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김미숙'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7.24 '황금의 제국' 김미숙-박근형, 소름돋았던 마지막 인사 (7)
2013.07.24 12:07




황금의 제국을 보다가 자주 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어린 시절, 작은 방 아랫목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동치미와 고구마를 먹던 겨울 어느날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걱정없이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고구마 한 번 배터지게 먹어보자고 맨주먹으로 일어났던 최동성 최동진 형제, 그들은 고구마를 배터지게 먹을 수 있었을까... 물질적으로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그들이지만, 온가족이 고구마를 먹으며 아무 걱정없이 웃을 수 있는 정신적 포만감은 결국 누리지 못한 듯 합니다.

 

고구마 더 먹겠다고 할퀴고 싸우고 반목하고 아우성들인 집안 식구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황금의 속성이 그런 것이겠죠. 열을 가지면 백을 가지고 싶고, 백을 가지면 천을 가지고 싶고... 끝없는 인간의 욕망, 결국 무엇때문에 황금을 얻고 싶어했는지 잊어버리고 황금을 쌓고 지키기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도둑이 들지도 모르니 때로는 방망이를 먼저 들어 쳐내야 하고, 조금 허름하다 싶으면 남의 집 곳간도 쉽게 털어버리게 만들죠. 

한성제철을 인수하려는 최서윤, 한성제철을 최종 부도 처리하고 쉽게 인수하려 했던 최서윤은 뜻밖에 밥숟가락을 얹은 최민재와 장태주의 반격을 받게 됩니다. 최민재와 장태주가 실질적 공동주인이기도 한 성진건설은 성진제철을 세울 계획으로 한성제철로부터 제철기술을 37억 공사대금 대신 김사장을 협박해 입수했는데, 최서윤의 한마디는 날벼락이었죠. 성진제철 공사를 중단시키는 대신 한성제철을 부도처리하고 인수하겠다는 최서윤이었으니 말이죠.

최서윤의 결정에 장태주는 속전속결,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한성제철을 민재랑 함께 먹자고 제안하죠. 최민재와 장태하의 갑작스런 반격에 최서윤은 초강수로 맞섭니다. 외환보유고를 다 투입해서 한성제철의 외환대출금을 10억달라를 상환하고, 6천억 인수금을 1조까지 배팅해서라도 인수를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물러서지 않았죠.   

이에 맞서는 장태주, 최민재의 적토마 장태주(글쎄 끝까지 그의 적토마가 될 수 있을지는 잘모르겠지만) 역시 'all or nothing', 물러섬없는 질주로 격돌이 예상됩니다. 웅얼거리는 고수의 영어, 안쓰느니 못하다는 느낌, 고수의 연기에 그동안 불만이 없었는데 황금의 제국에서는 뭐랄까 입에 달라붙지 않은 감정없는 대사전달력과 매치되지 않은 표정연기는 뭐라 할말이... 서류를 보는데도 종이만 보고 있고, 서류에 쓰인 글자는 안보고 외운 대사처리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더이다. 어딘지 붕떠있는 느낌, 연기를 아주 못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고, 어정쩡 애매한 연기는 고수와 이요원이 막상막하인듯;;

 

아버지의 30년 소원, 마지막 가는 길에 한성제철을 성진제철 간판으로 바꾸는 것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최서윤의 효심(?), 감동을 받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무덤덤하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군요. 최동성의 손으로 용광로를 세우고 기둥을 세웠던 것이기에 최동성에게는 각별한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켜내지 못하고 넘겼던 것도 최동성인데, 성진제철을 인수했던 김사장을 날로 먹은 것으로 생각하는 아전인수격의 해석, 성진그룹도 지금의 42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그렇게 인수했던 기업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싶은데, 제 주머니 털린 것만 아깝지 남 주머니 턴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네들의 사고방식에 역시 제 가슴은 열리지 않는군요.  

 

한성제철 인수와 관련해서 두 사람에게 몰아칠 바람은 우리를 공포속에 밀어넣었던 IMF 사태와 맞물려, 예상하지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겠죠. 수백만의 직장인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고, 중소기업의 부도가 속출하고,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던 끔찍한 악몽의 시작점1997년.

한성제철 인수과정은 황금의 제국이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 흐름에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6천억 싯가 한성제철을 1조원까지 투입해 인수하려고 죽기살기로 배팅하는 그들, 한성제철을 인수하고 정상화 시키면 몇곱절의 회사가 될 수 있기에 하는 배팅이겠죠.

