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뚫고 하이킥의 이순재옹의 집도 마찬가지이다. 방귀도 마음놓고 뿡뿡 뀔 수 있고, 쇼파에 편하게 누워 TV를 볼 수 있기도 하고,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공중 화장실의 불편함도 없고, 심지어 속옷 차림으로 왔다갔다 해도 경범죄로 처벌할 일도 없는, 사회생활에서의 위계질서나 규칙이 필요에 따라 무시될 수도 있는 곳이다.
세경과 신애의 작은 둥지 드레스룸을 보면서 좁은 방 만큼이나 답답하게 가슴을 짓누르른 무엇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남의 집 눈치살이를 하는 탓이려니 하고만 말았는데, 어느날 그 이유가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편한 심사때문인지 순재네 가족들이 하나같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 순재네 가족들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 어찌도 그리 무심할 수가 있을까 싶다.
지금도 서울의 동부이촌동에 건축된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에는 식모방의 흔적이 있다. 집의 구조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눈에 뜨이는데, 주방옆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창고만한 방이 있다. 당시만 해도 식모를 많이 두고 살던 때여서 아파트를 설계할 때 식모방까지 설계도면에 넣은 모양이다. 그리고 특이한 게 식모방과 연결된 비상계단이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만 해도 식모와 주인이라는 신분은 집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일종의 룰이 있었는데, 예전 식모들은 현관문을 주인과 함께 드나들 수가 없었다. 주방 베란다 옆에 따로 문이 있고, 거기로 비상계단이 이어져 있는데, 그 비상계단으로 식모들은 바깥출입을 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이순재네 집 주방 옆에 세경의 방을 마련한 것도 아마 이런 예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구세대인 나에게는 어려서 집에서 일해 주는 식모를 보기도 했고, 부엌 옆에 마련된 작은 식모방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데도 식모살이 하는 세경의 방을 보면 불편하다.
세경의 방이 다른 가족들 방에 비해 초라하고 협소하고, 더군다나 주방 옆에 딸려있다는 것때문에 보기 불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순재네 식구들의 무심함이 이유지만, 순재네 가족들의 옷들이 한가득 차지하고 있으니, 누울 자리조차 비좁고 불편해서 늘 새우잠을 자는 자매가 안쓰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세경의 사생활이 전혀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재네 집에서 세경의 사생활 공간은 단 한군데도 없다. 남의 집 살이 하면서 호화로운 공주님 방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일테고, 오갈 데 없는 세경 자매를 거둬 준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경이를 보면 한창 꽃다운 22살의 아가씨인데도 아무도 세경의 사생활을 신경써주지 않는다.
세경, 신애만을 위한 하늘아래 유일한 공간인데, 이 방마저도 순재네 가족들은 마음놓고 사용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해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현경, 지훈, 준혁, 보석도 수시로 옷을 찾기 위해 들락거린다. 각 방마다 큼직한 옷장들이 있더구만 왜 세경 방에 옷들을 두고 찾으러 오는지, 이런 것은 안살림을 맡고 있는 현경과 가장 순재의 무신경때문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세경자매를 집에 들였을 때는 행거라도 치워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라도 치워주면 너무 고마울 일이고...
또 하나는 앉은뱅이 상에서 숙제하는 신애를 보면 괜히 안쓰러워진다. 굳이 신애와 해리 방은 비교하지 않아도 처지가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힘든 환경에서도 밝고 똑똑한 신애를 보면 늘 대견스럽고 기특한데, 어느 날부터 신애에게 책상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앉은뱅이 상에서도 제 할일 잘하는 신애에게 책상 하나 마련해주는 것이 그리 부담될 일은 아닐 텐데 자식키우는 현경이나 이순재를 보면 참 인정머리 없어 보인다.
코끼리까지 등장시킨 현경의 생일 이벤트는 현경에게는 감동이었겠지만, 마냥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돈을 돈답게 쓰지 못하는 순재와 보석의 자기 식구밖에 보지 못하는 좁은 눈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감동과 웃음을 주고자 한 이벤트를 죽자고 까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일 못하는 사람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 가방 타령한다는 말이 있지만, 누울 자리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는 신애에게 책상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은 순재네에게 그리 부담될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세경 방을 들락거리면서 사방이 행거에 둘러싸인 비좁은 방과 상에 앉아 공부하는 신애를 보며 순재네 어른들은 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할까. 세경의 방을 세경 자매가 잠만 자는 곳쯤으로 여기는 순재네 가족의 무심함이 이제는 미워지려고 한다. 집없는 세경 자매에게 온전히 그들만의 위한 방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이 세경 자매의 처지에 그리 사치스러운 일은 아닐텐데, 순재네 가족들 중 누구라도 세경의 방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가졌으면 싶다. 아무리 남의 집 살이를 하는 식모라 할지라도 세경이의 사생활만큼은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하지 않을까.
