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완이 차강진과 산청을 떠나게 만든 것은 강진의 펜던트 때문이었다. 오빠 지용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산청을 떠나야 했던 지완은, 8년 만에 강진을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 하지만,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8년 동안 겪었던 죄책감보다 더 지독한 열병을 앓게 된다. 지완의 상처를 알게 된 강진은 지완을 보내는 방법으로 나쁜 남자가 되는 방법을 택했다. 지완이 보는 앞에서 이우정에게 키스를 하는 방법으로...
지완이 아무말없이 떠나버린 이유가 자신의 펜던트를 찾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던 지용의 죽음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강진은 지완을 보내기로 한다. 자책감의 멍에를 함께 안고 가겠다는, 자신을 보며 지완이 느낄 죄책감과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뜻이리라. 작가는 여전히 지완이 용서받지 못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강진에게는 자책감이라는 굴레를 씌운다. 왜? 그들의 사랑이 더 지독하게 가슴 아파야 하니까.
한지완의 시계는 다시 움직이려 하는데 이제는 강진의 시계가 과거 지점으로 가서 멈춰 버렸다. 지완의 오빠를 만난 시점, "우리 지완이 매일매일 행복하게 해주고, 웃게 해줄 자신있어?" 라고 물었던 지점으로 거꾸로 돌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자신을 볼 때마다 오빠 지용을 죽인 죄책감을 떠올려야 하는 지완을 강진은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털어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는 지완을 보기가 너무 아파서 차라리 강진 자신이 아프고 싶어한다. 지완을 밀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가 점점 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렇듯 극단적으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고야 마는 파괴력을 가진 설정들때문이다. 단순하게 머리를 비우면 가볍게 앓고 넘길 수도 있을 사춘기적인 감상코드들인데도, 감칠맛 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는 단순히 머리를 비울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치명적으로 사랑에 중독된 사람처럼 한예슬과 고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어 버린다.
춘희와 지완의 멈춰버린 시간
그래서 그녀가 부여잡고 살고 있는 한준수(천호진)이라는 이름은 순수한 사랑을 대변하듯 고고하기까지 하다. 한준수와 대조적으로 차춘희의 사랑은 그녀의 촌스러운 화장과 옷차림만큼 싸보인다. 차춘희식 복수는 그녀가 팔았던 웃음과 몸만큼이나 싸보이고, 성장통을 앓는 소녀적 감상처럼 미성숙한 사랑이다. 이는 30년전에 차춘희의 시계가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남자를 빼앗기고, 그 남자에게서 마저 버림 받았다는 상처의 시간에서 일보전진 일보후퇴도 하지 않은 소아기적 굴절된 자아가 차춘희에게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같은 아니 어린아이 같은 투정과 두 아들에게 보여준 모성은 심히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다.
뻔한 스토리에도 빛나는 배우들
그럼에도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차춘희라는 싸구려 인생은 여배우 조민수에게서 새롭게 태어난다. 조민수는 춘희를 통해 그녀의 아들 차강진처럼 그녀를 보듬어 주고 싶고,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소녀의 소아병적 집착증이 공감을 얻는 것은 빨주노초파남보의 화려한 스타킹색깔 만큼이나 차춘희의 감정이 색색깔로 드러나 이해와 동정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을 끄는 힘은 드라마 소재보다는 열연하는 배우들의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연기력때문이라는 게 1회부터 8회까지 시청하면서 느낀 것이다. 특히 무게감 있는 한준수 역 천호진의 절제된 연기와 속곳까지 드러내는 듯한 바닥인생을 보여주는 조민수의 연기는 극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 거기에 설레임과 연민의 두가지 색깔을 가진 고수의 투명한 눈빛은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혹시라도 강진이 한준수와 차춘희 사이의 아들이라면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이복남매의 사랑이라는 막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작가가 또 다시 이복남매의 막장코드를 선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제발 그런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소재로 시청자들 가슴에 못을 박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머리에 총 맞는 기분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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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돌양 2009.12.26 11:20 신고
우하하하하 오늘은 2등입니다.
이제 누리님이 크눈올에 푹 빠지셨군요. 앞으로 명품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진짜 강진이와 지완이가 이복남매라면 정말 슬플것 같아요 아 역시 울나라 드라마는 막장이여야 하는구나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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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2009.12.26 13:00
고수가 나와서 너무 좋은..ㅎㅎ
배우들 연기도 너무 좋구요.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언급하셨듯이 이복남매 어쩌구 할까봐.. 심하게 감정이입했다간 제대로 뒤통수 맞을 것 같아서. 설마 그렇게까진 아니겠지 하면서도 '여기까지. 더이상은 안돼' 하면서 보게 되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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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2009.12.26 13:39 신고
남지현이 나오던 1회를 미용실에서 잠시 살짝 보고서는
아직도 제대로 본적이 없었네요.
