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9. 13:10




서은기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것처럼 좋습니다. 마치 가슴에 커다란 풍선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살랑살랑 거리는 원피스도 입고 싶고, 예쁘게 화장도 하고 싶습니다. 서은기, 처음으로 공주가 된 것같습니다. 바비인형처럼...

 

난요, 사랑을 안믿었어요. 죽도록 사랑했던 그 사람은 마약을 숨겨달라고 이용만 하고 다른 여자랑 결혼해 버렸어요.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사랑한 잘못밖에는 없는데...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태산그룹 후계자 서은기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죠.  

그 남자는 가난합니다. 처음보는 가난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만 들었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 사람 집을 처음 찾아갔던 날, 그 계단이 어찌나 힘들고 짜증나게 많던지요. 다리도 아프고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끔찍스럽다는 생각만 들었죠.

그래도 참고 올라갔던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어요. 비탈에 매달려 간신히 나무가지 하나에 의지해 있는 내게 손을 뻗쳐 구해주고, 엄마가 남겨준 인형을 가지러 목숨을 걸고 내려간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아버렸죠. 배다른 동생, 가난, 옹골찰 정도로 지독한 자존심, 그리고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밀어냄, 감히 나 서은기를 밀어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태산그룹의 비공식 후계자를 그렇게 까칠하고 도도하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밀어내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나는 서은기니까.

그리고 알았죠. 그 사람이 나랑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말이죠. 그 사람은요, 나처럼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처럼 상처를 온몸으로 독기로 뿜어내지 못합니다. 스폰지같아요. 독을 다 빨아녹이는 스폰지.

 

전화 한 통화에 일본으로 날아와 준 사람, 아오모리 리조트를 지켜준 사람, 그 사람은 엄마를 지켜줬습니다. 아버지도 지켜주지 않은 엄마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사람이 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나 봅니다. 전화도 받지않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올 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거리축제에 한 눈을 판 사이 그 사람의 손을 놓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이 안보입니다.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그 사람을 찾아 헤맸습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겁이 나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서은기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세상사람들이 미쳤다고 웃어도, 난 말할 수 있습니다. 강마루,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아버지한테 쫓겨나고, 생각나는 사람은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높다랗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계단, 그렇게 짜증나고 힘이 들던 그 계단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숨도 가쁘지 않고 그 사람의 발자국이 닿았을 것만 같아서, 그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걷고 있는 것같아서, 그냥 웃음만 나옵니다. 그 사람에게 가는 길이 너무 좋습니다. 날아갈 것 같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 사람이 내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종일 내 머릿속을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이 사람이 되어 내 눈앞에 잠들어 있습니다.  

아침햇살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집니다. 햇살이 이 사람의 얼굴에 닿는 것도 질투가 납니다.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정말 미친 것같아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그 사람이 눈을 떴습니다.

굿모닝! 서은기는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서은기 똥밟았다. 강마루라는 놈한테...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해서 나한테서 도망가. 기회는 딱 한 번이야".

 

아뇨, 있는 힘껏 강마루 당신에게 달려갈 겁니다. 그리고 꿈이라면 영영 깨고 싶지않습니다. 내 대답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설사 내가 똥을 밟았다고 해도 달려갈 겁니다.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나 서은기가...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설사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난 믿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착한남자니까, 나 서은기에게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착한남자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꿈이라고 흔들어댑니다. 한재희, 왜 이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은 거지? 어머니도 아버지도 빼앗아 버린 여자, 왜? 왜? 강마루 그 사람과...

누가 말좀해줘요. 악몽을 꾸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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