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조현민은 우리 사회의 법의 모순을 조롱하듯 풀려났지만, 억지로 법과 온국민을 눈 뜬 장님으로 만드는 설정은, 다분히 고의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이었습니다.
조현민의 자살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조현민의 악행과 해킹 프로그램으로 정보를 악용해 권력을 가지고자 했던 조현민의 비뚤어진 야욕이 세상에 공개되기를 바랐던 시청자와는 달리, 조현민이라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는 계속 생겨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한 작가와의 생각의 차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남상원을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김우현(박기영)의 사건수사 보고서도, 법정증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기막힌 현실을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니 믿으라고, 목격자의 진술이나 증언이 권력의 입김에 한낱 휴지조각이 돼 버리고, 증언이 거짓말이 돼 버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의 실상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면, 상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검찰 경찰 간부 몇이 뇌물을 받아쳐먹었다고 살인혐의자를 풀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조현민에게 뇌물을 먹지 않은 검찰이 더 많았을 것이고, 모든 검찰이 비리혐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조현민을 자살시키기 위한 작가의 무리수가 빚은 경찰 검찰 물먹이기였죠.
조현민은 자신을 위해 킬러가 되길 서슴지 않았던 염재희마저 가차없이 제거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힘이 필요했다는 조현민의 마지막 말이 우습지도 않더군요. 조현민에게 자기 말고 소중한 것이 있기나 했을까,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나 했을까 싶었는데, 초음파 사진 속에 들어있던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가 소중한 것이었다고 믿기에는 조현민이라는 인물과 연결이 되지 않더군요.
아무리 법이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왜 꺼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있는자, 힘을 가진자는 어떤 중대한 살인죄를 지었다고 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힘있는 자는 살인죄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보다는, 법의 준엄함을 보여주는 것도 드라마에서 보여줘야 할 메시지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너무나 많은 살인을 저지른 조현민의 최후를 자살로 종결지어 버리다니, 추적자의 결말과는 대조되는 씁쓸함이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희 작가의 실험정신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전작 싸인에서는 박신양을 통해 국과수 검시관의 애환과 노고, 열악한 환경 등을 재조명했다면, 유령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이버 범죄를 수사하는 사이버 수사대를 집중조명했지요. 장르드라마를 주로 집필하는 김은희 작가의 사회고발적이고 시대적인 문제의식은, 싸인이나 유령을 통해 과감하게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박기영이 자신의 이름으로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는 김우현을 찾아가, 우현의 아들 선우에게 인사를 시키는 장면이 뭉클했던 이유는, 김우현과 박기영이 푸른 제복을 입으며 꾸었던 꿈,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고, 좋은 경찰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김우현과 박기영이 한 지점에서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법의 단죄가 아니라, 조현민에게 이렇게 인간적인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자살은 관용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태어나지도 않는 아들에 대한 사랑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조현민답지 않고, 그가 분류한 0과 1의 시스템 오류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조현민을 자살시키기 위해 왜그렇게 안간힘을 썼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1회에서 유강미가 약국에 들러 신효정이 임신테스터기를 사간 것을 밝혔지요. 분명 신효정이 죽던 그 날밤 임신테스터기를 사갔다고 했는데, 뜬금없이 나온 초음파 사진은 뭔가 싶더랍니다. 초음파 사진을 저장한 날짜도 신효정이 죽은 5월 29일이었죠. 인기 여배우가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진단을 받았을까 싶은 의구심은 둘째치고, 초음파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앞뒤가 맞지 않았죠.
가끔 좋은 드라마였는데도 결말을 위한 무리수를 두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습니다. 왜 법정 구속을 시키는 것을 밋밋한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사필귀정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결말이 훨씬 현실적이고, 나을 때가 많습니다. 조현민의 죽음이 통쾌하지 않았던 것은 사필귀정도 아니고, 밝혀진 진실도 없고, 조현민도 인간이었다는 보여주기에도 어느 하나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령 마지막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간략하게 하루 평균 500여건의 사이버 범죄와 싸우고 있는 1005명의 사이버 수사대에 대한 자막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이버 수사대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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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2.08.10 11:03
우리나라 드라마는 무슨 결말을 내도 욕을 먹는듯.
조현민이 법의 심판을 받아 감방 들어가도 상투적이다 뭐다 욕먹을테고
이렇게 끝내도 시시하다 욕먹고...
비판하시는 분들은 어떤 결말을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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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누리 2012.08.11 02:04 신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이신데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게 공개글로 달아주셔도 좋았을텐데 싶네요.
아쉬운 점은 조현민이라는 캐릭터의 인간적인 부분(?)을 막판에 급하게 더한 느낌입니다.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의 풋풋하고 순수했던 조현민의 모습도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현민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지 싶습니다.
신효정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이해하기에는 조현민이라는 그간의 캐릭터와는 괴리가 있는 듯해요.
