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4 07:37




신데렐라 언니 14회는 전체적인 드라마 흐름에서 그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기 전, 숨이 꼴깍 넘어갈 지경이 되는 그 지점의 긴장감을 그리려 했습니다. 은조와 기훈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포옹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기대도 컸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기대이하였습니다. 그보다는 마지막 엔딩장면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은 효선의 분노에 찬 눈이 지금까지 신데렐라 언니 속에서 서우의 표정 중 가장 좋았던 감정신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효선의 변화는 이미 지난 주부터 급변화를 위한 밑밥을 뿌렸었죠. 흙투성이 떡을 집어 먹는 장면에서 은조와 새엄마 송강숙에 대한 무한신뢰와 애정을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착하게만 그린 이유가 효선의 복수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던 셈이지요.
효선이 새엄마 송강숙의 도덕적 배신까지 감쌀 수 있을지, 효선의 섬뜩한 눈을 보니 파국으로 치달을 것만 같아서 불안해 보입니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동화적인 장치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동화적 장치는 매회 엔딩장면에서 나오는 시계일 것입니다. 12시가 되기전 11시 56분경에서 멈춰있는 시계...12시는 신데렐라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며,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이기도 하겠지요. 열두시를 향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점도 이 드라마를 읽는 장치이지만, 저는 시계바늘에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올려두고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12시라는 시간은 유일하게 큰바늘과 작은바늘이 정시에서 만나는 시간입니다. 갈등과 오해가 한 지점에서 만나 화해되는 시간의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지요. 시계의 큰바늘과 작은 바늘은 같은 주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의 등장인물들의 엇갈려 가는 감정들처럼 말이지요.
신데렐라 언니의 주인공들의 감정도 이 큰바늘과 작은바늘의 움직임처럼 각각 다른 주기로 움직여 갑니다. 함께 움직이면 서로를 항상 볼 수 있을 텐데, 그랬다면 인간관계에서의 오해와 갈등도 없을 수도 있는데 각자 따로 움직이니 서로를 가까이서 볼 수가 없습니다. 은조와 기훈, 송강숙과 효선, 그리고 효선과 기훈이처럼 말이지요. 이번 글은 송강숙과 효선의 엇갈려 움직이는 시계바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효선아, 니가 그 바보같은 남자의 딸이니"
털보장씨의 노름빚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통장을 정리하던 송강숙은 구대성이 8년간 써온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한 사람이 나에게 왔다. 봄바람같다. 봄바람에 꽃향기가 묻어있다. 꽃향기에 홀리듯 그 사람에게 홀렸다. 그 사람의 부은 발을 영원히 주물러 주기로 맹세했다. 나는 맹세가 너무 많다. 못난 남자가 그렇다. 못난 남자인 내가 다시 맹세한다. 그 여자 눈에 눈물 고이는 일 없게 하기를..."
차곡차곡 모아놓은 구대성의 일기는 송강숙을 만난 날부터 8년간의 구대성의 한결같은 사랑이 적혀있었지요. 송강숙의 기억에 주마등처럼 흐르는 구대성과의 만남과 그의 죽음으로 이별까지의 시간들...구대성의 일기는 2010년 구대성이 죽기전에 쓴 일기를 찾아 헤매던 송강숙은 구대성의 서재에서 구대성의 마지막 일기를 찾아내고 오열하고 맙니다.
은조가 어느날 말했지요. "효선이 아버지 엄마가 진심이 아닌 것 다 알고 있었어. 다 알고도 엄마를 사랑했대. 뜯어 먹을 게 많아서 살아도 뜯어먹히는 게 좋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어 엄마?" 송강숙도 뭐 그런 사람들이 다있느냐고 퉁스럽게 지나가 버렸는데, 정말 그런 바보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송강숙은 뒤늦게 알았어요.
