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0 12:55




신데렐라 언니에서의 은조는 선악으로 구분지을 캐릭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조는 착한 아이도 나쁜 아이도 아닌 염세적인 아이였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아이였던 게지요. 염세주의자였던 은조를 처음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게 만든 것이 "은조야"하고 불러주었던 기훈이와 술익는 소리였어요. 
은조가 원하지 않았지만 동수의 꽃다발은 효선에게 불똥으로 번졌고, 이 사건은 효선이의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습니다. 효선이 은조로부터 엄마를 빼앗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듯이, 은조 역시 효선에게 내재된 미움이라는 감정을 건드리게 될 줄은 몰랐겠지요. 은조는 세상이 무지개빛 동화나라처럼 보이는 사람을 처음 만났고, 세상이 쓰레기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효선도 처음 만났어요. 그런 점에서 은조와 효선은 비슷한 아이들입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세상이 본질이라고 믿었던 외통수들인 셈이지요.
효선이 은조와 싸운 이유
두 사람이 폭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낸 일은 표면적으로는 동수때문이었지만, 효선이 동수를 빼앗겠다는 말에 은조와 엉겨붙어 머리채를 잡고 싸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럴 정도로 동수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착한 효선이라는 캐릭터상 사귀는 사이도 아닌 동수때문에, 은조언니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주겠다고 했던 말을 뒤집을 일은 아니었어요.
효선이 은조의 머리채를 쥐고 소위 육탄전을 벌이게 된 것은 효선이의 내적인 문제였어요. 효선이 은조에게 "거지 꺼져"라며 했던 욕설이나, 은조가 "싫어, 내가 싫어지면 내 발로 나간다"고 한 것은 공감가는 대사들이었어요. 효선이와 은조는 10대 고등학생들의 나이입니다. 둘 다 성숙한 나이는 아니지요. 세상 경험을 더 많이 한 은조가 성숙(?)한 정도이지 두 아이는 여전히 10대의 사고방식에 있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나이에서 우리집이라고 나가라고 한 효선이나, 센 척하는 은조의 싫다는 말도 충분히 공감가는 10대들의 유치한 말싸움이에요.  
효선이 은조에게 터뜨린 것은 보상심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지만 어디서 뭘 하며 살다 왔는지 모르는 은조를 자기집에서 살 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은조에게는 그런 감사의 마음이 없습니다. 효선은 엄마의 옷을 입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의 환상을 강숙을 통해 보았고, 강숙이 마치 엄마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효선은 허기진 구석을 채워준 엄마를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효선이에게 유일한 상처는 엄마를 잃었던 유년의 기억이었거든요.
그러나 덤으로 딸려 들어온 존재로 인식된 은조는 전혀 곁을 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효선이 은조를 처음 보자마자 언니하며 붙임성있게 따르고 친하고 싶었던 것은, 새로 생긴 엄마를 잃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지도 몰라요. 엄마의 딸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엄마를 잃을 지 모른다는...
그런 심리가 왜 은조를 낳았냐는 말에 들어있었던 거예요. 엄마는 자기가 필요해서 반지를 숨기면서까지 만든 존재라면, 은조는 효선이 원하던 존재도 아니었고, 새엄마의 혹처럼 딸려들어 온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 효선의 심리에 깔려있는 것이지요. 아직 효선이 어린 나이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 듯 싶어요. 더구나 효선은 어느 단계에서 정신적인 성장이 멈춘 듯한 유아기적 공주였으니까요.

은조가 건드린 것은 효선의 그런 잠재적인 심리였어요. 자신이 원하지 않은 혹같은 아이, 그렇지만 엄마가 데려왔으니 잘 지내야 한다는 마음을 건드린 거예요. 착한 척하지 말라는 말로 말이지요. 누구도 효선을 향해 눈을 흘긴 사람도 없었고, 너 싫으니 나 좋아하지 말라고 대놓고 으름장을 놓은 사람도 없었는데,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효선에게는 충격입니다. 엄마따라 들어온 주제에 잘해주려고 했더니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거지발싸개였던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입니다. 효선은 환경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 속에서 살았다면, 은조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어요. 그 환경이라는 것이 은조와 효선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이고요. 긍정과 부정은 부딪치면 파열음을 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훈의 은조에 대한 특별한 시선은 효선에게 한 번 발현하기 시작한 감정에 불을 지펴버리게 되었지요. 동수도, 새엄마도 아닌 달이 네모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훈오빠,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자기 것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효선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4회 엔딩장면에서 8년이 지난 후 은조와 효선 사이에 툭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히 두 사람은 파열음을 내며 기관차처럼 달려왔음을 한장면에 담아 보여주었습니다. 