'종영드라마 > 지붕뚫고하이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킥' 빵꾸똥꾸 해리의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이유 (15) | 2009.12.25 |
---|---|
'하이킥' 세경, 2백만원 월급제의가 부른 파장 (50) | 2009.12.24 |
'하이킥' 세경의 사생활 침해, 심각하다 (393) | 2009.12.19 |
'하이킥' 지훈과 정음의 돌발키스, 진심 혹은 술김? (31) | 2009.12.12 |
'지붕뚫고 하이킥' 술취한 황정음의 첫눈사연, 배꼽 빠지다 (24) | 2009.12.05 |
'지붕뚫고 하이킥' 해리의 빵꾸똥꾸, 어른의 책임이 크다 (33) | 2009.11.21 |

- 이전 댓글 더보기
-
움.. 2010.01.01 12:36
시트콤 처음에..세경이가 처음에 그 집에 들어가려고 돈도 적게받고 밥도 엄청 쪼꼼먹고 동생하고 둘이 잠만 재워주시면 안되겠냐고 했지요. 그래서 입주도우미가 필요없는 순재네에서 받아준 것이지요..그리고 사실 제집마냥 누비고 다니는 신애를 보면(처음에 해리방에 들어가서 해리물건을 맘대로 만지질 않나..냉장고에 있는 케익이나 갈비등을 모두 먹어치우기도 하죠. 꼬맹이와 하이킥을 같이 보다가 남의물건을 맘대로 만진 신애가 나쁜데 왜 해리를 혼내냐는 말에 머리가 띵~하기도 했습니다. 말투와 행동만 보고 신애는 착한애, 해리는 나쁜애라고 단정지어버린 것을 그때 알겠더군요..) 어린애까지 딸려있는 입주도우미를 받아준 것에 대해 많이 배려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옷방에서 그렇게 지내는 세경, 신애자매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자기의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 것도 자기자신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세경의 경제적인 독립과 꿈을 찾는 내용이 앞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보는 중이랍니다.
-
얀센 2010.01.03 09:38
신애자매의 월급얘기나올때마다 답답함을 느꼈는데..월급 오르겠죠. 현경이가 두달만에 10만원 올려줬고. 불쌍하니까 올려줘라 부려먹는다..뭘 어케 부려먹는다는건지..큰집 살림을 세경이 맡아하니 할일이 많은건 맞습니다. 그런데 순재네가 무슨 악한 사람들도 아니고 너무 선과 악, 약자와 강자로 분류하려들 하는군요.
순재네가 잔정이나 이런게 없는 사람들이어도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거늘..
현경이가 상주도우미 필요없다했고 사실 옷방외에 방도 없는데 어떻게 쉽게 거둬들일 생각을 할까요? 것도 동생까지 딸렸는데. 여러분은 그게 부자니까 쉬운 결정이라고 보십니까?
사실 신애에게 함께 식사도 하게 하고 티비도 맘껏 보게하는 것 역시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데 남의 식구한테 잘 안그럽니다. 지 식구 챙기기 바쁘지..
만약에 순재네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어디서 무슨 돈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할까요? 매월 방값이며 물세며 전기세며 그리고 먹는 것. 둘이 살면 순재네서 먹는것처럼 맛난거 많이 사먹을 수 있을까요? 순재네에게도 세경자매가 플러스지만 세경자매에게도 일부 님들이 열을 올리는 것처럼 마이너스는 아닙니다. 친가족처럼 따뜻하지는 않아도 여러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함꼐 식사하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고 든든함이 된다는걸 왜 모르시는지들..
세경자매 극중 상황이 딱하니 딱하게만 몰고가고 지나치게 현실에 대입해서 생각하고 열올리는거 좀 그렇네요..
사실 옷방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원래 순재네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방인데 세경자매 불쌍하니까 어케 해달라..과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 거리는걸 자제하고 조심하고 좀 더 예의지켜달라는 의견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아가씨가 쓰는 방인데 좀 어케 해달라..와..어이가 살짝 없습니다..실제상황이라면 의도하지 않은 입주도우미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려는 부자집이 있을까요? 그걸 이기적이다라고 몰고가는게 더 이기적으로 봐지는데요. -
시트콤일뿐인데 2010.01.03 18:33
다들 왜케 심각하지;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인 것처럼 말하네 내눈엔 이글이 ' 신데렐라, 언니들에게 받는 구박 심각하다 ' 이 수준으로 보이네 시트콤은 시트콤일뿐 난 웃어넘기는 편이지만 시트콤으로 사회풍자를 한다고 해도 그 의도를 알았음 조용히 사회 문제점을 생각해보고 고치자 라고 하면 되지 무슨 등장인물을 실제 인물처럼 사생활이 어쩌고.. 이러다 인복위에 신고하시겠어요???
