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4 15:16




"거기 있어요?".

죽어가는 당신을 그렇게 남겨두고 서둘러 하늘문으로 돌아왔지만, 내 간절한 기도가 부족했는지 내가 간 곳은 100년 전의 고려였어요. 당신이 살아있을 거라는 것을 나는 믿어요, '당신 나랑 약속했잖아. 나 꼭 지켜준다고, 나랑 평생 함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죽으면 안돼요. 당신 맘대로 죽기만 해봐 가만 안둘거야...'.

내가 찌른 칼에 피흘리며 당신이 쓰러졌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죠. 당신은 살았고, 그러니 지금도 살아있을 거라 믿어요. 당신은 그렇게 죽으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역사 속의 최영장군, 그런 이유때문이 아니에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날 위해서라도 꼭 살아 있어줘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당신에게 돌아갔을 때, 당신 살아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약속해줘요. 

 

과거가 돼있을 나에게 편지를 쓴다. 과거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이 간절함이 내게 전해지도록...

"은수에게...

간절함은 인연을 만들고 기억만이 그 순간을 이루게 한대...".

 

마지막 편지를 은수 너는 보지 못하고 왔지만, 그리 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의 너와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쓰러진 곳에 아스피린 병을 묻어두었어. 내가 좋아하는 국화꽃 씨앗을 담아서...

노란 소국이 피어나면 당신, 날 기억해줘요. 당신과 나의 약속을...

기다려줘요. 은수가 당신을 찾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제발 살아서, 꼭 살아서 기다려줘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정직한 눈빛, 날 바라봐주던 따스한 눈빛, 따뜻한 가슴, 당신 손, 당신 목소리, 당신의 모든 것이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하루가 되더라도 당신 품에서 살고 싶고, 당신 품에 안겨 잠들고 싶고, 당신 품에서 죽고 싶은 나의 대장, 당신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당신 거기 있어요?".

 

4년전....

 

강남,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그 강남, 대한민국 상류층의 밀집지역, 소비중심지, 외모지상주의의 메카로 대변되고 있었다. 성형외과 의사, 남들이 보기엔 화려한 스펙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겨우 취직해 아파트 대출금 갚아나가는 나는, 강남이라는 외형적 화려함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언젠가는 강남 한복판에 내 이름을 건 성형외과 간판을 걸겠다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돈이 고프다. 모든 것이 돈이 있어야 되는 것이기에... 돈많고 잘생긴 훈남, 내 든든한 물주가 나타나지 않을까 점집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복채만 날리기 수십만원, 차라리 그것으로 명품 가방이나 하나 살 걸 후회하면서도 나는 가끔 점집을 기웃거린다. 내 운명의 남자, 이왕이면 돈많은 남자가 언제 나타나는지 알고 싶어서...

남자가 급한지 돈이 급한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네 인생이 앞으로 탄탄대로라고 말해주면 기분이라도 업되고 좋지않던가! 나를 속물이라고 욕해도 상관없다. 내가 잘되고 봐야지 남들 이목이 무슨 상관이 있어! 돈이 장땡이야!!  

예쁘고 젊고 싶다는 사람들의 허영(글쎄 이렇게 말하면 성형외과의사 자격미달이겠지만, 내 속 마음을 누가 알겠어?)과 외모의 불만을 해소시켜 주는 것도 일종의 심리치료라고 생각한다. 예뻐지고 젊어보여서 환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것도 의사의 큰 역할이 아니겠는가.

물론 사고로 흉측한 외상흉터를 가진 환자를 만난 경우에는 더할 수 없는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평생 따라다닐 상처를 치료해 준 듯해서 나름 기분이 좋아지는 케이스이다. 이런 환자들보다는 쌍수, 코, 양악수술, 보톡스, 필러, 주름살 제거 시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외모도 전략이고 무기인 시대다.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젠테이션, 얼마나 준비를 해왔던 PT였는데, 어떤 사이코 똘아이같은 놈때문에 다 망쳐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때문에 꼬이냐고!!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진정시키고 나갔는데, 또 그 남자가 나타났다, 이상한 무사복장을 하고 긴 칼을 찬, 얼굴은 완벽해서 손 볼 곳이 하나도 없는 남자다. 성형외과 의사로 판단하자면 전혀 돈 안되는 사람. 

