본의 글귀를 읽은 세종이 혼잣말로 "염병"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말 염병할 사대주의자들이죠. 한석규가 염병이라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세심한 연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지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동요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는 세종.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집현전이었지요. 문(文)의 통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보이겠다고, 경연하고 쟁의하고 합일점을 찾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만든 집현전. 그곳에서 세종은 젊은 자신과 만나지요. 젊은 세종(송중기)의 환시와 싸우는 세종의 모습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의 모노심리극 같았던 젊은 이도와 중년 이도의 만남은 세종의 내면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와 함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종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거야. 네놈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방원의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깜짝 등장한 송중기, 조소하고 조롱하는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더군요. 송중기의 조소하는 눈빛에 공포와 죄책감에 질려 가늘게 떠는 한석규의 연기는 수천 개의 바늘로 몸을 찔러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왜 한석규인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했고요.

젊은 이도와의 싸움은 자기 사람을 잃게 한 자책감으로 분노하고, 젊은 이도에게 책망받는 유약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세종의 내면을 말했던 것이지요. 후배와의 연기에서 자칫하면 한석규의 카리스마 혹은 압도감에 송중기가 묻힐 수도 있었을 장면이었지만, 한석규는 송중기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파르르 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흔들리고 갈등하는 세종의 심리였고, 또한 강채윤과의 만남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극기의 과정과 연결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저 카리스마 풀풀 넘치는 모습으로 송중기와 독대를 했다면, 가장 중요했던 장혁과의 장면에서 우직하게 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극적 절정감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오기 힘든 심리싸움을 그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뒤를 밟던 강채윤은 장성수가 남긴 서책을 일부러 흘리고는 소이의 행동을 지켜보지요. 놀랍게도 소이는 서책을 읽더니만 책을 갈기갈기 찢어 불살라 버리죠. 그리고는 반촌의 가리온을 찾아가 불면증 약재를 구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소이의 이상한 행동에 처소까지 따라 간 강채윤은 소이에게 산조인을 먹지 말라며 나직히 말하지요. 강채윤은 소이가 산조인을 왜 먹는지를 알았지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지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잘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잠을 자면 안 되도록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사연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약으로 고통을 이기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채윤에게 "어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는 이는 뜻밖에도 이도였지요. "아무 죄 없는 아비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는 이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혹여 잠이라도 들면 아비가 무서운 모습으로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나타날까봐." 어찌 고쳤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강채윤은 아비를 죽게 한 사람에게 복수할 결심으로 고쳤다고 대답하지요. 복수를 결심해야 하니 몸은 더 지치고, 모든 인생을 그것에 걸어야 하는 마음은 참혹하다는 강채윤에게 이도는 또 묻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길을 가느냐고 말이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강채윤의 말을 되뇌는 세종은 흔들렸던 자신과 똘복이를 비교해 보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 참혹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똘복이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채윤에게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발걸음을 돌리지요. 강채윤이 가겠다는 길이 이도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라는 말에 보좌하고 있던 무휼이 크게 놀라지만, 세종은 모든 갈등을 털어냈다는 듯이 그의 길을 향했습니다. 휘청였던 세종의 발걸음은 어느새 곧추 서 있었고, 허허롭게 웃음 짓던 세종의 얼굴은 단호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이방원의 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마방진으로 숨어버렸던 이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는지 회의가 들어서, 또다시 마방진으로 숨으려 했던 이도였습니다. 그리고 강채윤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르리라 결심했던 그 결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방원에게 목숨을 내놓고 구했던 첫 백성 똘복이. 이도를 처음으로 임금이게 했던 똘복이가 그를 일깨웁니다. 외롭고 더 참혹해진다 해도 이도이기에 가야 한다고, 임금이기에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똘복이 아버지 석삼이. 글을 몰라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던 소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보낸 서찰 한 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도는 나의 나라에서 글을 몰라 죽는 백성은 없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전이 그리라는 대로,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백성들.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은 석삼이, 똘복이, 소이입니다.
세종은 똘복이를 첫 백성으로 얻고, 수많은 똘복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한글은 똘복이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똘복이 너는 나를 만나러 왔느냐, 나는 너(백성)를 만나러 가겠다', 이방원 없는 천하, 그날 그 굳은 결심 앞에 다시 선 세종 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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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39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윤필이 남긴 사자전언으로 20년만에 재등장한 밀본, 곤구망기(ㅣ口亡己)를 통해 세종이 비밀리에 그의 비밀조직인 천지계원들과 하는 일이 한글창제임을 드러냈지요. 곤구망기에 대한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지만, 여전히 모든 사건의 핵심이 들어있는 한자가 풀리지 않아 전전긍긍했네요. 
풀리지 않은 의문은 윤필이 남긴 군나미욕(君那彌欲)이라는 글자인데요, 아무래도 내용 일부가 불에 타서 없어진 듯하지만, 군나미욕이라는 글자는 강채윤이 한글창제를 둘러싼 비밀에 접근하게 될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문을 품어야 할 대목은 왜 윤필이 집현전으로 들어가려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고자 함이었는지 입니다.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으로 집현전은 출입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집현전  학사들은 사가독서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지요. 집현전으로 둘어가려던 윤필을 때마침 순찰을 돌던 강채윤에 의해 제지당하고, 1차 진입은 실패했지요. 윤필은 그날밤 다시 집현전으로 몰래 들어갔고, 윤필은 무엇인가를 찾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윤필은 서고가 아닌 허담이 죽은 책상을 뒤졌죠. 책상 아래에서 비밀문서통을 발견하고 펼쳐 읽고 있던 순간, 강채윤에 의해 발각되었고 말이죠. 그리고 문제의 타다남은 군나미욕이라는 글이 쓰인 비밀종이를 불에 태워버리려고 했지요.

