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6 07:22




추노 10회는 어느 회보다 감정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지요. 대길이와 큰놈이, 곽한섬과 궁녀, 그리고 만득이를 보내는 천지호 등이 그러했습니다. 인간의 말초적 감정까지 건드려 주면서도 자칫 정적으로 흐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치 않았던 탄탄하고 꽉찬 전개에 정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 파트에서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버렸습니다. 바로 추노가 자랑하는 최고 미녀 언년이와 조선 최고의 무사 송태하 커플의 키스신이 아니었나 싶어요. 상황이 너무나 절박헀고, 더구나 원손 석견의 안위가 걸려있는 상황에서의 애정신은 옥에 티일 정도의 무감동, 이해불가한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미는 좋았습니다만, 영상미에 치중한 나머지 줄거리의 맥을 끊어 버려 시청자들의 송태하와 혜원의 사랑에 냉담한 반응만을 불러 온 것 같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꽃은 유난히 귀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추노 10회에서의 두 남녀커플의 사랑이 그랬어요. 그런데 절벽위에 핀 꽃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더 아름다운 것도 있고, 저기 왜 매달려 있나 싶은 것도 있나봅니다. 혜원과 송태하의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보다, 곽한섬과 궁녀의 꺾여버린 꽃이 더 아름다워 보였으니까요. 어제 올린 글 감동커플과 쌩뚱커플의 남남커플에 이은 남녀커플부문에서 제가 뽑은 최고의 감동커플은 곽한섬과 궁녀커플이고, 최악의 쌩뚱어색커플은 혜원과 송태하커플이에요.

키스신마저 외면당한 최악의 무감동 커플, 송태하-김혜원
곽한섬이 궁녀와 원손 석견을 데리고 도망친 집에 관군이 몰려와 송태하와 언년을 포위하였지요. 밧줄엮기로 굴비 엮듯 줄줄이 때려눕혀 버린 송태하입니다. 그런데 관졸 하나가 혜원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지요. 활은 송태하의 왼쪽 팔을 관통했고, 언년은 속치마를 찢어 장독대에서 어떤 액체를 적셔 함께 도망을 칩니다. 물론 손을 꼭 잡고서 말이지요.
한섬이 지나간 동굴에 이른 송태하는 궁녀의 벗겨진 신발 한짝을 집어 들었지요. 여기서부터 이들의 쌩뚱맞은 대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매회가 글을 읽는 듯한 대사지만, 절박하게 원손을 구하러 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참으로 여유롭기만 합니다. "누구의 신발입니까?" 언년이 물었지요. 아니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척 보면 누군가 흘리고 갔겠구만... "원손마마를 모시던 궁녀의 것인듯 합니다"  계속 가려는 송태하에게 쇳독이 오르면 큰일 난다고, 치료부터 해야겠다며 장독대에서 가져온 정체불명의 약을 떨어뜨려주고 팔을 꼭 싸매 주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삐리리~ 물론 이런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은 알지만, 한시가 급한데 삐리리할 정신이 어디있을까 싶네요. 언년의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숨가빠 죽겠는데 말은 어찌 그리도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주고 받는지 속이 터져 죽는줄 알았습니다. 
"마마는 무엇이고 궁녀는 또 무엇인지요?" "여기서 만날 분이 승하하신 세자저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럼 임금님의 손자라는 말인가요?" "임금님의 손자가 왜 도망을 다니나요?" "그분을 구하면 나중에 임금이 되시나요?" "임금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나요?" "어떻게 바뀌나요?"
이런 공부는 지금 할 때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러니 두 사람의 감정선에 몰입이 안되는 것이고요.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느긋하게 삽질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그런데 다음 대사와 장면은 더 어이없었네요. 큰일하시는데 방해되지 않고 싶다며 혼자 가라는 언년이에게 송태하가 말합니다. "남녀가 유별하지만 손은 계속 잡겠습니다. 뛰어가야 되니까요" 추노에서 나오는 그토록 훌륭한 대사들 가운데 이렇게 뜨아~하고 깨는 대사는 없었을 듯 싶었습니다. 남녀유별한데 손은 잡겠다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숱하게 손은 잡더구만, 뭘 새삼스럽게... 그리고 뛰어가야 되니까 손을 잡는다니 언년이는 손 안잡아주면 못 뛰나요? 물론 언년이의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겠다, 그리고 지금 급하게 가야한다 이런 뜻이었겠지만, 프로포즈 비슷한 말과 대의의 뉘앙스를 엉뚱하게 버무려놔서인지 황당한 대사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감정선을 넣고 있으니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설득력도 없어보이고, 심지어는 얄미워 보일 정도입니다. 삐리리 감정도 상황에 맞춰서 보여줘야지 이건 아니지 싶네요. 

한섬과 원손 석견을 먼저 보낸 송태하가 황철웅과 멋지게 한판 떴는데요, 보니까 왼팔에 화살이 관통했었나 싶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팔을 사용하더군요. 심지어는 왼손 오른손 마치 공놀이를 하듯 칼까지 바꾸는 기술도 보여주면서 말이지요. 화살이 스치기만 했어도 팔을 사용하기가 불편했을텐데, 언년이가 발라 준 약은 신기의 명약인가 봅니다. 뭔지 무지 궁금하네요.
다음 회에 언년이가 다친 팔은 괜찮으신가요? 뭐 이러면서 치료해 주겠다며 혹시 두 사람 다시 삐리리 연출할 지도 모르겠어요. 송태하는 갑자기 팔이 아픈 척 할거고요. 저는 이런 장면이 싫습니다. 언년이 칼에 맞고도 멀쩡했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가 하는 요상스런 장면도 그렇고,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다쳐서 서로 치료해 주면서 야리꾸리해졌다가 다음날이면 언제 칼에 맞았나, 혹은 화살에 맞았나 싶게 멀쩡해져 버리니 억지로 감정선을 만들려고 너무 애를 쓰신다는 생각만 드네요.
 