그때까지 알지못했다, 전혀 돈도 되지 않을 완벽한 미모의 그 남자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것이 그 사람이었음을... 그 사람은 강남 된장녀 나를 그렇게 바꿔놓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면서,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왜 유은수라는 인물을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로 설정했는지 예전 리뷰글에서는 정리를 미쳐하지 못하고 간 부분이라 이런 식으로 풀어봤습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경험한 일들은 아무리 살아봐도,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이다.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의 남자, 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고, 문을 열어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돌팔이 점쟁이의 말은 내게 현실이 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돌팔이 점쟁이는 나를 위해 그곳에 있어 준 사람같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다시 그곳을 찾아가면 아무도 그곳에 점집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날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 같다. 그렇게 나는 낯선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내 목숨을 내맡긴채....

 

그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낯선 곳에서 나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뭐라고 했는지 너무 놀라서 기억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이름을 들은 것도 같았는데(나중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까무라칠 뻔했다), '환자가 있다. 돌려보내 주겠다'는 말만 대충 들었다. 안가겠다고 바둥대는 나를 피가 묻은 갑옷 어깨에 들쳐매고 그 사람은 나를 회오리문 앞으로 데려갔다. 힘이 장사라 바둥거려도 소용없었고, 잔인하게 칼을 휘두르는 그 사람이 무서워 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악몽을 꾸고 있다고, 아니 꿈이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낯선 풍경, 그 사람과 비슷한 옷을 입은 사내들... 끌려간 곳에는 이상한 복장을 한 여인이 목에 칼을 맞고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고, 그 때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영화촬영중에 부상자가 생겨 외부에 새나가지 않게 일을 처리해 줄 의사가 필요했었나 보다.  그런데 젠장 영화촬영도 아니란다. 119를 부르라고 해도 도통 뭔소린지 멍해있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환자의 상태를 보니 금방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해 보였다. 그 와중에도 환자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 직업이 성형외과 의사이다 보니 환자를 보면 견적부터 내보는게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키크고 잘생긴 그 사람(사이코 똘아이같았던)이 다행히 수술도구를 챙겨와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그 사람이 수술도구와 약품들을 챙겨오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하늘 세상, 내 세상으로 아무일없이 돌아갔을까? 그리고 악몽을 꾸었던 것처럼 아무 일없이 그 전처럼 살아갔을까? 아님, 환자를 살려내지 못했다고 죽여버렸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아찔해 온다. 눈썰미 좋은 그 사람 덕에 내가 살아난 것인지, 아니면...아니면,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는지...

 

혈관을 이어붙이기는 했는데, 병원도 아니고 내 책임을 아니라고 강조, 또 강조하면서 그 거지같은 곳을 탈출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보호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예를 취하는 것을 보니, 이 산적도굴의 우두머리가 그 사람인 듯 했지만, 그 사람도 말이 안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이것은 꿈이 분명하다...가 아니었다. 여전히 내 악몽은 계속되고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시녀 비슷한 여자가 문을 열어 도망쳐 나왔지만, 거리는 낯선 풍경, 낯선 사람, 게다가 우리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인상이 좀 험악해 보였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같아 길을 물어보는데, 이 사람은 더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얼굴에 불이 번쩍하더니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 사람과 있었던 모든 일들이 꿈결같다. 다시 독에 당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단 하루가 되어도 그 사람곁에 머물수만 있다면, 나는 또 독에 당한다고 해도 그곳에 남을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독보다 더한 고통이 되리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고려무사의 언약의 값은 목숨입니다

 

하늘의원이 사라졌다. 참 골치아픈 분이다. 그렇게 내 곁에 바짝 붙어있으라고 했는데, 왕비마마만 살아나면 돌려 보내드린다고 고려무사의 이름을 걸고 언약을 했건만, 콧구멍으로 들었는지 제멋대로인 여인. 객잔을 습격한 놈들때문에 귀찮아 죽겠는데 하늘의원까지 말썽이니 내 기분이 쫌 엉망이다. 누구든 걸리면 묵사발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늘의원이 납치된 흔적들, 같은 놈들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부에 첩자가 있구나... 

한 놈 잡아 족치니 객잔을 공격한다고 불었다. 대장간에 가득차있는 화골산, 전하와 왕비마마가 위험하다. 하늘의원이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 잠시 고민했지만 객잔으로 발을 돌리고 말았다. 그 분은 무사하실까? 길가에 흘린 피가 왠지 마음에 걸린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객잔이 습격을 받고, 우달치 몇을 잃었지만, 다행히 왕비마마와 전하가 무사하심에 숨도 돌리지 않고 하늘의원을 찾으러 나섰다. "고려무사 언약의 값은 목숨입니다. 왕비마마가 깨어나시면 그 분 돌려 보내겠습니다". 나불쟁이 조일신이 하늘의원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주저리주저리... 왕은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허락한다는 의미로 알아듣고 객잔을 나섰다.  