불에 던져진 종이를 강채윤이 출상술을 이용해 건져냈고, 초탁의 구슬에 나가떨어진 윤필은 잠시 기절상태였습니다. 그때 부엉이 소리가 들리더니, 가면(윤평-이수혁)이 나타나 윤필을 납치해 유유히 빠져나가버렸죠. 윤평 역시 출상술을 썼고, 강채윤은 스승 이방지에게서 배운 출상술을 또 쓰는 놈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요.
강채윤은 불에서 건진 종이를 무휼에게 보고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데요,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곳곳에 미스터리를 풀 단서들을 남기고 역으로 풀어가는 방식에 능한 작가들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단서라고 볼 수 있지요.

군나미욕에 대해서는 허담의 죽음부터 거슬러 갈 필요가 있는데요, 허담과 고인설은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과 관계된 인물이지요. 허담이 죽은 날 비바사론도 함께 없어졌다고 나왔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 비바사론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담댁과 가면 윤평과의 대화에서도 비바사론에 대한 얘기는 없었고, 밀본의 핵심조직원으로 밝혀진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 역시도 비바사론에 대한 것은 언급을 하지 않았지요.
밀본에서도 천지의 조직원들을 다 파악한 것은 아니고, 핵심요원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요, 성삼문과 박팽년조차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고, 곤구망기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8명밖에 없다라고 한 세종의 말을 빌어보면, 그 조직이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리 장성수(류승수) 역시도 천지계원이고, 성삼문과 박팽년보다는 핵심인사 같아 보이더군요. 윤필이 타살되었다는 성삼문의 말에도 "그런 소문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느냐"며 시치미를 떼는 모습도 의뭉스럽게 보였고 말이지요.

그럼 윤필은 왜 허담이 죽은 현장을 가려했던 걸까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천지계는 2인1조로 운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한 조일 가능성이 크고, 허담과 윤필이 또 한조일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각자 비밀리에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를 했고요. 따라서 허담이 강채윤으로 부터 건네받은 비바사론에 대해서는 세종과 정인지, 무휼말고도 허담과 윤필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허담이 집현전 번을 섰던 날 살해를 당했다는 것은 집현전 내부에 첩자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심종수(한상진)의 정체를 통해 풀렸지만, 비바사론이 집현전 내부에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요한 일을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도 없었고, 같은 팀이었던 한림과 윤필은 자신들이 연구한 것을 비밀리에 집현전에 남겨두기로 했겠죠?(제 추측).

윤필과 허담은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글은 자음과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글자지요. 집현전 학사들은(한글프로젝트팀)은 각자 팀별로 우리 말 첫소리 중간소리, 끝소리를 각자 분담해서 정리를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범어 경전 비바사론입니다. 산스크리트어를 보면 우리 한글과 비슷한 모양이 많아 그 어원에 대한 논쟁도 뜨거운데, 이런 것은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닌 듯해서 패스합니다만, 여하튼 허담과 윤필은 같은 글자를 연구하던 팀이었던 듯합니다. 

군나미욕이라는 글자(임금군, 어찌나, 두루미, 하고자 할 욕)를 가지고 이뜻 저뜻 만들어 봤지만, 스토리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너무 골머리를 쓴 탓에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오더라고요. 
그런데 6회에서 곤구망기라는 사자전언을 밀본이라고 푸는 세종을 보며, 퍼뜩 찾아보고 싶은 자료가 있었어요. 세종이 곤구망기를 보고 '밀본'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것은 이미 ㄱ, ㄴ, ㄷ, ㅏ, ㅗ, ㅣ 등의 28글자를 거의 만들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 방법까지 일렀음을 말하지요. 훈민정음은 그 공표를 두고, 3년의 시간차를 두었지요. 1443년에 이미 완성되었는데, 1446년에야 공포를 했으니 말입니다. 이는 보완해야 할 문제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글을 둘러싼 반발세력의 저항에 부딪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대주의 유학파 최만리같은 학자가 대표적이지만, 중국의 견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그 비밀스런 기간을 픽션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니, 군나미욕의 궁금증이 풀렸네요. 군나미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술된 '예'였습니다. 윤필과 허담은 훈민정음 창제한 이유과 글자를 읽는 법을 정리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리작업 일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작업은 비밀점조직으로 구성되어 각각 팀별로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일부인데요,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훈민정음 해례본 자료를 참고하시면 될 듯하고요, 여기서는 군나미욕에 관련된 것만 정리합니다. 해례본 사진자료에서도 'ㄱ'과 'ㅇ'에 관한 부분을 보면 군(君)자와 욕(欲)자의 첫소리라는 것이 쓰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ㄱ. 牙音이니 如君字初發聲.이요 竝書하면 與字初發聲하니라
ㄱ는 엄소리니 군(君)자의 처음 펴어 난 소리와 같으며
ㄴ.舌音이니 如那字初發聲하니라
ㄴ는 혀소리니 나(那)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ㅁ.脣音이니 如彌字初發聲하니라
ㅁ는 입술소리니 미(彌)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ㅇ.후음이니 如欲字初發聲하니라
ㅇ는 목소리니 욕(欲)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첫소리(자음) ㄱ. ㄴ. ㅁ. ㅇ을 소리내는 한자 예가 군나미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윤필과 허담은 ㄱ,ㄴ,ㅁ,ㅇ 에 대한 정리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세종의 치밀한 조직관리때문에 더 놀랐습니다. 또한 혀소리, 목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등등으로 세분화하여 얼마나 체계적으로 만들었는지, 새삼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물인가에 깊은 감사와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올 줄 아는 세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극중에서는 똘복이가 지랄이라는 말을 하는 것에 놀라고,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천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욕도 하는 세종이지만, 진정으로 백성의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어쩌면 반쪽짜리 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우리 말 발음중 격음이나 경음은 비속어나 욕에 많이 들어가죠(이를테면 ㅇㅇ끼라든가, ㅇ발같은 말). 세종이 욕을 몰랐다면, 고매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 신음소리, 하다못해 개새끼 왕왕거리는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자음 한 두개, 혹은 모음 한 두개가 빠진 한글이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세종이 태종의 처소를 나오며 방백하는 장면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십니다"라고요. 세종 자신조차도 몰랐을 듯합니다. 한글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업적인지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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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6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사랑받았던 젊은 세종 송중기에서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넘치는 괴짜군왕 한석규로의 변화는 완벽한 캐릭터의 반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세종을 다룬 사극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세종을 만난 듯합니다. "이방원없는 천하다"라며 한줄기 눈물을 흘리는 송중기의 모습이 연못에 일렁이고, 중후한 세종 한석규로 바뀌는 과정은 빼어난 영상미로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변화를 담았지요. 이번 뿌리깊은 나무 4회에서 최고의 영상미로 꼽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곱고 여린 노랑나비가 호랑나비로 변해 연못을 나는 모습은,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함축적인 캐릭터의 변신을 담아낸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죽음도 가볍지 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태종 이방원(백윤식), 두 부자는 죽는 순간에도 논쟁을 멈추지 않았지요. 태종의 독설과 염려도 여전했고 말이지요. "내가 갔던 길보다 훌씬 더 참혹할 게야. 훗날 넌 반드시 내 무덤 앞에 무릎꿇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고백하며 울 것이다". 세종을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는 태종이었지요.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조선의 임금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니까요"라며, 태종이 했던 말로 응수하는 세종. 태종은 세종의 멱살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지요. "해내거라, 그래야 네놈을 왕으로 세운 제일 큰 업적이 될 거이니...". 세종의 확신에 찬 대답에 미소를 짓는 태종, 그의 마지막 눈빛은 아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왕, 조선의 찬란한 문화르네상스를 연 성군 세종대왕이니, 진실로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세종대왕을 낳았다는 것일 겁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릴 수나 있었겠습니까? 머리 터지게 한자랑 씨름했겠지요.