문근영,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연기력
본격적인 성인연기에 도전하는 문근영에게는 여러가지 면에서 신데렐라 언니는 도전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지의 변신은 이미 성공적으로 보여주었고, 국민여동생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배우 문근영이 국민여배우로 거듭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서 문근영의 연기를 분석하다보니, 문근영의 캐릭터 소화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눈에 뜨입니다. 서우의 효선 역이 초기 오버스럽다, 과장적이다, 공감되지 않는 어리광이다 등등의 비난에 시달린 것에 비하면 문근영의 은조에 대해서는 칭찬일색이었습니다. 저 역시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전혀 새로운 은조의 모습으로 눈에 섬뜩하리만치 독기가 서려있음을 보고 놀랐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독기는 문근영만이 할 수 있는 표정연기도 아니고, 반항적인 연기의 기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조야...은조야..." 라며 제 이름을 부르고 우는 한마리 새처럼 강가에서 무너지듯 우는 장면은 은조의 감정신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장면이었고,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장면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문근영의 캐릭터 표현에 있어 문근영의 특별함을 느꼈던 장면은 "은조야" 라며 강가에서 울던 신 외에 두군데 였어요. 
기훈에게 쇼핑백을 전해주는 여자를 보고 질투심의 불똥이 효선에게 터뜨려졌는데, 무릎이 깨져 꿰매고 돌아왔을 때, 엄마의 무릎에 누워 잠들어 있는 효선이의 모습을 보고 은조는 엄마를 빼앗긴 듯한 불안감과 박탈감까지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 은조 눈에 기훈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장면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들어 온 기훈에 대한 야릇한 배신감을 느끼게 합니다. 

은조를 연기하는 문근영의 섬세한 연기를 본 것은 이 부분이었어요. 회초리를 맞은 다음날 아침 일찍 기훈을 불러내 "어제 그 여자 누구냐?" 고 물었지요. 그게 궁금해서 밤새 한 숨도 못잤느냐는 짖궂은 기훈의 말에도 이렇다 저렇다 말도 않고 그저 기훈을 쏘아볼 뿐이었는데요, 그 때 문근영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어요. 잠을 못 이룬 눈빛, 거기에 그 답을 듣지 않으면 하루종일 쫓아 다녀서라도 알고 말겠다는 듯한 오기마저 서려있었어요. 그 충혈된 눈을 보며, 아! 문근영이구나 싶더군요. 문근영은 상대방의 대사에 맞는 충혈된 눈까지 계산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 문근영의 연기를 보며 놀랐던 것은 버스터미널에서 기훈을 찾는 장면이었어요. 버스정류장에서 기훈을 불러야 하는데,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해서 입만 벙긋벙긋 거리기만 하는 모습은 너무 실감나는 장면이었어요. 강가에서 은조가 무너지며 "한번도 그 사람을 불러보지 못해서 은조야 라며 새처럼 울었다" 라는 방백과도 연결되었던 장면이기도 했고요.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린 여자같았거든요.  
문근영의 연기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디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고민이 됩니다. 지극히 단답형의 말투, 독선적이고 냉소적인 표정만으로 은조라는 인물을 다 알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신데렐라 언니 은조라는 캐릭터는 강인하게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아이, 세상을 경계하는 아이,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은 아이, 찢긴 무릎팍에 남은 흉터처럼 가슴에 수없이 새겨진 상흔을 가진 아이... 이런 이미지를 부가적인 긴 대사나 설명없이 표정만으로 보여주는 것이 모든 배우들에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문근영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문근영의 은조는 강렬합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를 뛰어넘어 버린 것 같아서 어쩌면 제작진이 난감해 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문근영은 제작진이 의도했던 은조라는 캐릭터 그 이상을 보여주었고, 오히려 새로운 은조로 탄생한 느낌마저 듭니다. 문근영의 눈빛에, 문근영의 눈물에, 그리고 표정에 신데렐라 언니가 방송된 후 은조라는 캐릭터가 분분하게 분석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인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은조라는 캐릭터는 어느 한가지로 꼬집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못된 아이였다가 여린 아이로 은조는 인간이 가진 복합적인 내면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문근영에게 놀라운 것은 이 복합적인 모습들을 은조라는 캐릭터 하나에 응축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것도 긴 대사나 상황이 아닌 흑진주처럼 까만 눈동자와 표정, 절제된 목소리 톤만으로도 말이지요. 이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배우의 성장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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