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9 10:19




송강숙이라는 인물을 분석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도 젊었던 어느 한 때 한 남자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가 있었지 않았을까?  누군가로부터 버림받고 가난 속으로, 쓰레기통 보다 처참한 삶 속에 던져져 갈기갈기 찢겨지기 전 그녀는 어떤 여자였을까?. 신데렐라 언니를 보며 가장 궁금하고 파헤쳐 보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가면을 쓰고 있는지, 가면이 아닌 본 모습인지 조차 모호해져 버리는 송강숙이라는 인물입니다. 신데렐라 언니의 등장인물은 그 누구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잠깐 등장했던 구대성과 송강숙 사이의 어린 아들 구준수라는 꼬마아이까지도 말이지요.
8년이 지난 후 가장 충격적으로 변화했던 사람이 송강숙이었기에 송강숙에 대한 부분은 따로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방송된 내용만으로는 송강숙의 모든 것을 알기가 힘이 듭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그 심리가 변덕스럽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도 허를 찌르듯 너무 단순명쾌한 그녀의 생존방식때문에 멍해져 버리기까지 합니다. 사실 그녀의 단편적인 과거들만으로는 왜 송강숙이 이토록 허허로운 사막같은 여자가 돼버렸는지, 상상만으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송강숙을 거쳐간, 아니 송강숙이 거쳐간 그 수많은 남자들 중에 은조의 생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은조의 생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송강숙의 오늘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핵심일 것 같거든요.

송강숙을 허허롭게 하는 자리, 효선의 새엄마
송강숙은 구대성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송강숙은 늘 구대성의 사랑에 불안해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은조의 생부와 사랑이 끝난 이후 송강숙에게 더 이상의 사랑은 없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없어요. 먹여주고 재워주는 그녀와 은조의 삶을 의탁할 상대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구대성은 다른 남자들과 다른 사람이었지만, 송강숙이 사랑으로 다가 선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것은 구대성에게도 마찬가지였고요.
송강숙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대성참도가의 안방마님은 애초에 구대성의 아내가 아니라, 효선의 새 엄마의 자리에 채워졌던 것 같습니다. 송강숙은 처음 반지를 찾으러 와서 봤어요. 이 집에 안방마님 자리가 비어있고,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효선이 구대성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요. 술을 잘 못 빚었다고 술독을 깨며, 직원들을 마당에 무릎꿀리고 화를 버럭버럭 낼 때, 구대성의 화를 잠재운 것은 재잘재잘 말많은 교복입은 여고생 효선이었어요. 같은 또래 은조를 키워봤지만, 송강숙은 효선의 크다만 것 같은 어린 모습을 금방 눈치챕니다. 그리고 그 어린 모습이 엄마의 부재에서 온 애정결핍 때문이었다는 것도요. 
효선을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효선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빼주고, 자신의 무릎에 착착 감겨오는 효선이라는 아이는 은조만큼 불쌍한 아이였어요. 불쌍한 마음 반, 작업반의 결과 구대성의 관심을 받는 것도 송강숙은 성공하지요.
효선의 삼촌으로부터 돌려받은 반지는 송강숙을 더 이상 대성도가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게 만들지요. 물론 그 전에 자전거 뒤에서 육탄공격으로 구대성을 홀리기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송강숙은 어리숙한 여자는 어니에요. 적어도 구대성같은 남자는 백이라도 구워삶아 먹을 수 있는 송강숙이에요. 산전수전 여러 남자들 품에서 살아 온 전력때문이기도 했지만, 송강숙에게는 묘하게 태생적으로 화냥기가 흐릅니다. 나쁜 말로 색기라고 할 수도 있을 거고, 좋은 의미로는 섹시한 여자지요. 남자만 잘 만나고, 환경만 좋았다면 누구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었을 그런 여자의 사주를 가졌을 수도 있다고도 볼 수 있지요. 잘못 풀리면 남자잡는 더러운 팔자가 돼 버릴 수도 있지만요.
 
