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 09:08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어 궁궐 밖으로 쫓겨났을 때 백성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다. 메꽃같은 우리 딸이 시집 삼 년 살더니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사철 생명력을 가진 민씨 인현왕후와 키는 크지만 한 철일 수 밖에 없는 장희빈을 빗댄 노래입니다.
동이가 찾은 증험들도 인현왕후의 폐서인을 결국 막지 못하고, 눈물로 인현왕후의 폐위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소복으로 갈아 입고 검은 가마를 타고 궁을 떠나는 인현왕후의 모습을 보며, 마치 당시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듯 눈물이 흘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장희빈과 장희재가 쳐 놓은 덫에 걸리고 말아 폐서인되지만, 역사적으로는 서인을 견제하려는 숙종의 정치운영의 방편이었고, 장희빈과 남인의 득세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면서 백성들의 사랑은 컸습니다. 인현왕후가 폐서인되어 살던 초가 근처를 지나는 백성들은 누구나 눈물을 떨구고 갔다는 야사들도 전해질 정도로 말이지요.
동이는 손에 넣은 증험을 가지고 어떻게든 중전의 무고함을 밝히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습니다. 중전을 폐위한다는 어명이 내려졌고, 더구나 명성대비의 서거로 숙종의 마음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명성대비의 시해에 관한 모든 증거들이 인현왕후를 지목하고 있었으니, 숙종으로서도 더 이상 중전의 편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정실부인을 내치는 숙종의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사실의 진위를 떠나 자책감이 컸을 숙종입니다.
동이가 인현왕후의 무고를 밝혀줄 증험을 가지고 숙종을 알현하기를 청하지만,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낙담하는 동이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숙종의 처소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동이에게 서용기가 찾아 오지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증험들을 묻어두라며 서용기는 동이에게 기다리라고 합니다. 지금 그 증험들을 내놓아봐야 사건 재수사도 어려운 상황이고, 증험마저 남인들 손에 없어져 버릴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지요.
인현왕후의 폐위 소식에 누구보다 가슴 아픈 동이입니다. 더구나 손에 인현왕후의 무고를 밝혀줄 증험까지 있는데, 아무 손도 쓰지 못하고 이대로 물러 설 수 밖에 없음에 동이는 원통하고 분통할 뿐입니다. 그런 동이를 인현왕후는 오히려 위로해 주지요. 인현왕후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다만 가장 가슴 무거울 숙종이 걱정될 뿐입니다. "넌 슬기롭고 지혜로운 아이야. 부디 나를 위해서라도 이 시간을 견뎌다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리고 전하를 부탁한다. 누구보다 힘들고 아파하실 분이다. 성심을 헤아리고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해다오, 너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도 좋은 분이 아니냐"  
동이와 인현왕후는 진심과 진실이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 봅니다. 내쫓김을 당하면서도 지아비의 마음 아픔을 먼저 걱정하고 다독거려 달라고 부탁하는 중전마마의 마음이 진심임을 동이는 잘 알지요. 한 번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던 중전이었습니다. 성심을 어지럽힐까봐 신경쓰이는 일은 혼자서 감당하려고 했었던 인현왕후였어요. 투서가 전해졌을 때도, 혹이라도 국사에 힘든 숙종이 신경쓸까봐, 모후의 회복되지 않은 건강상태를 더 염려할까봐 혼자 은밀히 해결하려던 인현왕후 였어요. 그 일이 인현왕후의 덜미를 잡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채 말이지요.
동이는 그럼에도 답답합니다. 진실의 패를 쥐고 있는데, 서용기 종사관의 말이 모두 옳다고 말하는 중전마마입니다. 동이는 아직 정치를 모릅니다. 진실은 무엇이든 힘을 가질 수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동이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동이의 생각처럼 단순하게 진실과 의로움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동이는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때로는 몸을 낮출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숨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요. 서종사관의 말처럼 힘과 권력이 진실따위를 우습게 누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것이 권력이고, 그 힘을 지금은 장희빈과 그 뒷배인 남인이 쥐고 있다는 것을요.
동이는 이렇게 정치적으로도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희빈에게 가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동이는 진실이라는 힘을 가졌거든요. "제가 아는 마마는 한낱 천비를 위해서도 고개를 숙이던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믿고 따르던 마마는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동이는 장희빈이 더 이상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동이가 인현왕후에게서 보았던 것은 진실과 진심이 가진 힘이었습니다. 한 때 믿었던 장희빈은 권력이라는 힘을 위해 진실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동이는 더욱 당당할 수 있는 거예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진실이란 권력 보다 강한 힘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인현왕후의 당부는 그래서 동이의 다짐이 되고 약속이 됩니다. 반드시 인현왕후의 무고를 밝히고, 인현왕후를 다시 궁으로 모실 때 까지 장희빈에게 진실의 힘으로 응징할 것이라고요. 인현왕후는 동이에게 숙종의 환한 미소를 되찾아 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숙종이나 인현왕후는 동이의 환한 미소가 너무 좋습니다. 인현왕후도 동이의 환한 웃음을 보면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왜 숙종이 동이를 맑은 아이라고 했는지 인현왕후는 동이의 얼굴만 봐도 읽힙니다.
