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30 06:39




우리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를 순간 부끄럽게도 했고, 많은 부분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딸아이는 현재 Gr.11(한국에서는 고등학교 1~2학년)으로 토론토 근교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만 다니다 와서 캐나다 학기과정상 중학과정 1년만 다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중학과정을 거치고 온 아이들의 경우는 캐나다에 오면 특히 수학과 과학에서는 두각을 보입니다. 선행학습을 통해 대부분 캐나다 교육과정보다는 진도가 앞서 있기 때문인지, 특히 한국 학생들은 수학에 강한 것 같더라고요. 물론 다른 과목에 비해서 수학과 과학이 우수하다는 것이고, 좀더 어려운 과정으로 가면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경우도 많아요. 이곳은 결과보다는 답을 풀어가는 과정에도 일일이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답만 맞춘다고 점수를 잘 받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

한국에서 중학교 과정을 조금이라도 하고 왔다면 과학용어를 이해하는 데 다소 쉬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딸은 그렇지 못해 내심 과학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 딸 역시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렇듯이 과학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고, 본인도 이과계통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과학을 특별히 재미있어 하는 눈치는 아니에요.
성적은 Top을 차지할만큼 잘 받고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고 일찌감치 과학계통으로는 진학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적성에 맞지 않다기 보다는 지금 가장 재미있어 하는 분야가 미술이다보니 아트계통으로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혹시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 과학과목을 계속 신청하라는 어쩔 수 없는 한국엄마의 압력에 이번학기에도 과학을 선택했어요. 캐나다는 고등학교 4년과정 중 공통과학 2개만 이수하면 화학, 생물, 물리 등의 과목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요. 의대나 과학분야로 대학 진학할 경우에는 모든 과학 과목의 학점을 따야 하지만요.
9학년때 만난 과학 선생님이 다시 이번학기에도 과학을 가르치는데 9학년때부터 눈여겨 본 딸아이에게 과학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얼마전에 제안을 하셨답니다. 과학과 학생들의 진로에 열정이 넘치시는 선생님이 9학년때도 한번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해요. 과학쪽으로 대학 진학할 생각 있느냐고.. 그러면 많은 부분 도움을 주겠다고.
그때 딸아이가 선생님이 무안한 정도로 일언지하에 '관심없다'고 대답을 해버린 탓에, 과학 선생님을 볼때마다 미안해졌는데 다시 수업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왜 그런 말은 했는지 후회된다며 '그냥 모르겠다고 할걸' 하며 너무 대쪽같은 자신의 성격을 탓하기도 했다고 나중에서야 말을 하더라고요.
<미시사가 미술작품전시회에 출품한 딸아이의 마더테레사 초상화입니다. 드로잉부문에서 예술협회장상을 수상했어요.>

과학선생님이 수업이 끝나고 보자하더니 토론토대학에서 프로젝트를 하는데, 과학 성적 우수학생을 뽑아 실험에 참여키는 일종의 인턴과정에 추천을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토론토 대학은 굳이 한국대학에 비유하자면 서울대에 비유될 수 있는 캐나다 최고 국립대학이에요. 물론 워터루대학이나 맥길대학등 유명한 대학도 있지만요. 수준은 과마다 다르겠지만 들어가기는 쉬어도 졸업장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이 토론토 대학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일종의 실험참가비 명목의 큰 액수의 장학금도 받고, 토론토 대학의 좋은 실험실에서 실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고 합니다. 또한 프로젝트 결과에 따라 대학지원할 때도 장학금을 비롯해 우대받을 수 있는 일거삼득 아니 일거다득의 기회인 셈이지요.
과학선생님의 제안에 우리딸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집에 와서 상의를 했어요. 문제는 일주일에 학교 끝나고 2~3번 토론토 대학에 가야 하고, 실험시간도 4~5시간은 걸릴 것이고, 밤늦게 끝나는 일도 많을 텐데 데려다 주고 데리러 와 줄 수 있겠냐고요. 토론토 대학과 저희집까지의 거리는 40~50분 거리입니다. "내가 캐나다에 있는 이유가 뭔데? 지네들 뒷바라지 하는 거잖아. 원하면 기꺼이 데려다 주겠다" 고 했어요. 그런데도 딸아이는 뭔가 찜찜한지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라구요.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과학선생님을 만났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딸아이는 지나가는 말을 하듯 "거절했어요"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뭐라구!!! 그 좋은 기회를!!! 너 바보아니니?' 마음 속에서는 이런 말들이 올라왔지만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딸의 거절사유를 종합하자면 한마디로 불공정(unfair)하다는 겁니다.
자기는 과학 계통으로 대학갈 생각이 아직은 없고, 건축디자인 쪽으로 진학할 생각이기 때문에 추천을 거절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과학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좋은 겅험을 쌓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우선은 과학에 진짜 흥미있고 그쪽 계통으로 가고 싶은 다른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성적만으로 뽑히는 것은 정말 그 분야에 꿈을 가지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거라고.