한석규의 세종은 어떨까? 한마디로 명불허전입니다. 정확한 발음발성,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 게다가 그 파격적 캐릭터 변신은 "그래, 바로 그거야"라며 흥분하게 했답니다. 온화한 듯 진지한 듯 감을 잡기 어려운 표정으로 "하례는 지랄...", "젠장, 우라질"이라는 거친 말들이 튀어나오는데, 곤령포 입은 지엄한 임금님께서 입단속을 그리 안하시는 모습에 뻥뻥 터졌고, 궁녀에게 "우라질이 맞느냐?"며, 진지하게 물으며, "과하게 많다, 우라지게 많다, 우라질...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하였느냐? 궁궐에는 이런 말이 없어"라며, 경연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한석규의 세종은 대박이었습니다. 작품뿐만이 아니라 인간 세종, 군주 세종의 새로운 캐릭터로서도 대박입니다.

세종의 거친 말속에도 우리글의 필요성을, 한글을 만들어야 하는 세종의 집념을 제대로 담아냈고 말이지요. 경연장에서도 당태종이 어땠고, 고려왕조에서 어땠고, 주자선생이 어땠고 하는 고리타분한 그놈의 경서 읊조리는 신하들을 한자로 '우라질"이라고 몰래 적으며, 자신의 정서를 기록하는 세종이었죠ㅎ. 운동이 부족해 옥체가 상할까 저어된다고 하도 난리들을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라며 스트레칭을 하는 세종은 또 어땠고요. 능청스러운 세종의 모습까지 감히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새로 등장한 세종은 물건입니다(죽여주시옵소서). 
웃음보터진 성삼문(현우)의 허벅지를 꼬집는 박팽년(김기범) 등 샤방샤뱡 빛나는 젊은 꽃미남 학사들도 등장해서 눈까지 호강했는데, 괴짜스러운 천재 성삼문과 박팽년의 대조적인 캐릭터도 눈여겨 봤답니다. 

그러나...여기까지의 세종을 보고 웃기는 임금님일세 라고 하면 큰 코 다칩니다. 경연의 주제 '부민고소금지법'을 선왕대에 이미 금지된 법을 왜 다시 경연을 하시느냐고, 그 불피요함에 대해 미주왈 고주왈 남의 나라 법과 경전을 들어 반대하는 신하들을 입도 딸싹 못하게 눌러버리는 언변과 논리는 오금저리게 만들었지요. 이현령 비현령 자기들 편한 대로, 유리한대로만 해석하려드는 기득권자들을 완벽한 논리로 박살내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말입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끝마다 주자 주자를 거론하는 탁상공론자들에게, 주자께서는 한시도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경전의 행간을 읽으라는 세종의 일갈은 참으로 멋집니다.

