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2 07:53




추석인데 이번 명절은 유난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정말 그리운 분이 있어 제 마음을 적어봅니다. 마음 한구석 꼭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는데, 아마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게 슬퍼서 일거에요. 저는 종가집의 맏며느리에요.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 늘 부끄럽지만 종가집의 맏며느리라는 위치는 제게는 책임감도 있지만, 벼슬을 부여받은 듯한 으쓱함도 있어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저희 시아버님 영향이 큽니다. 저희 시아버님은 늘 제게 책임감과 의무감 보다는 대우를 먼저 해주셨거든요. 제가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안돼서 아버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에미야. 너는 우리 집안의 대들보다. 네 엄니가 돌아가시면 너는 이집안의 대장인 거야, 그러니 항상 대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라"는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시동생의 결혼식 전날, 아버님이 저와 시동생을 불러앉히고 해주시던 말씀도 기억납니다. "ㅇㅇ야. 이제 너도 한 가정을 이루고 어른이 되겠지만 항상 우리집의 어른이 너희 형수임을 잊지말아라. 형수는 어머니와 동격인 사람이다. 그러니 어려운 일 있으면 형수와 의논하고 상의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감동했는지, 평상시에도 존경했지만 아버님은 그렇게 크신 어른이셨어요. 그런데 시동생이 결혼하던 그해 7월에 병을 얻으셨습니다. 뇌졸중으로 좌측마비가 왔어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님은 일곱살 아이수준의 지적능력과 말씀도 어눌해지시고, 보행하시는데도 지장이 많으셨지요. 언어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져 예, 아니오 정도의 가벼운 말씀 밖에는 하실 수 없는 상태에 이르셨어요. 10년을 그렇게 한쪽 감각을 잃은 상태로 사시다가 작년에 다시 재발이 되서 중환자실과 일반병동을 왔다갔다 하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습니다. 호흡곤란으로 목에 호스까지 뚫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했지만 병을 이겨내시지 못했어요.

아버님은 제게는 너무나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외국에 나와 있어서 명절마다 찾아뵙기는 힘들었지만 전화로나마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는데, 올 추석은 어눌하신 목소리라도 들을 수 없으니 마음이 허전하고 슬퍼지네요. 추석이 다가오니 또 다시 그리운 얼굴 아버님. 나의 시아버지. 지금은 불러도 대답을 하실 수 없는 곳에 계심에 허전하고 그리운 마음이 더 커져갑니다.
이번 추석부터는 아버님 위패를 모시겠지요. 언제나 든든한 저의 후원자셨던 아버님을 보내고, 아직도 그 빈자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자책과 그리움에 이따금 빈 하늘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언제나 아버님을 생각하면 얼굴 가득한 미소, 병중이시라 모습이 애매한 미소셨지만, 제게는 늘 건강하셨을때의 미소와 오버랩되어 그저 환한 미소로만 여겨지는, 그 순박하고 저를 향한 100%아니 1000%의 사랑을 담은 그 미소가 먼저 떠오릅니다.
돌아가시기전 중환자실 계셨을때 한국에 가보지 못해 앙상하셨다는 그 모습을 전 뵙지를 못했습니다. 어머님도 우리에게 그 모습 기억시켜주고 싶지 않아서 애들과 저를 한국에 못들어오게 하셨다 합니다. 말씀이라도 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사람이라도 알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종손자, 종손녀, 종부로서 당연히 갔어야 했는데, 병원에 갔을때는 이미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어머님도 다른 가족들도 남편도 한사코 기다리라는 말만 하더니... 

너무나 가슴 아프고 죄송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 못된 마음이겠지요? 사실 저는 그 때문에 아버님을 그 미소와 함께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 앙상한 모습을 뵙지못한 회한도 있지만요... 아버님의 임종 소식을 듣고 14시간의 비행시간, 그리고 화장터까지 달려가기까지 제겐 너무도 길게 느껴졌던 그 시간, 아버님은 그것마저도 기다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도착하기 20분전에 이미 뜨거운 불길로 들어가 한줌 재로밖에 제겐 볼 기회를 주시지 않았지요. 그렇게 서둘러 달려갔건만..
가슴 찢어질 듯한 저의 슬픔마저도, 제가 힘들까봐, 힘들어할까봐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한없이 부족한 저를 종가집 맏며느리라고 늘 예우해주시고, 대우해주시던 아버님. 너무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고 믿어주신분. 가시면서도 제슬픔까지 걱정하시고 가셨나 싶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장례식에 가서 전 통곡마저도 너무 죄스러워 못했어요. 부음을 듣고 전화기를 붙들고, 그 이후로 또 얼마나 기진맥진되도록 울었던지, 막상 한국에 가서는 통곡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가족을 향한 슬픔이 더 컸어요. 특히 우리 시어머니..그분을 위해..홀로 남은 어머니의 허전함과 망부의 고통을 향한..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저의 죄책감도 함께 실어서..

종가집의 맏며느리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국 머나먼 타국에서 살아가는 참으로 모자라고 모자란 종부로서의 멍에가 저를 옥죄어 와서 명절은 제게 참으로 슬픈 날이네요. 저의 많은 부족함을 다 이해해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늘 감사한 마음과 죄책감이 들어서요. 이제 고인이 되신 나의 시아버지, 아버님께 한 줄 글 올린다고 다 못한 도리가 덮어지지 않겠지만,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에 기어이 제마음을 써보고 말았습니다. 
가끔 전화드리면 항상 괜찮다고 "괜찮아 괜찮아" 하시던 그 음성, 생각납니다. 아버님, 괜찮은거지요? 지금은 더 괜찮은 거지요? 하늘나라에서는 예전 건강하신 모습으로 정말 괜찮은 거지요? 생전에 법없이도 사신다는 말씀 늘 주위에서 들으셨으니 아버님 편한 곳에 계시리라 믿고 기도드립니다.
이번 추석은 아버님이 정말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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