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 06:56




선덕여왕을 보는 즐거움 하나는 드라마 곳곳에 시청자들에게 숙제를 내준다는 점인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흔히 깔아두는 복선이라는 장치가 시청자들에게는 풀어보고 싶은 궁금점을 유발하거든요. 미스테리같기도 하고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비밀창고 같기도 하고...저에게는 선덕여왕 38회 비담과 염종의 장면이 특히 비밀스럽더라구요. 스승 문노를 독살하고 삼한지세를 빼앗아 간 염종을 비담은 왜 죽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가지 의구심이 드는 거에요. 죽이지 않은 걸까? 죽이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비담과 염종의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글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결국은 저의 수다병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쓰게 되었네요. 아마 38회에 문노의 죽음과 비담의 감정선이 매끄럽지 못하고, 어디선가 뭉뚱 잘려버린 듯한 느낌때문이었을 거에요. 비담을 화랑으로 인정해 달라는 문노의 서신에 대한 진위의 언급도 없이 문노의 필체가 맞다는 칠숙의 말로만 넘겨버리기는 것 역시 뭔가 석연치 않았거든요.
문노가 비담에게 남긴 편지는 글쎄, 선덕여왕에서 또 하나 비담에 대한 비밀장치로 쓰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그 편지가 거론되지 않는다면 아마 문노가 써 두었던 편지였을 거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문노는 이미 비담이 자신을 따라 삼천리 금수강산을 떠돌아 다니며, 약초나 캐고 다니지는 않을거라 생각했거든요. 문노는 유신랑에게 완성한 삼한지세를 맡기고는 떠날 생각이 분명했지요. 그런데 비담은 안가겠다고 하니 문노로서도 비담의 앞길을 걱정했겠지요. 아무 연고도 없는 비담을 서라벌에 두고 가려면 비담에게 신분증 하나는 만들어 주고 싶었겠지요. 비담도 비빌 언덕은 있어야 했으니까요.
이제와서 미실에게 "네 아들이니 키워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마지막까지 비담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비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 셈치고, 공개적으로 신분증을 만들어 주고자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엄청난 비밀 하나를 주고 갔을 수도 있겠지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비담은 왜 염종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혹시 죽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고구려와 백제, 수나라에 심어둔 정보력을 주겠다, 우리 새로 춘추를 왕으로 만들고 공신으로 출세해서 떵떵거리며 살아보자" 라고 제의했기 때문에 염종을 살려 준 것은 아니었어요. 그 전에 비담은 염종을 죽일 생각을 접어버립니다.
문노의 죽음 이후 염종을 찾아간 비담은 염종의 비서들을 다 죽이고,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돌아다닐 정도로 눈이 팽글 돌아있었는데, 여유자적 종이접기나 하고 있는 춘추를 보고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풀렸을 리는 없지요. 춘추를 이불에 돌돌 말아 몽동이 찜질을 한 후 염종을 끌고 나온 비담이 한 첫마디는 "책은 회수했고, 너만 죽이면 마무리된다"는 말이었어요. 비담 눈에 살기가 천리까지 퍼지는데도 염종은 능청스럽게 "이런 법이 어디있냐며 우린 공범이잖아" 하는데 그 순간 비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라고요.