버스터미널로 송강숙을 데리러 온 구대성이 송강숙에게 묻습니다. "갑니까? 어떻게 이렇게 갑니까? 애한테 정들여 놓고 어떻게? 애가 운다 말이요" 그러자 송강숙은 내 딸아이도 울고 있을 거라며 구대성에게 은조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약조를 하게 만들지요. 그리고 송강숙은 되묻습니다. "순전히 효선이 때문이기만 하세요? 효선이 때문에만 있어 달라는 건가요?" 이 여우같은 말에 구대성은 송강숙을 안아주며 자신 역시 송강숙을 원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송강숙이었지요.
그렇게 구대성을 삶는 것에 성공한 송강숙은 구대성의 호적에 처로 당당히 올려지고, 은조도 구대성의 성을 받아 호적에 올리는 것에 성공합니다. 송강숙의 평범한 꿈, 다른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어느 집안의 며느리가 된 거지요. 40 여년만에요.
저는 송강숙이 되어서 송강숙을 들여다 봤습니다. 첫째, 송강숙의 문제는 '대성도가에서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효선의 새엄마인가, 구대성의 아내인가?  우문일 수도 있겠지만 송강숙이 안주하지 못하고, 효선을 밀쳐내려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송강숙도 알지 못하는 찝찝함이 숨어있어요. 구대성이 원한 송강숙은 90%가 효선때문이었고, 10%정도가 송강숙에 대한 마음이었어요. 적어도 처음에는요. 송강숙이 어느 집안의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의 아내자리에 올라있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송강숙은 은조에게 구대성이 뜯어 먹을게 많아 좋다라고 말했지만, 구대성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점잖고 인품 높고 돈도 많은 남자, 더구나 자상하고 이해심도 많고, 자신의 치마폭에 싸여 자신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는 남자에요. 그런 구대성을 송강숙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송강숙은 구대성의 아내가 아니라, 효선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새엄마의 자리에 채워진 게 먼저였어요. 송강숙은 태생이 여자임을 버리지 못하는 팔자를 타고 난 인물같아 보여요. 여자가 아닌 새엄마라는 자리는 송강숙에게는 알 수 없는 허허로움을 줍니다. 털보장씨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외도를 하고 있는 이유는 털보장씨에게 송강숙은 누군가의 새엄마, 전부인을 대신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사랑하는 단 한 사람 ONLY ONE이라는 거지요. 무식하고 돈없고 거친 남자지만, 털보장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남자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것을 마다하고 싶지 않는 송강숙의 요상스런 심리가, 털보장씨를 만나는 일탈심리에 깔려있는 거예요.

사막의 선인장 송강숙의 부초같은 역마살
송강숙은 밟아도 밟아도, 파내도 파내도 죽지않고 살아 싹을 틔우는 질경이 같은 강한 생명력을 가진 여자입니다.지금까지 송강숙이라는 인물의 상처는 은조와 병원에서 눈물을 흘리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 버린 대화가 전부였어요. 눈물마저도 절제해 버리는 송강숙은 독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 것 같더군요. 사막에서 살아남은 식물들처럼요. 밖으로 수분을 배출해 버리면 결국 말라 죽어 버리게 되는 사막의 선인장처럼, 송강숙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파리마저 가시로 변형시켜 생명을 유지하는 선인장처럼, 인간성이고 감정이고 동정심마저도 속으로 속으로 구겨넣어 버립니다. 자신을 후벼파기라도 할 듯이 경계하면서 말이지요. 그녀가 말끝마다 구대성에게 "절 쫓아내실 건가요? 우리 쫓겨나나요?" 라고 묻는 심리는 간교하게 계산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늘 쫓기고 도망쳐야 했던 겁에 떠는 모습까지도 함께 드러낸 대목이에요.
은조와 송강숙은 너무나 닮은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세상에 폐쇄적인 사람들이에요. 다만 사는 방식이 송강숙은 페쇄적인 것을 감추는 것에 능하고, 은조는 감추지 못한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살갑게 안겨오는 효선의 손을 내밀어 버리는 것도 송강숙의 폐쇄적인 삶에서 오는 애정거부현상입니다. 부초처럼 떠돌던 송강숙은 안주라는 것에 목말라 하면서도 안주하지 못하는 역마살이 낀 여자같아 보입니다.
송강숙이 여자로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어요. 누군가의 집안 사람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었지요. 은조의 생부와 이뤄지지 못한 사랑때문에 송강숙이 세상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 될 수 있는 어느 집안의 누군가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추측만을 할 수 있는데, 여하튼 송강숙의 꿈은 참 소박하다 못해 이상스럽기까지 합니다. 마흔 여섯이나 되어 처음으로 호적에 누군가의 처로 등재된 것을 보고, 그 기쁨을 참지 못해 건물 뒷편에서 감격해 하는 모습은 평범마저도 어떤 사유로 거부당해 왔던 송강숙의 과거 한 단면을 볼 수 있어서 안쓰럽기까지 한 장면이었어요.
뭇사내들에게 등짝이 보라색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등쳐 먹고 도망다니고, 구대성이라는 안정적인 남자를 만나 정식 부인이 되어 대성참도가의 안방마님 자리에 있으면서도 바람기인지, 일탈행위인지 털보장씨와 외도를 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지요. 남부럽지 않게, 더 이상 쫓겨다니니 않아도 될 호사스런 삶이 주어졌는데, 그녀의 인생에 '쨍' 하고 해가 떴는데 무엇이 그녀를 허허롭게 하나 싶지만, 부초처럼 안주하지 못하는 역마살은 한달에 한번이라도 숨통이 트일 수 있는 털보장씨를 만날 수 밖에 없게 합니다. 그녀 자신도 대성도가의 안방마님의 가식적이고 고상한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지, 삶에 찌들어 망가져 살아왔던 과거 모습이 참모습인지 조차도 혼란스럽습니다.
역마살이 들어있는 듯한 안주하지 못한 송강숙의 모습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은조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녀의 일탈행위는 아무리 빨고 삶아도 걸레는 행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만큼 그녀는 부숴져 버렸던 거예요. 쓰레기통을 뒤져 어린 딸의 허기를 달래주던 그날 이후로 말이지요. 그녀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은 털보장씨와 그녀의 모든 모습을 지켜봐왔던 딸 은조일 것입니다. 그래서 은조와 털보장씨 앞에서는 그녀는 그녀의 무식하고 천박스러운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탯줄을 끊지 못하는 기형적인 모녀, 송강숙과 은조
송강숙이라는 캐릭터를 분석하려면 은조의 시선도 효선의 시선도 아닌 송강숙 자신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아요. 송강숙은 자기애가 강한 여자에요. 송강숙의 자기애는 생존본능과 닿아 있기에 무서울 정도로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속물적이고, 때로는 간교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자기애는 은조에 대한 모성애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병원에서 은조에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있었어요. 송강숙이 왜 체면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버려야 했는지, 그것이 은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송강숙의 오늘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어요. "배고파 우는 널 업고 쓰레기통도 뒤졌어. 더러운 거라도 안 먹이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뒤져 먹이고, 너 탈났을 때, 하느님 아부지 부처님 신령님, 내 새끼 죽이기만 해봐.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 줄테니까. 사람으로 품위 지키며 사는 것 그날 밤으로 포기했어.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느님, 부처님 하고 맞짱 떠서 이긴 년이야. 너 하나 살릴려고. 광목천? 백번도 끊을 수 있어 이년아. 감동받을 것 없어, 안 그런 에미가 어딨겠냐?"
송강숙을 오늘의 속물적이고 천박하고 질경이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그 날이었어요. 어린 딸이 굶어 배고프다고 보채는 날, 힘없어 우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송강숙의 등에서 가는 숨소리만 내며 어린 딸아이의 심장뛰는 소리가 가늘게 팔딱 거리던 날, 사람으로서 가장 비천한 곳으로 떨어지게 한 날, 도둑고양이나 강아지들이나 하는 짓을 송강숙은 짐승처럼 해야 했어요. 어린 딸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상한 음식에 눈이 뒤집혀 까무러쳐 가는 딸을 보며, 송강숙은 과거의 모든 모습을 딸을 위해 음식찌꺼기를 뒤지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립니다. 아마 이때부터 송강숙은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밥을 위해서라면 안길 수 있었고, 웃음아니라 몸 아니라 영혼까지도 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것이 모정이었어요. 안 그런 에미가 세상에 어딨겠느냐는 말처럼요.

