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4 07:39




선덕여왕 42회를 보고, 드라마 속 신라 정국이야 어찌되었든 지난회에 이어 지루한 전개로 스토리를 제대로 만들어 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느낌도 들었고, 자극적인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이번회 줄거리는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겠지요. 비담을 데리고 풍유를 떠난 미실의 새로운 수와, 춘추공의 골품제 부정발언과 부군이 되겠다는 선언으로 빚은, 설원공과 세종공의 대립이지요.

우선 설원공과 세종의 무력 대치와 납치사건은 글쎄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미실을 보좌하면서 정치를 해왔다는 양반들이 춘추와 보량의 비밀혼인으로 무력대치까지 해야하는 상황인가 하는 점입니다. 자, 처음으로 거슬러 가보자구요. 미실측의 덕만공주를 견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가 뭡니까? 자기 사람 만들기 잖아요. 가야민을 볼모로 김유신을 하종의 여식 영모와 혼인을 시킨 것도 자기편 만들기 작전이었지요. 춘추공이 수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역시 미실측에서 나선 첫 수가 춘추공을 미실가의 여식과 연결시키려 한 것이었고요. 풍류가 미생공이 춘추를 기루로 끌고 다닌 것도 춘추의 여성 취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고, 보종랑의 여식 보량을 춘추와 연결시키려 했지요.
춘추를 이용해 앞으로 황실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미실새주의 뜻에 동의한 것으로 보였는데, 이제와서 춘추의 골품제 발언으로 보량과의 혼사를 가지고 설원랑과 세종이 대립한다는 것은 어패가 있어보입니다.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물론 이의 배경에는 덕만공주 다음 왕위 순위가 세종공이 되기 때문에, 세종이 미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그럴 듯하게 명분은 만들었지만요.
세종공은 귀족들 가운데 최고 진골 지위에 있는 상대등이며 설원공은 신라의 병권을 쥐고 있는 병부령입니다. 그런데 화랑들을 포섭해 낭도들을 무장시켜 가택연금을 시키고, 상대등과 병부령이라는 지위에 있는 양측 수장들을 납치해서, 까마득한 화랑들이 칼을 겨누고 포승줄에 묶는 하극상이 가능했을까 싶네요.  이런 상황을 만든 의도가 춘추가 계획했던 귀족세력의 분열에 대한 설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오해를 풀고 미실을 중심으로 더욱 강하게 똘똘 뭉친다는 것을 의도했는지 모르지만요.

그리고 드라마는 미실의 최후를 준비합니다. 비담과 미실의 대화는 극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지만, 미실이 비담을 데리고 소풍을 나간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와 아들의 오붓한 데이트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또 다시 멀어져가는 모자 사이를 확인시켜 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실은 신라 조정과 자신을 소용돌이로 몰아갈 해답을 찾게 되었지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꿈을 말입니다.
미실은 비담에게 화랑시절 문노와 설원공, 그리고 미실 삼총사에 대한 추억담을 들려주었지요. 마치 어린 아들에게 옛날얘기를 들려주는 어머니와 턱을 받치고 흥미진진하게 다음얘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 아들을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미실은 옛날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진흥왕이 지어 준 별칭이 경국지색(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빼어난 미인)이었다며, 당시 화랑들에게는 자신의 색공이 언젠가는 나라를 기울게 할 거라는 비아냥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이 초라한 황후의 꿈을 꾸게 되었을 거라고 말해주었지요. 초라한 황후의 꿈이라는 말은 그동안 미실이 세종공과 설원공이 칼을 들이대며 쌈박질을 하든말든, 잠만 자다가 비담을 데리고 소풍을 나오기까지 미실의 생각이 정리되었음을 내포하는 말이었지요.
"미안하다. 너를 버려서 내 아들, 비담아"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초라한 황후의 꿈을 위해 시대를 거스르고 아들도 가차없이 버렸다고 하는데, 비담은 미실에게 "멋있으십니다. 초라하든, 원대하든 꿈이란게 모든 걸 버리게 하지요" 라며 애써 표정을 감추었지요. "이해해 주니 고맙구나"라고 미실의 목소리가 잠기는데, 두사람 모두 울컥한 감정을 삼키는 모습이 가슴을 애잔하게 하더라고요.
두사람이 어머니와 아들로서 그나마 오손도손 나누는 대화는 여기서 끝나버립니다. 미실이 비담에게 왜 덕만을 따르느냐며 물으면서 대화는 야심가 비담과 비정한 정치인 미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비담은 처음으로 자신의 야심을 어머니 미실에게 드러내지요.
"스승님께서는 삼한일통의 대업을 위해 삼한지세를 쓰셨어요. 그런데 새주께서는 삼한일통에 관심이 없고, 공주께서는 관심이 많아요. 공주는 나를 얻어 대업을 이루고, 나는 공주를 얻어 신라 천 년에 이름을 얻을겁니다. 어때요. 황후의 초라한 꿈보다는 원대하지요? 그러니 새주의 초라한 꿈은 버리시지요."
그런데 미실은 아들이 그렇게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는데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부드러웠던 표정을 한순간에 싹 바꾸고 "이제 내 마음은 새로운 야망으로 차 있어"라고 말하는 듯 웃는데 소름이 돋더라고요.(역시 무서운 미실)

