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의 죽음 이후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은 여왕 덕만의 정치적 성장과 자라는 새싹 춘추의 영특함인데요, 유신은 이미 장군으로서의 위상을 갖춘 듯 하고, 비담은 연모와 야욕 사이에서 여전히 질펀하게 오락가락 하고 있어서, 뿌리치는 여왕 덕만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좀 찌질하게 보여서 솔직히 매력 반감이에요.
선덕여왕 55회 줄거리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이번회 눈에 들어왔던 춘추의 영특함에 대해 짚도록 하겠습니다.
3일안에 백제의 침공이 있을 거라는 유신의 말은 대아성에 있는 백제의 첩자를 색출하지 못해 불신을 받고, 유신이 월야의 복야회와 내통하고 있다는 비담의 폭로로 유신을 사량부에 갇히고, 허위사실을 날조해 군사를 움직이게 했다는 죄목까지 물어 유신을 참수하라는 상소가 빗발치게 되었지요. 비담은 덕만에게 연모한다고 고백하며 유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과 혼인을 해야한다며 사면초가에 빠진 여왕 덕만을 압박합니다.
설원공이 신국을 구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왠지 설원공의 목숨이 곧 끝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도 드네요. 미실의 마지막 명을 따르기 위해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설원공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비담을 위한 설원의 마지막 행보가 궁금합니다.
그럼, 선덕여왕의 주변 중심인물 세 사람의 캐릭터를 분석해 볼까요? 세 사람 무두에게 있는 공통점은 야심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 취하는 행동과 목적이 다를 뿐이지요.
기어가는 춘추
이번회를 보면서 춘추라는 인물이 소름끼칠 정도로 영리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는데요. 바로 유신의 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덕만과의 대화에서 였어요. 복야회와 내통한 신국의 적이자, 백제가 침공할 것이라는 허위정보까지 유출한 혐의를 물어 유신을 참하라는 상소가 빗발치자 덕만의 고민은 큽니다. 모두가 덕만에게 유신을 버리라고 할때 춘추는 기가막힌 수를 내놓습니다. 바로 가야계를 춘추가 끌어 안겠다고 한 것이었지요.
유신공과 가야 둘 다 살릴 수 있는 수가 김춘추에게 있다는 말은 바로 김유신 누이와의 혼인, 즉 가야의 세력과 혼맥을 맺겠다는 의미일 겁니다. 춘추 자신이 가야계 세력을 대표하는 황실 2인자가 되어 가야민을 안심시키겠다는 것이겠지요. 덕만도 웃게 한 춘추의 이 한 수는 춘추가 얼마나 야심이 크며, 기어가듯 천천히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야를 얻는 것은 신라의 명장 유신을 얻는 길이며 유신의 지지 기반인 월야의 복야회까지 얻는, 표면적으로는 유신 살리기이고 속으로는 자신의 지지기반 확대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춘추는 굳이 표현하자면 구렁이 처럼 천천히 조금씩 상대를 휘어 감아버리는 인물이지요. 반면 비담은 취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물어버리는 독사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구렁이같은 춘추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에요. 바로 유신을 얻겠다는 것이지요. 사람을 보는 통찰력에 있어 비담과 춘추의 차이이기도 하고 비담이 춘추보다 한수 아래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비담에게 있어 유신은 반드시 밟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면, 춘추에게 유신은 반드시 얻어야 하는 인물이라는 인식의 차이일 겁니다.