초록누리님이 쓰신 글로써 줄거리를 대충 짐작합니다.
요즘 재미있는 드라마가 너무 많네요...^^ -
ㅎㅎ 2009.12.26 13:55
드라마를 보진 않지만 왠지 궁금해서 님 리뷰를 읽었는데 오랜만에 수준있는 리뷰를 읽은 것 같아요~ 짧지 않은 리뷰이고 드라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읽었지만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쭉 읽어내려왔고 단박에 드라마 내용까지도 이해가 되네요 ㅎ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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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gnman 2009.12.26 15:14 신고
아..이 드라마에 조민수씨가 나오나봐요.
참 오랫만에 얼굴 보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제가 본 건 모래시계가 거의 마지막인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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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2.26 16:59 신고
한두번 봤는데 아내가 이경희 작가 드라마를 좋아해서
다음주 부터 봐야할 듯 해요
말씀대로 이복남매로만 안되면 좋겠네요
해피 주말이에요 -
초록누리님은 드라마를 2009.12.26 23:09
띄엄띄엄 보시나 봐요. 강진이랑 지완이가 이복남매일 가능성은 0% 지요. 차춘희는 산천을 떠난후 20년 만에 다시 산천을 찾았고 한준수와 다시 만난건 20년 만인데 강진이는 그때 열아홉이거든요. 그리고 한준수와 그 아내 사이의 첫아들 한지용은 대학생이구요. 드라마 좀 띄엄띄엄 보지 마시고 제대로 보시고 제대로 비판하시길 바랍니다. 이복남매의 가능성이라면 당연히 우정이과 강진이 아닐까 싶네요. 꼭지, 미사, 고맙습니다의 작가인 이경희님 시나리오에 뻔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니... 차춘희가 용다방 봉고 아래서 건달에게 맞을때 한준수와 서로 바라본다는 설정같은 게 고리타분하고 뻔할 수가 있나요? 지완이 강진을 만나고 무조건 밀어내야만 뻔한거죠. 지완은 8년이나 미안했으면 됐다면서 삼킬 수 없어하면서도 강진을 만나려 하잖아요. 이런 설정이 뻔한 설정이라니. 뻔하고 고리타분하려면 지완은 어떻게 되었든 강진이를 밀어내야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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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9068 2009.12.28 20:22
이경희 작가님의 드라마에 뻔하다는 설정을 이야기 할수가 있는 초록누리님이 대단하네요
난 이드라마를 보면서 다른 드라마 작가라면 당연히 저렇게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랍니다 요즘 드라마들은 오직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재벌남과 사회의 앨리트 집단과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생 종치는 결혼 생활로 그려져서 보기 싫은데..
드라마 작가들이 결혼은 여자들의 신데렐라 환상을 자극하여 있는 자들의 결혼은 행복이고 일반 회사원들은 찌질이 인생으로 만들어놓은 한국의 대단한 작가들. 불륜과.온갖 막장을 동원하고 아름다운 결혼 생활의 의미를 없애주시는 작가들 이경희 작가님을 그런 작가와 비교하나요
뻔한 설정= 삼각.조민수와 천호진의 관계 이런거.. 지금까지의 이경희 작가님은 뻔한 스토리로 드라마를 이끄는 막장 작가는 아닙니다 풀어가는 과정이 막장 작가들과는 다르다는것에 저는 이경희 작가님의 드라마는 챙겨봅니다 이경희 작가님의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뻔한 설정과 시청률만을 생각하는 작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고로 저는 마니아는 아닙니다
이경희 .인정옥 이런분들의 드라마를 좋아할뿐-
느티 2009.12.28 22:11
저도 이 분 말씀에 공감합니다. 작가의 역량은 설령 뻔해보인다 싶은 스토리라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도 달려있다고 보거든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경희, 노희경, 인정옥 같은 분들이지요. 그리고 이경희 작가가 복선을 많이 까는 작가이긴 하지만, 적어도 시청자들이 금방 엮어볼 수 있는 이복남매 코드로 그대로 가지는 않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너무나 쉽게 눈맞고(이건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쉽게 같이 자고 쉽게 헤어지는 드라마가 난무하는 가운데,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 아파서 마음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감싸안고 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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