이 때 덕만공주와 유신랑이 미실을 찾아 정자까지 왔는데 대체 덕만공주 왜 이러신대요? 여왕의 자질이 있는지 의심이 들어서 차라리 미실에게 여왕을 하라고 싶어지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를 화나게 했던 대사 인용하지요.
"새주, 이러시면 안됩니다, 새주다운 수를 내놓으시고 새주답지 않은 행동을 하시면 저는 어쩝니까?" - 당췌 이게 무슨 말인지... 일국의 왕이 되겠다고 그동안 첨성대를 짓겠다, 귀족들의 매점매석을 금지하겠다 배포 크게 대적해 온 덕만공주가 미실의 침묵이 불안하다고 궁 밖 행차까지 해서 "전 이제 어쩌면 좋아요?" 하고 묻다니요. 그 동안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쪼르르 미실에게 달려가서 정답을 알아오더니, 이제는 과외 선생님 없으면 생각조차 못한 학원생이 돼버렸나요? 미실이 퇴장하면 이제는 춘추를 새로운 과외선생님으로 모실 것 같네요.
먼길마다 않고 달려온 수제자 덕만에게 미실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지요. 그러자 덕만공주는 아예 대놓고 바보가 돼버립니다.
"제가 얼마나 새주처럼 생각하고 새주처럼 행동하려 노력하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새주는 제게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적입니다, 헌데 왜 갑자기 파악이 안되는 행동을 하십니까? - 뭐야! 믿음직한 적이라는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태컷 미실을 따라했다고? 그럼 그동안 덕만공주의 지략에 감동하려고 무지 노력해왔던 시청자들은 어쩌라고요. 덕만공주의 정치 롤모델이 미실이었다니 이게 어처구니가 없네요. 물론 미실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역지사지, 즉 입장바꿔 생각해서 덕만공주가 미실의 뒷통수를 쳐왔다는 것은 알겠는데, 덕만공주는 그럼 한번도 혼자만의 수를 내놓지 못해왔다는 말인가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강하게 단련된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표류하는 미래의 여왕 모습이 조금 뜬금없어 보였습니다.

미실은 말하지요. "제가 지고, 공주가 이길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냥 달라고는 하지 마세요. 그건 염치가 없는 겁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천금가는 재물이나 천 명의 인재라면 그냥 드릴 수도 있겠지요. 허나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시대입니다. 시대의 이름을 갖는 일에 저를 피해갈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제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부딪쳐 상대하겠습니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요"라고요.
미실의 말은 역모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시대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은 왕이 되겠다는 선언이겠지요. 덕만공주가 여왕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춘추는 진골귀족으로 왕위를 선언했는데 이 두가지 수를 미실이 쓰겠다는 겁니다. 이런.. 따라쟁이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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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말은 한마디로 쿠테타를 일으키겠다는 것과 다름 없어요. 덕만공주가 여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도 황실이 발칵 뒤집혔고, 한 술 더 떠 춘추는 골품제도는 천한 것이라며 진골 신분으로 왕권에 도전하고 나서서 다시 신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심지어 세종공과 설원공이 무력충돌 일보직전에 이르렀는데, 미실까지 나섰으니 왕관이 길거리에서 파는 머리띠랍니까? 사실 덕만공주의 왕위선언은 성골이기 때문에 전혀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지요. 어차피 성골남진이니. 춘추공 역시 할아버지가 족강되지 않았다면 성골혈통이었고요.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함께 지고 불섶으로 뛰어들겠다는 것은 역성쿠테타 성격을 띄는 것이지요. 미실이 잠자고 있었던 용이라고 하는데, 미실의 정치 지략은 용이지만 혈통이나 골품은 이무기 밖에는 안된다 이겁니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쪽박인데 과연 귀족들이 미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당시 신라에서 상상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어요.
덕만공주는 하루 아침에 신라의 꿈을 세우고 계획한 게 아니지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왔을 때, 그리고 자신이 공주임을 알게 되고 왜 궁 밖으로 버려졌는지 알면서부터 덕만공주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신라를 삼켜버리겠다는 꿈을요. 그리고 천신황녀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백성을 현혹하고 공포정치를 하는 미실을 보며 희망정치를 하는 군주의 모습을 키워갔고, 유신랑의 풍월주 비재를 통해 신라의 국호가 가진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신라의 대업 삼한일통을 준비하는 왕이 되고자 했지요.

그런데 미실은 무엇을 위해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요? 단지 왕이 되려고? 결국은 미실이 왕이 되고자 한다면 덕만공주를 비롯한 황실측과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밖에 없겠지요.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직접적인 대사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떤 바보가 "나 쿠테타 일으킬거야"하고 주위에 다 까발리고 할까 싶네요. 쿠테타가 되었든 반란이 되었든 가장 기본은 비밀유지와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민첩하게 제압하는게 생명인데, 적에게 "나 총 쏠테니 가슴팍을 내밀어 줘"하고 달려드는 바보가 어디 있는지, 미실이 너무 쉽게 속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대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해줄 만큼 어리석은 미실이 아닌데 말이지요. 그러니 정말 미실의 진짜 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궁금한 미실의 속내는 뭘까요? 정말 왕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혹은 비담을 위한 준비작업일까요? 아마도 이것이 미실의 최후로 이어지는 사건이 되겠지요. 미실이 초라한 황후의 꿈에서 시대의 주인으로 꿈을 바꿨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꿈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후를 향해 가는 권력욕의 화신, 미실의 마지막 수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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