이번 경연의 하이라이트는 "전하께서 한가지 질문을 빠뜨렸다" 고 지적하는 성삼문(현우)때문에 벌어진 상황입니다.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세종의 질문은 두 가지였죠. 첫째, 성리학의 나라에서 감히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고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데 간관들이 내말을 듣지 않는 것은 어긋나지 않는 것이냐? 둘째, 백성들의 고소마저 금지한다면 수령들은 왕보다도 제약이 없게 되는데, 이들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고 성삼문이 감히 왕에게 지적을 하지요.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린 놈이 뭘안다고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어른 말씀하시는데..."였죠.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는 세종,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식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어디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오?". 게임 끝입니다. 반어와 비유, 헛점을 낚을 유도심문까지, 참으로  우라지게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세종!!! 말까지 서민적이고 우리정서에 꼭 맞는 표현만 골라서 하시고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과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의 증발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이 "이런 빌어먹을"이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뱉는 모습도 나왔지요. 실제로 세종대왕이 욕을 잘했다는 것도 전해지는데, 궁궐에 임금이 사용해야 하는 욕을 궁중용어로 따로 만들어 가르치지도 않았을테니, 감정대로 욕나오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임금도 사람인데 말이지요. 
무엇보다 눈여겨 보아야 하는 대목은 임금이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상스러운 백성들 말을 배우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우라질처럼 한자로 옮겨적을 수 있는 말들은 그나마 표기라도 할 수 있지요. 젠장, 빌어먹을 같은 말을 어떻게 한자로 표기해야 할지 참 깝깝한 일이지요.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경연을 통해서도 한글, 우리글이 왜 반드시 필요한 지를 말해줍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성군의 덕목이지요. 헌데 그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니 글로 적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수령들이나 관리들이 지들 욕하는 백성들의 입을 자기들 편한대로(위 아래 엄격한 규범이 있는 주자학에 위배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이렇게 막고 있으니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과 김종서의 6진에서 무관 고인설 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첫회 강채윤(장혁)이 세종 암살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장면으로 다시 이어지면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종서의 추천으로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온 강채윤(똘복이), 첫날부터 여기저기 궁을 들쑤시고 말썽을 일으키면서 무휼과 세종의 눈에 띄게 되었지요. 오로지 이도의 암살만이 목표인 강채윤이 집현전에서 일어난 사건현장에 잡입했다가 무휼(조진웅)에게 걸리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요. 
고인설과 허담을 죽인자는 같은 놈이라 생각한다며, 고인설 수사일지를 보여주며 위기를 넘긴 강채윤은 때마침 취조현장에 온 세종과 다시 재회합니다. 고인설 수사일지를 본 세종이 허담 살해사건을 수사하라는 명을 내리고, 강채윤은 비밀수사원으로 집현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을 해결하면 어사주를 내려달라는 간청을 한 강채윤, 집현전에서 발행하는 연쇄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강채윤은 세종의 조선과 마주하게 될 듯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석삼이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이도의 조선, 임금을 지랄이라고 증오하는 한지골 똘복이가 더이상 없는 조선, 지랄을 지랄로, 우라질을 우라질로, 백성의 소리를 그들의 말로 쓰고 읽고 듣고 싶어하는 이도의 조선을 말이지요.

주인공들이 코믹과 진지를 겸한다는 것은 모험일 수 있습니다. 특히 사극에서는 말이지요. 동이에서 숙종 역의 지진희가 그 경계를 허물어서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세종 역의 한석규도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세종으로 그간 정형화된 세종대왕의 캐릭터에 파격을 감행했는데요, 한석규의 세종이 너무나 멋지네요. 역시 지도자는 사람냄새가 나야 더 가까움을 느끼게 되나 봅니다. 아무리 백성백성, 국민국민 떠들면 뭐합니까? 경연을 펼치던 신하들처럼 경서 나부랭이나 줄줄 읊어대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과 진배없는데 말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업적, 최고의 존경을 받는 성군 세종대왕, 한글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말하기 전헤 더 먼저 칭송하고 감사하고 되집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의 결정체이니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마음입니다. 국민들을 어여삐 좀 여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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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08:46




