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3 13:33




숨가쁘게 달려 달려 한양까지 온 대길과 송태하, 이들이 먼거리를 돌아와 다시 한양으로 온 이유는 봉림대군을 만나 원손의 안위를 부탁하고자 였어요. "역모를 꾀하려고 하느냐" 며 차갑게 돌아섰지만, 봉림대군이 발걸음도 무거울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 가장 위협적인 조카를 살릴 수도 인정상 죽일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권력의 논리이고, 왕가의 인정일 것입니다. 훗날을 위해 왕위를 넘볼 수 있는 여지는 그 싹을 제거해 버리는 게 피바람을 막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번 글은 저잣거리와 궁궐의 인정에 대한 추노 속 다른 세상이야기를 말해 볼까 합니다. 봉림대군과 인조, 그리고 짝귀와 용골대의 대화를 들으면서, 궁궐과 저잣거리의 인정이 그 우두머리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왕실의 피, 가장 잔인한 가족
조정 대신들사이에서 원손 석견의 일로 왈가왈부하자 인조는 엄포를 놓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원손의 일을 입에 담지 말라고요. 그리고 인조는 봉림대군의 처소를 찾았지요. 역모가 발각되어 다행이라는 봉림대군이 말에 인조는 자신에 대한 역모가 아닌 세자, 즉 봉림에 대한 역모였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네 자리 네가 지켜라" 라는 뜻이였겠지요. 조정에서 더 이상 원손의 일을 거론하지 말라고 했던 인조는 봉림에게 정통성에 관한 논란은 없을 것이라며 봉림을 후사에 세우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합니다, 앞으로 석견이 어떻게 될 것 이냐는 말에도 그의 휘(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역모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그 아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인정이 과한 것이라며 "사가의 인정은 평온함을 부르지만 왕가의 인정은 피를 부르는 경우가 과반이다" 라고 말하지요.
우리 역사에서 왕실의 피를 불렀던 일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왕자의 난으로 이어진 피바람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인조 역시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니, 용상이라는 자리가 단순히 선왕의 유지로 받들어지는 약속의 자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겠지요.
원손 석견의 안위를 부탁하려는 송태하를 만난 자리에서도 봉림은 그 뜻을 분명히 전합니다. 원손으로 왕위에 올리고자함이 아니라, 원손과 함께 새 세상을 이루겠다는 것 자체가 역모라고 일축해 버렸지요. 원손의 사면은 어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고, 세자로서 석견의 안위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해 줄 수 없다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봉림대군으로서도 어린 석견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인정상 힘들기에 청으로 가는 것이 어떠하느냐는 제안을 하지만, 이는 어린 석견에 대한 동정심으로서의 제안이지 복권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요. 원손의 복권은 세자 책봉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왕위라는 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혈통의 자리도 아니고, 생명의 위협과 수틀리면 왕도 바꿔버리는 무서운 신하들의 감시대상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리지만 한순간에 독살을 당할 수도 있고, 폐위될 수도 있는 불안한 자리지요.
자식도 죽여버리고, 손자도 죽이려는 무서운 곳이 궁궐이라는 곳이지요. 대길이의 말이 떠오릅니다. "나랏님네들은 백성을 자식처럼 떠받드네 하면서도 신경 안 써", 혈통도 왕좌를 위해서는 칼을 들이대는데 하물며 백성이라고 별반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백성의 힘이 가장 무서운 것인데도, 이 힘이 결집되어 있지 않은 개개인의 것일 경우에는 권력 앞에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광장을 싫어하고 백성들이 모이는 것을 늘 경계하나 봅니다. 뭉치면 왕권보다 강한 힘이 백성의 뜻이니까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성군은 금과옥조로 폭군은 불온사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탐욕의 세상, 도구일 뿐인 자식
죄의정 이경식은 자신의 곳간을 위해 사위를 살인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추노 속 또 하나의 권력의 실체 우두머리입니다. 그는 탐욕을 위해서 왕마저도 그의 손아귀에 놓고 저울질하는 무서운 인물이지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소현세자를 이용하기도 하고, 전쟁을 도발하여 이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좌의정 이경식은 단순한 권력의 주구 역할이 아닌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려는 실리주의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목적은 용상도 아니고 한 정파를 이루고자 함에 있지도 않습니다. 부가 곧 권력임을 깨우친 현대판 독점재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좌의정의 개가 되어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수하 박종수나 황철웅에게 좌의정이 가지는 자기 사람에 대한 애정은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합니다. 