"그 사람이 휘청휘청하는 걸 못난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본다.... 그 사람이 가끔 옛 남자를 만나고 돌아와 내개 웃을 때 분노와 절망과 슬픔이 차례로 왔다가 간다... 왜 그러느냐고 그 사람에게 묻고 싶지만, 못난 남자는 겁이 나서 입도 달싹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발설하는 그 순간 내가 그 여자와 함께 살아왔던 지난 8년의 세월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 것을 안다.. 내 인생이 그 사람없이 계속되는 것,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뒤늦은 후회, 비로소 세상에 거짓말 같은 진실된 사랑 하나쯤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송강숙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합니다. 이제서야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리운 남자, 야속한 남자는 또 다시 송강숙을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용서를 빌수도 없는 사람, 가슴에 얹힌 돌덩이를 어떻게 하라고, 늘 지켜주겠다던, 평생 부은 발을 주물러 주겠다던 그 사람, 다시는 눈에 눈물 고이는 일 없게 한다고 맹세한 그 사람은 이렇게 송강숙에게 절절한 그리움만을 남겨주고 떠나 버렸습니다.
송강숙은 몇날 며칠을 그렇게 가버린 남자 구대성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 넣습니다. 구대성이 가고 난 후 송강숙은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체한 것 같은 이유를 몰랐어요. 그런데 구대성의 일기를 보고 알았지요. 그것이 구대성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요. '사랑 따위가 어디있어. 마음 대충 맞으면 살 부비고 서로 뜯어 먹고 먹히고 사는 것이지' 라고 생각했던 송강숙이었어요. 그런데 그 바보같은 남자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서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송강숙의 이중적이고, 속물적인 모습을 알면서도 사랑했다고 합니다. 송강숙은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과 맞짱떠서 이겼던 자신이 결국은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구대성의 계산없는 사랑을 천하의 송강숙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요.
그 사람이 남긴 딸 효선, 그 아이가 안아달라고 합니다.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그 아이를 자꾸 밀쳐내도, 그 아이는 계속 자신의 손을 붙잡으려 합니다. 안아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가 자신의 가슴에 드리운 외로움을 보고는 안아줍니다. 부끄럽고 죄많은 송강숙을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라고 안아줍니다. 효선의 등 뒤에서 효선의 헤어샴푸 냄새를 맡으며, 송강숙은 이 부녀의 사랑 앞에 무릎끓고 싶어집니다. 송강숙의 두 눈에 흐르는 눈물, 그 참회의 눈물은 효선을 진심으로 가슴으로 안고 싶게 만듭니다. 그 바보같은 남자 딸이니까요.
그러나 송강숙과 효선의 시계바늘은 또 다시 멀어지고 맙니다. 자식은 부모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고 하지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게 된 효선의 눈빛을 마주한 송강숙, 그녀는 이제 죄값이라는 무거운 형벌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죄값을 은조가 대신 짊어지고 왔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던 송강숙은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효선이라는 십자가를 말이지요. 효선의 분노는 송강숙이 고스란히 받아야 할 몫이니까요. 구대성의 사랑을 알아버린 송강숙은 그 짐을 더이상 모른채 던져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바보같은 남자가 끝까지 지고 갔던 십자가는 바로 송강숙 자신과 은조였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은 곧 자신과 은조의 파멸이기에 송강숙은 그 짐을 져야겠지요. 저는 송강숙이 그 짐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어요.

벼랑 끝에 선 효선의 분노
신데렐라 언니는 은조에게서 효선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동안 은조의 상처를 그려왔다면, 이제부터는 신데렐라 효선의 상처를 그리려 하고 있습니다. 새엄마의 도덕적 배신, 기훈으로부터 거절당한 마음, 게다가 기훈이 대성참도가를 무너뜨리려 하고 아버지를 죽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효선의 분노는 겉잡을 수 없이 폭발하게 되겠지요.
효선의 감정폭발을 막아 온 것은 은조와 새엄마였어요.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어진 효선은 새엄마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아무리 흉내 내려고 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은조에 대한 질투심도 다 누르려 했어요. 차가운 엄마와 언니지만 이들마저 없다면, 세상에 혼자라는 불안감에 효선은 가슴에 얹힌 눈물마저 쏟아내지 못하고 참고 또 참아왔어요. 그게 효선의 가슴을 짓눌러 숨이 막혀올 정도로 답답헤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물조차 삼켜야 했던 효선이었어요. 새엄마와 은조는 아버지가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효선이 새엄마와 은조를 내려놓지 않으려 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예요.
