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3 12:03




드라마 추노의 중심 줄거리는 사람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도망노비를 쫓고, 또 그 노비를 쫓는 자를 쫓는 꼬리잡기 게임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 표면에 보여지는 그림에 불과합니다. 정말 드라마 추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지요. 추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시대를 거슬러,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거슬려 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드라마 추노에 흐르는 중심 줄거리는 대길과 언년의 엇갈린 사랑, 그리고 그들의 운명이 한 축을 이룬다면, 더 큰 기둥은 이대길과 송태하, 그리고 업복이라 대변되는 하층민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요. 쉬운 말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 민중운동사 측면에서 보자면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중 이대길이 꿈꾸는 세상에 가장 관심이 크고, 또한 지지하고 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이대길이 될 수 밖에 없는 까닭과 대길이 꿈꾸는 세상을 지지하는 이유를 피력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이대길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글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혹시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링크 걸어 두겠습니다. ('추노' 대길의 비밀, 돈은 어디로 갔을까?) 제가 지난번에 이대길의 비밀과 정체, 그리고 돈의 행방에 대한 추측글을 올리면서 이대길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제 생각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저는 이대길 역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혁명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이대길이 추노꾼으로 번 돈의 행방과 월악산에 거사를 위한 산채를 마련하고 있을 가능성, 그리고 이대길이 언년이를 업고 가면서 했던 말을 단서로 제시했는데요, 다시 그 장면 대사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길: 과거에 급제할 거야.
언년: 그 다음에는요?
대길: 아주 높은 벼슬을 할거야
언년: 그 다음에는요?
대길: 나라를 바꿔야지.
언년: 어떻게요?
대길: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거다. 평생...
추노의 쫓는다는 의미를 뒤집어 보니 참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더군요. 이를테면 송태하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쫓는 입장으로 바꿔보니, 송태하는 그가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 그에 반하는 인물들을 쫓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좌의정 일파와 그들이 대변하는 썩은 정치를 쫓게 되겠지요. 대길이와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대길이나 업복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기득권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역모성을 띠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꿈꾸는 세상 역시 지배세력의 이해관계와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송태하의 문제는 정치적 힘이 없다는 점입니다. 고양이 앞의 쥐 신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고양이 잡으려다 도망가는 쥐의 형국입니다. 대길이와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힘없는 약자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따라서 대길이와 업복이 역시 이경식과 황철웅으로 대변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쫓김을 받는 신세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역으로 세사람, 혹은 세 이익집단을 바꿔놓고 보니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는 모두 조선의 현 정치세력의 적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네요. 마찬가지로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은 다르지만, 좌의정이라는 정치세력이 세 사람의 공동의 적이 됩니다.
이들은 지금까지는 왜 쫓고 쫓기는지 서로 모르고 있어요. 다만 돈때문에(대길), 대의를 위해(송태하), 개인적인 원한과 당으로부터의 명(업복이)때문에 쫓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요. 업복이의 경우는 대길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쫓고 있지만, 그가 화승총으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낼 인물들은 양반이라는 지배계층들이지요.

그런데 말처럼 세 사람이 손잡고 동지가 될 수있을까?에 대해서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한 분석과 계산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친구는 될 수 있으나 동지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적으로 한편이 될 수는 있겠지만요. 그 이유는 세 사람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송태하를 대변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보기로 하지요. 송태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철저히 양반이라는 제도권 틀안에서의 개혁을 꿈꾸고 있지요. 송태하는 언년이와 도망하는 중에, 그리고 정호빈(지인이라고만 했기에 극중 이름은 모르겠네요)에게 자신이 노비가 아님을 강하게 어필합니다. 이마에 노(奴)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지라도 그는 뼈속까지 양반이에요. 양반이라는 제도적 신분은 뛰어 넘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기존 신분질서 내에서의 개혁이에요. 일종의 위로부터의 혁명 즉, 부르조아 혁명의 범주에 속하지요. 
업복이는 송태하와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업복이가 꿈꾸는 세상은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 그 자체를 엎겠다는 것이니까요. 극단적인 아래로부터의 혁명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 할 수 있지요. 아마 레닌을 만났다면 둘이 할 얘기가 많았을 사람들입니다. 추구하는 이념도 방법도 비슷할 수 있고요.
그럼, 이대길이 꿈꾸는 세상과 송태하와 업복이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요?
이대길이 꿈꾸는 세상은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이에요. 그리고 나라를 바꾸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어요. 그의 말 속에는 신분제를 타파하겠다는 선진적인 혁명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송태하나 업복이 보다 혁신적이고 전진적인 이념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지요. 
송태하나 업복이는 신분적인 한계는 뛰어넘지 못한 인물들이에요. 송태하는 양반이라는 신분계급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업복이 역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만이 바뀐 새 신분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송태하나 업복이가 꿈꾸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요. 

제가 이대길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대길의 평등세상론을 지지하기 때문이에요. 이대길은 조선의 제도적, 정치적, 사회적 지배관계의 틀인 신분제를 혁파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길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선구자적인 인물이지요. 이것이 제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세 인물들 중 이대길의 생각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세 사람은 이념은 다르고 추구하는 세상도 다르지만 한 지점에서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세 사람의 적이 같기 때문이지요. 공통의 적이 좌의정으로 대변되는 권력집단과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임금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또한 방법적으로 불가피하게 물리적인 폭동, 혹은 충돌이 수반됩니다. 정치권력과 양반들을 설득해서 니네들 자리 다 내놔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유혈사태까지 불사하겠지요.
결국 지배계급의 거대한 힘에 의해 이들은 좌절하고 꺾이고 말 것입니다. 성공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겠지요. 근접하게는 동학농민전쟁이나 장길산, 임꺽정이 관군에 의해 토벌되었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길거리 사극 추노는 비록 이해관계와 목표는 다르지만  이렇듯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같은 작은 물줄기들이 강으로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는 어느 한 지점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습니다. 온 몸으로, 죽음으로 항거했던 민초들의 움직임이 비록 당시에는 강줄기를 바꿔놓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저항이 모여 미세하게나마 강둑을 허물었고, 끝내는 바다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났음을 말하는 겁니다. 

조선은 일제에 의해 무너진 것만은 아니었어요. 끊임없이 항거해 온 민중들의 저항이 조선이라는 완고한 틀을 조금씩 무너뜨렸던 것이지요. 작은 돌멩이들의 외침들이 쌓이고 쌓여, 실개천같은 물살이라 할지라도 강둑을 무터뜨려 왔던 것이지요. 신분없는 평등사회를 꿈꾸고, 부패정치를 바로 세우려 하고, 신분의 벽에 맞서 싸운 수많은 대길이와 송태하, 그리고 업복이들에 의해서요. 그리고 다음 세대에 또 다른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들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21C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 한 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신분없는 평등세상에서요.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세 인물들 중 가장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평등론자 이대길이 꿈꿨던 세상에서 말이지요.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이 이대길일 수 밖에 없고, 또한 제가 이대길이 꿈꾸었던 세상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대길이 한낱 추노꾼에 불과하지는 않은 인물일 것이다라는 전제하에서지만요.
<관련글 : '추노' 대길의 비밀, 돈은 어디로 갔을까? (http://lovetree0602.tistory.com/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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