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지혜는 정을 주기 힘든 캐릭터다. 좋은 말로 하면 완벽하고 자로 잰듯 깔끔한 성격이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한마디로 피곤 그 자체인 여자라는 말이다. 지혜가 그리는 50대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면 지혜는 굉장히 이기적인 젊은 주부이며 딸이다. 자신은 자식에게 손털고 독립적으로 여유자적 우아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현재 친정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은 안중에 없다.
구체적으로 극중 대사로 옮겨가 보자.
아버지(김영철): 도대체 반드시 하나여야 하는 이유가 뭐냐?
수일(이민우): 자식한테 투자하는 세월이 너무 긴 것도 싫고, 몸매 망가지는 것도 싫고 뱃살 늘어나 주글거리는 것도 싫다고 한다
지혜(우희진): 우선 경제적으로 둘은 벅차다. 요즘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 강남은 월 평균 2~300은 보통이다
엄마(김해숙): 어차피 생긴 아이를 안 낳겠다는 것은 생명존중사상에도 위배된다
지혜: 내 몸에 생긴 일이고, 결정권은 나한테 있고 행복추구권도 있다.
수일: 내 자식이기도 하다
할머니: 자리 잡은 아이를 어떻게 못 낳게 해? 그것은 살인죄야
태섭(송창의): 낙태에 대한 논쟁의 역사가 긴데, 기독교에서는 수태 순간이 생명으로 보는 반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태 후 24주까지는 생명으로 보지 않았다. 24주후 태아가 엄마와 떨어져 혼자 살 수 있을 때를 생명으로 간주했다. 미국에서도 논쟁중인데 대부분 선진국에서 18주내에서의 낙태는 허용한다
병걸(윤다훈): 내가 이서방같으면 당장 이혼이야. 너 살인자거든. 아름드리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는데, 씨앗은 생명이 아니냐? 생명의 근거와 출발이 씨앗인데, 너는 그 씨앗을 죽이려는 살인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거야. 그런 생명에 대한 의식이 없는 너는 심각하고, 소름끼치는 악독한 여자야. 내 자식을 죽인 여자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대사들이다. 생명인데 어떻게 지우려고 하느냐는 식의 대사가 진부해지기 까지 하는 대목이었다. 매회 한 사람씩 넘어지는 엔딩은 예기지 않은 돌발사고가 우리 인생에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혜의 임신은 자로잰 듯 계획적인 지혜의 인생에서는 최고의 충격으로 넘어진 사건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로 출산장려금에 교육보조금까지 지급하겠다는 정부시책에도 출산률이 올라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육아에 대한 부담, 감당되지 않는 교육비, 게다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육아문제가 심각한 게 현실이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맡아주던 시대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어느 한 사람만의 의견이 옳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의 몸에 생긴 일이니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지혜나, 생명을 함부로 지우면 안된다는 가족들의 말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꼭 낙태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지혜와 수일 부부의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낙태라는 문제를 드라마속으로 끌어들인 김수현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작가는 아이가 생겼으니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져야한다느니,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로 불유쾌한 소재를 풀어가지 않는다. 좀더 잔인한 방법으로 불유쾌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극중 할머니 고점례여사와 삼촌 병걸(윤다훈)의 대사 "살인죄와 살인자의 길" 이라는 말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다.
부부에게 원하지 않은 아이가 생겼을 경우, 물론 그 부부의 문제이고 개인적인 선택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인 가족 안에서까지 자행될 수 있는 죄에 대한 노작가의 걱정이고, 애정어린 충고이며, 경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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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구야 날자 2010.04.12 12:17
인권에 대한 문제로 항상 대두되는데... 사회적으로 낙태하지 않고 키룰 수 있도록 기반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복지는 되어있지 않고 하지말라고 하기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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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강화 2010.04.12 14:14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작가의 떡밥일뿐이죠
세상의 어느 누가 낙태한다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가족회의를 합니까?