저잣거리,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갚는다
저잣거리 패거리들은 크게 세부류입니다. 천지호 패거리, 대길패거리,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한 월악산 짝귀패거리지요. 대길패거리에서 나이상으로는 최장군이 어른이지만,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대길이라고 봐야 겠지요. 각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대길이, 천지호, 짝귀는 비록 거느리는 무리는 적지만, 그네들 야차의 세상에서는 왕들이라고 편의상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소그룹의 왕들이 자기 수하를 챙기는 모습은 왕가의 피를 넘어선 끈끈함이 넘쳐 납니다. 추노에서 가장 악랄하고 인정사정 없는 개차반으로 묘사되었던 인물을 꼽는다면, 엽전 두냥을 입에 넣고 이승을 하직한 천지호였지요. 제주에서 수하 만득이와 한양으로 올려 보낸 수하들이 죽은 것을 보고는 눈이 뒤집혀 버린 천지호는 황철웅에 대한 복수로 추노질과 삶의 욕구까지 끊어 버립니다. 어찌보면 가장 목숨에 대해 질길 것 같았던 인물이 천지호였어요. 그런 천지호도 수하를 잃고서는 동생들을 죽인 황철웅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대길이를 구하려 들었다가 화살을 맞고 비명에 가버렸습니다.
대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송태하가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인 것으로 알았을 때 그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형제같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달걀을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마치 달걀이 목에 걸려 숨을 못쉬고 죽어 버리길 바라는 것같은 심정으로 먹는 장면이 있었어요.
송태하와 결투를 하면서, 그리고 송태하를 붙잡아 좌의정 이경식의 손에 넘겨주면서까지 대길이가 송태하에게 물엇던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를 어떻게 했느냐 였어요. 감옥에 붙잡혀 들어가 황철웅이 "네놈이나 네놈 동패들이나 하나같이 눈빛이 불량하구나" 라고 말했지요. 모든 것을 꾸민 것이 황철웅임을 알았을 때 대길이 이를 갈며 말했지요. "네놈 죽는 날 나 거기 서 있을 거다" 라고요. 그 분노는 황철웅의 손에 들린 달군 인두보다 뜨겁고 강렬했어요.
이번회 짝귀의 대사에서도 천지호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것과 같은 복수심이 끓어 넘칠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어요. 산채 주위를 경계하던 수하들이 죽어 나간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아직 황철웅이 죽인 것은 모르지만, 원손을 납치하기 위해 잡입한 용골대를 붙들어 처음 질문한 것이 "밑에 있던 우리 애들 니가 죽였냐?" 였어요. 용골대는 우린 아니라고 대답했고, 짝귀가 그럼 누구냐고 물었는데 황철웅이 수하들을 죽인 것을 알게 될 날도 머지 않았겠지요.

현실과 마음 속 유토피아
천지호나 대길이처럼 짝귀 역시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호자로서의 우두머리가 지녀야 할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 거느린 식솔이 많든 적든, 피가 섞였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켜줄 사람들, 내가 거둔 가족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에 반해 인조, 봉림대군, 소현세자, 석견은 같은 피가 흐르는 혈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느리는 가족은 의미가 다릅니다. 한쪽에서는 살점을 내줘도 아깝지 않고, 목숨을 내놓고도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반면, 왕가라는 가족은 견제의 대상이고 정치적인 대상이며, 왕좌를 위해서라면 자식이고 손자고 죽여버리는 냉혹한 가족일 뿐입니다. 자신의 훗날을 위협하는 조카에게도 마찬가지지요. 봉림대군이 석견을 두고 떠올렸던 것은 세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종을 폐위하고 유배시킨 비정한 숙부였지요. 봉림으로서는 원손에 대한 사사로운 인정은 있겠지만, 세조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조선 궁궐에서는 먼나라 속담일 뿐이고, 저자에서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통하는 세상이에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같아요.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며 표밭을 누비고 다닐 때는 간이며 쓸개까지 다 빼줄 듯하다, 번쩍거리는 뱃지를 달고 난 후에는 난 모르쇠로 돌아서는 모습과 닮아 있어 씁쓸합니다. 
왕가의 피나 좌의정 이경식이라는 인물의 탐욕을 보면서 역사라는 이름 앞에 일개 이름없는 백성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희미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그에 비하면 대길이 패거리나 짝귀패거리에 둥지를 튼 인생들은 세상의 눈에서는 하찮고 천대받은 인생들이지만, 그 작은 세상안에서는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천지호가 동생들을 죽인 황철웅에 대한 복수심에 눈에 광기를 띠는 것이나, 대길이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였다고 생각한 황철웅에게 쌍심지를 켜는 모습에서 우두머리의 진정성을 읽게 됩니다. 정작 살펴야 할 백성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용상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조나, 곳간을 채우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는 좌의정의 사람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구의 사람일까요? 선거철 한표 행사로 금뱃지를 달게 해 주는 정치인들, 보다 높은 곳에 있는 분... 대길이나 짝귀 산채의 사람 중 누구의 사람이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우두머리가 대길이나 짝귀처럼 가족을 대하는 마음으로 지켜주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것이겠지요. 

추노 속에 보여지는 가장 작은 세상이 가장 든든해 보이고, 그 속에 깃들어 살고 싶은 것은 왜일까요? 버림받고 궁핍하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세상인데도 가장 따뜻해 보이니 말입니다. 아마 힘들고 고된 우리 현실을 보며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개개인 한 사람이 귀하게 여겨지고, 희망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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