딸아이의 말에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어요. '쿵!' 이거구나. 캐나다 교육의 핵심이..이런 인간을 양성하는 거였구나. fair와 unfair를 스스로 배우게 하고 자신을 어디에 놓느냐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게 하는...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물론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딸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아이가 가진 사고방식이나 품성과도 관련이 있을 테지요. 한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다들 하겠다고 말할 거라는 것도 아니구요. 같은 생각에서 거절하는 학생도 분명 있겠지요.
문제는 그런교육의 기회를 소위 일류대학에서 제공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가 보인다는 점이에요. 한국에서 있을때 모대학 수학 경시대회에 초등학교, 심지어는 유치원생들까지 경시준비를 하는 상황을 목도한 저였기에, 지레짐작컨데 아마 소위SKY에서 프로젝트 실험에 인턴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전국에 모대학 실험실 입학을 위한 과학영재학원이 우후죽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아이들은 대학 과학실험 인턴 경시반까지 밤늦도록 학원 뺑뺑이 돌 일이 더 생기게 될 것이고..
우리딸은 한국에서나 여기에서나 학원과는 거리가 먼 철저하게 공교육에 기초를 둔 학생이에요. 한국에서 받은 사교육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영어는 방문 학습지로만 농땡이 쳐가며 배웠어요. 영어 외에 다른 과목은 학습지조차도 안시켰으니까요. 수학은 너무 탱자탱자 놀리나 싶어 캐나다로 오기 전 같은 아파트 선생님께 몇달 과외받은 게 우리딸 사교육의 전부입니다. 캐나다에 와서도 딸아이에게 투자한 사교육은 일주일에 한번, 딱 3달간 원어민 선생님께 한시간씩 회화를 배운 게 다에요. 비용도 토탈 90불(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 정도)들었어요. 저희 집이 크게 부유한 편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과외를 시켜야하나 싶어서 의사소통정도만 배우게 하고는 그만둬 버렸어요. 물론 이곳에서도 유학생들이나 이민오신 분들도 과외를 시키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니네 그릇 크기 대로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살아라" 주의이기 때문에 우리 애들 말로는 방임형 엄마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어요. 공부에 관해서는요.   

그래도 은근히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저에게 우리딸이 한마디 자기변명을 하더라고요. 자기도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듯이요.
"엄마, 만약 건축디자인이나 건축학과와 관련된 프로젝트였다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았을 거에요. 시험을 봐야한다면 시험도 봤을 거고요". 그리고 다시 한마디를 더하는데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글 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정정당당한 실력이라 할지라도, 나한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가슴이 얼마나 꽉 차오르던지... 우리딸을 꼭 껴안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며 한마디 해줬습니다. "역시 우리딸, 네가 자랑스럽다". 

딸아이의 프로젝트 거절은 저를 한편으로는 부끄럽게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반듯하게 커주고 있는 딸아이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Fair(공정)와 Unfair(불공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요. 나한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정당한 실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욕심이고, 정말 원하는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해 준 우리딸에게 너무나 큰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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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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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핑구야 날자 2009.10.30 12: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지적수준,재능에 예쁘기까지 엄친아....부모의 역할 중요합니다. 장하십니다.

  3. per alma 2009.10.30 13:54 address edit & del reply

    호오.. 정말 아름답다 ㅜ_ㅜ 제가 나이도 어린데 이런말 하는것도 죄송스럽지만;;
    자식농사 정말 성공하셨어요- ^^ ㅎㅎ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4. 내영아 2009.10.30 14:4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참 예쁜 심성에다, 이쁜 얼굴에, 거래의 법칙도 아는 지혜로운 따님이네요.
    멋진 건축학자가 될거에요. 좋으시겠어요. 엄마 닮았나봐요. *^^*

  5. 보안세상 2009.10.30 14:4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훈훈한 따님이네요 ㅠ

  6. 빨간來福 2009.10.30 15:3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따님이 얼굴도 마음도 참 예쁘군요. 그리고 정말 잘 키우셨네요. 이 따님이 제 유튜브에 꼭 답글 주시는 그 아이디의...ㅋㅋㅋ 교육의 핵심을 아주 잘 짚으셨네요. 남을 생각할줄 아는 교육..... 혼자서만 잘 하면 되는 교육..... 정말 잘 배웠습니다.

  7. 카타리나^^ 2009.10.30 15:4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진짜 외모도 마음도 이쁘네요 ^^

  8.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30 18:3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예쁜 딸 착한 딸이네요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 엄마의 그 딸이겠죠.

