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3 13:14




조각 미남 장동건이라는 배우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순간이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장동건이라는 시리도록 아픈, 슬프도록 예쁜, 마치 장동건처럼(ㅎㅎ) 잘생긴 미남 김도진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해야 정확하겠죠. 장동건이라는 대표미남 배우를 가지고 노는(?) 김은숙 작가의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찌질이 질투남에 몸까지 가벼운 바람둥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펜대에서만이 가능한 것이었으니 말이죠.
물론 장동건이라는 배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여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역효과도 일시적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김은숙 작가가 누구입니까? 찌질이도 매력적인 왕자님으로 만들어가는 캐릭터 구축력만큼은 대단한 작가이니 장동건의 반전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장동건이 현빈신드롬을 만들 수 있을까는 아직은 물음표가 더 강하지만, 이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은 현빈의 주원보다 더 높답니다. 김도진은 주원의 폐소공포증보다 심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같아서 말이죠.
여태 연애에 성공못한 이유를 말해주듯 한 계절이 다가도록 김도진과 서이수는 아무 진도없이 나이만 들어가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부남 친구 이정록은 아내 김정난의 눈을 피해 룸사롱이며, 옛여자까지 만나 인생이야기를 들어주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뒷수습하러 다니는 친구들이 몸고생이 말이 아니군요. 남자들은 가정에 소홀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것을 우정이나 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드라마를 보면서 괜히 찜찜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드라마 캐릭터의 모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였습니다. 알고 보니 친구 딸이었던 스무살 아가씨를 룸에 불러, 나이까지 속여가며 노는 신사(?)들을 고운 눈으로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세태풍자도 아니고, 웃음코드로 넣었다고는 하지만 뒤끝이 찜찜한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딱히 외설적이거나 선정적이지도 않은데 고기 한 점이 가슴께에 얹혀서 내려가지 않은 듯, 신트림이 나오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동안 너무 깨끗한 모랄을 가진 주인공들에게 너무 익숙해졌었나 봅니다. 그래서 여자랑 동침했다가 일어나는 김도진의 알몸을 보고, 헉! 이게 뭔가 싶기도 했고 말이죠.
드라마 주인공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제가 너무 구식인가, 보수적인 가 싶기도 하고 말이죠. 물론 숫총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하룻밤 생리적 욕구를 발산하는 주인공이 곱게 보이지는 않은 걸 어쩌란 말인가 싶더랍니다. 자연스러운 성생활이라고요? 그래도 흠;;;;;;;
서이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김도진이 발렌타인데이에 허리가 휘청일정도로 수북히 쌓인 초콜렛 바구니를 받고, 태산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이수의 거짓 고백을 받기는 했지만, 홧김에 다른 여자를 끼고 잤다는 것도 앞뒤가 안맞고,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였다기엔 그 모랄이 심히 이해가 안가고, 여튼 김도진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비호감이었습니다.
남자 나이 마흔, 불같은 청춘과는 달리 사랑도 서서히, 그 느린 발걸음은 정장구두 신은 신사처럼 느리기 그지 없습니다. 20대의 청춘은 런닝화를 신고 달린다면, 30대는 스니커즈를 신고 뛰죠, 그리고 40대는 정장구두를 신고 걷습니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속도도 나이들어가는 것같기도 하고 말이죠.
태산을 짝사랑하는 서이수의 초콜렛 바구니, 서이수와 전화통화를 시도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자 이수의 집을 찾아가지요. 도진을 피했다가 문자를 받고 혼자 쇼를 하는 이수를 차안에서 훔쳐보는 도진, 혼자보기 아까운 장면이었지요. 안타깝게도 저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가, 자기가 아닌 태산바라기라는 것이 슬픈 도진이죠. 초콜렛 바구니에 남겨진 유치찬란 카드를 보고 열을 받아왔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느낌입니다. 
"언제부터 내가 좋았어요? 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시리도록 아픈, 슬프도록 예쁘긴 하죠, 내가?" 메아리의 장난이 불러온 화였지만, 진심 자뻑 왕재수남의 재수털리는 말에 어이가 없는 이수입니다. "동의안하는 눈빛이네요, 겁도없이". 어머어머 어쩜 저렇게 겁도 없이 싸가지없는 말만 늘어놓을까요? 왕자병 중증입니다. "슬프도록 바쁘긴 하죠".
앞으로는 전화받으라는 말만 싸늘하게 뱉고는 가버리는 도진, 지난 밤에 다른 여자랑 자고 일어난 김도진이 서이수에게 그런 말을 해도 설레이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장난도 아니고 진심이어야 하는데, 정작 김도진의 몸은 진정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때문에 멘붕이 아니라 모랄이 붕괴된 그런 느낌이랍니다. 김은숙 작가가 왜 이렇게 남자주인공을 형편없이(?) 그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주인공에 대한 마지노선이랄 수 있는 성역을 이렇게 지켜주지 않는 이유가, 마흔이라는 나이를 대기에는 배신감의 정도가 컸네요.