차라리 철저하게 냉혈한으로 그려버렸다면 조현민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은 유지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죄책감보다는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택한 선택이었다면 챠라리 이해가 되었을텐데 싶었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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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나 2012.08.10 20:56
조현민이 자살을 택한 건 이해하라면 이해할 수 있는데요. 진범에 대한 처리부분이 아쉽다는건 정말 공감이에요. 그가 죽인 많은 사람들, 백신프로그램에 대한 야욕에 대한 진실이 죄다 묻혀버렸다는건 정말 허탈해요. 20화 동안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범을 잡아야한다' 고 떠든게 다 물거품이 됐잖아요. 그저 진범이 죽었을뿐 사실 다 해결되고 끝난것도 아닌 결말이었어요. 차라리 조현민이 리스트로 권력을 잃기 시작해 점점 코너에 몰리고 이에 그를 비호하던 사람들이 점점 떠나는 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조현민 이름을 절대 대지 않던 대형팀 등도 자기 형량 줄일 목적으로 자백했다면요. 그렇게 진실이 거의 드러날 찰나에 자살했다면?
아님 자살을 예감한 박기영이 손을 쓰던가 해서 자살이 미수에 그쳤다면? 자살 실패로 살아난 조현민이라면 이전과는 많이 다를테니 다시한번 진실을 향해 달릴수 있지 않았을까요. 진실을 밝히는것보단 현실을 보여주는게 작가의 목적이었던 건가.... -
음 2012.08.11 07:15
조현민이 오기를 부리기는 했지만 사실 그는 이미 궁지에 몰린 상태였지요. 정보라는 것이 독점을 하거나 선점을 함으로써 비로서 힘을 가지는 것인데 그것의 독점을 하데스가 방해놓은 셈이니까요. 솔직히 저는 조현민보다는 그 리스트에 있던 부정을 저지른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어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던데 작가도 감당이 안 되었는지 그 부분(결국 처벌을 받았는지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지)이 애매하게 넘어갔었지요. 조현민의 회사가 살인은 아니라도 민간사찰과 상속편법을 쓴 결국 그 나물에게 넘어갔다며 쪼린 감자가 아쉬워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결국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아무튼 그들이 빠져나갔다면, 그리고 아직 조현민에게 협박을 당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비리를 가지고 있다면 조현민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아주 껄끄러운 존재가 되겠지요. 이미 회사에서도 그가 자신의 인망이나 능력으로 회장 자리를 따냈다기보다 협박으로 따내었던 자리이므로 더 이상 협박거리를 잃었을 때 회사도 그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복수는 했는지 모르겠지만 (뭐 그것도 신국장인가 뭐시기도 가담해놓고 빠져나갔지만) 그가 되돌려받고자 했던 아버지의 자리도 물건너갔고, (도로 그 사촌동생것이 될 가망이 커보이고) 아버지 이후로 그나마 그를 사랑해주었던 여자는 자기가 죽인 셈이고.. 멘붕이 올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감옥에 들어간 들 안 들어간들 그가 그동안 협박해온 높은 자리분들이 힘을 잃어버린 그를 곱게 놔둘리는 없지요. 오히려 또 비슷한 일을 저지르거나 저도 당할까봐 경계하고 핍박했겠지요?)
(뭐 전개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아쉬운 부분이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새롭고도 심각한 범죄영역을 드라마로 그 정도라도 잘 다룬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살인까지 저지르며 조현민에게 충성을 다 하던 친구는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동기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요. 그냥 돈때문이었나? 해킹팀도 배후를 밝히지 않았다는데.. 막상 배후가 죽어버렸으니 그들이 다시 떠들 수도 있는데 그 부분도 흐지부지 넘어가고 애초에 김우현 파일은 복사가 안 되어도 출력본은 복사가 될텐데 그것도 홀랑 빼앗긴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야 많았지요.)
그보다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점. 그의 협박이 먹혀들어갈만큼 각계각층이 썩었다는 설정에 그닥 사람들이 반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죠. 저럴 리가 있겠어?가 아니라 뭐 늘 그렇지 뭐.. 라는 식.. 결국 우리나라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러나 저러나.. 아직은 사람들이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인터넷이나 해킹을 이용해서 일부세력이 대중이나 사회를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만 해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는 한 회사였지만 정치에도 이용될 수 있는 것이고 하니까요. (뭐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 없다 말이 많았었구요.)
여러 사람들이 결국 지들이 저질렀던 죄악의 열매를 키워서 잡순 것이긴 한데 그 와중에 애먼, 김우현, 한형사님,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죽은 분(갑자기 지위가 기억이 안 나네요)이 안타깝지요. 정의를 지키려다가 순진한 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고 김우현은 찾아갔는데 나머지분들은 (특히 어린 아이와 미망인도 있던 한형사님 ㅠㅠ) 묘지도 변변히 나오지 않고 그냥 그렇게 끝나버렸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