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9 09:13




드라마 '선덕여왕' 32회는 과거와 현재(당시 신라)를 넘나드는 수수께끼 놀이 같은 것이었지요. 15대 풍월주 선발 비재에는 유신랑과 보종랑이 참가를 했는데, 드라마를 보다보니 시청자들도 함께 비재에 참가하고 있는 듯합니다. 풍월주 비재는 돌아온 국선 문노공께서 맡아주셨는데 문제출제를 쉽게 내주지 않아요. 사지선답형도 아니고 주관식 문제도 아니고, 더구나 논술문제도 아니었던 두번째 비재는 신라 국호가 가진 의미 세 가지를 알아오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의미는 유신랑측이나 보종측도 쉽게 찾았지요. 워낙 주위에 쪽집개 과외로 단련되신 분들이 많으니 신라(新羅)라는 한자풀이에서 조금 난이도를 높여서 의미를 부여하면 되니까요.
저도 이왕 비재에 참가했으니 의미를 좀 살펴볼까요.
첫번째 의미는 신라의 자연적 환경에서 답을 찾습니다(서라벌, 즉 쇠벌이라는 의미는 철의 밭이라는 뜻이지요). 당시 신라 낙동강 유역은 질좋은 철의 산지였고, 이 금속문화를 잘 이용 발전해 온 나라가 가야국이었지요. 철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은 당연히 농기구와 무기입니다. 즉 답은 농기구와 무기 제작기술을 높여 안으로는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밖으로는 강한 무기를 만들어 무력증진에 힘써라'입니다.
두번째 의미는 사람에서 찾았지요. 여기서 힌트는 역시 신라라는 한자어입니다. 그물 라(羅)라는 의미는 여러가지 재료들로 그물을 엮는다는 것인데, 이를 사람세계로 넓혀보면 '두루두루 니편 내편 가리지 말고 똑똑한 인재를 잘 활용하자' 이런 뜻이 되겠지요. 좀 유식하게 답을 표현하면 신진세력을 흡수해서 신흥세력을 키우고 신라를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진흥대제가 신흥세력의 활용을 가장 잘 보여주었는데요, 성공적인(?) 인물이 설원공, 문노, 미실이었지요. 재주가 비상하여 써줬더니 박힌 돌 빼고 통째로 삼키려는 미실같은 변종도 나오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답은 오리무중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버립니다. 세번째 답은 지증왕의 유훈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지증왕도 이미 세상에는 없고, 지증왕의 유훈을 알고 있었던 진흥대제도 아시다시피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교직에 몸담고 계시니 저희가 알리가 있나요. 당시 세번째 유훈을 알고 있었던 이들이 이사부와 역사편찬을 했던 거칠부였는데 이 분들도 다 고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미실과 세종이랍니다. 미실과 세종은 세번째 의미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서, 세번째 의미의 사회적 파장과 자신들의 못된 짓이 들통날까봐 입에 자물쇠를 채워버립니다. 심지어는 보종에게 문제를 풀려해도 풀어서도 안된다고 못을 박지요. 어떤 비밀이기에 승부욕 강한 미실도 풀어서는 안된다고 했을까 사뭇 궁금합니다.
미실측이야 어찌하고 있든 유신랑은 15대 풍월주가 되어야 하고 덕만공주도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문노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니 답을 찾아야 합니다. 세번째 의미를 알기위해 유신랑과 알천랑은 진흥대제가 거칠부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했던 국사가 보존되어 있는 서고에 갔다가 지증왕대의 국사중 1권이 소실되어 다시 편찬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신라라는 국호의 세번째 의미는 이때 고의였든, 미실의 말대로 실수였든 빠져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국사를 편찬한 거칠부가 문노공의 장인이었다는 점과 쌍둥이 출생과 함께 우연치고는 요상스럽게도 같은 날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거칠부라는 인물 탐구에 들어간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난이도 중 최고 심화과정에 들어갑니다. '거칠부가 진흥대제의 명에 따라 국사를 편찬했던 벼슬아치였고 장수였다' 이런 것은 기본과정에 나와있는 내용이거든요. 심화과정 학습에서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거칠부가 문자마방진과 세필에 남다른 관심과 재주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이를 토대로 거칠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서찰을 살핍니다. 그 서찰은 문노가 진평왕에게 전해주었던 것인데, 덕만은 서찰이 전해진 그 시각 "응애응애" 첫울음도 크게 터뜨리지 못하고 소화 품에 안겨 궁밖으로 버려졌고요. 엉덩이나 한대 때려줬는지 모르겠네요. 태어날 때 엉덩이를 때려서 몽고반점이 생긴다고 하던데... 물론 우스개 소리입니다. 수수께끼 푸느라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냥 긴장 좀 풀고 싶어 쓴 말입니다.
거칠부의 마지막 편지를 마방진으로 풀어보니 소엽도를 살피라는 답이 나왔지요. 그러고 보니 덕만공주의 소엽도가 드라마 '선덕여왕' 비급 1호였나봅니다.  예고편에 보니 소엽도에는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덕업일신(德業日新)이라 새겨져 있던데, 아마 화랑세기에 나오는 신라국호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이라는 국호를 말하는 모양입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이라 함은 간단히 '왕의 업적을 날로 새로이 하고 사방으로 뻗쳐나간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합니다. 세번째 의미 말입니다. 