김도진의 집착은 결국 성공했습니다. "나 몰라요?", 빨간 원피스 올이 풀렸던 날 엉덩이를 가려준 그 일을 그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결국 인정과 감사인사까지 받았으니 말이죠. 강릉으로 원정경기를 하러 가는 날, 도진은 이수와 함께 가기 위해 태산에게 없던 스케줄을 만들어 주고, 최윤에게는 메아리와 다른 선수들을 태워오게 하고는 오붓한 드라이브를 즐기지요. 오붓한 드라이브였다기 보다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무공해 무균실에 집착하는 깔끔병만 확인했지만 말이죠.
강릉으로 가는 중간 정록이 여자를 만나 묵은 호텔에 들러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수고로움까지 처리해야 했으니, 친구 잘못만나 고생이 많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수가 도진의 무균실 차를 몰고 강릉으로 먼저 튀어버린 것이죠. 그뿐이 아니었죠. 오징어를 차에 걸어두고 메롱 복수를 해 준 이수였습니다. 도진도 물러서지는 않았지요. 이수의 옷가방에 오징어를 넣어 오징어 냄새에 이수 옷을 절여버린 것이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렇게 싸우다가 정분날 것같은데, 이수의 진지한 짝사랑을 보고는 도진도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태산을 짝사랑하는 이수의 마음이 진심이었거든요. "야구가 좋아요. 야구를 하는 태산씨가 좋았어요". 늘 문제인 하의실종을 매너있게 도진의 옷으로 마무리를 해주고, 그렇게 두 사람에게서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봄이 오고, 빨간 원피스 사건이 있은 지도 1년이 지났지요. 어느날 서점에서 도진의 인터뷰가 실린 책을 손에 든 이수, 그의 인터뷰를 읽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요. 도진이 나레이션으로 읽어주는 듯, 그의 인터뷰가 음성으로 들리는 듯 느껴집니다. 그 사람을 만난 이후 싸운 일밖에 없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느낌입니다.
멀끔하게 생긴 독신주의자가 그 이유가 돈 벌어서 아내와 아이와 나눠쓰기 싫은 것이 이유라니 참 황당스러웠네요. 그보다는 숨겨둔 비밀이 더 나올 것같아 도진이라는 캐릭터가 의외로 복합적이고 입체적일 수 있다는 예감도 들더군요. 남자 나이 마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그 넓고 황량한 가슴에 켜켜이 쌓여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선을 보러 나간 이수 앞에 도진이 귀신처럼 나타났지요. "태산이가 구해 오래요", 이어진 도진의 고백에 서이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지요. "짝사랑을 시작해 보려고요. 사양은 안하는 걸로!!". 도진의 고백으로 1년이라는 시간이 되도록 진도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될 것임이 예고되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시작되려나 싶었는데, 예고편에는 다른 여자랑 잠자리를 하고 나온 도진의 모습이 나와 또 띠융!
거절당하면 혼자 짝사랑했으니까 서이수한테는 책임없다는, 일종의 싸가지 자뻑남의 배려이자 계산일까요? 건축가라는 직업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도면을 완성하는 사람이기에, 김도진이 그 완벽주의적인 성격상 사랑도  짝사랑으로 일방 통보를 해버리는 것같아, 멋진 대사가 더 비호감이더랍니다. 뭐랄까 개멋만 잔뜩 낸 헛소리같은....
40대니까 적당히 속물주의여도 넘어갈 수 있다, 40대 독신남이 여자랑 하룻밤 즐기는 것이 도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가?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이런 남자주인공에게 환상 금가는 소리 들렸던 것은 구시대적인 생각일까요? 아주 현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멜로도 아니도, 죽도 밥도 아닌 김도진의 캐릭터와 오버스러운 서이수의 캐릭터는 티격태격 에피소드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모랄에서 궤도 수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하늘의 오버는 귀엽기는 한데, 멜로에 방해되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조절을 했으면 싶고요.

드라마를 통해 만나는 사랑은 뭐랄까, 비현실성이 가미된 환상이라 할지라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설레임이 전해져야 하는데, 그게 전해지지 않네요. 배우들에게 문제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흐르는 불쾌한 혼탁함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로맨틱코미디나 멜로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주인공의 모럴에 엄격해지고 보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남자, 혹은 내 여자로서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김은숙 작가가 김도진이라는 캐릭터의 첫단추를 잘못 끼워준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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