  9. 탐진강 2009.10.30 22: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햐~ 멋진 딸입니다.
    사실 우리가 배워야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남의 희망을 짓밟는 불공정한 일이 많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눈 앞 이익을 포기하는 딸의 자세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따님이 엄마 닮아서인지 미인입니다. ^^;

  10. 느껴지네요 2009.10.30 22:29 address edit & del reply

    따님의 말이 저의 가슴을 딩~~하고 울리네요.
    26의 나이에도 아직 뚜렷한 저만의 가치관을 세우지 못하고
    흐릿하게 살아가는 저에게는
    아.........어떻게하면 그렇게 곧고 야무지게 성장하는것인지.
    많이 부끄럽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11. 미르-pavarotti 2009.10.31 00:1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처음으로 초록누리님의 글을 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읽었습니다..
    따님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더군다나 착한 마음씨 까지..
    과외도 거의하지 않고 공부까지 잘하는 따님이라서 초록누리님이 부러워집니다 ^^
    아 그리고 사진 내리지 마세요 ^^
    아들 둘이라서 10년을 귀여운 딸.. 딸..노래를 불렀건만 외면 받았답니다 ㅠㅠ

  12. 표고아빠 2009.10.31 09:03 address edit & del reply

    참 예쁘고 멋진 따님이네요.
    아침일찍 다녀가 주셔서 오게된 곳에서 넘넘 큰 감동을 받네요
    따님이 크고 멋진 생각으로 이억만리에서의 외롬움이랄까요 뭐 그런것들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었겠는데요
    생각도 멋지지만 어찌그리 표현도 이쁜가요
    금방보고온 글이지만 옮겨 표현해 보려해도 잘 안되네요 ㅎㅎ
    이게 저의 한계인가 봅니다.
    사회교육과 가정교육의 결정체이겠죠
    아무쪼록 멋진 따님이 생각과 표현에 저두 어린 아이를 키워가는
    아빠로써 느낌과 배움이 너무 큰 글이네요
    저두 그렇게 해낼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 될 수 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너무 감사하고 반가운 오늘의 만남인듯 싶은 좀 오버하는 분위기 되어지는데요 ㅎㅎ

  13. basecom 2009.10.31 11:16 address edit & del reply

    우와..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데다 인성까지 갖췄네요. 보기만 해도 배부르시겠습니다^^

  14. 베짱이세실 2009.10.31 14: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네요. 그리고 지성 뿐 아니라 마음씨까지. 따님이 저렇게 외, 내면으로 아름다워지기까지 초록누리님의 보이지 않은 정성이 함께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

  15. 보링보링 2009.10.31 20: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훌륭한 따님을 두셨군요~ㅎㅎ든든하시겠어요~ㅎㅎ

  16. 금종범 2009.11.01 13:0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곱다

  17. 너돌양 2009.11.01 13:53 address edit & del reply

    따님이 얼굴도 예쁘고 초록누리님 닮으셔서 재능도 많고, 영리하고 배려심도 많구 이런 아이들이 한국에도 많아야할텐데 말이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아니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을려고 안달복달하는 25세 젊은이를 할말없게 하는 따님이시군요 ㅎ

  18. 한국맘 2009.11.04 10:29 address edit & del reply

    너무 기특한 딸을 두셨어요. 우리 딸도 그렇게 커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사회가 발전한다는 건, 바로 이런 따님들이 많아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아이들이 사회를 잘 이끌어가 주는 것이겠지요.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19. looclooc 2009.11.09 01:35 address edit & del reply

    사실 너무 포기하기 힘든 프로젝트였을텐데 너무 멋있습니다. 따님도, 어머니도요!

  20. 두모 2009.12.07 10:25 address edit & del reply

    딸을 훌륭하고 이쁘게 잘 키우셨네요.
    '필요하지 않는 것을 욕심내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말을 더 넓게 생각하면
    '필요한 것 보다 너무 많이 욕심내는 것은 불공정하다'로 까지 확장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동산 투기, 과도한 탐욕 등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특히 부동산 등으로 '너무 많이 욕심내는 것'은 분명히 그것이 꼭 필요한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고 있거든요.

  21. 2010.01.13 14:16 address edit & del reply

    어떻게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전 따님처럼 저런 생각을 할수 있을지 조금 망설여지네요. 정말 좋은 따님을 두셨습니다. 전 옥빌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만약 시내에서 뵈게 된다면 커피라도 한잔 하시는건 어떤지요? 언제나 드라마 리뷰를 흥미롭게 읽고 또 덕택에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참, 따님께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하실거라면 혹시 워터루 대학으로 가시는 겁니까?

    • 초록누리 2010.06.19 14:22 신고 address edit & del

      네..지금 워털루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