그런데 말이죠, 이런 미친 투자의 이면에는 미친 기업경영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투자한 만큼 원금을 회수해야 해야 하는게 오너의 생각이죠. 회사를 안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는 값싼 댓가를 주고, 막대한 이득을 챙겨가는 그들의 기업논리, 4천억 웃돈이 더 들어갔으니 단시간에 그 돈을 빼야 하는 것이 기업주입니다. 하다못해 시설 투자를 하면 그만큼 들어간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물건값을 올린다든지 임금동결로 투자액을 메꾸는 그들이죠. 기업의 손익계산을 보면, 참 이기적입니다. 이만큼의 최소 수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임금이 되었든 물건값이 되었든 이익을 챙기죠. 그래서 누가 한성제철을 인수하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IMF 경제위기로 주가는 바닥을 치게 될 것이고, 둘 중 무리한 투자로 인수한 하나는 그야말로 피똥을 싸야 겠지만 말이죠. 그래서는 안되는데도 갑자기 고소해지는 이 이상스러운 심뽀는 뭔지... 드라마 보면서 이렇게 주인공들에게 시니컬해지는 것도 처음인지라 저도 당황중입니다;;

아마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큰 이유인듯 합니다. 그다지 매력없는 고수와 이요원의 캐릭터에게도 시큰둥하게 만들고, 그나마 최민재 역의 손현주와 최동성 역의 박근형, 그리고 두 개의 혀를 가진 두 얼굴의 독사 김미숙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보고 있는 중... 

호랑이는 쓰러졌고. 27년 복수의 칼을 갈아온 독사는 그 틈을 타 호랑이의 뒷꿈치를 물려는 순간입니다. 병들어 지친 호랑이의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 노장 박근형의 연기는 눈빛만으로도 호랑이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하는군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목소리만으로도 호랑이를 겁먹게 하며 드러내는 독사의 정체, 김미숙의 섬뜩한 위협은 간이 쪼르라들게 무섭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최동성과 최성재를 통해 보는 것은 황금의 제국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 황금의 제국을 지켜내든지 말든지 보다 흥미롭군요. 실감나지 않은 기업간의 혈투와도 같은 전쟁보다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자의 27년 정에 더 끌리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움직이는 동물인가 봅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을 결국 서윤에게 해 준 것도, 성진그룹을 쥐어주겠다는 어머니의 머리보다는 여섯살때 그네를 만들어준 누나의 마음이 성재를 움직였기 때문이겠죠. 황금의 제국, 그 피튀기는 싸움 한복판에 성재라는 인물을 배치해둔 작가의 의도, 남녀간의 사랑 묘사는 투박한 박경수 작가지만, 깊은 인간애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진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최동성과 최성재의 독대씬, 최동성은 성재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우는 성재의 손을 꼭잡았지요(지난 글에서 큰 딸 정윤의 대사를 듣다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이빨도, 발톱도 다 빠져버린 늙고 병든 호랑이, 그 손은 성재를 울리고 말았지요. 그리고 어머니의 계획까지 말하며 성진과 누나 서윤을 걱정하는 최성재였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그의 왕국을 세웠던 최동성이지만, 그의 집은 야망과 질투로 얼룩진 차가운 왕국이었습니다. 아내 한정희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으로 거둔 최성재, 그에게는 하늘이 준 축복과도 같은 선물은 포장지만 선물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칼을 든 독사가 웅크리고 앉아있었음을 죽어가면서 알게 되는 최동성, 27년 그의 참회와도 같았던 사랑이 덧없어 안쓰럽더군요.

 

사흘정도 밖에 버티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성진시멘트 전환사채를 사두지 않은 것부터 후회를 하는 한정희(김미숙), 일년만이라도 석달만이라도 저 인간이 살아있어야 되는데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발을 동동구르는 한정희,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무섭고 소름끼칩니다. 아무리 남편을 잃은 원한이 깊었어도, 27년을 부부로 살아온 최동성에게 인간으로서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하는 한정희의 피가 빨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성재야, 내가 저 세상 가서 네 아버지 만나면 많이 혼날거야. 생일에, 기일에, 우리 성재 아버지한테 편하게 다니라고 산길도 포장하고, 묘소 근처도 단장하고... 애비 손에 묻은 피가 많아. 그것 닦는 심정으로 널 키웠어. 성재야,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구나". 