-
제생각은요. 2010.01.20 12:53
밑에 많은 댓글처럼 신애자매가 겪어야할 숙명...이죠. 돈없고 빽없고 비빌자리없고..할줄 아는거 없는 애들이니 냉혹한 현실에서라면 더하면 더했을수도 있지만..시트콤이니 저정도만 당하는거죠..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다가 사람좋은 사람 만나면...글쓴이 님 말처럼 책상이라도 놓아주고 방도 하나 쓰게끔 해줄수도 있겠지만...그러기가 어디 쉽나요. 자립센터도 아닌이상 그런기회 얻는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글쓴이님 얘기가 사실 틀린말도 아니지만 수많은 댓글처럼 현실이라면 저것도 감지덕지로 보여집니당. 여자애들이 갈곳도 없다면 어디가서 저렇게 살수가 있겠어요. 몸하나 안전하게 뉘일수 있는 공간있는게 ..정말정말 다행이지요. 리얼이라면요....식모살이처럼 하다가도...이상한 오해뒤집어쓰고 쫒겨난다던가 주인남자한테 추행이라도 당한다던가..뭐 많잖아요. 힘없는 애들이니까요.그런정도는 아니고 평범하게 (보호랄것도 없이!) 선을 지켜주는 집안으로 묘사된걸로 보여요. 대신 깔짝깔짝 괴롭히긴 하지요..시트콤이니까요~~ㅋ -
00 2010.02.06 00:36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저 자그마한 방에 출입문이 두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부엌쪽 출입문 하나. 복도쪽 출입문 하나... 이곳의 용도는.. 수납용 부속실로 지어진 곳이죠...
어디서나 손 쉽게 들락날락하며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넣어두거나 꺼내거나....
세경이 이곳에 머문다고 해도. 원래의 용도대로 가족들이 사용하는 건... 머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럼 없이 드나드는게 더 세경을 식모가 아닌 가족으로 느끼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세경과 신혜만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이 더 쓸쓸할 것 같네요.
그리고... 가족들끼린 서로의 방에 편하게 드나들잖아요. 물론 새벽엔 좀 그렇지만... -
참나 2010.02.06 14:36
따뜻한방구석에서 엄마가해주는밥먹고 맨날 그게일상인것들은 모르는거지요
요즘세상에 순재네 처럼 해주늕집안이어디또잇습니까? 부모자식간에도 연끊고사는세상에
저정도면 양반입니다 생판남을 저렇게자기집에받아주다니요
배부른소리하고앉앗네요정말 막말로 저게 만약 실제상황이엇다면 당신이도와줄겁니까?
당신집에 데리고 와서 60만원주고 방하나주고 책상놔주고 밥주고 다할거냔 말입니다
시트콤을시트콤답게 바라봣으면 좋겟네요 가볍게즐기란말입니다 시트콤보고
나똑똑합니다하고 분석하지 마시구요 이거 분석하고 가상인물인 세경이한테 싸구려 동정을 줄바에야 주변에 수많은 불우이웃을도우세요 -
. 2010.02.06 15:11
너무 감정적이시네요.
중학생인 친구들이 자주 주인장님과 같은 말을 합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평가하는 기준에 사랑이 들어간다하듯,
처음부터 세경자매가 예쁘고 측은하기만 해보인 사람들은 같은 말을 하겠죠.
하지만 의도된 것이고 캐릭터에 치중하지 않고 보면 이해하실텐데요?
저는 오히려 동정을 사는 설정이 뭣해 둘을 볼 때 껄끄러웠습니다.
또 다른분들 의견처럼 경력없는 20대초반의 여자가 어린동생까지 있는데 받아주는 것만으로
비현실적 정을 사는 가족같은데..
해리라던가의 순간적 멸시행동에 노파심을 가지시는 듯하네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시길 바랍니다.
진짜 세경양은 그 불쌍한 역으로 인기를 얻고있으니까요. -
흥미롭네요 2011.10.12 01:46
연출자님의 의도를 보면 세경의 이 사회의 최약자를 표현하고 그들을 보고 대하는 사회시민의 의식과 행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김병욱피디님의 작품은 소설같아서 참 좋은데 말이죠. 그래서 이런 시트콤으로도 갑을논박 된다는 것이 재미있네요.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는데 답은 없는거닌깐.다만 좀 더 따뜻한 관심의 배려가 필요한 건 맞는거다고 생각되네요.
저도 참 이기적이고 제 삶의 고단함이 최우선으로 살아가다가보니 어느새 더욱 피폐해지고 차가워지더군요. 사람을 대하는 것도 사회를 보는 시선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사람은 정말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란 말!
어차피 나만 잘 살아서 내 자녀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속에서 살 수 없다는 걸 각성할 때
나눔의 기쁨과 생활속에 사회정치도 깨닫게 해주더군요.
아~무튼 전 즐거운 시트콤에서 이런 공론화가 되는게 정말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