동이는 인현왕후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못합니다. 누구보다 힘드실 분이 전하이시다. 네가 웃게 해드려라 라는...
오랜만에 본 숙종의 얼굴은 근심과 수심으로 가득차 있지요. 황직장과 영달을 불러 얼큰하니 취기가 도니 숙종도 근심을 잠시라도 잊은 듯 보입니다. 하지만 동이의 눈에는 숙종의 슬픈 웃음이 다 보입니다. 인현왕후를 내친 숙종이라고 마음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나봅니다.
그나저나 내수사로 감찰파견을 나갔던 동이가 큰 사건을 하나 물었네요. 내관들의 비리가 담긴 출납일지를 손에 넣고,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맞고 감찰부로 돌아 왔었는데, 지칠줄 모르는 동이가 다시 내수사를 찾아갑니다. 보고를 들은 정상궁이 감찰부 궁녀들을 이끌고, "내수사에 대한 감찰을 하겠습니다"라고 할때는 정말 통쾌했답니다. 동이에게 천군만마가 생긴 듯 힘이 불끈 솟더라고요. 정상궁 김혜선의 눈에 불을 품는 듯한 눈빛에 내수사 관원들도 옴짝달싹 못하고 덜덜 떠는 모습이더라고요. 동이에게 그나마 든든한 지원군이 생겨서 기분도 좋았어요. 얼굴을 얼마나 야무지게 때렸는지 아주 시뻘겋더라고요. 감히 여자에게 손을 대다니.;;;감찰부과 내수사의 한판승부로 동이가 동희빈을 한방에 보낼 수 있는 약점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그것이 인현왕후를 다시 궁궐로 환궁시킬 수 있을 증험이 될지 기대해 봐야 겠습니다. 그런데 예고편에 동이가 칼에 베이는 듯해서 걱정이 크네요. 아직도 동이가 넘어야 할 파란만장한 산들이 많은가 봅니다.
동이 21회를 보면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폐위 어명을 받는 인현왕후 박하선의 절제된 감정연기였어요. "기사년 5월 2일, 중전 민씨를 서인으로 삼고 지위를 삭탈한다. 중전민씨는 사가로 출궁을 명한다" 숙종의 어명을 받은 인현왕후는 끝까지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상궁들과 나인들의 흐느낌 속에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는 인현왕후 박하선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궁을 쫓겨가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품위를 유지하는 모습은 과거 인현왕후도 그러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한 번 시집가면 죽어 그 집 귀신이 될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는 반가의 규범을 익히 배우고 새겼을 인현왕후입니다. 죽어 귀신이 되어야 할 시집에서 쫓겨나는 신세, 여염집 마님이었다면 자진을 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인현왕후는 출가한 여자이기 전에 국모였던 인물입니다. 궁을 나가는 인현왕후를 보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왕실 내명부의 최고자리 교태전의 주인이었던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서인이 되는 수치를 받았을 때 죽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에요. 하지만 인현왕후는 국모였기에, 왕의 여인이었기에 죽을 수 없었겠구나 싶더군요. 그것은 곧 어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겠죠. 
인현왕후를 폐위한다는 교지를 읽는 동안 박하선은 미동조차 않고 눈만 지긋이 감더군요. 마치 "슬퍼하지 마라, 다 운명이다" 라고 말하듯이요. 절제된 인현왕후의 감정을 보여준 박하선은, 몸동작도 표정도 중전의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불안감과 슬픔마저 감춘듯 흔들림없이 의연한 인현왕후의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것이 더 아프고 슬퍼지더라고요. 
님찾아 꽃가마 타고 왔을 적 임금에게 사랑받으며, 왕가의 대를 이을 왕손도 낳고, 어질고 덕있는 국모가 되리가 꿈도 꾸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전이라는 자리는 깊고 깊은 구중궁궐만큼이나 고독한 것이었고,, 지아비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궁에 들어왔을 때 타고 왔던 꽃가마가 아닌 검은 가마을 타고 궁을 나갑니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과 외롭고 고독했던 그녀의 슬픈 운명처럼 말입니다. 소복을 갈아입고 궁을 뒤돌아 보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드라마 속이었지만, 당시 조선 백성들이 땅을 치고 통곡하고, 산천초목이 다 울었다는 심정이 이해가고도 남을 정도였어요. 인현왕후 역의 박하선을 보니 한과 억울함, 슬픔과 수치심 등등의 모든 감정을 깊은 눈빛 속에 담고는, 인현왕후의 성품을 제대로 보여 주더군요. 폐위되는 인현왕후의 슬픔마저 우아하고 품위있게 승화시켜 보여 준 박하선의 연기가 좋았던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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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1 Comment 10
  1. 자기관리 2010.06.01 09: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어떤시대에도 권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전쟁은 치열합니다
    초록누리님의 날카로인 해설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2. 둔필승총 2010.06.01 09:52 address edit & del reply