은조가 엄마 송강숙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 천박한 웃음을 팔고, 매를 맞아 가며 기생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송강숙은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떠돌면서도 단 한번도 은조를 버린 적이 없었어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말이지요.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던 모진 세상은 송강숙의 인간적인 모습을 버리게 했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기생하며 사는 엄마의 모습은 은조로 하여금 세상을 거부하게 해 버립니다. 
갈 곳이 없는 두사람은 서로의 존재이유가 되고, 송강숙과 은조는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 기형적인 모녀가 돼버린 거예요. 두 사람을 이어왔던 탯줄은 서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부여합니다. 송강숙이 은조를 버리는 순간은 송강숙이 살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송강숙이 은조를 놔주지 않는 한 은조 스스로 탯줄을 끊고 엄마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송강숙 캐릭터는 지금까지의 모습만으로는 다 이해하기가 힘든 인물이에요. 이미숙이 만들어가고 있는 송강숙은 그녀의 연기력만큼이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를 빛내주는 존재입니다. 이미숙은 예측불가능한 송강숙이라는 여자의 다양한 심리를 툭툭 던지는 대사 한마디에, 은조가 누웠던 병원 침대에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누워 속물적인 대사들을 뱉는 모습만으로도 송강숙이라는 인물이 말랑말랑하지 않음을 파격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듯 복잡한 듯, 선악이 공존하는 듯한 송강숙이라는 캐릭터는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궁금해서 더 매력적이고 파헤치면 소름끼치도록 비정상적인데, 이상하게 인간의 숨겨진 말초적 감성들을 건드려 주기까지 합니다. 이런 말초적인 감성을 고상함과 한 때 껌씹은 여자 말투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배우 이미숙의 카멜레온같은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몇가지나 되는지 궁금하게 까지 합니다. 송강숙은 신데렐라 언니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에요. 이 얄미우면서도 매력적인 계모가 없었다면 신데렐라와 신데렐라 언니도 없었을테니까요. 신데렐라 언니의 이야기 출발점인 송강숙, 그녀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 그리고 주사위처럼 '에라, 모르겠다' 하고 던져 버리는 알 듯 모를 듯한 심리는 드라마를 점점 더 미궁 속 재미로 빠져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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