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4 06:32




드라마 선덕여왕 36회 문노가 신라대업의 주인으로 유신을 선택한 이유에 관한 글을 준비하면서, 고민도 많았고 생각도 많았어요. 왜냐하면 신라의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라는 드라마 장르와의 괴리를 어떤 식으로 연결지어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거든요. 또한 문노에 대한 생각을 한꺼번에 정리하기에는 그간 문노가 보여준 행적이 짧았기에 다 잡아내기가 힘들었어요. 아시다시피 문노가 오랜시간 행방불명된 상태로 은둔생활을 한 인물이다 보니...

문노라는 인물이 중요했던 것은 진흥대제의 유지를 알고 있었고, 미실을 대적할 사람을 가려낼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진흥왕의 유지는 15대 풍월주 선발과정에서 두번째 문제를 통해 삼국통일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남은 것은 미실을 대적할 자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과정만이 남아있는 셈이었지요. 그런데 36회를 보면서 그 두번째의 키워드에 대해서 지금까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여태껏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타이틀에 갇혀있어서 당연히 시대의 주인은 후일 여왕으로 등극할 덕만공주라는 생각만으로 드라마를 봐 온 탓에 그부분을 간과해 버렸습니다. 군주로서의 자질과 신라의 대업을 이어갈 당당한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덕만공주가 그 인물일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부수적으로 덕만공주의 왕위등극을 돕는 시대의 영웅들, 예를 들면 유신랑, 알천랑, 가야계의 월야왕자, 문노, 비담(아직까지는요), 춘추 등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6회를 시청하면서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나 제작진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어졌어요. 과연 덕만공주 한 사람을 여왕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이 드라마의 제작의도였을까? 왜 진평왕의 유언 한마디로 쉽게 왕위에 올랐던 선덕여왕을 이리도 어렵게 왕위에 올리려고 역사적 사실도 왜곡하고, 생존했던 시기, 출생관계, 혈연관계까지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가? 해답은 덕만공주나 미실에게서 나오리라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문노에게서 나왔어요. 
결론은 선덕여왕의 모든 스토리는 문노의 한마디에 있었어요. 따지고 보면 문노의 말은 아니었지요. 진흥대제의 말을 문노가, 그리고 미실이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까요. 진흥대제의 명언이 무엇인지는 아실거에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의 주인이 된다"지요. 그리고 드라마 선덕여왕은 지금까지 앞으로 천하의 주인이 될 덕만공주가 사람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여기까지는 덕만공주가 그 시대의 주인이었고 그야말로 드라마 선덕여왕이라는 타이틀과도 맞아떨어졌지요.
그런데 저는 이번 36회를 보면서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유신이 미실에게 무릎을 꿇고 미실의 품으로 떠나는 장면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유신랑이 표면적으로 덕만공주와 정치적 결별을 선언했다고 그것이 미실과 정치적 동반자가 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이 글에 앞서 <미실에게 무릎꿇은 유신, 가야를 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는데요, 제가 유신랑이 가야를 품었다고 한 것은 유신의 정치적 계산을 함축시킨 것이에요. 유신랑의 정치가로서의 입장에 대한 부분도 글 말미에 가야민이 유신랑의 정치적 기반이었다는 표현으로 잠깐 언급하고 만 이유는 이번 글 문노에 대한 글에서 함께 말하고 싶어서 였어요.