    박하선의 연기가 누리님 글에 의해 더 빛나는데요.~~

  3. 카타리나^^ 2010.06.01 11:1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박하선 연기 진짜 좋았죠
    인현왕후가 실제 그랬을거 같긴해요 ㅎㅎ

  4. 2010.06.01 11:2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도꾸리 2010.06.01 14: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글을 보니 드라마가 보고 싶어지는걸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6. Tvian 2010.06.01 17:23 address edit & del reply

    iMBC <동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해당 포스트가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dongyi/tvfun/

  7. 금성에서 온 여자 2010.06.01 18:4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어제 TV만 껴놨지 다른 걸 하느라 제대로 못 봤어요.
    박하선이라는 배우 동이에서 처음 보는 듯한데
    인현왕후 역할을 품위있게 잘 소화하는 것 같아요. ^^

  8. 악랄가츠 2010.06.01 18: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와! 동이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되셨어요! ㄷㄷㄷㄷ
    멋지시다능! ㄷㄷㄷ

  9. 친구세라 2010.06.01 19:24 address edit & del reply

    박하선이라는 배우.. 동이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정말 인현황후의 환생처럼
    일체된 연기를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21화에서도 저도 참 인상깊었답니다.
    슬프기도 했구요 ㅠㅠ

    리뷰 잘 보았습니다~♡

  10. 풍산개 2010.06.02 03:39 address edit & del reply

    실록에 따르면 인현왕후가 폐위되고나서 생활고 때문에 식사도 재대로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들은 숙종이 쌀 한 가마를 민씨의 집으로 보내주었지만 민씨는 "죄인의 몸으로 어찌 성상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면서 쌀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또한 기록에는 희빈 장씨의 나이가 숙종보다 다섯살이나 위였고, 인현왕후는 숙종보다 일곱살이나 연하였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