걸어가는 유신
무식할정도로 우직하고 앞만 보고 가는 유신같은 인물을 춘추가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춘추는 유신의 야욕의 끝이 어디까지 인지 마저 꿰뚫고 있습니다. 유신에게 있어 야심의 끝은 가야민의 안정적인 신라정착입니다. 복야회를 버리고 스스로 궁으로 들어왔던 유신이었지요. 복야회가 유신을 탈출시키도록 유도해서 유신을 신국의 적으로 몰아갔던 비담의 계책은 실로 절묘했지만, 유신은 제 발로 궁으로 들어왔어요.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월야와 복야회가 자신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유신은 제발로 궁으로 들어와 죄를 청했습니다. 유신이 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여왕 덕만이 아니었어요. 유신이 선택한 것은 유신의 어깨에도 월야의 어깨에도 얹혀 있는 60만 가야민이었어요. 월야와는 방법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가야를 짊어지고 신라로 돌아왔던 것이지요. 유신이 제 발로 궁으로 들어와 죄를 자청했다는 것은 바로 역모를 꾀하고 있지 않음을 유신이 목숨을 내걸고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었구요. 더 이상 물러 설 곳 없는 금강계를 친 비담의 수에 유신은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보여주었지요. 그것은 바로 가야민을 살리고자 한 유신의 마음과 역모의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춘추는 유신의 강직한 진심을 보았던 것이지요. 춘추는 유신이라는 인물의 가치가 신국과 맞먹는 것일 정도로 크다는 것을 꿰뚫었지요. 너무나도 영특하게도요.
뛰어가는 비담
이번 회 유신이 비담에게 물었었지요. 너의 어머니라면 어찌 했을 것 같으냐고요. 백제군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었지만,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니 유신에 대한 미실과 비담의 통찰력의 차이이기도 하더군요. 비담은 어찌보면 유신이라는 카드를 쥐고도 놓친 격이라 할 수 있어요. 가야민은 유신에게 자존심과 대의를 버리고도 선택한 유신의 아킬레스건이었어요. 미실은 유신의 이킬레스건을 이용해서 유신을 취했으나, 비담은 아예 쳐내버리려 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차이지요. 만약 비담이 가야와 복야회를 담보로 유신에게 모종의 거래를 하려 들었다면 어쩌면 유신은 비담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비담은 생각이 앞서 뛰다보니 흘리고 가는 것들이 많은 셈이지요. 유신이라는 보물을 흘린 것은 비담에게는 가장 큰 실수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과연 삼한지세의 주인이 왕이였을까요? 문노가 말한 '천년의 이름을 얻는다'는 의미는 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삼한지세는 왕이 보는 책이 아니잖아요. 지형 지세를 파악하고, 전쟁을 치루는 인물, 즉 장수를 위한 병법서였던 것이지요. 문노는 그 병법서를 제대로 쓸 주인을 알아봤던 것이지요. 문노가 유신을 삼한지세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계기가 가야민을 구하기 위해 미실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이었음을 상기하면, 유신에게서 진정한 삼한일통의 의미를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만약 비담이 문노가 말했던 '천년의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더라면 비담 역시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룬 영웅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삼한일통의 주역이 된 김유신이라는 명장이 천년에 이름을 남긴 것을 보면 말이지요. 비담과 달리 춘추의 탁월한 통찰력이 빛나는 이유, 그것은 바로 김유신이라는 시대의 인물을 알아 본 때문이겠지요.
'종영드라마 > 선덕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덕여왕' 비담이 춘추와 싸워야 하는 이유 (31) | 2009.12.06 |
---|---|
'선덕여왕' 날개잃은 비담, 미실의 마지막 뜻은? (52) | 2009.12.02 |
'선덕여왕' 기는 춘추, 걷는 유신, 뛰는 비담 (45) | 2009.12.01 |
'선덕여왕' 병풍남이 될 위기에 처한 춘추 (37) | 2009.11.25 |
'선덕여왕' 덕만공주, 사랑받지 못하는 5가지 이유 (99) | 2009.11.23 |
'선덕여왕' 비담의 유신사냥, 김유신의 선택은? (40) | 2009.11.18 |


- 이전 댓글 더보기
-
발연기 2009.12.01 18:47
글 잘 읽었습니다만 글쎄요 전 드라마에서 유신을 엄청 띄워준다고 느껴지네요.
