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2 12:42




드라마 나인을 보면서 실어증과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를 보며 떠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날 1992년 12월 30일 박선우의 아버지 박천수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함구해 버린 박선우의 어머니를 보면 공공의 적에서 패륜 아들이라도 아들을 살인범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손톱을 삼키고 죽은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첫회부터 요양원에서 아들 얼굴도 몰라보고 박선우의 뉴스만을 챙겨보는 김희령에게서 의뭉스런 비밀은 감지되었지요. 박천수(전국환)의 죽음에 관련된 아들 박정우, 정신을 놓아버린 것은 아들 박정우를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강한 모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첫회부터 박정우(전노민)이 친자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역시 박정우는 박천수와 김희령 사이에 낳은 아들은 아님이 밝혀졌는데, 개인적으로 첫회 리뷰에서 최진철이 정자를 제공한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는 했습니다. 새삼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박정우가 자신이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는 것이 좀 놀라웠을 뿐입니다.  

 

아버지 박천수가 어떻게 쓰러졌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박정우가 죽인 것 같지는 않더군요. 실수로 밀쳤거나 김희령의 말대로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고 날카로운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을 가능성이 더 농후해 보입니다만, 박천수의 죽음을 방기해 버린 박정우가 죄책감에 프로포폴에 중독된 이유가 설명이 되기도 했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두 번의 타임슬립을 했지만, 결국 박선우는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형의 비밀을 아직 박선우가 알지는 못한듯 보이지만, 사고현장에서 아버지를 구하지 않고 도망가버린 형, 박선우의 과거여행은 끔찍한 악몽이었습니다. 형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박선우에게는 현재가 악몽이 돼버린 셈입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형,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해서 조울증과 불면증을 약물에 의존해 살고 있는 형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악몽인 선우겠지요. 행복했던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형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과거로 가는 향을 피웠던 선우, 향은 끔찍한 저주가 돼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저주는 다른 사람도 아닌 선우가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박천수가 쓰러진 현장을 목격한 박선우, 뜻하지 않은 목격자 혹은 이방인의 출현으로 사고현장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으니 말이죠. 쓰러진 아버지를 치료할 수도 있었던 정우는 낯선 사람의 출현으로 두려워 현장에서 도망쳐 버렸죠. 어머니는 발을 헛디뎌서 그랬다며 정우를 보호하기 위해 바들바들 떨고 있었을 뿐입니다.

도망치다 최진철의 차에 치일뻔하면서 정우는 최진철에게 평생이 될 약점을 잡히죠. 선우가 쫓아가지 않았다면 최진철과 맞닥뜨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일입니다. 선우의 타임슬립이 어떻게 보면 문제를 더 꼬아버린 변수가 돼버린 셈입니다.

정우의 손에 묻은 피, 최진철은 정우를 박천수의 살인범으로 몰아 김유진과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나게 하고, 어머니 김희령에게는 정우의 비밀을 함구하는 조건으로 병원을 차지했을 수도 있었겠죠. 그 와중에 어머니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도 잃어버렸을테고요.  

이제서야 왜 김희령이 정신을 놓았으면서도 박선우의 뉴스만을 꼭 챙겨보고 있었는지가 짐작되더군요. 어머니 김희령(손명희)은 박천수의 사고현장을 목격한 박선우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어요. 크리스 마스 이브를 함께 보낸 친절한 젊은이, 시간이 흘러 어느날 뉴스에서 박선우의 얼굴을 봤겠죠. 어머니가 뉴스만큼은 챙겨보는 이유는 혹이라도 아들 정우와의 그날 일을 그 목격자(박선우)가 발설하지 않을까, 정신을 놓고 말을 잃어버렸어도 자식 정우를 보호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닐까.... 

그런데 아직 선우가 밝히지 못한 진실이 있는 듯 합니다. 아버지가 쓰러진 시간은 1992년 12월 31일 밤 12시 30분경, 병원에 화재가 난 것은 2시경이라는 기사가 나왔죠. 화재는 사고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최진철(정동환)이 박천수의 방에 있던 난로를 엎어 방화를 한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됩니다.

박선우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는 진실은 박천수가 그 시각 12시 30분경에 사망했느냐는 것입니다. 김희령은 119에 신고를 하고 사람들을 불러 수술하면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전화기를 들었지만, 최진철의 야심으로 김희령이 전화를 걸지 못하게 막았죠.  

박선우가 형 박정우에게 확인해야 하는 것은 당시 아버지가 살아있었는지 이미 사망했었는지의 여부입니다. 살아있었다면 최종적으로 박천수를 죽인 것은 화재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최진철이 진범이라는 뜻이 되겠죠.  

도망치는 형을 잡았다가 향이 타는 시간 30분이 경과되어 현재로 돌아와 버린 박선우, 망년회를 즐기고 있는 형을 찾아 주먹을 날리고, 최진철에게 아버지를 죽였다고 오해했었다며 사과를 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로 돌아와서 바로 타임슬립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박선우는 현장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물건들을 남겨두고 왔습니다.

바로 박천수의 방 곳곳에 설치해 둔 소형캠코더입니다. 화재가 난 2시 이전에 미니캠을 수거해 온다면 방화를 한 사람과 아버지 박천수가 사망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될 듯한데 말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화재가 나기전 살아있었다면, 그것을 알고도 최진철이 방화를 한 것이라면, 진범은 박정우가 아닌 최진철이 될 듯... 즉 아직 박천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정확히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잘못된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박선우의 타임슬립은 끔찍한 현재를 만들어 버렸을 뿐입니다. 과거로 간 선우의 출현으로 정우는 아버지를 응급처치도 못하고 도망침으로써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게 했고, 최진철은 사건현장을 은폐하고 병원을 차지하고 오늘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최진철의 오늘이 어쩌면 선우의 출현때문에 헝크러진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선우가 그날 그곳으로 타임슬립을 하지 않았다면, 과거는 물론 현재도 달라졌을지도 모를일이죠. 아버지는 응급처치를 받고 살았을 수도 있었고, 병원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늘날 최진철이라는 괴물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입니다.  

쓰러진 박천수를 보며 광기어린 미소를 짓는 최진철, 그와 박정우와의 관계는 아버지 친구와 친구 아들일 뿐일까? 요양원에서 침묵하고 있는 김희령, 그녀의 실어증은 정우를 보호하려는 모정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에 공동책임이 있는 선우, 그가 바꿔버린 과거로 인해 달라진 현재, 이제 과거가 아닌 진실을 찾기 위해 타임슬립을 해야 할 듯 합니다. 결정적인 단서가 방화사건의 진실일 듯 한데, 화염속에서 정우는 소형캠을 회수해 올 수 있을까요? 아님 현재에서 선우가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것은 아닐지(가령 박정우가 자살을 기도한다든지,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의식을 잃는다는지)... 

제가 선우라면 병원에 화재가 발생한 새벽 2시 이전에 타임슬립을 해서 화재를 막으러 갈 듯한데, 박선우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네요.  또 모르죠, 아버지가 선우의 타임슬립으로 응급처치를 받고 살아날지도요. 그렇게 된다면 현재는 또 엄청나게 달라지겠죠. 이제 남은 향은 세 개, 예측불허 박선우의 과거로의 여행에 따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달라지는 현재, 또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무서우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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