뿌리깊은 나무 12회의 주인공은 강채윤과 소이였습니다. 신세경과 장혁의 연기가 심금을 울렸지요. 이렇게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었거늘, 그것도 궁안에서 심지어 만나기 까지 했음에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도 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장면이 없어서 왠지 뒤가 찜찜한 이 기분은 뭔가 싶네요. 시청자 애간장을 태우며 질질 끄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외외로 너무 쉽게 만나버려 혹시 다음회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어요. 혹이라도 담이(소이)가 똘복이가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것을 알고는 몸을 숨겨버리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강채윤이 똘복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파옥을 한 역적노비 똘복이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영리한 소이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지엄한 국법이 있기에, 세종이 강채윤을 구명할 명분도 만들지 못할 것이고요. 심온대감이 복권되지 않은 마당에 그 일에 연루되었던 노비 똘복이를 구할 수 있을 명분이 없으니 말입니다.  아직은 강채윤이 똘복이라는 사실이 밀본에 알려져서는 안되기에, 더더구나 두 사람의 만남은 그 간절한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걱정 또한 앞섭니다.
담이와 똘복이는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되는 인물들이지요. 정기준이 가리온으로 살아왔던 것처럼, 똘복이는 강채윤으로, 담이는 소이로 살아야 하는 이유, 그것이 세상의 눈을 피해 살 수 있었던 방편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역적, 혹은 역모에 가담한 인물로 정체가 발각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과연 똘복이 강채윤은 세종 이도를 용서할 수 있을지, 담이를 궁에 데려다 궁녀로 만든 것에 더 큰 살기를 품을 것같기도 해요(물론 소이를 궁에 데리고 온 이는 소헌왕후였지만). 한글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강채윤에게 아직은 말하지 않을 듯하니, 강채윤과 세종이 화해하기는 아직 멀었고 말이지요. 더구나 방에 지정된 장소에 밀본이 나타난 것을 알고는 강채윤을 밀본과 연결짓고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세종은 주머니가 바뀐 내막까지는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행방불명된 소이때문에 세종은 밀본이 다음 타겟으로 소이로 잡았다는 것으로 짐작하지요. 소이의 안전에 입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세종, 소이가 똘복이를 만나기 위해 붙인 벽서, 계언산 마의에 담긴 의미를 풀기 위해 파자, 합자, 팔도지리지, 전 왕조의 고서까지 다 뒤지는 세종이었지요. 정인지에게 임금인 나도 이렇게 찾고 있는데 뭐하고 있느냐는 말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지만, 세종이 소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세종에게 소이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보여 준 장면이었습니다.  
강채윤이 붙인 복주머니 벽서는 정기준과 소이를 경악하게 합니다. 복주머니가 똘복이와 관계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말이지요. 밀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기준에게 사흘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시기에, 절묘하게 때맞춰 나타난 복주머니의 주인공, 이는 밀본지서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소이에게는 죽은 줄 알았던 똘복이 오라버니가 살아있다는 것에 죄책감의 일부를 덜어낼 수 있을 일이었고요.
말을 잃어버린 소이가 밀본이 보낸 꺽쇠에게 자신이 담이라고 처음으로 말을 하는 장면은, 그 간절함이 온몸으로 절절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말없이 필답만을 주고 받아야 했던 신세경은 그 캐릭터만큼이나 답답했을 겁니다. 신세경은 특히 소이라는 역을 하며 감정을 보인 일이 극히 드물었었지요. 세종에게 "전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라며, 쓰고 또 쓰며 세종을 위로했던 장면이 그나마 감정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신세경이 극중 소이역을 하면서 무감정으로 일관한 듯한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소이라는 인물은 살아있는 송장같은 인물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트라우마가 소이를 감정마저도 죽어버리게 했고, 기쁜 일도 슬픈 일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신세경은 그런 소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신세경이 드디어 변했지요. 똘복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의 일입니다.
벽서를 붙이고 처음으로 미소를 짓고, 꺽쇠아저씨에게 자신이 담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이쁜 표정도 다 버리고, 입을 쩍쩍 벌렸지요.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하게 똘복이를 만나야 했기때문이에요. 신세경이 연기보다는 예쁜 이미지를 고려했다면, 그렇게 입을 쩍쩍 벌리지 않고 예쁜 입모양으로 '담...이"라는 입모양을 흉내낼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신세경은 목구멍에서 뭔가를 토해내듯이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입모양을 만들었지요. 정말 좋은 연기자의 모습입니다^^ . 말을 못하는 여인이 자식이 위험에 처하자 이름을 불렀다는 이야기처럼, 소이에게 똘복이는 그렇게 간절한 사람임이 신세경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으니 말이지요.
똘복이를 만나기 위해 가리온에게 말을 배우러 간다는 거짓말을 한 소이, 세종 이도의 마음에 쓸쓸한 가을 바람이 싸아~하고 지나갑니다. 세종의 허허로운 웃음 속에 드리워지던 진한 쓸쓸함이 지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네요. 인력으로 안되는 일, 그토록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어찌 막을 수 있겠느냐고, 두 사람을 불러 모든 것을 말하리라 결심한 이도입니다. 
강채윤이 왜 궁에 들어왔는지를 모르지 않고, 말을 잃은 소이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모르지 않은 이도이기에, 완성된 한글을 반포하는 중대사를 앞두고 그 핵심일을 해야 하는 소이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올 지, 이도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지요.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지요.
말배우기에 적극성을 띈 소이를 보며 기뻐하던 세종은 그 연유가 똘복이때문이었음을 알고, 잠시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소이가 세종에게 여인이었던가? 여린 백성이었던가? 한글창제를 함께 한 동지였던가? 이거다 답을 내리기에는 세종의 감정을 읽기가 조금 복잡하지요;; 저도 잠시 보류해 두려고요. 지금 똘복이와 담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오거든요.

