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8 23:00




드라마 추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이 시청자들의 감시망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에요. 추노가 방송된 이후에는 많은 분들이 추노를 분석하고, 감동받은 부분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때로는 도마질까지 하고 있지요. 대사 한마디없는 원손 석견에서 천지호패거리의 개죽음까지 분석하고, 또한 줄줄이 죽어나간 조연들까지지 화제가 되고 있으니, 놀라운 반응이지요.
이번에는 추노 제작진으로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연출한 언년이와 송태하의 키스신까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 관심은 그만큼 추노의 인기가 높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시청자들의 드라마 완성도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요. 저 역시 추노는 과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비판을, 때로는 드라마속 숨겨진 의미와 비밀들을 찾기 위해 머리 아플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하며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 하나 보면서 뭘 그렇게 따지느냐며 대충 보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드라마 리뷰를 생각없이 올릴 수는 없기 때문에 적당히 보는 것이 제게는 어렵네요.

지난 10회에서 언년이와 송태하의 키스신은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최악의 장면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올리고 나서 여러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장면의 쌩뚱맞음에 대한 비판을 했고, 그리고 생뚱맞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두 사람의 감정선이 와닿지 않는다는 말도 했지만, 캐릭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피한 것 같아서 말이지요.
제가 지난 주 토요일 일요일 휴일 동안 생각해 봤던 것은 언년이라는 캐릭터였어요. 1회부터 10회까지 다시보기를 하면서 언년이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소위 언년이때문에라는 언년이 민폐리스트까지 돌고 있는 현재 언년이의 캐릭터가 비호감으로 돌아 선 가장 큰 이유가 드라마 속에 있지 않을까 찾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도 언년이 민폐리스트를 읽어봤는데, 참 재치있는 이유들이고 또 어느 정도는 이유가 되기도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언년이에 대한 비호감의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의 불분명함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방송된 추노를 다시 보니 언년이는 송태하를 만난 것을 분기점으로 캐릭터가 변질 혹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회에서 언년이는 대길의 회상을 통해 처음으로 추노에 등장했었어요. 언년이에게 따뜻하게 달궈진 돌을 쥐어 주는 장면이었지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러셔요" 라며 대길을 밀치는 장면을 기억하실런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당시 언년이의 표정과 대사는 지금의 어색함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대사 역시 자연스러웠어요. 병자호란시 마루밑에 숨어있던 도련님을 향해 "도련님, 도련님"  하면서 끌려가는 모습 역시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애절해 보였고요. 혼례를 올리는 날 오라비 큰놈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역시 연기력이나 표정에 있어 문제 삼을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언년이가 캐릭터의 난항을 겪은 것은 보부상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 때부터인 것같습니다. 이때가 송태하를 만나게 된 시점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후 가장 많이 대사를 주고 받은 인물이 송태하지요.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장면부터 언년이는 표정도 대사도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규방마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년이는 줄잡아 20대 중후반의 여인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언년이는 얼굴은 20대인데, 대사와 분위기는 40대의 지체높은 집안의 안방마님이 연상됩니다. 언년이가 실종된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패랭이를 쓰고 집을 나오던 20대 조선 여인의 비장한 모습은 싹 감춰버린 채로 말이지요.  
길거리에서 자객 윤지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 할 때도, 화살이 날아들고 칼부림이 나는 현장에서도 언년이는 고고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 고고하고 우아함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가 바로 절벽위에서 송태하의 칼을 가지고 기다리던 장면이었어요. 송태하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하러 간 것을 알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극의 흐름을 깨버리는 장면이었기에 언년의 캐릭터는 심한 질책을 받아야만 했어요.
마찬가지로 원손의 안위를 팽개치고 달려갔던 송태하가 욕을 먹어야 했던 것이었고요. 물론 송태하가 언년이를 데리러 간 것까지는 이해했을 겁니다. 여자를 버리고 갔다면 송태하 역시 사내답지 못했을테니까요. 그런데 일각이 여삼추인 절박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키스까지 했으니 시청자들은 분개했던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언년이는 집을 나선 이유도 목적지도 없는 채 그저 송태하의 길을 지체시키거나 일을 그르치게하고, 혹은 주변인물들을 죽게 만들어 버리는 그야말로 문제아가 돼 버린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송태하의 스승 임영호를 죽게 한 것도, 호위무사 백호의 죽음도 다 언년이때문에 비롯된 것이니까요. 언년이 민폐리스트가 근거없이 나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은 대길과 교차해서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요. 
문제는 키스신이나 그 들의 애정행각에 있지 않습니다. 보다 큰 문제는 언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원인을 따지자면 언년이와 송태하, 그리고 제작진의 공동책임입니다. 개인적으로 연기자 오지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만, 오지호와 이다해는 서로를 죽이는 캐릭터이지 싶습니다. 오지호의 책을 읽는 듯한 대사톤에도 문제가 있고, 이에 같이 글을 읽듯이 받아치는 이다해도 문제가 있지요. 연기자는 상대방의 감정에 함께 서로 호흡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문제는 비슷한 연기자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지요. 흥을 깨는 호흡인데도 말이지요. 누가 누구를 죽이는 캐릭터라고 꼬집어 말하는 것은 실례지만 암튼 둘 다 캐릭터를 죽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우선은 언년이가 옷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년이는 현재 입고 있는 고운 한복 속에서 갇혀 있습니다.  흔히 옷이 사람을 말한다는 말을 하지요. 언년이는 사대부 양반아낙의 정절과 지체를 상징하는 옷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여종 옷을 입은 언년이는 여종 중에 참한 정도의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방마님의 옷을 입고 도망관노와 도망을 다니는 처지에 있어요. 언년이는 그 옷 속에 갇혀있는 것이에요. 옷에 맞는 언행을 하려니 품위는 갖춰야 하는데 상황은 급박하고, 그러다보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도 우아하게 자수를 놓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러니 답답하고 어울리지도 않지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옷은 단지 복색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언년이가 입은 옷은 언년이에게는 가짜 옷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언년이는 죽을 때까지, 아니 신분제가 폐지되거나 면천될 때까지 여종일 수 밖에 없고, 도망노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언년이가 집을 나온 것은 지금까지의 가짜 인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가짜 양반행세에서도 벗어나고, 사랑하는 도련님에 대한 일편단심을 지키고 싶었기도 했고요.
그 옷을 찾아 입혀주자는 것입니다. 언년이가 진짜 입고 싶었던 옷말이지요. 언년이가 반가의 규방마님이 되고자 했다면 굳이 집을 나설 이유는 없었어요. 언년이가 집을 나선 이유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가짜 세상에서 도망나왔던 거예요. 그런데 송태하를 만나면서 다시 그 가짜 세상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갈하게 송태하의 옷을 개켜주고, 숨이 헉헉 차는 연약하기만 한 여인으로 말이지요.
추노의 주인공들은 모두에게는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무엇인가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혹은 궁핍한 삶속에서도 희망을 기다리고 있고요. 그러나 추노의 여주인공만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송태하의 손만 잡고 따라가게 만들어 버렸어요. 이런 여주인공은 매력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럴리야 없지만 누가 압니까? 언년이가 대길이 말한 새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으로서 야무진 꿈을 가지고 집을 나왔을지도요.
하루 빨리 언년이의 캐릭터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언년이가 지금의 답답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언년이는 그림 속의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추노꾼 이대길의 오늘을 있게 한 중심인물이 이렇게 갈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다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아름다운 언년이는 있으나 사랑받는 언년이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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