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11 08:57




추노가 11회를 분기점으로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 들었습니다. 모든 인물들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적인 연결선상에 놓여 있게 된 거지요. 목적지도 목표도 없었던 혜원까지도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드라마의 얼개가 짜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극의 흐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면서 이번 회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쉬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봤어요. 특히 왕손이와 최장군의 여염집 아낙 홀리는 내용은 무거운 주제 속에서 웃음을 주었네요.
귀염둥이 왕손이의 카사노바 뺨치는 작업 못지않게, 한양구경 처음 나온 듯한 최장군의 촌뜨기 모습도 코믹했어요. 자칫 외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던 왕손이의 제비질은 유머와 해학으로 맛깔나게 그려서 이번회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같습니다.
큰주모와 작은 주모가 그렇게 꼬리를 살랑살랑 쳐도 넘어가지 않던 최장군의 목석같은 마음도 들썩이게 만들어 버린 왕손이의 여자꼬시기 실력은 조선팔도 최고이지 싶어요. 아마 왕손이가 마음만 먹으면 봉이 김선달처럼 대동강물도 팔아 넘길 것 같습니다. 도끼질마다 다 성공하는 왕손이의 매력은 왕손이에게 넘어간 여인들만 알겠지만, 실력 한 번 볼까요?
왕손이가 노리는 집은 대낮에 사람들 왕래가 빈번한데도 대문이 꼭 닫혀있는 집이랍니다. 그런 집에서는 문도 계집종이 열어주고요. 집에 남정네가 없으니 문을 걸었다는 거지요. 이런 방면으로는 촌뜨기인 최장군을 데리고 한 집을 두드리니 정말로 계집종이 문을 열어 줍니다. 지나는 길손인데 밥 한 술 얻어먹겠다며 대신 밥값으로 장작을 패주겠다고 하지요. 허락도 안떨어진 집에 무작정 들어간 왕손이는 안방인 듯한 곳을 향해 1차 작업멘트를 날리지요. "백호가 음신의 궁에 있으니... 어허... 참..." 무슨 뜻인지는 최장군도 왕손이도 모른다지요. 무슨 뜻인지 몰라도 암튼 '좋지않은 사기가 집안에 있다'라는 식의 뉘앙스를 흘리는 게지요. 이 집 안방마님은 가슴이 철렁해서 당장이라도 버선발로 뛰쳐 나와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겠지요. 
최장군 웃통을 벗고 복근 열심히 보여주는데, 엄동설한에 이게 무슨 짓이냐 싶은 최장군이에요. 꼭 옷을 벗고 장작을 패야 하느냐고요. 장작패는 남정네의 멋진 근육에 홀딱 반한 계집종은 벌써부터 최장군에게 눈길 고정이에요. 안방의 고고하신 마님이 왕손이를 보기를 청하지요. 왕손이 "얏호! 걸렸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손님께서 천기를 읽으시나요?" 라며 안방마님이 운을 떼니 왕손이 앞가림이나 하는 수준이라며 "천기와 지기를 살펴보니 바깥 양반이...." 하며 말꼬리를 흘리고는 혀를 차주지요. 일단 겁을 주는 것이겠지요.  

놀란 척하는 안방마님이 굿을 해야 합니까 부적을 써야 합니까 물으니 미신은 믿을 게 못된다며 손금을 봐주겠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손금봐주겠다는 것이 남자들 여자 꼬시는 수법인가 봅니다. 문 밖으로 고운 손을 내미는 안방마님이십니다. 이제 반은 넘어 온 거나 마찬가지에요. 왕손이 손을 덥썩 잡고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선수는 다르네요. 방문을 닫아 버리고는 손금만으로는 정확히 읽을 수가 없다고 뻥을 치지요. 족상을 봐야겠다면서요.
양반집 아녀자는 외간 남자에게 절대로 발을 보여줘서는 안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선수 중의 선수인 왕손이는 이런 것도 다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아녀자가 어찌 발을 보여줄 수가 있겠느냐고 하니 할 수 없다며 "편안한 밤 되세요~" 하고는 쌩 가버리는 척하지요.
다급한 안방마님 "손님, 잠시만~" 하고 부릅니다. 게임 끝난거지요. 안방으로 들어간 왕손이 족상을 보겠다며 안방 마님을 홀라당 뒤집어 버리네요. 아랫배에 혈이 잔뜩 뭉쳐있다며 "배꼽밑에 부적 한 장 붙이시지요" 라고 느끼 야시시하게 다가섭니다. "부적은 미신이라고 안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는 안방마님의 질문에 왕손이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는데, "상반신은 의술로 풀고, 하반신은 부적으로 달래주는 법" 이라네요. ㅎㅎㅎ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요.
양반마님 갑자기 계집종 쫑쫑이를 부르니 왕손이 식겁합니다. 이거 잘못하면 경을 치게 생겼거든요. 절개 곧은 마님이었다면 은장도에 비명횡사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왠걸 안방마님 왈, "다른 손님 밥상은 따로 차려드려라"라고 하시네요... 뒷얘기는 뭐 알아서..ㅎㅎㅎㅎ
아무튼 왕손이 위험수위 넘나들며 여자 꼬시는 수법을 보며 한참 웃었어요.
사실 위험수위를 넘을 수도 있는 장면이었음에도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져서 인지 웃으며는 봤지만, 왕손이 여염집 담을 쉽게 넘을 수 있었던 것도 드라마 추노 속에 흐르는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보여준 것이에요. 두 번의 전쟁(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예요. 몰락한 양반가도 많았고 백성의 절반이 노비로 전락했던 시기였으니까요.
왕손이처럼 여염집 아낙과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던 일들도 한 집 걸러 두 집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겠지만, 드문 일도 아니었지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이는 왕실에서 양반집 아낙에 이르기까지 절개와 법도가 무너지고 있었던 혼탁한 시대인 것이지요.   
극중에서는 귀염둥이 깨방정 왕손이가 여자 밝히는 작업쯤으로 유머와 해학으로 버무렸지만, 드라마 속에 흐르는 정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에요. 지체 높은 집 담장이 이렇게 낮아져 버린 조선사회의 부패상을 왕손이가 꼬시는 여인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양반집 담장이 이렇게 낮아졌는데 궁궐 담장인들 낮아지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낮아졌겠지요. 정신병적인 수준의 패도정치를 하고 있는 인조를 쥐락펴락 할 수 있었던 좌의정같은 인물이 많았던 시대였고, 충신과 간신의 구분이 없던 시대였지요. 제각각의 명분을 내세운 밥그릇싸움에 골몰하고 있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고래싸움에 새우등처럼 터져나간 이름없는 민초들의 죽음이 지천에 널렸던 그런 시대를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질서하고 혼란한 시대에 혁명이라는 이름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지요.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고 꺾일지라도 그들이 피우는 꽃이 아름다운 이유, 그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꿨다는 이유때문일 것입니다.
그나저나 대길패의 귀염둥이 왕손이를 연기하는 김지석은 귀티가 흐르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철철 넘치는 대길패의 마스코트 같아요. 익살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진지한 표정을 넘나들면서 웃음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대길이나 최장군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서려있는 있는데 반해, '인생 별거 있어, 즐기고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라고 말하는 듯한 왕손이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인 일에 연루될 수 밖에 없는 대길패거리의 불안함때문인지 세상 걱정 없는 듯한 왕손이가 그나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에요.
여자 홀리기 선수 왕손이는 여자를 가장 많이 알지만, 정작 한 여자도 사랑하지 못한 것 같아요. 왕손이에게도 진짜 사랑이 올까 싶네요. 얼른 철들어서 토끼같은 자식들이랑 여우같은 마누라랑, 밭갈고 쟁기질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왕손이에게 그런 세상이 올지 드라마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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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4 Comment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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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핑구야 날자 2010.02.11 12: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시청율이 뭔지....ㅜㅜ