그런 두 얼굴의 아내였는지도 모르고, 성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껏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최동성,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그였겠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이더군요. "네 엄마는 모르게 해, 애비없이 너를 어찌 키우나 겁나서 그랬을 거야. 내가 알까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아버지의 사랑, 그 진심은 성재의 입을 열게 만들었죠. 어머니의 두얼굴에 대한..." 아버지 죄송합니다. 엄마 말리려고 했는데,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나 성진그룹 회장직같은 거 관심없는데... 아버지랑 누나랑, 그냥 지금처럼만 살고 싶은데 어떡해요, 엄마 어떡하죠? 서윤이 누나 어떡하죠?".

 

까맣게 몰랐습니다. 27년을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선물, 그 두얼굴을... 눈만 껌뻑거리며 성진그룹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늙은 호랑이, 서윤이를 애타게 찾아도 서윤이는 오지 않습니다. 가벼운 감기라고 가족들 병문안도 막아버린 한정희, "서윤이 안와요,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 이 병실에서 나갈때까지 저혼자 옆에 있을 거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최동성의 마지막 소원을 외면해 버리는 한정희, 소름돋는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그 순간 느꼈을 최동성의 절망과도 같은 공포, 다가오는 죽음도 초연하게 받아들였던 그의 눈이 절망감으로 이지러지죠. 대사없이도 눈빛의 동요만으로 충격과 두려움, 절망과 공포를 표현하는 박근형의 연기, 그 긴박한 불안을 시청자에게 이입시켜 버리더군요.

그러나 한정희에게는 뜻밖의 인물에 의해 뒤통수를 맞게 되죠. 아들 최성재(이현진), 서윤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알려버린 아들에게 말이죠. 한정희라는 인물을 보면, 그 원한이 이해가면서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이 철의 여인 앞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한정희는 최동성이 진심으로 그녀를 아내로, 아이들 어머니로 아끼고 사랑해 왔다는 것을 압니다. 최동성의 사랑을 알면서도 어떻게 27년을 흔들림없이 복수심만으로 품에 안겨왔는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독하다는 말도 부족하군요.

최성재가 눈물을 흘릴줄 아는 사람으로, 아버지의 마음에 눈물을 흘릴줄 아는 사람으로, 누나의 선물에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인물로 자라준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황금의 제국에서는 늘 한 발 비껴 서있던 그가 그래서 가장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이 다치지 않기를 더 바라게 되네요. 

한성제철 인수문제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박경수 작가가 짚어보고 싶었던 과거 우리 사회의 파행적인 모습, 고속 경제성장의 빛을 쫓아 무분별하게 기업확장을 하고, 국내 은행이 아니면 외환을 통해서도 빚으로 몸뚱이만 불려왔던 결과는 IMF철퇴로 돌아왔습니다. 은행지점장에게 뇌물을 주고 2천억 4천억, 천문학적 돈을 마음대로 제돈처럼 가져다 쓰는 것이 능력이었던 시절, 골동품, 골프채 하나에 사업인가를 쉽게 내주었던 시절, 100원 가진 놈이 10원을 뇌물로 쓰고 천원, 만원을 빌려 몸뚱이 늘리기에 혈안이 된 빚잔치, 그 질곡의 그늘은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서민들은 살기 팍팍하고, 취업난에 경제난, 가계경제는 빚더미죠. 

하늘을 찌르는 고층 건물들, 외형적으로는 빛나는 고속성장을 해온 우리지만 고층건물이 만든 그림자는 더 길고 진해졌습니다. 최종 승자는 최서윤이 되겠지요. 그래서 전 서윤이 배우기를 바랍니다. 고층건물, 고속 파행 성장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그녀 역시도 그 그림자를 만드는데 앞장섰다는 것을... 그 교훈으로 오늘은 어제의 서윤과는 달라져 있기를...  

황금의 제국에는 작가의 신랄한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최동성의 마지막을 보니 깨달아지더군요. 황금의 제국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황금이었음을... 그 황금을 지키기 위해, 혹은 차지하기 위해 동생도 조카도 버리고, 27년을 부부로 살면서도 복수심으로 곁을 지켜오고, 황금덩어리를 받기 위해 숙제처럼 3년을 아버지 문안을 오기도 합니다. 황금제국의 주인은 최동성이 아니라 최동성의 황금이었던 거죠. 집에서 아버지와 누나랑 지금처럼 살고 싶을 뿐이라는 최성재의 눈물이 그래서 심금을 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정의도 선도 없습니다. 누가 조금 더 나쁘고 덜 나빴는지 정도랄까... 어차피 승자가 서윤이라면 최서윤이 조금 덜 나쁜 쪽에 서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덜 나쁜 쪽이 왕관을 쓰는 것이 그들 황금의 제국이 만든 그림자가 조금은 덜 아프고 진하게 드리워지지 않을 듯 해서 말이죠.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