배산임수 명당자리에서의 위태로운 키스
원손과 한섬을 구한 송태하는 꼭 데려와야 할 사람이 있다며 한섬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길을 되짚어 달려갔지요. 위험한 일을 하기 위해 앞서 갔던 송태하에 대한 걱정도 뒷전인 듯 혜원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그림처럼 앉아있는 혜원은 마치 꽃따러 간 낭군님을 기다리는 듯한, 그야말로 한송이 꽃과 같이 아름다운 봄처녀 같습니다. 
언년이 앉아 있던 절벽 아래에는 관군들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고, 조금 전에는 피 튀기는 칼싸움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물론 언년이는 못봤겠지만요. 여하튼 칼을 가지고 자신을 기다려 준 언년이와 절벽위에서 위태로운 키스를 나눕니다. 뒤에는 산이 버티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진 절벽에서요. 천지호가 만득이 묻어주면서 말했던 배산임수 명당자리입니다ㅎㅎ.
저는 이 키스신을 보고 영상은 아름다웠지만, 세 가지 의미에서 위태롭다는 생각만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대길이에 의해 위태로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송태하가 하려는 일에 혜원이가 함께 엮여갈 것이기에 벼랑끝에 선 두 사람의 모습처럼 위태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번째는 시청자 입장에서 위태롭게 보였습니다. 아직은 여기까지 진전되는게 지나친 감이 있어서 이 커플이 그닥 사랑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10년간 대길이를 마음에서 놓지 않았던 언년의 감정변화도 배신감이 컸지만, 큰일을 하겠다는 송태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느낌이 들었어요. 여전히 두 사람의 감정선이 쌩뚱맞아 보이는데 키스까지 시켜버리니, 그 순간 제게 든 생각은 "송태하, 지금 제정신이야!" 였어요. 원손 석견마마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그 상황에서 언년에 대한 감정이 먼저였을까 석견에 대한 의무가 먼저였을까 심히 혼란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송태하와 언년이는 한가하게 탱자탱자 애정놀음이나 하면서 팔도유람할 처지들이 아니에요.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중에 누가 더 절박할까요? 당연히 쫓기는 자 일겁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온다면, 그것도 목숨을 노리고 쫓아온다면 젖먹던 힘 아니라, 우사인 볼트같은 속력을 내서라도 도망쳐야 하는 게 마땅하지요.

그런데 송태하와 언년은 그런 긴장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송태하와 언년이의 사랑에 호응도, 그리고 지지도 못하는 이유는 극과는 동떨어져서 둘만의 허니문을 즐기는 듯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랑이 싹틀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그런데 매회 그 쌩뚱맞고 어색한 대사들과 억지스러운 장면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네요. 
주인공들임에도 불구하고 언년이와 송태하처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커플이 있을까 싶습니다. 무사가 칼을 두고 간 것은 다시 오겠다는 뜻이라는 말을 믿고 망부석처럼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언년이와, 제주도까지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원손을 구하는 일에 막간(?)을 이용해서 사랑놀음까지 한 송태하 커플은 10회 최악의 무감동 커플이었습니다. 

이름도 불러보지 못한 짧은 사랑의 감동커플, 곽한섬-궁녀 장필순
추노 10회에서 가장 절절하게 눈물샘을 자극했던 커플이 이름자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끝나버린 곽한섬과 궁녀의 사랑이었어요. 집에 수천마지기 땅이 있다는 말도 금송아지 열두마리 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지만, 호강시켜준다는 말은 참말이라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보여주지 않았던 궁녀의 마음을 녹였지요. 번듯하게는 못살더라도 반듯하게는 살겠다는 한섬의 고백은 궁궐의 지엄한 궁녀법도도 버리고 싶어집니다. 

궁녀는 자신의 이름자를 물어 준 한섬에게 이름을 말해주려는 순간 황철웅이 던진 죽창에 쓰러지고 말았지요. 마마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힘겹게 가르쳐 준 이름은 장.필.순, 집은 한양 피막골이라면서요.
"호강시켜준다고 했잖아"라며, 애타게 우는 한섬과 궁녀때문에 저도 많이 울었네요. 사랑이 금지된 궁녀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금지된 사랑을 하고 싶었고, 마음을 주고 싶었던 사내 한섬의 얼굴을 만지며, 애절하게 바라보다 숨을 거둔 궁녀와 한섬의 오열은 눈물없이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어요.
화살이 날아들고 칼부림으로 피가 튀는 현장에서도, 왕비같은 침착함과 우아함을 잃지 않는 언년이에 반해, 정말로 궁궐에서 언어교육을 받은 궁녀의 말투는 기품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전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시청자들도 애가 바짝바짝 타들어 가게 했어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궁녀의 얼굴을 땅바닥에 놓고 절규하는 곽한섬의 분노와 슬픔에 찬 눈빛은 드라마 추노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을 말하고 있었어요. 추노에는 곽한섬과 같이 소박하지만 반듯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분노가 응축되어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신분의 벽으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의 분노가 말이지요. 

시신을 수습해 주지도 못한채 원손을 데리고 도망가야 하는 곽한섬, 마지막까지 원손을 구하고 간 궁녀의 짧은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개차반 관졸로 멸시를 받으면서도, 석견을 보호해야 하는 명이 중했기에, 비밀을 밝히지도 못하고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흠모했던 여인이 자신을 향해 처음으로 웃어주었는데, 끝내 이름 석자도 똑똑히 듣지 못하고,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사랑으로 끝나버린 추노 10회 최고의 감동커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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