우직한 그라면 애초 월야와 설지가 탈출시키려 할때 그걸 단호히 거부했어야 옳은 게 아닌가합니다. 근데 월야 설지와 함께 탈출해놓고선 나중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은 마치 그를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었다가 결정적인 순간 멋지게 등장시키려했다는 느낌이 강하더군요. 그리고 유신이라는 인물이 정말 짜증났던건 우직한 인물이 복야회와 신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애를 써서 주군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정계에도 나쁜 일로 적잖은 파장을 몰고왔다는 점...우직한 게 아니라 쓸데없는 쪽으로 고집이 세다는 느낌밖에 안 들었어요. 물론 나중엔 가야를 포기했지만 그걸보니 결국 포기할거면 진작부터 여왕 말좀 듣지 왜 사람 속을 저렇게 뒤집어놓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 비담이 춘추보다 한 수 아래라는 생각까진 안 들어요 미실측이 복야회였나 여튼 잡아내려고 가야사람을 미친듯이 족칠때 비담은 나라면 한 놈씩깐다식으로 얘기했고 실제 그렇게 했었죠. 그리고 진평왕앞에서 미실이 그를 죽이려고 비담에게 네놈은 언제죽느냐고 했더니 깜찍하게(?)왕을 걸고 넘어졌죠 폐하보다 3일 모자란다구요. 이렇게 날카로움을 보여준 인물이 어느순간부터 변화를 겪었는데 그 변화에 설득력이 없어서 말이 많았죠. 근데 전 지금은 덕만캐릭터도 이상해보입니다. 비담에겐 별다른 애정을 보여준 적이 없더니 갑자기 비담이 자길 만지면 설레인다는 식으로 사람 마음 흔들어놓고 무엇보다 여왕이 되고난 후엔 자기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지 않고 춘추같은 측근에게 자꾸 기대려하네요. 대체 이 드라마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미실, 덕만, 유신??..
스릴감있는 내용전개는 재미있습니다만 캐릭터들은 정말 다 병맛입니다. -
바모스 2009.12.01 19:00
춘추는 무서운 인물이지요. 덕만의 후계자임을 정통으로 약속받게 되는데다가 유신은 물론이고 가야계까지 품는 일거삼득을 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문희와의 결혼부분이 역사와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데도 춘추가 대단한 야심가이며 영리한 지략가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설정이라 참 교묘하게 수를 써서 스토리를 이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신은 언제나 그랬듯 유신스러웠고요. 비담은 여왕의 말대로 순진한 아이의 마인드였어요. 머리가 영리하다뿐이지,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나 그릇의 크기는 확실히 어머니인 미실은 물론이고, 다른 인물들에 못미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 권력다툼에서 필패는 예상되는 것이고.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꿈을 꾼다며 비담의 앞날을 걱정했던 미실의 통찰력이 옳았다는걸 증명했네요.
-
OmniaLuna 2009.12.01 19:19
비담은 삼한지세의 주인이 되는 것이 왕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았습니다. 비담은 스승님께서 삼한지세의 주인이 되는 것은" 왕보다 크며, 천년의 이름을 얻을 것이다." 고 말씀하셨다 했지요. 비담이 삼한지세의 주인이 되지 못한것은 유신의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힘'을 몰랐고,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담은 사람에게 진심어린 마음을, 그런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이겠죠. 그런점에서 유신과는 다른 방법으로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구요. 그리고 비담은 유신을 연적이자 라이벌로 생각하기에 그를 품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유신과 덕만 사이의 들어갈 수 없는 틈 자체가 자신의 존재 크기이기에...
-
미동 2009.12.02 09:26
신라가 비담과 그 일당들을 잃은것은.. 여리디 여린 신라가 일통할만한 힘을 잃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신라의 힘으로는 일통을 할 수 없었죠. 장수도 부족했고- 군세를 유지할수도 없었습니다. 희대의 책략가이자 가장 가슴아픈 결정을 해버린 '춘추'는 외세의 세력을 빌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유신을 가지는 것. 하지만 유신의 마음까지 가지지 못했지요. 춘추와 유신은 친하지 못했으니까.. 유신과 비담이 있는 신라였다면- 백제를 공략하며 고구려를 견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알천등이 특공대가 되어 휘저어 다니며 흔들고 유신이 압박하고 비담이 고구려를 교란시키면.. 충분히 백제를 공략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백제에도 윤충과 계백등의 장수가 있지만.. 하여튼- 연약한 신라가 일통을 위한 전쟁은 지금까지 가슴아픈일이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