그런데 효선은 돈뿐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새엄마가 아버지를 8년간 배신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새엄마의 배신까지도 "내 인생이 그 사람없이 계속되는 것,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라며 끌어 안았지만, 효선이가 감당하기는 벅차고 혼동스럽습니다. 아니 너무니 큰 충격이라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효선은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8년간을 뜯어 먹을게 많아서 살아줬던 남자였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온 새엄마를 보듬어 온, 송강숙의 말대로 바보같은 남자로 철저하게 이용당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용서하고 눈감아 주었다지만, 효선은 아버지 구대성과 같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효선은 머리가 빙빙 돌고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여자에게 철저히 뜯어먹히고 살았다는게,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닌 새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혼자서 끙끙 가슴앓이를 했다는 게 이해도 되지 않지만, 그런 아버지가 너무나 가엾습니다. 새엄마가 불결해 보이고, 구역질이 치밀어 옵니다.  
새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하고, 우리 애기라고 말해 주는 것에 안심하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에 행복해 했던 일이 치가 떨리도록 분합니다. 다가가면 마치 벌레를 보듯 몸을 털어내던 새엄마, 좋아하는 남자에게 실연당했다고 우는 효선에게 한 번쯤은 토닥토닥 안아줄 줄 알았던 새엄마는 끝내 차가운 등만을 빌려주었을 뿐이었어요. 이제는 효선이 그 등이 끔찍스럽습니다. 효선을 쓰다듬어 주던 그 손이 소름끼치게 더러워 보입니다.
효선은 새엄마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이 아이는 정말 인간의 저 밑바닥 말초적인 추악한 모습은 몰랐던 무공해 아이였어요. 그래서 효선의 변화와 질주하는 분노는 은조의 비명보다 더 강렬하고 소름끼치게 무섭습니다. 
저는 서우의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변화된 눈빛이 반갑습니다. 지나치게 침체되어 있고, 슬프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이 드라마는 슬픈 동화가 아니라 우울한 동화에요. 그 우울함에 서우의 눈빛이 복수극이 되었든, 용서를 위한 과정이 되었든 축축 처지는 드라마 분위기를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문근영의 계속되는 슬픔, 읽히지 않고 오로지 천정명 혼자 고민하는 듯한 기훈의 감정선 때문에 드라마와 함께 시청자도 같이 땅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 들고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서우 효선의 캐릭터가 드라마의 긴장감을 이끌어 주었으면 싶습니다. 이 드라마는 특히 기훈과 효선의 감정선이 매 회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저는 솔직히 혼란스럽고 피곤할 때가 많은데, 이는 천정명과 서우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대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천정명의 감정연기는 솔직히 포기했습니다만, 서우는 왠지 효선의 흐리멍텅한 캐릭터때문에 널뛰기를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새엄마에 대한 배신감, 아버지에 대한 연민, 그리고 기훈에게 거절당하고 벼랑 끝에 몰린 효선의 감정선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면, 질질끄는 듯한 스토리도 가속도가 붙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들고요. 

송강숙과 효선의 갈등은 홍주가의 음모에 휘말리는 대성참도가의 운명과 함께 신데렐라 언니 후반부를 이끌 중요한 스토리가 될 것 같습니다. 신데렐라 언니가 달려가고 있는 열두시, 큰바늘과 작은 바늘이 만나는 시간, 그 곳이 화해가 될지 비극적인 파국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송강숙의 눈물을 믿고 싶습니다. 자기 속으로 난 자식들은 결코 버리지 않으려는 송강숙의 모성, 그것이 질주하는 효선이도 끝내는 품었으면 좋겠어요. 상처투성이 송강숙과 은조를 품었던 사랑이 '아버지'라는 이름의 구대성에게서 시작되었다면, 그 용서와 화해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송강숙에게서 완성되길 바라거든요. 세상에 어떤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만큼 큰 그릇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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