김수현작가의 인생역정도 그렇고 예전부터 남자보다 더 가부장적인 문화에 찌든걸 알았지만
솔직히 이젠 아주 대놓고 그러네요
낙태를 살인이라고 하는건 지극히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우월문화의 잔재입니다
(참고로 저도 남자입니다)
물론 제대로 피임도 안하고 한 생명을 죽이네 마네 하는것도 꼴사납지만
부양할 능력이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느냐 아니냐는 낙태문제에선 본질이 아닙니다
돈 없어서 낙태하는건 동정받아야 하고 돈 많은 년이 낙태하면 범죄라는
이중적인 작가의 시각에 아주 치가 떨리네요-
그럼 2010.04.13 09:26
낙태 문제에 대한 본질은 무엇이죠?
낙태를 반대하는 종교의 기본은
대체로 남성 중심 종교입니다.
어떤 나라의 가난한 미성년 소녀가
의붓 아버지던가 친아버지던가 한테 성폭행을 당해 낙태를 했는데
천주교던가 신자 자격을 박탈당한적도 있습니다.
불가피한 낙태도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뒷받침이 되어야하고 남성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개인의 힘만으로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더불어 남성들도 피임이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것입니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낙태를 피임의 하나로 가볍게 여기는건 일부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여자만큼 몸과 마음에 상처도 남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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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woon 2010.04.12 15:41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딱 맞네요
드라마는 어떤 상황을 정형화해서 사람들의 뇌리에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낙태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접근한 것은 아주 아주 위험했다고 보여집니다
저출산의 책임은 여자에게
낙태는 여자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기 주장이 강한 것은 싸가지가 없어서....
김수현 작가의 한계인가요 -
pook1028 2010.04.12 17:19
남들이 말하는 김수현작가가 남성 우월주의라던가 가부장적인 문화에 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고..(작품에 그런현실을 반영하는 면은 있어도)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서 매번 아쉬운건 공동체에 대한 숨막힐 정도의 동경입니다. 이번 지혜의 임신-낙태 에피소드에서도 그렇고.. 김수현 작가의 집단의식은 정말 견고한거같아요. 등장인물들 각각의 대사톤으로도 느껴지는; 뭐 암튼 김수현작가가 지금과 같은 위치를 가지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고, 또 뭐니뭐니해도 시청자로서 일단 작품이 보는게 재미있으니까요. 요즘 드라마 중 보면서 이 1시간이 가치있었다 라고 느껴지는 유일한 드라마인 것 같아요. 그 숨막히는 어마어마한; 집단중심주의는 김수현 작가의 한계일까 싶어도 재밌게 보고있는 저로선 스스로 가감해야 할 부분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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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2010.04.13 05:21
출산할듯 하고 우희진이 꽤 이기적이고 독해 보이지만
틀린 소리만 하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김수현 대본에는 간혹 독설도 오가고 하지만
김수현이 그리 단순한 작가가 아니기에
단지 낙태를 죄악시 하려는 의도는 아니리라 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생명이나 낙태를 가벼히 여기는 분위기도 없는것은 아니니까요.
개인과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마 우희진이 아이를 낳는다해도 일하는 여성의 어려움을 꽤 보여주지 않을까요?
남편은 자상한듯 하지만 이중적이고 그다지 도움이 못될듯도 하구요.
김수현은 그리 만만한 작가는 아닙니다.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짜증나는 할아버지를 당장 쫒아내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저는 다소 실망했습니다만
할아버지를 위해서인지 아닌지 몰라도 곰국을 끓이는 할머니를 보며
좋아하는 장남과 달리 할머니의 슬픔을 읽어내는 며느리를 보며
이 드라마가 결국엔 할아버지를 받아들이더라도
단지 대가족 가부장제의 미덕을 보여주기 위함만은 아닐거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 생기더군요.
그래도 좀 아쉬운것은 김수현 극본이 빛을 발하는것은
궁극의 보수성을 벗어나기 힘든 대 가족극이 아니라고 봅니다.
노작가의 필력이라고 믿어지지 않던 통속 멜로극인
내 남자의 여자가 그립네요.
그 진보성이요.
그래도 엄뿔에선 엄마의 자아찿기를..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가족 드라마 최초로 게이를 가족안으로 끌어들이니..
김수현은 김수현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