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0 13:52




이음새가 거칩니다. 투박하기 까지 한 상황의 연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에게 시선이 꽂히는 순간 잊게 합니다. 강마루, 이 남자의 치명적인 매력은 까칠하고, 도도하고, 오직 태산그룹을 지켜야 한다는 것밖에 모르는 생명없는 바비인형마저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

10억 갈취협박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간 강마루, 증거부족으로 나왔다는 설명도 없이 그는 모터싸이클을 타죠. 여기서 시간의 간극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강마루가 오프로드 모터싸이클을 타는지가 중요할 뿐이죠. 태산그룹 후계자 1순위 서은기의 유일한 여가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싶어졌다, 한재희 그 여자가 사는 세상에 대해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사모님께서 사는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이기에 멀쩡한 사람을 굽신거리게 하고, 주눅들게 하고, 이성을 잃게 하고,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하는 겁니까?".

경찰서에서 마루의 질문에 한재희는 답했다.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눈부시고, 꿈을 꾸는 듯 화려하고, 숨이 막히게 근사한지? 내가 설명하면 상상조차 할 수 있겠어요, 당신같은 사람이?".

그래서 궁금해졌다. 가보고 싶어졌다.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겠다면 직접 올라가는 수밖에... 사다리가 필요하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사다리. 서은기 그녀라면 내 사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관심, 그 치명적인 덫

 

숨이 막힌다.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달걀을 던지고 침을 뺕었다. 하나를 주면 둘을 내놓으라 하고, 둘을 주면 열을 내놓으라는 양심없는 사람들, 그러고도 그들은 태산의 가족이라고 한다.

숨을 곳이 없다. 소리 지를 곳이 없다. 아버지는 소리내 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니 울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몰래 우는 법을 혼자서 배웠다. 그리고 몰래 웃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동안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핼맷 속에서 울고 웃고, 그런 나를 들키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가르쳐 준 사람, 그 사람은 세상에서 처음보는 세계 속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버린 배다른 동생을 20년을 키웠다는 남자, 순간 이 사람이 내 오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나를 버리고 혼자 떠났다. 숨도 쉴 수 없는 태산,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해 보라고...

지기 싫다고 엄마가 내미는 손을 거절한 것은 나, 서은기였지만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엄마는 바비인형 하나 달랑 손에 쥐어주고 가버렸다. 인형처럼 예쁜 옷입고, 예쁜 신 신고, 나만 위해주는 착한 남자 만나서 살길 바랐다는, 말같지도 않은 말을 변명처럼 남기고 가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죽어버렸다. 함께 떠날 수도 없이 선택의 기회조차 다시 주지 않고... 바비인형 하나만 달랑 남겨두고.  

오토바이와 추락하고 나뭇가지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고 있던 내게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벼랑에 매달려 바비인형과 함께 떨어져 버렸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처음보는 사람을 구해주고, 인형을 가지러 목숨을 내 건 사람,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내겐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 

"니네 부모는 그렇게 가르치니? 고맙거나 미안한 일 생기면 더 화내고 성질부리고 덤탱이 씌우라고? 고마울 때는 고맙다고 말하는 거야.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고". 나 서은기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많이 아파보였다. 늑골에 금이가 붕대를 칭칭감고도 동생을 데리러 달려간다. 아버지가 같다는 이유로... 내게도 그런 동생이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지... 난 그 아이가 싫다. 그 어머니는 더 싫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엄마를 내쫓고 죽게 만든 여자, 그 속에 감춰진 야욕을 나는 혐오한다. 내가 또래의 평범한 여자가 되기를 포기하게 만든 그 모든 것을 그 여자가 가지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주고 그깟 인형때문에 목숨을 거는 남자, 나만 위해주는 착한 남자, 엄마가 말했던 그런 착한 남자가 이런 사람일까? 이 남자를 알고 싶어졌다. 계속 만나고 싶어졌다. 궁금해졌다, 엄마가 말하는 착한 남자가 세상이 존재하는지...

 

강마루, 이 남자의 치명적인 매력은 계산일까? 진심일까? 그 무엇이든...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강마루가 언제 계획했는지 말이죠.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 비행기에서의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헝클어져 버린 느낌입니다. 작가가 사건들을 나열해 가는 방식이 너무 빨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매회 시계가 등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체감시간을 위해서 말이죠. 

경찰서에서 나온 강마루가 한재희의 세상이 궁금하다고 했죠.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그는 모터사이클의 귀재가 되어 산악싸이클을 즐깁니다. 언제 배웠는지는 과감히 생략돼죠. 대신 서은기에 대한 뒷조사만 간략하게 나올 뿐입니다. 즉 의도적인 접근이었다는 것이었죠.

