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9 06:51




국선 문노의 죽음과 함께 시대의 주인이 될 영웅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유신랑이 미실새주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고 볼 수 있겠고, 이번회는 비담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가 초점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여전히 불투명 껍질 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김춘추(유승호)는 몇회 더 지난 후에 껍질을 벗겠지만, 껍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노는 김춘추의 엉뚱한 모습을 보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가 아닌가 싶네요. 김춘추의 엉뚱함에 이유있는 복선을 깔아놓은 것도 후일 김춘추가 알에서 깨고 난 모습을 보는 재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겠지만요.
선덕여왕 37회의 가장 큰 사건은 문노의 죽음이었지요. 그에 앞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김유신의 혼례얘기도 있었지만, 김유신과 덕만공주는 이제 각자의 길을 정한 듯 보입니다. 덕만공주는 정책가로서 군주의 길을, 김유신은 명장으로서 병법가로서의 길을 택했지요. 미실새주와 타협한 김유신이 하종의 여식 영모(티아라 큐리)와의 혼인으로 미실가문의 사람이 되었지만, 덕만공주와 뜻은 같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덕만공주 측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오해와 의심도 예상되지만, 유신랑은 서로의 믿음에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이 김유신의 행보가 덕만공주와 같음을 암시했지요.

선덕여왕 37회의 큰 사건 문노의 죽음은 신라황실과 정치세력 간에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사건이지요. 문노는 정치적 이권이나 정치파벌의 밖에 있었던 인물이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황실, 화랑, 그리고 미실에게도 컸던 인물입니다. 그것은 문노가 앞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바로 문노가 준비해 온 삼국통일에 대한 대업때문이지요. 문노는 그의 한마디가 곧 힘이 되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미실도 문노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문노의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는 선견지명의 혜안때문이었습니다.
문노는 덕만공주를 왕이 될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덕만공주는 문노의 검증선상에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문노가 비담에게 한 유언은 의미가 큰 것이었지요. 덕만공주를 왕으로 인정하는 말을 남겼거든요. 비담에게 한 문노의 유언을 보기전에 문노의 생애 마지막이 돼버린 비담과의 대결장면으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문노와 비담의 검술 대결은 제가 꼽고 싶은 이번회 명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문노와 염종과의 대화를 엿들은 비담은 스승 문노의 뒤를 밟았지요. 그리고 문노에게 무릎을 끓고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으며 많이 노력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문노의 대답은 싸늘함 자체입니다. "그래 네 주제를 잘 아는구나. 넌 노력이 필요해, 아니 이참에 내 너를 더 확실히 가르쳐주마. 그런데 이곳 서라벌에서는 아니고 어디 첩첩산중으로 들어가자꾸나"라면서요. 비담은 지금 야욕으로 불타있는데 스승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가 없지요. 보아하니 황실도 어수선하고 정세도 어지러운데 원래 이런 난세에 영웅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스승 문노는 이 난세의 영웅으로 유신을 점찍고 있으니, 심하게 마음 상한 비담은 십수년간 봐 온 정을 봐서라도 자기에게 영웅으로 가는 길, 즉 삼한지세의 책을 달라고 하지요. 비담 자신에게도 꿈이 있다면서요.
"책의 주인은 왕보다 높고 왕보다 더 오래 지속될 역사의 주인, 삼한역사의 주인이라 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책이 제 것이라 했기에, 또한 스승님께 인정받으려고 그 어린 나이에도 사람들 수십명을 죽이고 그 책을 지켰다"고요. 문노는 그런 비담에게 참으로 모질게 한마디를 해버리지요. "오로지 내 칭찬을 받으려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 너의 진심이었기때문에 줄 수 없어. 미실처럼" 이라고 말이지요. 문노는 어린 비담에게서 야욕을 위한 비정하고 비열한 미실의 성정을 봤던 것이지요. 그리고는 절대로 책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립니다.
비담은 시대의 주인이고 싶은 야심을 놓지 못하지요. 어려서부터 스승이 말한 그 책의 주인이 되겠다는 일념하나로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꿈을 접을 수는 없지요. 그리고 다시 문노의 뒤를 밟습니다. 문노가 드디어 삼한지세를 완성해서 유신에게로 향하고 있었거든요. 비담은 문노의 길을 막고 자신을 베고 가라 합니다. 그 책은 자기 것이라면서요. 에고 그 책이 뭐라고 스승님께 칼을 겨눌까? 다음 글에 김춘추에 대한 글을 올릴 생각인데, 미리 한마디 하자면 비담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책을 종이접기를 해버리는 춘추는 비담과 참 대조적인 인물이에요. 김춘추가 비상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삼한지세 책을 찢어 종이접기를 해버리는 모습이었거든요. 김춘추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말하기로 하고 다시 문노와 비담에게로 화제를 돌리지요.
비담의 책 뺏기는 필사적이에요. 그 책은 자기 것이니 자신 아닌 누구도 그 책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요. 그렇게 주인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담에게 문노가 딱 잘라 말하지요. "네놈은 이 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어"라고요. 그러니 비담 열 받지요. 스승이면 그 자격을 만들어줬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비켜서라는 스승에게 NO NO 고개를 젓고 말아요. 결국 두 사람 타협점이 보이지 않지요. 스승의 검술과 무예를 익히 알고 있을텐데도 겁대가리 상실한 것을 보면 비담에게 비밀 필살기가 있나 봅니다.

