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9 11:18




해룰 품은 달 등장인물들은 불쌍한 사람들 천지입니다.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아있는 왕을 비롯해, 무녀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선 설이까지 불쌍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우가 가장 큰 원인제공자입니다. 물론 진짜 원인제공자는 하늘의 뜻을 거역한 대왕대비와 윤대형, 그리고 그들의 사주를 받은 장녹영입니다.
장녹영은 성수청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흑주술을 사용했지만, 그 또한 연우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그녀 나름의 변명을 가지고는 있지요. 허나 공범자 중의 한사람임에는 분명하지요.

연우로 인해 아파하는 훤을 비롯 양명군, 오라버니 허염, 자식을 죽여야 했다는 죄책감을 가슴에 묻고 죽은 허영재, 그리고 어머니 신씨까지 그들의 아픔과 상처의 근원에는 연우가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해서, 또는 잃어버려서 생긴 '상심(傷心), 해를 품은 달에 흐르는 아련함의 정서가 바로 마음의 상처, '상심(傷心)'입니다.
하지만 연우의 처지 또한, 산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비극을 겪었기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탓할 수만도 없지요. 양가집 규수에서 세자빈으로 간택되기 까지 했던 연우는, 원인모를 병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아야 했고, 8년간이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천한 무녀가 돼버렸으니, 가장 불쌍한 사람이 연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연우가 가장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조선 최고의 남자 왕을 비롯, 자유로운 영혼 왕친 양명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고 있으며, 호판까지 한눈에 반해 맛이 가게 만든 인기녀이니 말이죠.

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연우는 어떻게 되든 중전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기억까지 찾았으니 닥쳐올 시련을 이겨내면 그녀의 앞길은 탄탄대로, 행복이라는 주단이 깔릴 것이기에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훤바라기만 하는 8년 독수공방 중전 윤보경과, '이번에는 빼앗길 수 없어'라며 눈에 쌍심지를 켠 양명은, 그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극 초반에는 2인자라는 이유로 설움을 참아야 했던 양명이 눈에 밟히도록 불쌍했는데, 근래들어 집착 찌질남이 되어 가는 것에 동정심이 사리살짝 없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가장 연민이 갈 수도 있는 인물인데 캐릭터가 달타령에 집착하다 보니, 돌연변이되고 있는 중;;.
제작진과 작가에게 불만이 생겨가고 있는 캐릭터가 양명군이기도 한데요, 원작과는 많이 달라진 캐릭터가 양명군이라고 하더군요. 드라마에서는 훤과 연우의 밀당에만 올인하다보니, 양명군은 그야말로 연심에 눈물만 짜는 쩌리가 되어 가는 중이죠. 하긴 양명군보다 심하게 구석으로 쳐박혀  날개가 꺾이다 못해, 짤리기 일보직전인 인물이 마성의 선비 허염도 있습니다만...

양명군이 극 초반에는 뭔가 그럴싸한 명분으로 일을 낼 것 같았는데, 그놈의 연심타령만 해대고 있으니 슬슬 그 캐릭터가 질려간다죠. 게다가 양명군 정일우의 대사는 외우고 자시고 할 것도 별로 없지요. 연우에게는 "나를 알아보겠느냐. 나는 안되겠느냐? 왕친이라는 직위도 다 버릴 수 있다, 도망가자"의 도돌이표 대사, 훤에게는 "다 가지신 전하가 아닙니까. 제게는 단 하나인데, 그 단 하나도 안되겠습니까?"의 도돌이표 대사만 주구장창 날리고 있으니 말이죠. 결론은 '월을 양보 안해 주면, 삐뚤어질테닷!' 반역을 꿈꾸는 듯한 서늘한 표정과 눈물 그렁그렁이 다입니다.
가끔 헛헛한 유머를 날리기도 하지만, 자주 들으니 호방함보다는 가벼움이 더 느껴져서, 아무튼 긴대사 소화하기 힘든 연기자들에게, 특히 사극은 연기력의 헛점을 보이기 십상인 치명적 무대입니다. 워낙 여주인공이 그 액받이를 혼자서 온몸으로 받은 덕분에 화제도 되지 못하고 있지만, 잘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는, 그저그런 연기임에도 방패 하나는 잘 만난 셈이죠.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주인공들에게만 몰빵이 되면, 좋은 드라마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해품달을 받쳐주고 있는 김영애, 김응수, 전미선 등 중견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그 갭을 메워주고는 있지만, 젊은 사극에서 젊은이들이 뒷방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염에 대한 설의 짝사랑, 서자 운의 아픔, 염과 민화공주의 사랑 등, 젊은 캐릭터들의 스토리는 전혀 엮어지지 못하거나, 몇초짜리 눈도장 정도만 찍히고 있으니 말이죠. 그저 여기도 달, 저기도 달뿐이니, 부제를 달타령이라고 해도 어울릴 듯... 
양명군의 캐릭터가 요상스럽게 월 집착남이 되어가다 보니 관심이 줄어드는 대신, 중전 윤보경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어서 고민입니다. 훤과 윤보경의 캐미가 연우보다 뭉클하게 다가온다는 이유도 솔직히 부인은 못하겠고 말이죠. 아버지가 연우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것이라 욕심내었던, 궁궐의 안주인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날의 야망이 죄라면 죄겠지만, 비련의 교태전 주인 윤보경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이 참 가혹합니다.
안아주는 훤에게 "동냥하는 거지도 소첩보다 비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며, 우는 윤보경에게 동정심이 가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듯합니다. 남편사랑 여자하기 나름이라지만, 남편도 남편 나름이어야 말이지요. 한 번도 고운 눈길, 고운 손길을 주지 않는 훤에게, 중전이 무슨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보살같은 마음을 가지겠어요. 훤처럼 냉랭한 남편이라면, 돌부처도 돌아앉게 생겼는데 말입니다.  