소이가 붙인 벽서 계언산 마의에 대한 답을 푼 강채윤, 계언산은 어렸을 적 담이와 말잇기 놀이를 했던 뒷산이었고, 마의(馬醫)는 '니마'라는 말 의원의 우리 옛말이었나 봅니다. 말잇기 놀이를 하면 '주머니'로 끝내 버린 똘복이 오라버니를 어린 담이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요. 어린 담이는'니'자로 끝나는 말을 몰랐으니까요. 박포가 던져 준 힌트에 말잇기, 니마, 주머니, 그리고 담이를 생각해 낸 똘복이는 죽을 힘을 다해 미친놈처럼 뜁니다. '담이다, 담이가 살아있었다'.
밀본에 의해 납치된 소이 역시 달리고 또 달립니다.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어디로 끌려왔는지도 몰랐던 소이는, 바람냄새와 걸음으로 거리를 계산하고, 햇볕의 방향으로 동서남북 방위까지 계산한 천재소녀였습니다. 소이의 머릿속에는 팔도지리지가 통째로 들어있었고, 어느 곳에 무슨 산이, 무슨 강이 있는지 강폭과 수심까지 다 들어 있었지요. 한번 입력되면 모든 것을 암기해 버리는 특출난 인물. 소이가 한글창제의 핵심인물인 이유도 소이의 이런 재능과 관련되어 있지요.
똘복오빠가 살아있다는 것에 소이는 목숨을 걸고 윤평에게서 달아나지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오직 믿는 것은 머리 속에 들어있는 조선팔도지도. 세상에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소이였습니다. 물에서 나와 어린 시절 똘복이와 말잇기 놀이를 하던 뒷산을 향해 달리는 소이, 그런데 겸사복 강채윤이 그곳에 나타난 것을 보고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지요. ""저자가 왜...." . 그 순간 믿기지 않는 말이 들려옵니다. "담아!!!!". 
아,,,,담이를 부르는 강채윤(장혁)을 보고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겁에 질린 듯, 아기처럼 소이의 어린시절 이름 담이를 부르는 장혁의 감정연기는 최고였습니다. 장혁연기의 가장 강한 무기중의 하나가, 이런 감정을 절절하게 담아내 시청자들을 그 감정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입니다. 
추노에서 언년이의 초상화를 들고 세상 무너진 듯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던 대길이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뿌리깊은 나무에서 담이를 부르는 모습은 오버를 절제한 최고의 감정연기였습니다. 지난 글에서 장혁의 연기를 죽이는 어린 똘복이의 버럭질을 죽일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었는데, 장혁에게서 요즘은 어린 똘복이의 과장된 표정이 나오지 않으니, 한결 보기가 좋고, 감정표현도 진지해진 것이 느껴지더군요.
특히 담이를 부르는 장혁의 표정은 애절한 그리움과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그런 모습이었지요. 열 두어살 시절의 똘복이,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 죽은 줄 알았던 어린 누이동생같은 담이를 부르는 모습이었죠. 사실 이 장면에서 추노의 대길이 표정이 나와버렸다면, 담이가 언년인 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오버를 하지 않은 장혁이었지요. 장혁의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 속에 담이를 향한 그리움과, 담이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안도, 그리고 못만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까지, 너무나 많은 감정들을 담아 보여주더군요.
충혈되어 가는 장혁의 눈빛에 함께 애닯아 했고, "담아" 라고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와 표정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듯한 그런 모습까지 실어 심금을 울리더군요. 담이는 엄마가 없던 어린 똘복이에게는 엄마같았고, 누이동생이기도 했고, 색시삼고 싶은 여자이기도 했었지요. 허기가 져서 누워있으면 어느 틈엔가 다가와, 어른들 몰래 숨겨온 밤을 넣어주기도 했고, 반푼이라고 놀림받는 아버지때문에 화내고 성질부리던 똘복이를 이해하고, 감싸줬던 아이였지요. 어른들도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던 한짓골 똘복이, 아버지일이라면 미친놈처럼 달려드는 똘복이를 유일하게 이해해 준 아이입니다.
담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강채윤은 기쁜 표정으로 달려가지 않았지요. 너무나 슬프게, 그리고 미친 듯 절박하게 달려갑니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나인 소이의 일들, 담이도 자신처럼 그렇게 길고 오랜 시간을 고통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더 아픈 강채윤입니다. 담이를 부르는 장혁의 표정이 그렇게 절절하게 슬펐던 이유, 소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때죽나무와 산조인을 섞어가며 먹어왔던 그 고통의 밤들이 자신과 같았음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마님 몰래 자투리 비단천이며 색실을 훔쳐 오라버니에게 시집가겠다고 복주머니를 만들어 줬던 담이, 주인마님 연지단지를 훔쳐 담이에게 정표로 건넸던 똘복이. 소꿉장난하듯 아무 걱정없이 배부르고 등따시면 그걸로 좋았던 시절, 그 일이 아니었다면, 이도의 편지만 없었더라면, 그렇게 오순도순 신랑각시하고 함께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똘복이로도, 담이로도 살 수 없게 한 이도, 이도는 강채윤의 분노를 풀어줄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말하겠다며 두 사람을 불러들이라는 세종을 강채윤은 어떤 얼굴로 마주할지, 다음회가 미치게 기다려지네요. 장혁과 신세경의 좋은 감정연기로, 똘복이와 담이의 만남이 더욱 눈물겨웠던 뿌리깊은 나무 12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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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01:11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의 비밀스러운 전개도 흥미진진했지만, 그동안 설왕설래했던 정기준의 정체가 백정 가리온(윤제문)이라는 사실은 충격과 경악이었습니다. 너무나 쉬운 단서들을 던져 준 제작진때문에 더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이었군요. 지난 글에서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했었는데, 글이 삭제조치를 당한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독자분들이 글을 읽기 위해 클릭했다가 아무 것도 뜨지 않은 화면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지...저도 어이없고 기막히지만, 독자분들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네요.

최고의 반전,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었다니....
비록 블라인드 처리되기는 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고 추측한 근거는, 아비가 도적들에게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말한데서 그가 정기준일 정황은 충분했지요. 손톱만큼의 재주를 뽐내다가 일가족이 죽었다는 말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진 것이었고요. 또한 정기준의 용모파기와 싱크로울 100%일치하는 귀모양이 같다는 점, 그리고 집현전 학사들의 사인을 귀신같이 알아냈다는 점은 그가 윤평, 이방지와 관련된 인물임을 추측하게 했었습니다. 또한 허담학사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들었는데, 물 한방울로 죽었음에도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이 물에 젖어있었다고 말했던 점이 거짓말같다는 추측을 했었고요.
뼈속까지 양반사대부인 그가 조선에서 가장 천한 백정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길을 걸어왔던 것에서, 그의 참혹하고 외로운 길이 강채윤과 세종 이도의 그것과 같았다는 글을 참 정성스럽게도 썼는데, 제작사측이 없애버렸군요.
그런데 지난 9회에서는 가리온이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목숨과도 같다며 울부짖는 모습에, 심하게 흔들려서 가리온이 천지계원이 아닐까 다른 추측도 했었습니다. 윤제문의 진심을 담은 연기가 정말 천한 백정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았기에 더 감쪽같이 속았고 말이죠. 미친연기력의 윤제문, 역시 비중있는 배우의 무게감과 존재감은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상상과 추측의 재미가 드라마를 열배 즐겁게 즐기게 하기에, 뿌리깊은 나무는 너무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종의 가장 강한 견제자 정기준이 세종의 하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설정입니다.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이렇게 소름끼치게 실감되다니 말이죠.