  3. 루비™ 2010.02.11 12: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왕손이...너무 귀여워요..
    저렇게 작업하면 안 넘어갈 여자 없을 듯..

  4. 카타리나^^ 2010.02.11 13:3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 아무래도.....이 드라마 한번도 못보고 끝날듯해요 ㅡㅡ;;

  5. 홍천댁이윤영 2010.02.11 14:35 address edit & del reply

    왕손이 아주 웃겼더랬지요^^

  6. Phoebe Chung 2010.02.11 14:4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ㅎ재밌네요. 밥상 따로 차려주고 둘은 뭐했을까나... 하하하....

  7. 빨간來福 2010.02.11 15:0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래도 이걸로 말은 많은것 같던데요. ㅎㅎ

  8. pennpenn 2010.02.11 15:3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왕손이 작업을 거는 장면의 해설이 일품입니다.

  9. 2010.02.11 15:52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10. 금성에서 온 여자 2010.02.11 16:0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추노에서 왕손이만 나오면 웃기다는,,
    특히나 어제는 더 웃겼다지요. ㅋ
    잘 읽었어요. ^^

  11. 김삿갓이 아니라 2010.02.11 16:15 address edit & del reply

    작은 오류가 있네요.
    한강물 팔아먹을 김삿갓이 아니라,
    정확히는 대동강물 팔아먹은 사람은 봉이 김선달입니다.
    김삿갓은 떠돌이 시인(?)이고요.

  12. 알렉스 2010.02.11 16:58 address edit & del reply

    역시 여자 꼬시는데는 비주얼 보다 말빨이란 말인가..

  13. 듀레인 2010.02.11 18:43 address edit & del reply

    오랜만에 좋은글 보고 갑니다.^^ 시대상황에 맟춰가면서 냉철하게 분석하셧군요!!!!

  14. 푸른별 2010.02.11 19:29 address edit & del reply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숨고르기 한 듯..
    어제 대길패 에피소드도 무척 재밌게 봤어요 ㅎㅎㅎ
    초록누리님은 글도 참 맛깔나게 잘 쓰십니다..^^

  15. 탐진강 2010.02.11 20:3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요즘 전혀 못보지만 글만 읽어도 장면이 연상되는군요

  16. 남자들의 추노포장 2010.02.11 23:19 address edit & del reply

    귀여움을 가장한 더티한 쌍놈...

  17. 2010.02.12 06:12 address edit & del reply

    역시 여자는 왕손이같이 다뤄야 하죠. 진심으로 대하면 여자도 싫어하고 분위기만 나빠짐. 그리고, 한여자에 목숨거는것도 대길이를 보면 알겠지만 자기뿐 아니라 남까지 파멸시키는 무식한짓. 다다익선이 좋은거죠.

  18. 몽트르 2010.02.12 09:13 address edit & del reply

    저러다 한방에 훅- 감/

  19. 저러다 2010.02.12 09:35 address edit & del reply

    저런 캐릭터가 마지막에 불쌍하게 죽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번에 조연들 대량학살(?)시키는 걸로 봐서는...

  20. Uplus 공식 블로그 2010.02.12 11:5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ㅋㅋ 저도 왕손이 김지석 님 너무 좋아해요~
    국가대표에서도 외모는 왕손이인데 캐릭터는 과묵했었죠

  21. PinkWink 2010.02.16 00:1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 왕손이... 큭 >.<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