그럼 이 세번째 의미가 대체 뭐길래 진흥대제는 후손에게 알려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게 하려 했으며, 미실은 왜 그 의미를 감추려고 했는지 알아봐야 겠네요. 많은 분들이 31회때부터 짐작했던 대로 신라 국호 세번째 의미는 삼국통일이겠지요. 그런데 미실은 왜 이를 없애면서까지 역사를 왜곡하려고 했을까? 그야 물론 자신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지요. 미실은 에고이스트입니다. 자기애가 강해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해서는 안되고, 내가 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도 해서는 안돼'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지요. 진지왕을 보위에 올렸다가 애까지 낳았는데 황후를 시켜주지 않자 다시 폐위를 시키면서 '내 말 안들으면 험한 꼴 당한다'는 것을 젊은 화랑들을 앞세워 보여준 황후집착증 환자였고요.

진지왕을 폐하고 미실은 진평왕을 보위에 올립니다. 사실 진흥대제가 후계자로 지목한 사람이 진평왕이었는데, 미실이 음모를 꾸미는 바람에 진평왕은 다소 늦게 왕관을 쓰기는 했지반 황제자리는 애초에 진평왕 것이었지요. 미실은 '황제자리는 이 손안에 있소이다' 하면서 진평왕을 위협했으니 진평왕은 이때부터 미실 눈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황후 자리를 향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즉 미실을 황후로 봉한다는 화백회의 만장일치 통과를 앞두고 미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립니다. 미실이 쥐도새도 모르게 수장시키려했던 마야부인(현재의 마야황후 윤유선)이 나타났거든요. 결국 미실에게 황후자리는 너무 먼 그대가 돼버렸구요. 이때부터 미실의 삐딱선 타기가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못먹는 것 남도 줄 수 없다는 못된 심보와 자신의 권력이 몰락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세번째 국호의 의미는 거칠부가 기록한 국사(國史)라는 사서(史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답은 왕권강화를 통한 삼국의 통일입니다.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 하게 백제, 고구려와 전쟁을 치뤄야 하고, 전쟁을 하려면 최고통수권 즉 왕권이 강화되어야 하지요. 이는 결국 귀족세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귀족세력을 기반으로 한 미실에게는 타격이 클 것입니다. 황제도 되지 못하고(미실은 황제를 꿈꾸지는 않았지요, 미실 생각의 한계인지 덕만이 앞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황후도 되지 못하는 에고이스트 미실에게는 귀족을 등에 업은 지지기반까지 빼앗길 판인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니 거칠부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버리고 역사도 슬쩍 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이 글의 제목에서 세번째 답은 '국사(國史)'라고 했습니다. '국사'는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진흥대제가 거칠부에게 신라 지증대제의 유업을 후손에 전해, 당시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후손이 이룰 수 있도록 전하는 신라의 꿈에 관한 신라 사서였습니다. 그리고 진흥대제는 그 사서의 이름을 '국사'라 칭하도록 명합니다. 왜 국사일까? 마땅히 한나라의 역사서, 즉 사기는 국호를 쓰는 통상적인 예를 보아 '신라사' 라고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진흥대제는 '국사'라 하라고 명했습니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대립하였고 삼국은 상호 적대 전쟁국이었습니다. 진흥대제가 고구려, 백제를 의식하지 않고 통틀어 국사라고 이름지으라 한 것은 지증왕의 유업이 곧 삼국의 통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지증왕, 진흥왕이 감히 꿈꿀 수 없었던 꿈은 삼국통일이었지만, 진흥왕은 국사라는 명칭에 그 꿈을 담아놓은 것이었지요. 신라사가 아닌 삼국통일국의 의미인 국사라 칭하면서 말입니다. 미래의 통일삼국의 역사서, 그 서막을 염원하는 의미가 바로 국사라는 이름에 담겨있는 것이지요.
사족이지만 전 신라의 삼국통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만공주, 즉 미래의 선덕여왕은 백제, 고구려의 침공에서 몇번이나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나당연합군에 의해 삼국통일이 이룩되면서 삼국통일의 의미는 엄밀히 말해 자주적 통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바람에 고구려의 그 광활한 영토(대동강, 즉 평앙이북)들이 당나라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까요. 이는 당시 신라의 힘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후일 이런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됩니다. 독도가 자기땅이라고 망발을 일삼는 일본 역시 언제부터 그 목소리를 높여왔는지를 보면, 국가의 자주적인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독도에 대한 망언은 결코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우리 영토에 대한 위협이며, 일제강점기 당시의 그들의 지배논리를 여전히 펴고 있다는 증거이지요.(독도는 우리땅!!) 
후일 신라의 삼국통일은 비록 부분적 영토통일이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차후에 벌어지는 문제이니 여기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과연 이 세번째 의미는 어떤 식으로 공개될 것이며, 미실의 다음 수 또한 궁금합니다. 이제부터 덕만공주와 김유신은 이 세번째 의미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군주의 대업, 신라의 대업을 위해 꿈을 꾸어 가겠지요. 삼국통일의 꿈을 향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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