제 15대 풍월주 최종 선발과정에서 유신은 가야계, 그리고 구 가야왕조의 복원을 꿈꾸는 복야회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사서 최종재가에 들어갔지요. 사면초가에 빠진 유신을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표면적으로는 덕만공주와 등을 지고 미실의 세력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실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유신랑은 가야와 자신의 대의명분과 사이에서 고뇌했지요. 그리고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가야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덕만공주와 등을 져야한다는 일종의 대의명분과의 싸움으로 비쳐졌지만, 유신랑의 선택은 당시 신라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고 정치적 계산이었어요. 당시의 신라는 왕권보다는 미실을 중심으로 한 신권의 세력이 강했던 상황이었어요. 수틀리면 일개 지방 귀족세력이 황실에 도전할 수 있었던, 말하자면 왕권이 취약했던 그런 시대였지요. 드라마에서 진평왕의 모습을 왕권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에 비하면 미실이라는 신하의 권력은 왕권을 능가하고 남지요.
또한 드라마에서는 가야계 유민의 힘에 대해 미약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구 가야계 세력은 신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견제대상이었어요. 미실이 유신랑을 욕심내는 이유는 그가 그 가야계의 대표라는 점입니다. 유신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때 함께 흡수할 수 있는 가야세력은 달걀 노른자와도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큰 가치가 있지요. 미실이 유신을 탐내는 것은 유신의 그 강직하고 충성스런 성품때문이 아니에요. 유신 뒤의 세력이었지요. 유신랑 역시 그 계산을 했던 것이고요. 가야민을 떼죽음 당하게 하여 신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보다는 미실에게 복속함으로써 가야를 당당하게 신라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일종의 정치적 항복인 셈이지요. 현실적으로 가야를 복원해서 새 왕조를 세우는 것보다는 신라에 편입되어 신라 중앙무대로 진출해 중심적인 위치에 서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고, 유신랑이 풍월주로 등극하면 가야계 인물을 화랑으로 편입시키는 것도 떳떳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 역시 했을테지요. 유신랑처럼 가야계였던 문노가 제 8대 풍월주를 지냈고 신라에서 그의 위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풍월주의 지위가 단순히 화랑의 수장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노는 유신을 그가 기다리던 시대의 주인으로 유신랑에게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합니다. 신라의 비밀 카지노 격인 노름장에서 염종과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실 겁니다. 삼국지세를 완성해야겠다면서 그 책의 주인이 나타난 것 같다고 했던 장면 말입니다. 이때 문 밖에서는 비담이 문노와 염종의 대화를 엿듣고 눈에 독기를 품어내었었지요.
그럼 왜 문노가 유신을 시대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유신랑이 미실에게 미실의 사람이 되겠다고 투항하러 가기까지 유신과 문노는 두번에 걸쳐 대화를 합니다. 첫번째 대화는 가야유민을 유신가문의 땅 압량주에 정착시킨게 맞느냐고 확인하는 장면이었지요. 그 때 문노가 어찌하여 그리했느냐고 묻습니다. 유신랑은 충성을 얻기 위해 한 일이라며 세력을 만들어 신라 내에서 자신을 구축하기 위해 그리했다고 대답하였지요. 또한 가야국 복원은 힘들고 대신 신라 내에서 신라의 한 세력으로서 신라의 삼한 일통 최전선에 나설 것이라고요. 그렇게 때문에 풍월주에 못 오른 다해도 가야민을 파는 일은 절대 못한다고 말이지요.
유신이 나간 후 문노는 생각하지요. "인물이구나. 허나 그리 곧으면 부러질텐데.." 그리고 자신에 대한 회한이 방백으로 이어졌지요. "포기할 줄 알았더라면, 굽힐 수 있었다면 나 또한 그리 떠돌지 않았을 것을..." 이는 미실에 대한 자존심을 굽히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쌍음과 함께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변명이었겠지요.
두번째 대화는 유신이 덕만공주에게 "군주란 자신의 몸을 팔아서라도 백성을 지켜내야 한다. 백성은 다른 나라 백성 만명을 죽이고서라도 자기들을 지켜주는 왕을 원하며 저는 그리 할 것이고, 공주께서도 그리하시길 원한다. 군주의 길이란 혼자가는 길이다"는 말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 이후에 이어집니다. 유신을 찾아 온 문노는 사람을 얻는 자가 왜 천하를 얻는다고 하는지 아느냐며 얻은 사람, 그 사람들이 군주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지요. 영웅은 스스로 되는 법은 없어, 옆에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요. 이때 문노는 덕만공주가 복야회 설지를 희생시키자고 했던 방법 외에 다른 어떤 방법이 있는 거냐고 유신에게 묻습니다.
이에 대해 유신은 아마 미실에게 투항하겠다는 말을 문노에게 한 것 같습니다. 이 때 장면에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유신은 문노에게 가야민을 살려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유신 역시 신라의 대업 삼국통일을 위해 대의명분을 세웠고, 덕만공주 역시 그 뜻을 품고 있기에 당장은 미실에 대한 굴복일 수 있지만 길게는 덕만공주와 자신의 대업이 같음을 말했겠지요. 
유신을 보내고 "덕만공주가 정녕 인리가 있는 것인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처음부터 운명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가... 유신인가..." 하는 문노의 방백이 이어졌는데 이 말이 제 뒷통수를 치더군요. 그리고 문노는 염종을 찾아가 자신이 지금까지 방랑하고 다니면서 집필하고 있던 삼국지세를 완성하겠다며 그 책의 주인이 나타나것 같다고 하지요.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고 고지식한 면에서는 자신과 빼다 닮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문노 자신은 자존심과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세상을 등지고 현실을 도피했지만 구정물을 뒤집어 쓰고서라도 자기 백성과 가문을 지켜낼 사람 그놈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면서요. 
문노는 사람을 계획하에 만들고자 했던 인물이었어요. 그는 미실을 대적할 사람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려고 했었어요. 비담을 가르치고, 또 끊임없이 덕만공주에게 군주의 자질을 갖추기를 요구한 것도 미실에게 대적할 인물로 만들려고 했던 문노의 의도였지요. 그런데 유신은 그렇지 않았지요. 유신은 스스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거든요. 자기를 버리고 앞을 내다보는 정치적 안목, 지도자라면 마땅히 품어야 할 백성에 대한 애민심을 유신은 스스로를 끊어내는 아픔속에서 배우고 커가고 있음을 본 것이었지요. 문노가 유신을 택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고 알에서 부화해서 나온 유신을 문노는 알아보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사람 문노가 앞으로 만나야 할 시대의 주인 춘추가 있겠지요. 문노는 어떤식으로 춘추가 껍질에서 깨고 나와 시대의 주인이 되어가는 지를 지켜 보겠지요. 춘추와 유신의 운명적 만남도 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노는 새 시대의 주인들을 위해 마지막 그의 지도를 완성하려 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제서야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보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선덕여왕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미실을 대적할 시대의 주인이 단순히 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가야를 품은 유신랑 역시 시대의 주인이었고, 유신, 알천, 비담, 후일 춘추를 얻을 덕만공주 역시 시대의 주인이었으며, 미래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춘추 역시 시대의 주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지요. 다만 한가지 비담이 걸려요. 역사적으로 비담은 선덕여왕 재위기간에 선덕여왕편에 있었던 장수였지만 난을 일으키지요. 비담이 드라마에서 당시 미실과 대적한 인물들과 함께 시대의 주인이 될지 야욕이라는 껍질 속에서 부화하지 못한채 반역자로 남아버릴지 그게 여전히 시청자들에게는 물음표니까요.
* 본문의 모든 캡쳐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MBC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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