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온 의원은 물과 기름처럼 드라마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인데도, 궁을 휘젓고 다니는 김희선의 전천후 환경적응능력은 드라마를 살리는 활력소가 되고 있죠. 의선이 되어달라는 공민왕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면서도, 챙길 것은 챙기는 딜을 하는 모습은 의외의 재미였습니다. 납치해 온 것 다 없던 일로 해줄테니, 청자나 그림 몇점 좀 챙겨주면 안되겠냐는 말을 듣는 순간, 맞아! 나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김희선은 철저하게 상대방과의 호흡을 무시하는 연기로 일관합니다. 아직은 극중 인물들은 물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유은수라를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예컨데 공민왕을 부름을 받고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 지모르겠다며, 어디서 본 것은 있었는지, 무도회에서 상대방에게 인사를 하는 귀족아가씨의 흉내를 내기도 하죠. 사극에서 봤다고 큰절을 올렸더라면 장면의 재미를 오히려 살리지 못했을 겁니다.
몸에 배인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결정판은 시시때때로 나오는 손가락질입니다. 하늘에서 온 의원이 아니었다면, 능지처참을 당해도 싼 태도였지요. 개인적으로는 유은수라는 캐릭터를 김희선이 잘 살렸다고 생각되는 소소한 장면들입니다.
유은수가 드디어 고려옷을 하사(ㅎ)받았는데요,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종알종알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는 김희선때문에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속옷만 입고 나와서, "사이즈가 좀 작은 것 아니냐"고 장빈(이필립)을 당황시키기도 하지요. 장빈은 면역이 되었는지, 유은수의 황당무계한 행동이나 말도 그러려니, 도를 닦는지 득도를 했는지, 초연한 척하는 모습도 웃기더라죠. "그거 속옷이에요. 남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옷"에 화들짝!
최영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경악을 하는 유은수였습니다. 칼에 찔린 최영장군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겁한 유은수였지요. 에고고,,, 혹이라도 최영, 그 사이코(아무리 드라마라도 최영을 사이코라고 부르면 안돼용, 은수씨!)가 죽어버리면, 고려 역사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잖아요. 역사를 바꾼 것은 유은수였고 말이죠. 등에 식은 땀이 줄줄 났을 겁니다, 아마도...
김희선과 박세영만큼이나 대조적인 인물이 이민호와 류덕환이 연기하는 최영과 공민왕입니다. 이민호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비실비실 무기력한 최영의 이미지로, 역사에서 배운 최영장군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캐릭터 파괴를 시도합니다.
왕이 치하를 해준다는 말에 궁에 들어와 소년처럼 들떠하는 어린 최영과, 그동안 목숨을 바쳐 왜놈과 싸우고 충성헀던 왕에 대한 실망과 분노하는 최영의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이민호의 연기가 뭉클했지요. 이민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내공이 뛰어난 정예무사답게 분노를 누르는 감정연기가 좋더군요. 그 날 흘린 최영의 눈물은 그가 만사에 의욕을 잃고, 잠에 빠져들어 세상을 잊고 싶어했던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원에서 고려황실로 시집온 공주까지 겁탈한 사건으로 원으로 압송되던 중 암살당한, 공민왕의 친형이기도 하고요. 충혜왕을 원으로 압송시킨 인물은 당시 원에 있었던 기철입니다. 충혜왕의 사후 기철은 고려로 들어와 왕 위에 군림하는 실세가 됩니다.
공민왕이 대전에 모인 신하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러 가는 길에 노국공주와 나눈 짧은 대화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읽게 했지요. 원나라 기황후의 비호를 받는 실질적인 1인자 기철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공민왕에게는 호기가 될 수도 있으나, 왕좌를 빼앗길 수도 있을 위험한 선택이었고, 기철에게 고개를 수그리는 것은 왕좌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치욕과 수모를 감내하고 복종하겠다는 선택이었죠. 어떤 것이 낫겠냐는 물음에 노국공주의 대답은 단호하고 짧았지요. "둘 다 참기 싫습니다".
신하들과의 첫대면, 그리고 고려의 1인자 기철과의 첫만남은 유오성보다 류덕환이라는 배우의 카리스마가 더 압도적이었습니다. 김 안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고 류덕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오만 건방을 떨며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야생마처럼 난동을 부린 유오성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더군요.
첫회부터 류덕환의 연기에 매료되었는데,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적인 힘이 느껴질 수 있는지, 보고도 믿기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류덕환의 연기를 처음 접했던지라, 저런 보물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나 싶었지요. 냉정하게 말해 연기를 떠나 신의에서 대사전달력이 정확한 배우가 류덕환과 김희선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죠. 캐릭터를 가장 빠르게 각인시킨 배우도 김희선과 류덕환입니다.
때문에 초반 신의를 살린 캐릭터는 천방지축 푼수여의사 유은수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죠. 여기에 세기의 로맨스 주인공 공민왕은 신의의 히든카드나 진배없었습니다. 공민왕이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밖이었거든요. 류덕환의 연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설득력있는 연기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더라는 겁니다.
최영의 화상장면을 위해 카메오로 출연한 최민수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지루하게 전개된 애니매이션 무협드라마의 격을 높여주기도 했습니다. 김희선의 엉뚱함과는 차원이 다른 엉뚱한 무공들의 CG보다, 배우의 연기가 드라마를 살리는 기본이라는 것을 최민수의 연기를 통해 확인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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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2012.08.22 14:56
전체 24부작이면 아직까지는 도입부라 그럴것이다라고..위안을 해봐도 전체적인 얼개가 기대했던 것 보다 엉성한 것이 못내 아쉽네요. 갠적으로 여운을 주는 깊이 있는 대사의 송지나 작가를 참 좋아하는 지라, 기꺼이 폐인이 되리라 작정하고 폭풍 감동의 자세로 본방 사수하는데, 몰입의 포인트를 아직까지는 못찾겠어요. 누리님 말씀따나 캐릭터가 일찍 잡힌 두 배우의 힘으로 우짜든둥 흘러는 가는데.. 5부 6부..이런식으로 늘어진다면... 너무 서운할 거 같습니다. 보는 눈이 얕아서, 이 들마의 구멍이 연출인지, 배우인지, 음향인지, 작가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운동화끈을 매다 만 것 같은 요런 흐름은 이제까지의 송지나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은 남자이야기부터 태왕사신기, 오래전의 대망..달팽이 등등.. 천천히 흘러가는 듯 싶어도 긴장감은 언제나 최고조였는데 ... 살짝 나사가 빠진 것 같습니다. 못내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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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로마 ♡ 2012.08.22 15:52 신고
연기자들의 연기를 대본과 연출이 갉아 먹는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ㅎㅎ
3회까진 지루했고, 어젠 조금 볼만 하긴 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다 떼우고 ㅡㅡ;
양념이 한데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 아직까지는 강해요..
그래서 아주 재밌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더 드는게 사실이구요 ^^
여튼..몇몇 연기자들의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 보긴 보는데...
좀 나아 지려나요 ㅎㅎ
여긴 비가 와서 그런지 시원해요.
여름을 비가 앗아간 느낌....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느껴요...
물론, 지금은 흐리고 비가와서 그렇겠지만
이런 느낌 넘 좋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