비록 훤에게는 정치적 부담세력인 외척의 일원이며, 훤의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윤대형의 여식이라고는 하나, 윤보경은 대왕대비 윤씨처럼 정권을 손에 잡고 흔들어보겠다는 야망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습니다. 세자 훤의 연심을 받은 아이가 허연우였다는 사실에, 어린 나이에도 질투를 하기도 했고, 세자빈 간택에서 미끄러지고 나서는 자존심에 상처도 입기는 했지만, 윤보경의 사랑만은 순수했었지요. 격구를 하는 세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세자빈에 욕심을 냈기 때문은 아니었지요. 첫사랑, 윤보경에게도 훤은 첫사랑이었습니다. 비록 외사랑이기는 했지만, 그 첫마음을 8년이나 품어 온 윤보경이 어찌보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아버지에게 세자빈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보경에게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윤대형과 대왕대비 윤씨는 윤보경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자빈을 윤보경으로 점지한 상태였죠. 그래서 하늘이 정한 운명을 거스른 댓가로 윤보경이 치르고 있는 독수공방의 형벌이 과연 윤보경의 몫일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애먼 사람잡는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윤보경이 드라마에서 보이는 자잘한 악행마저 없었다면, 아마 가장 나쁜 놈은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한 훤이 되지 않았을까 요런 생각도 든다지요. 궁녀들에게도 보여주는 미소, 남자인 운에게도 햇살같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윤보경에게만은 차가운 냉소뿐이니, 윤보경이 악녀가 되어가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지요.
윤보경이 악녀가 아니라, 훤과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악녀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중전 윤보경 역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인물,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 더 가엾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연우보다 중전 윤보경이 불쌍해지고 있네요.

**훤과 연우 외 조연들의 슬픔을 정리하면서 써둔 글인데, 다른 인물들의(설, 운, 염) 스토리가 뒷방으로 내쳐지다 보니, 그들의 슬픔 정리는 좀 어렵네요. 나중에 함께 정리하려고 했는데, 신들의 만찬 리뷰글을 올리는 중 컴의 오류로 다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열받아 있다가ㅜㅜ, 써둔 글을 묵혀두기가 아까워 아쉬운대로 두 사람만 정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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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11
  1. 2012.02.19 11:49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제니 2012.02.19 12:14 address edit & del reply

    전 드라마는 잘 안봐서 모르겠고.. 책으로 읽었을때는 양명군이 안타까웠어요..
    마지막까지 동생을 위해서 죽는 길을 택하잖아요..
    아버지의 사랑도 한 번 느껴보지 못 했고..

  3. 포포 2012.02.19 17:43 address edit & del reply

    요즘 드라마가 내용이 조금씩 이상해지더군요...; 양명군과 훤은 달타령만 하고 월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아요. 솔직히 월이 언제 훤에게 반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새 눈물까지 흘려서 당황;; 차라리 기억상실이 없었더라면 8년을 눈물로 지새우고도 훤에게 자신을 밝히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두는 그런 모습이 나와 더 감정이입이 잘 되었을텐데 왜 굳이 기억을 잃었는지... 안타깝네요.

  4. 2012.02.19 20:1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White Rain 2012.02.19 20:31 address edit & del reply

    주말에 이번 주 방영분을 몰아서 봤답니다.
    매회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교차되는 해품달인 듯합니다.
    악역은 악역대로, 천사는 천사대로...
    모두 제 마음 가는대로 얻고 싶은 걸 얻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특히 그 중에서도 중전이야말로 참으로 답답했답니다.
    권력과 힘으로 마음을 얻을 순 없는데, 권력과 힘으로 얻을 수 있다고 부추기는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시스템이 그녀에게 더욱 미련을 주는 듯해요. 차라리 미련이라도 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버릴 수라도 있겠지만 말이죠. 좌우지간 중전의 운명도 참 궁금해집니다. 과연 그녀는 마지막에 무엇을 얻게 될지 말이에요.

  6. 진아 2012.02.20 10:18 address edit & del reply

    원작만 빼고 드라마로서 본다면 둘다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좀 덜드네요..연우가 원작보다 더 드라마가 더고초를 겪고 있기에..더 불쌍하게 느껴지는...원작에서 여자캐릭터중에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드는게.. 설이였거든요 그다음에 중전이였죠..원작의 중전은 정말 자기 아버지의 권력의 희생양이였고 아버지가 반란을 결심하고는 아예 자기 딸 중전을 버려 버리더군요..왕에게도 맘을 얻지 못해 교태전에도 자기 자리가 아니라서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해 마지막으로 아버지한테도 버림받아..정말 불쌍하더군요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들더군요..자기 할일은 다하고 음모는 다꾸미고 이건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 초록누리 2012.02.20 14:59 신고 address edit & del

      원작과 중전의 캐릭터가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어떤 분도 댓글로 남겨주셨는데, 드라마에서는 중전의 역할을 좀 키웠나 보더라고요.
      중전의 첫연심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는 여자로서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7. 2012.02.20 15:22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8. 2012.02.20 17:2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초록누리 2012.02.20 14:55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동감입니다. 누구때문에 동정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저는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양명군의 원작 캐릭터는 모르고 있는데 드라마보다 멋있었나 보더라고요.
      드라마에서는 양명군의 캐릭터를 사랑에 무게를 두다보니 살짝 실망스럽기도 하고...아무튼 남은 회에서 어떻게 그려갈지도 궁금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9. 초록비 2012.03.01 16:09 address edit & del reply

    둘다 사랑을지키려고햇으니...그리나쁘진않지만 마음에상처가컸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