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유신과 비담의 대립을 보는 시청자는 심히 불편하다. 왜?
정치가 미실 vs 영웅유신 vs 질투비담의 실수
미실이라는 희대의 악역이 왜 사랑받았을까? 그것은 드라마가 미실을 끝까지 정치가로 그렸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꿈은 미실의 신분상승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미실의 난 역시 정치가로서 품었던 야욕이었다. 또한 덕만공주와 미실의 대립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덕만과 미실의 정치관, 혹은 대의에 대한 첨예한 대립 갈등구조가 시청자들에게는 선과 악을 떠나 흥미진진했고, 쌍방의 정치적 수에 대한 팽팽한 승부수를 지켜보는 재미가 선덕여왕을 끌어가는 힘이었다는 것이다.
새털만큼 가벼운 비담의 정치적 명분
비담의 연모에 대한 좌절감에 비중을 두다보니 비담에게서 정말로 보여져야 할 정치적 명분을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미실을 끝까지 정치가로 그려준 것에 비하면 찌질남으로 변질시켜 버린 비담의 캐릭터는 종영을 앞두고 있는 선덕여왕의 가장 큰 실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비담의 꿈, 미실이 남겨주었고 문노의 삼한지세 책의 주인이 되고자 품었던 야욕의 무게를 연모를 거절당한 찌질남의 투정쯤으로 절하시켜 버린 것이다. 독수리를 참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연모을 거절당하고, 여왕덕만의 믿음을 얻는 데 실패한 비담이 난을 일으킨다는 설정은 비담의 난 그 정치적 성격을 감정놀음 따위가 빚는 치정극쯤으로 그려버리고 있으니, 설득력과 흥미를 떨어뜨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비담의 캐릭터 변화가 시급하다
일례로 윤충장군이 이끄는 백제와 싸워 "신국을 구한 자에게 모든 자격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덕만이 비담을 품어 함께 삼한일통을 위해 힘을 합칠 생각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말이다. 덕만이 비담을 거부한 명분이 무엇인지가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비담의 사사로운 연모를 앞세워 정치적 야욕에 대해서는 그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실을 정치가로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운의 영웅으로 그려낸 거에 비하면, 비담은 질투에 눈이 멀어 깽판이나 놓는 인물로 만들어 버리는 듯한 전개는 실로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비담의 캐릭터를 정치적 인물로 그렸더라면, 선덕여왕이 이렇게 맥빠져 버리지는 않았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덕만의 여왕으로서 눈부신 정치적 성장은 매우 바람직하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선덕여왕이어야 하고, 그 자격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담이 싸울 상대는 김춘추이다
우선은 비담을 질투비담이 아닌 정치적 대립에 서 있는 갈등의 축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 대립축이 여왕 덕만이 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이미 덕만은 미실과의 대립을 통해 성장해 왔으니 두 사람의 대립구도는 자칫 덕만 vs 미실의 축소판이 돼버릴 수도 있으니 식상할 것이다. 또한 그간 보여준 애정행각때문에 공감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유신은 어떠한가? 유신은 비담이 유신죽이기에 나서면서 이미 영웅으로 만들어져 버렸다. 이 역시 몇회동안을 보아 왔던지라 식상할대로 식상하다.
그렇다면 남은 인물은 한 사람, 바로 김춘추이다. 춘추 역시 강한 정치적 성향을 띤 인물이고, 계산적이고 영특하고 의뭉스럽기 까지 한 인물이다. 춘추가 과거 염종과 긴밀했던 관계였고, 또한 염종은 현재 비담의 수하가 되어 있다는 것은 세 사람의 정치적 수 싸움에서 흥미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비담의 난이 사랑 때문에 질투비담으로 변신해서 일으킨 작은 꿈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에 비담은 실패한 역사 속 한 인물로 남았을 뿐이지만, 비담의 난이 한낱 치졸한 연모에 의해 일으킨 난이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컸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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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비 2009.12.06 08:35 신고
오. 그렇군요. 저도 왜 갑자기 선덕여왕이 맥을 못 출까..궁금했는데, 명확하게 해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맞아요. 미실의 정치가적 모순.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미실의 꿈. 정작 춘추가 늘 자신이 답이라고 하며 덕만에게 해법을 구했는데, 그 말은 정작 작가와 제작진들이 새겨 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비담은 역사적으로 상대등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신라 귀족 중 최정상의 정치가였으므로 분명 그의 정치적 모습이 남달랐을 법한데, 드라마에선 이를 너무 단순하게 처리한 것 같아요. 그저 감찰부 수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담거나 혹은 일종의 잔꾀만 부렸다랄까요.
그렇다고 해서 유신과 정치적 대립은, 아예 톱니가 맞지 않고, 왜냐하면 유신 자체가 정치적으로는 관심없는 인물처럼 그려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선 정말 춘추와 비담의 정치적 팽팽한 대립을 그려나간다면 다시 맥이 살아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만 지금...곧 종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살릴지가 관건입니다만...
뭐 그렇습니다.
참... 죄를 범한 그 가수는 추측이 난무하더군요. 그리고 생의 끈을 이끌었던 그 가수는
누리님도 좋아하는 분이랍니다. 일전에 라이크 어 프레이어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셨죠. 네..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였습니다.-
하얀 비 2009.12.06 12:39 신고
하하. 역사적으로 보면 너돌양 님의 말씀처럼 유신도 다분히 정치적이고, 또 다른 면으로 보자면 유신이야말로 처세술에 참 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면이 드라마에선 그저 생략된 것 같고, 음. 유신 영웅 만들기랄까요. 누리님 말씀처럼...^^ 물론 당대 신라에선 유신을 영웅으로 생각했던 기록들도 있고, 심지어 사후 용이 되었다고 사람들이 여길 만큼 영웅시되긴 했지만..말이죠. 아무튼 지금 상황을 보면 춘추와 비담의 정치적 대결이 선덕을 살릴 묘책일 것 같아요. 좌우당간 휴일..춥지만 따뜻하게 보내세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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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 2009.12.06 09:10
이제 드라마도 말미인데요....
비담이 측은하면서도 명분없이 캐릭터가 조금 이상하게 변한것 같아요...
갑자기 너무 추워졌습니다...
감기조심하시고요...행복한 휴일보내세요~~ -
하얀 비 2009.12.06 14:17 신고
참. 누리님. 궁금하실 것 같아서 알려드려요. 저 신형 아이맥 주말에 구입했답니다.^^ 음. 쾌적하고 너무 좋답니다. 가상머신으로 윈도를 함께 동시에 실행할 수도 있어서 좋긴 좋은데, 음 누리님께서 직접 하시기엔 다소 어려울 수 있으니 애플스토어 등지에서 도움을 구하거나 혹은 자녀 분들에게 부탁해도 될 것 같아요.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말이죰. 일단...완전 대만족입니다. 참.27인치 제품은 디스플레이 불량으로 전세계적으로 리콜 대상으로 떴다고 하니..21.5인치 형이 다소(?) 저렴하고 괜찮답니다. 구입할 때 추가 선택사항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런 건 죄다 필요없고요.^^ 혹 관심이 있으실까 싶어서 알려드렸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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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쉐프 2009.12.07 01:29 신고
선덕여왕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지라 선로수정은 어려울 듯 하고, 이대로 끝을 맺을 것 같아 약간 아쉽습니다. 미실이 사라진 후 왠지 용두사미가 된 듯해서 살짝 아쉽습니다.
미실 외에도 살리기 좋은 캐릭터들이 많은 드라마였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