죽어도 가지겠다며 칼을 빼든 비담의 날 선 눈앞에 절대로 줄수 없다는 문노도 칼을 빼들고 맙니다. 비록 문노 자신은 잔인한 어린 비담을 보며 마음을 닫아버렸지만 비담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지요. 비담이 덕만공주 일에 가담한다고 했을때 문노가 덤덤히 비담을 보내 준 이유는, 비담이 세상에 나가 무엇인가를 보고 배우게 하고 싶어서 였거든요. 그런데도 비담은 자신의 뜻대로 변화하지 않았고, 문노의 눈에는 비담이 너무 위험해 보였기에 그 싹을 잘라내려 했던 것이지요. 이어지는 박빙의 검술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어요. 청출어람이라 했던가요? 비담이 검술에서 한 수 위를 보이는 순간 문노는 비밀리에 완성하고 있었던 권법을 선보이기 시작했지요. 비담도 문노의 새로운 권법에는 밀리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공격을 하려는 찰나 문노에게 독침이 날아들었지요.
독침을 맞는 문노를 보는 짧은 순간 저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문노는 비담을 보호하려는 듯 비담의 가슴을 치며 비담을 밀쳐냈거든요. 문노는 독침을 맞는 순간 누군가가 암살하려는 것을 알았던 게지요. 자식같았던 비담을 보호하려는 어버지의 모습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왜 비담에게 자신의 비법을 보였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문노는 풍월재 비재에서 비담의 무술이 어쩌면 자신의 수준을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본 것 같았어요. 비담이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눌때 그 이글거리는 눈빛의 의미를 이미 알았지요. 이 싸움으로 자신의 명이 다했다는 것을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문노가 마지막 가는 길에 비담에게 정식으로 가르쳐주지 않았던 비법을 전수하고자 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습니다.

독침을 맞고 쓰러진 문노는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맙니다. 죽어가는 스승을 지켜보는 제자 비담, 그 장면은 선덕여왕 또 하나의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문노는 죽음 앞에서야 비담을 보았지요. 비담에게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요. 너무 늦은 제자 비담의 모습이었지만 문노는 아마 죽으면서도 행복했을 거라는 감상적인 생각도 해봤어요. 비담의 피속에 흐르는 미실의  잔인한 성정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죽음 앞에 그 야욕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있었음을 문노는 그제서야 보았지요. 책이 아니라 자신을 업고 뛰었던 비담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독살사건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담을 쓰다듬어 주며 스승으로서 부족했고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너의 성정을 배려하고 고쳐줄 생각을 못했구나. 넣어주려고만 했지... 미안하구나. 마지막에야 네 마음을 보았는데 너무 늦었구나... 허나 고맙구나" 라면서요. 저는 이 대목에서 문노는 대업을 위한 명분과 개인적인 일에서 할일을 다했구나, 그래서 문노의 마지막 가는 길이 행복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한지세가 누구 손에 들어갔든지 그는 책을 완성을 했고, 문노가 개인적으로는 그토록 바라던 비담의 변화 또한 지켜보고 갔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문노는 비담에게 한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저는 이 문노의 마지막 유언이 앞으로 비담의 행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노의 유언은 비담에게 서라벌에 돌아가 화랑이 되어 유신을 따르고 덕만공주를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담이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말을 하고 숨을 거둡니다. "누가 뭐라해도 넌 내 제자이니라" 스승 문노의 주검을 안고 우는 비담의 굵은 눈물은 예전 제가 올렸던 <두번 버림받았던 비담의 오열>에서 보여주었던 눈물과는 달랐어요. 문노는 비담에게는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요즘 말로 롤모델이었고, 비담에게 살아갈 인생의 목적과 꿈을 심어준 사람이었지요. 집이었고 하늘이었던 스승 문노의 죽음을 지켜 본 비담은 어미를 읽은 사자의 울음과도 같았고, 회한이 가득한 불효자의 눈물과도 같았어요. 비담은 한번도 스승 문노에게서 제자로 인정받지 못했지요. 풍월재 선발 비재에서 문노의 제자 자격으로 참가한 것은 우격다짐식의 상황이었어요. 이후에 비담은 수차례 문노에 자신이 제자냐고 물었지만 문노는 한번도 제자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스승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던 비담에게 문노는 마지막 죽음 앞에서 비담을 제자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비담은 통곡하였지요.
앞서 문노의 유언이 앞으로 비담의 행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사실 비담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테리에요. 스승의 주검을 안고 우는 비담의 통곡은 가벼이 넘길 수는 없는 장면이었어요. 스승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리고 자신을 제자로 인정해 주는 자신의 소원과도 같았던 그말을 듣고 비담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는 두고 볼일이겠지만, 문노를 죽게 한 배후가 김춘추였다는 다음회 예고는 갈피를 잡기 어렵게 하거든요.
문노의 유언, 즉 김유신을 따르고 덕만공주를 도우라는 말은 결국은 문노의 평생 대업 삼한일통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라는 스승의 유언에 대한 비담의 선택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닭도령 비담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 중의 하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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