이런 정리글이 삭제되어 참 분통이 터지네요. 이런 분석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드라마를 꼼꼼히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쉽게 저작권 침해라는 횡포와 행패에 가까운 행위로 싹둑 잘라 내버리지는 못할텐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외에 뿌리깊은 나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리뷰글이 삭제조치로 블라인드처리되어, 지금 제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니랍니다. 협조를 구해 다시 글만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 다시 복구는 해보겠지만, 영 씁쓸하네요.
앞으로는 글을 올리고 하루 뒤에 인용한 사진자료들은 다 삭제할 생각입니다. 사진없는 글이 드라마 리뷰를 보는 감흥을 떨어뜨리기는 하겠지만, 글 자체를 없애버리는 처사에 이렇게 대처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뿌리깊은 나무만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삭제조치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천일의 약속은 그대로 두었던데 말입니다. 이는 SBS측보다는 제작사가 가위를 들고 있는 것같아 보이는데, 음,,,제작사 상당히 얄밉군요. 제가 인용한 사진으로 책받침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떡을 쪄 먹을 것도 아닌데... 다른 블로거의 글들은 무사한지 모르겠지만, 제 글은 지난 글들 모두 대부분 블라인드 처리되어 제가 표적이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속이 쓰려서 화풀이 좀 길게 했습니다ㅠㅠ.
여튼 가리온이 이신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반전이었습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 자체가 소름이었다기 보다는,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반전을 거듭하는 표정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굽신거리고 눈치만 보는 듯한 힘풀린 눈동자에 서서히 힘을 주더니, 수만볼트 안광을 쏘다내며, 이신적에게 본원의 명을 거역한 것을 추궁하는 장면은, 과연 윤제문이구나 라는 말이 튕겨나오게 하더군요. 비밀조직의 수장이며, 조선의 가장 천한 백정, 두 얼굴의 정기준 가리온, 그의 무섭도록 완벽한 1인2역에 감탄, 또 감탄했네요. 한석규, 장혁, 윤제문, 조진웅 이들 미친 4인방의 불꽃튀는 연기는 감히 경쟁을 한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저 자신들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자신을 던지고 있을 따름이라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들의 연기는 비교분석하지 않으려고요^^;;

