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30 14:51




가끔 해질녘의 붉게 물든 해를 보며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날 우리가 천혈로 아무일없이 갔더라면, 그 분이 독에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 분은 하늘세상으로 돌아갔을까? 그리고 나는 남았을까? 난 그 대답을 여전히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 분을 따라 하늘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 분이 없는 이곳을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빛처럼 환한 하늘세상, 쇠마차들이 달리는 그곳에서 임자는 나를 지켜주었을까? 사람을 베는 일이 없는 그곳에서, 그분은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을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그 분을 지켜주었을까? 그 하늘말 한 편이라는 의미처럼...

 

부질없는 망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분을 기다리며 지나간 일들을 곱씹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죽을 듯한 고통은 그 날, 그것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분의 서책

 

칠살을 제거하고 위험한 일들은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학자들을 서연장에 모시고 가는 일로 우선의 내 임무를 마칠 생각이었다. 나머지는 전하가 하실 일, 정치는 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지쳤다, 칠살을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팔에 입은 검상, 그 분이 또 얼굴을 찡그리시겠지. 하루 일이 끝나면 만나자는 그곳으로 발길이 향한다. 내게서 나는 피냄새, 빗물에 지워봤지만 여전히 비릿한 냄새가 난다. 내 것이겠지. 

그 분이 기다리고 계실까봐 두리번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서운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그 분이 서있던 그 자리에 잠시 몸을 기대고 쉬어본다. 그 분이 내어 준 어깨인 양... 칼에 베인 팔이 욱씬거린다. 젠장, 피냄새. 

전하를 만나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어야 겠다. 소란스러운 소리, 멀리서도 들려오는 그 분의 힘찬 소리, 뭐가 그리 신나는 지 우달치 애들이 헤죽헤죽 웃고 있다. 치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는 그 분, 뒤에 비누라는 얼굴 씻는 것도 나눠주는 것을 봤다.

그런데 왜 내게는 주시지 않았을까. 내게 그 분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던 걸까. 매희 그 아이의 두건처럼 될까봐... 

뒷짐지고 감추려고 했지만 팔을 보려는 그 분, 몸을 돌려 피했지만 피냄새를 맡았나 보다. 성큼성큼 내 방으로 향하는 그 분을 난 죄지은 어린애처럼 따르고 있었다. "여기 내 앞에. 너무 멀면 살필 수가 없으니까", 내 말투를 흉내내는 그 분, 언제나 날 항복하게 만든다. "손은 어때요?", 손등에 굳어있는 피를 담담하게 보는 그 분, 애써 태연한 척 했으리라.

무섭다는 살수들은... "다신 안올 겁니다", 죽였다는 말을 그 분도, 나도, 모른척 삼켰다. 따끔따끔 한 바늘 두 바늘 찢어진 자리를 꿰매주고는 칭찬도 덧붙이는 그 분, 속상하고 아픈 그 분의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하는 말이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임자, 실은 아팠습니다. 임자 마음이 아팠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더 아팠습니다'. 

하늘세상에서 가져온 마지막 물건이라고 한다.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간다는 그 분의 표정이 우울하다. 언제나 하늘세상을 생각하고 있는 그 분, 돌려 보내드려야 겠지... 그러나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나를 치료해줄 물건이 떨어져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것을, 나는 평생 검을 들어야 하는 무사, 싸우는 것이 일인 사람이기에(***은수 마음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

 

그 분이 남을 수도 있다는 희망도 가져봤습니다. 그래서 잠시 행복했습니다

 

저자에 그 분이 나왔다는 말에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바람같이 사라진 만보사숙과 아줌마, 그 분에게 짖궂은 장난을 하시리라. 놀라지 않아야 하는데... 서둘러 달려가니 벌써 그 분 당하고 있다. "뭐하십니까?", 가슴팍에 머리를 부딪는 그 분, 웃음이 나온다. 아이같은 그 분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영아, 징허게 이쁘다 잉", 만보아줌마, 내 눈에는 미치고 숨막히게 이쁩니다.

조잘조잘 그 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단다. 떼부자가 될 수 있을 것같다는 말에 난 허파에 바람이 든 놈 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그 분이 이곳에 남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희망이라는 것도 품어보면서...  