수상했던 곳을 다시 갔지만 그 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밥주세요", 찾았다. 그 분은 재갈을 물린채 입술이 터지고 목에 가벼운 자상도 보였지만 큰 이상은 없어보였다. 다행이다. 자객을 처치하고 하늘의원의 재갈을 풀어주니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거칠게 내 손을 치워버린다. 잠깐 가슴에 작은 아픔이 쓰르르 밀려왔다 지나간다. 

벗어던진 신발, 맨발로 고집스레 걸어가는 그 분의 뒷모습이 귀여워서 잠시 넋을 빼고 쳐다보았다. "더러운 어깨에 날 또 들쳐매고 가기만 해봐", 훗...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이나 말이 참으로 거침없는 분이시다.

그래도 고운 발이 상처나는 것은 보기 싫어 번쩍 안으니 또 바둥댄다. 떨어지면 부러진다고 손을 놓아버리는 듯 장난을 치니 조용해진다. 날 올려다 보는 그분의 눈, 아주 잠깐 미친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은 여인이 아니시다. 하늘나라로 지금 가셔야 하는 분, 그 맑은 눈을 담아봐야 소용없는 일 (이 장면 개인적으로 참 예뻤습니다. 이민호의 품에 좀 안겨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 앞에서 쓰러져 보고 싶더이다ㅎ).

 

어명 VS 고려무사의 언약, 하늘같은 무게에 최영은 자신을 버리려 했다

 

닫히려는 천혈, "고생시켜 드렸습니다", 

오래도록 절을 하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하늘의원은 머뭇머뭇 천혈을 향해 갔다. 그냥 들어가면 된다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겁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천혈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 때문에, 붙잡아 두라는 어명때문에...

"멈춰라!", 조일신 나불쟁이 영감탱이가 은수를 붙잡으라고 어명을 가지고 왔다.

 

***조일신의 목에 겨눈 칼을 거두고 은수를 다시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최영, 그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최영의 무너짐은 곧 죽음이라는 것, 최영 자신만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민호의 눈빛에 일렁이는 미안함, 고뇌, 번민, 그리고 망설임, 왕에 대한 실망까지 복합적인 최영의 감정을 어찌나 잘 연결시키던지, 표정의 과함없이도 복잡한 감정을 실어내는 표정연기 감탄!

<*버릴게 없는 표정, 그냥 빨려 들어가고 싶은 최영 이민호의 눈빛들, 사진 고르는데도 어떤 모습을 잡을까 무작스럽게 고민한답니다*>

 

달려오는 은수의 칼을 피하지 않았던 이유, 은수의 손을 감싸 칼을 깊게 찌르는 최영 그가 선택한 것은, 어명과 목숨으로 대신하는 무사의 언약 둘 다였습니다. "이러면 된 거지?", 어명을 수행하고, 무사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것을 목숨으로 치르려했던 최영, 은수는 오래도록 왜 그가 왜 칼을 피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최영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임자가 한 게 아니야, 임자는 죽었다 깨나도 날 찌르지 못해", 이 대사를 처음에는 무사 최영과 연관지어서만 생각했었는데, 다시보니 또 다른 의미로도 읽혀지더군요. 

의원인 은수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환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중하고 침착하게 환자를 살려내는 모습, 최영은 은수의 참모습을 봤던 것이지요. 은수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임자가 한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는 모습, 최영이 은수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 대만이 수술도구를 가지러 뛰어가는 장면은 다시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처음봤을 때는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마구마구 눈물이 나는 겁니다. 대만이가 죽을 힘을 다해 울먹이면서 뛰어가는데, 처음에는 몰랐어요. 대만이에게 대장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난 후에 보니, 어떤 마음으로 은수의 수술도구를 가지러 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달렸는지, 대만이의 발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같이 느껴져서 울컥울컥했답니다.

*** 어명을 받는 최영의 당시 심정이 어땠을까요? 무사의 언약과 어명 사이에서 하늘의 무게보다 무거운 고뇌에 휩싸였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은수에게 나좀 버려달라고,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소리쳤겠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급한 상황에도 깨알같은 유머를 구사했는데, 최영의 몸상태를 살피는 은수에게 "그렇게 여기저기 더듬어대는데 어떻게 정신을 놓겠어?"라는 대사에 슬며시 미소를 지어봤답니다.  

 

*** 이번 글은 은수의 감정에서 썼습니다. 우리 임자팬들, 오늘은 글이 늦게 올라갔습니다. 집 공사로 하루종일 분주해서 정신이 혼미해져 옵니다. 게다가 글 다 쓰고 사진올리다가 홀라당 날려 다시 썼습니다. 그래서 글 이읆새가 거칠어도 이해바랍니다ㅠㅠ

*** 우리 임자팬들 애정넘치는 댓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내일도 글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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