이때 비담에게는 두가지 감정이 교차했을 겁니다. 스승에게 칼을 들이 댄 죄책감과 부정할 수 없는 스승의 죽음이었겠지요. 부르르 치를 떨며 다시 칼을 겨누자 염종이 한마디 더하지요. "나 죽이고 너도 자결하세요. 너도 나랑 같이 문노 죽였잖아요"  이 말에 비담은 칼 대신 발로 염종을 지근지근 밟아주는데 끝내 칼로 치지는 않았지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선덕여왕은 인간적인 범주에서 이탈하지 않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다시 했어요. 어제 인터넷 기사를 보다 보니 비담의 자결장면이 있었는데 편집이 되어버렸다는 걸 읽었어요. 문노가 끝내 책을 주지 않자 낙담한 비담이 풀밭에 앉아 있다가 날아가는 꿩을 돌멩이로 차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후에 나무가지로 자결하려는 장면을 찍었는데 편집이 돼버렸다더군요. 왜 편집했을까?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후 염종을 죽이지 못하는 비담의 감정선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승에게서 끝내 선택받지 못한 비담이 자결하려는 장면을 내보냈다면, 비담의 성격으로 보아 염종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을 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비담은 염종을 죽이지 않은게 아니라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지요. 염종을 죽이면 자신도 죽어야 하니까요. 비담의 죄의식이 복수심보다 컸던 것이지요. 비정한 야심가 비담에게 인간적인 성정을 깔아 두려는 이유로 비담의 자결장면을 편집했나 싶더라구요. 책 대신 스승을 업고 뛴 비담의 마음과도 연결을 지어야 했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과연 비담이 스승 문노를 죽이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아요. 저는 비담이 문노를 죽이려고 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사람 중 하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대결이었지만, 비담이나 문노나 서로 목숨까지 취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치명상을 입히거나 흔히 무림에서 말하는 무공을 폐하는 정도에서 승부를 가리는 방법을 택했을 겁니다. 비담이 문노를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염종에게 눈이 뒤집히지는 않았을테지요. 삼한지세 책에 대한 비밀때문에 염종을 죽일 수는 있었겠지만, 문노에 대한 복수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따라서 비담이 염종을 죽이려고 한 것은 책에 대한 비밀보다는 스승을 죽인 복수심에서 출발했다고 봐요. 하지만 칼을 거두고 만것은 복수보다는 공범이라는 죄책감의 크기가 더 컸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염종이 "너도 공범이잖아" 했을 때 비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표정 역시 복잡했지요. 그 때의 비담의 속마음은 아마 이랬지 않나 싶어요. "니가 내 속을 어찌 알아, 난 스승님을 죽이려고 까지는 하지않았어... 그래, 나도 공범 맞네... 결국은 스승님을 죽게 만들었으니까..."  버선목 뒤집듯 까보이지도 못하는 억울함, 염종에 대한 분노, 그리고 죄책감이 혼합된 듯한 비담의 표정은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이었어요.
그 이후에 염종에게 너를 살려줄 이유 세 가지만 말하라고 했던 것은 염종의 목슴을 두고 거래하는 질문은 아니었어요. 그 전에 거처에서 끌려나오면서 책의 주인이 유신이 아니라 춘추라고 생각한다는 염종의 말을 상기했겠지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서도 광기마저 보이는 염종이 궁금했기도 했을 거고요. 염종이 가진 정보와 미실이 춘추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수적인 획득이었지만 말입니다. 결국 염종의 얼굴에 흉한 자상만 남기고 만 비담은 염종을 자신의 똘마니임을 확인시키며 한마디 하지요. "우리가 만들 다음 왕은 그 애가 아니야"라고요.
드라마 선덕여왕은 문노의 죽음을 통해 비담에게 아킬레스건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승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문노의 유언은 비담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비담은 다음에 만들 왕이 춘추가 아니라고 했고, 이제는 덕만공주와 자신 중에 시대의 주인을 선택할 기로에 서있는 것이겠지요. 미실이 춘추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담에게는 흥미로운 사실이에요. 드라마에서 춘추의 훈육스승으로 비담과 춘추를 엮은 것은 미실과 비담의 대립을 위한 구도라고 보여집니다. 비담은 미실과 덕만공주 사이에서 고독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춘추의 방패막이인 셈이지요. 비담이 미실편에 서지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암시이기도 하고요. 여담이지만 춘추가 비담에게 왜 반말하느냐고 했지요? 삼촌이니까요. 계보를 따져보면 할머니는 다르지만 비담은 춘추의 삼촌이잖아요. 비담만이 알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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