말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날,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 놈을 그곳에서 마주치는 순간, 그 눈빛을 보고 알았다. 불쾌한 욕정으로 그 분을 바라보는 웃음, 면상을 한대 후려갈겨주고 싶은 기분나쁜 웃음이었다.

덕흥군.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그 자를 예우하는 호칭따위는 없어졌다. 예를 중시하는 나 최영에게 그 자는 죽이고 싶은 놈,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같지 않은 놈이 되리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분이 남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잠시의 내 희망과 행복이 짧은 시간의 꿈이었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지금도 나는 덕흥군 그 자를 만나 서책을 가져다 달라고 청한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살수들을 처리하러 나간 사이 그 자가 그 분을 만났었다는 것에 화를 내고 말았다. "모든 것 얘기하는 관계하자면서요!", 그 분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가 얘기하면 당신 또 그 책임감에 부들부들 떨면서 그 수첩 찾아줘야지 했을 거잖아요. 그래서 얘기 안했어요". 내가 그 분때문에 피흘리며 또 싸울까봐... 

몰랐다, 그 분이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을... 웃는 얼굴로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그 분의 흐느끼는 소리가 내 미련을, 내 욕심을 밀어낸다. '임자, 임자에게 남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허나 그리해서는 안되겠지요'. 그 분을 돌려보내야 한다. 서책에 돌아갈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분, 어떻게든 그분에게 서책을 보여드려야 한다. 

기철이 주지는 않을 것이고, 덕흥군 그자라면.... "의선의 서책 찾으셔서 가주십시오. 함께 비밀을 풀어 보십시오". 그자가 묻는다, 자네는 무얼 얻게 되느냐고. "마음이 놓이겠죠". 그런데도 내 마음은 왜 그리도 허전하고 쓰라리는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내보였다.

그 자의 음흉한 웃음이 마음에 걸려 한 마디 붙이고야 말았다. "의선께서는 칼을 잘 쓰십니다. 성격이 불같고, 그러니 실례되는 일 안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점잖게 말했지만 추근덕거리면 내 손에 죽는다는 말이었음을 그 자는 알아들었을까? 

***덕흥군을 만나고 온 최영이 은수에게 바로 칼쓰는 법을 가르쳐준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듯 싶더라고요. 혹이라도 추근대면 그냥 찔러버리고, 그 다음에 치료해 주든지 말든지 하라고...

 

"그래도 돌아가고 싶으신 거죠? 그래도 참고 있는 거고"

 

"여기도 좋아요.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칼쓰기를 배운 후 그 분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가지말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이 때부터 은수는 최영이 붙잡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임자팬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래도 돌아가고 싶으신 거죠? 그래도 참고 있는 거고...", 아무 말이 없는 그 분,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새기고 외우고 강요하고, 난 그렇게 내 욕심을 밀어내야 했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 그 분, '임자, 그랬습니까? 몰랐습니다. 너무 힘차서, 너무 밝아서, 다시 웃으셔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덕흥군 그자가 의선의 서책을 가지고 온 모양이다. 무엇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에, 쓴 약을 한 사발 들이마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그 분에게 서책을 가지고 가 달라는 나의 청이 어떤 끔찍한 일로 그분을 힘들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그 날은 알 지 못했다. 그 분에게 그토록 힘든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것을...  

그 때 나의 쓴 감정은 무엇때문이었을까? 돌아가야 하는 그 분, 돌려보내기로 가슴에 새기고, 머리로 외우고, 강요를 하면서도 내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임자, 내 곁에 남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덕흥군과의 싸움, 덕성부원군 기철과의 싸움보다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임자! 임자를 보내기 싫은 마음을 밀어내는 것이... 내게는 가장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신의 병동 영스피린 복용시간입니다. 13회 대장의 간지나는 서비스는 저는 이 장면을 꼽는답니다. 상대가 화수인이기는 했지만, 내려오라고 손까닥하는 모습, 나무에 비스듬히 서서 시큰둥하게 말하는 모습, 폼나게 멋지죠. 

"다시는 의선 앞에 나타나지 마라. 그분이 너 무서워하니까. 안그러면 네 오른손모가지 잘라버린다", 캬~~~

적이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대장의 매력적인 모습 마음에 품으면서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길...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