벼랑으로 추락해 늑골에 금이 간 강마루는 한 이틀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아 보이는데도 퇴원을 해버리죠. 가벼운 타박상이었다고 해도 몸을 움직이기가 상당히 불편했을텐데, 장거리 운전으로 강원도의 한 항구도시까지 미친듯이 질주합니다. 그 뿐이 아니었지요. 초코의 생모인 조은숙의 남편을 두들겨 패기도 하더군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급하다 보니 개연성은 조금 생략하고 가자는 의도겠지요.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요, 강마루에게 왜 서은기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서은기의 오토바이 사고는 강마루의 계산된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오토바이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듯 보이던데, 그것이 강마루가 했는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한재희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고, 한때는 의사를 꿈꿨던 인물이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한 것 같지는 않지만, 서은기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필요했을 못된 짓이었음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듯 합니다. 그만큼 강마루라는 인물의 복수심이 크다는 것일테고 말이죠. 

강마루의 접근방식은 철저한 무관심과 무시였습니다. 바텐더라는 공식 직업은 있지만, 강마루는 제비이기도 하죠. 즉 여자들의 심리에 도통해 있다는 것입니다. 재길(이광수)이 당한 꽃뱀에게서 돈을 돌려받을 정도로 여자를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강마루가 서은기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은 철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명품시계를 답례로 보내도 거절해 버리고, 빚지고는 못산다는 서은기에게 그 빚을 바로 탕감해주겠다고 얼굴을 바짝 들이대기도 합니다. 아무리 심장에 촘촘히 철심을 박았다고 해도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다가오면, 덜컹하겠다 싶더랍니다. 이 장면에서 도둑 키스 한 번으로 빚 탕감하겠다는 말이 나올 법했는데, 예상 외의 행동에 더 덜컹거리더군요. "퉁!"이라니, 이경희 작가의 놀라운 센스! 

생명의 은인인데, 큰 것을 바라도 다 들어주고도 남을 태산그룹 이사 서은기는 적잖이 당황스럽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말이죠.

서은기, 그녀는 비행기에서 응급처치를 해 준 의대 자퇴생에게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한재희와 짜고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몰아가기도 했었지요. 갈취협박 혐의로 마루를 경찰에 신고한 인물도 서은기였습니다. 물론 마루가 아닌 한재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요.

그런데 일이 어떻게 되었든 생명의 은인이었는데도, 서은기는 강마루에 대한 관심이 없더군요. 강마루가 두 번이나 생명을 구했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한 필연적인 운명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은기가 강마루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바비인형을 돌려받고서 였지요. 판자촌을 직접 찾아갈 정도였으니 말이죠. 강마루가 건드린 것은 서은기의 상처였습니다. 엄마에 대한 상처였죠. 마루가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고 로프를 타고 내려간 것은 절망스럽게 울부짖는 서은기의 '엄마' 라는 말때문이었지요.

 

그리고 서은기는 자기의 상처보다 더 절망적이고 깊은 한 남자의 상처를 목도합니다. 배다른 동생, 아픈 여동생을 20년을 책임지며, 등골빠지게 동생 병원비를 벌어왔다는 것에 놀랍니다. 저런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친엄마도 버리는 이복동생을 데리고 오는 강마루, 처음으로 서은기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끝까지 책임져주는 오빠, 동생을 위해서 무슨 험한 고생도 감수하겠다는 착한 남자였습니다. 엄마가 말했던 너만을 위해주는 착한 남자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은수였습니다. 늘 신경이 곤두서있는 은수는 처음으로 남의 차에서 잠이 들죠. 

 

한재희가 안변호사에게 강마루에 대해 이렇게 말했지요. "등불을 켜두고 자기를 기다려주는 집이었다"고 말이죠. "아랫목에 따뜻하게 불을 지펴놓고, 세상의 모든 험하고 무서운 것으로부터 한재희를 지켜주는 집, 세상에 유일한 내 편".

 

은기가 느꼈던 것은 한재희가 말했던 그 집의 편안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서은기에게 집이란 아버지 서회장의 눈밖에 나면 안되는 곳이었지요. 자신은 서회장의 태산그룹을 지키는 훈련된 인형과도 같은 존재였고요.

그런데 강마루에게서는 집냄새가 납니다. 따뜻하고 편하고 안전한 곳, 세상 위험으로부터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는 안식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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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1
  1. 사자비 2012.09.20 16: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남자인 저는 남자배우 그닥 관심이 없는데요. 그나마 근 2~3년내에는 김남길하고 송중기 이 두 배우만 눈에 좀 들어 옵니다. 아참 최근엔 서인국이 있군요. 특히 송중기는 앞날이 무척 기대됩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할 배우로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