남사철에게 놀아난 세종과 강채윤, 그리고 정기준 가리온
세종도 정기준도 강채윤도 시청자도 남사철의 자작극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는데요, 남사철은 철저하게 사대부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꼴통 사대부였군요. 가부조사를 나가지 않으려는 남사철의 오줌 잘금거리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거짓말이 밀본의 본원을 드러내게 하고, 세종과 강채윤을 교묘하게 속이기 까지 했으니 말이죠. 가리온을 구출하기 위해 파옥을 단행하는 거사를 일으켰다면, 정기준이 정체가 세종과 강채윤에게도 들통이 났을텐데, 결국 소이와 강채윤, 세종이 합심해서 가장 큰 적을 구해낸 꼴이 되었으니, 일이 골치아프면서도 재미있게 되버렸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불러 한글을 검증받는 세종, 이번회는 귀요미 돋는 세종, 삐짐대왕 세종의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하며 깨알같은 재미도 주었지요. 성삼문과 박팽년의 입바른 지적에 당황스러워 하고, 귀엽게 화를 내는 세종, "냉정한 것들 같으니라고!"에 빵터지기도 하고,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모습도 귀엽기까지 했다죠. 강채윤에게 가리온의 무혐의를 밝힐 수있을 결정적 힌트를 주며 독대하는 자리에서, 무휼이 5보 떨어져 있었다고 토라지는 세종, "다음부터는 3보 이내에 있어야 되느니라. 보면은 은근히 신경을 안써" ㅎㅎ.
그나저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세종의 알송달송한 말을 채윤이 풀어가는 모습은, 그의 동물적 감각이 놀랍기만 했지요. 세종이 무휼에게 넌 못알아 들었잖느냐며 면박을 주고, 무휼을 뻘쭘 창피하게도 했지만, 저도 세종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말이 처음에는 남사철 사건에 어떤 힌트였는지 이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열정적으로 한글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중, 밀본을 언급한 세종이었지요. 아무래도 한글창제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할 세력이 사대부였기에 그런 우려를 토로했던 듯 싶습니다. "상왕이 정도전 일가와 심온 대감, 강상인 일가를 모두 추단하신 것이 밀본때문이었다는 풍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세종은 머리를 잡고 큰 실수를 깨달았지요. 세종을 정신 번쩍 들게 한 것은 풍설이라는 단서였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세종은 심온대감이 밀본이 아니었음을 확신했었고, 심온대감을 제거한 것이 왕권에 대항하는 밀본에 놀라, 힘을 가진 모든 세력은 숙청해 버렸던 이방원의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근자에 일어난 해괴한 일들을 밀본의 짓이라고 믿어버린 이도 역시, 아버지 이방원에게 잠재해 있던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결국 남사철 집에 남겨진 협박장과 칼은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본 남사철 공포심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지요. 가리온 역시 만천하가 아는 백정인데, 자신의 칼을 여보란 듯이 사건현장에 남겨두고 갈 바보도 아닐테고, 더구나 조선 최고의 검시실력을 자랑하는 가리온이 그런 실수를 했을 리는 없는 일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강채윤의 함정수사에 말려든 남사철은 조말생 대감과의 협공으로 붙잡혔고, 그는 밀본도 뭣도 아닌 찌질이 겁쟁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우라질 같은 놈이 다 있단 말이냐!", 세종의 한마디가 그를 정리해 주더군요.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 가장 무서운 자, 가장 멀리있는 자의 의미
세종은 가리온을 구명하기 위해 소이에게 겸사복 강채윤을 만나라고 하지요. 가리온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소이의 청에 강채윤은 냉소적입니다. 사건 당일 소이는 어명을 받고 가리온을 만났었고, 세종의 밀명이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가리온을 구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채윤이었지요. 국가 대사를 위해 천한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비꼬는 채윤에게, 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요. "왜 때죽나무와 산조인을 섞어 먹느냐 하셨죠? 어린 시절 나의 치기로 아비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전하의 대사는 전하의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자고 싶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구해 주십시오".
자신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잠 못이루는 소이, 채윤은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애틋하고 가련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를 말이지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지요. 나인 소이가 어린 시절 시집오겠다던 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강채윤은 얼마나 놀랄 것인지, 서로를 죽은 줄만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언제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강채윤을 만나고 온 소이가 세종에게 묻지요. "왜 그 자입니까? 그 자가 물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인지, 가리온의 목숨을 위해서인지...".
잠시 상념에 잠긴 듯하더니 세종 이도가 입을 열었지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왕이 외었을 때, 모두가 내게 대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또한 왕은 그래야만 한다고 했고...헌데 내가 대의로 한 것을 두고, 어떤 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했다. 그 자가 바로 강채윤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자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래서 그 자다. 또 한 명의 판관, 가장 무서운 자,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자".
성삼문과 박팽년 외에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이라는 인물의 의미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며, 세종의 과제이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정기준, 아니 정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종이 싸우는 이념은 '대의'의 뿌리가 다름에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떠받들고 지탱하는 뿌리를 사대부로 봤지만, 세종은 그 뿌리를 똘복이, 즉 백성에게 뒀지요. 정도전과 세종의 성리학적 이념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을 위한 민본주의, 성리학의 이념이자 근간입니다. 허나 나라를 경영하는 주도권이 재상에게 있느냐, 왕에게 있느냐를 두고 이방원과 정도전은 의견을 달리했고, 세종 이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방원-정도전, 세종 이도-정기준, 대를 이은 이들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입니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죠.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차이는 그들을 지탱하는 뿌리의 다름입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밀본지서를 금과옥조로 삼고 사대부들을 뿌리로 세우려 했고, 세종은 똘복이와 같은 백성이 뿌리가 되어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습니다. 한글은 세종이도가 백성에게 가는 길이었습니다. 백성을 얻는 방법이었고, 백성을 받드는 길이었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종이 그 오랜 시간 비밀조직 천지를 이끌면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조차 실체를 밝히지 않고, 홀로 외로이 걸어왔던 길, 백성에게 향하는 길이었지요. 그것이 세종의 대의였습니다.
그러나 정기준의 대의는 답보상태, 아니 후퇴를 했습니다. 오히려 대의에 역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말이지요.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사대부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일에 게거품을 물며 반대를 했고, 백성을 위한 세법개혁이나 농사, 상업에 필요한 실용학문을 천시했죠. 왜? 백성의 힘이 커짐을 경계하고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백성들, 부유한 백성들은 왕 못지않게 경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을 반대하기 위한 반대일 뿐이었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집현전을 철폐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똑똑한 학자들,날로 새로워지는 학자들의 논리에 고인물이 당할 재간이 없었던 거죠. 경연은 왕을 견제하기 보다는 세종, 즉 왕권을 강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경연을 강조했던 정도전에 반해 정기준이 집현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사상적 퇴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기준이 가리온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상은 했지만 아이러니한 그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더군요.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버러지 목숨입니다"라고 했던 말이었어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을지, 궁여지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지요. 국가를 왕-사대부양반-양민-천민 등 철저한 신분계급에 따라 성리학의 질서를 대입시켰던 것이, 이들 유학을 숭배하던 성리학자들 아니었습니까. 신분을 감추고 백성들 사이에 몸을 숨긴 정도전이 반촌에 숨어든 것은 공자의 사당이 그곳에 있었고, 성리학의 요람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득력은 있지만, 천민들이 모여사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에서 이율배반적이지요.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점, 과연 정기준은 그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변화는 없었을까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리온이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할 지, 종국에는 "이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했던 그의 말을 철회할 날이 오겠지만, 가리온이 결정적으로 세종의 한글창제에 마침표를 찍을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극적입니다. 아직 미완인 부분이 후음인데, 소이를 통해 가리온에게 전달한 밀명이 이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가리온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저는 이부분이 참으로 궁금하네요. 작가가 멋지고 의미있게 갈무리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강채윤을 가장 무서우면서 가장 믿을 만한 자이며, 가장 멀리있는 자라고 했지요. 강채윤은 돌복이로 대변되는 세종의 백성을 상징하겠지요. 임금이라는 자리는 백성의 말을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자리이며, 백성의 믿음 위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요. 임금과 가장 멀리있으나 가장 무서운 자, 백성을 두려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못지않게 군주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입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궁에 들어 온 똘복이라는 드라마적인 설정은 있지만, 세종의 백성을 대하는 자세는 오늘 가장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판관으로 백성으로 대변되는 똘복이 강채윤을 둔 것은,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백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힘을 들여 만들어 왔다고 해도 버릴 것이라고 했던, 세종의 위대한 민본주의 정신에 일치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지요. 집현전 학사들의 검증, 재검증을 거치고도, 백성을 위한 일을 그 백성에게 또 검증을 받으려 하는 세종대왕,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일들을 똥고집으로 강행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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