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5 07:42




이제 3회분밖에 방송이 되지 않았지만 나쁜남자는 드라마 몰입이 상당히 높은 드라마입니다. 블록쌓기 같은 심건욱의 치밀한 복수극, 퍼즐맞추기같은 어두운 과거, 그 조각조각들 사이에 유리파편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각기 다른 사랑은 진실찾기 심리게임을 하듯 혼란스럽게 합니다. 주인공 심건욱조차도 그가 그려가는 그림에 불안함을 내비칠 정도로 말이지요.
드라마에서 김남길이 보여주는 심건욱의 감정선을 정확히 읽어내기란 힘이 듭니다. 그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정도로 심건욱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이 수많은 퍼즐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헛갈릴 정도로 복잡한 캐릭터를 김남길은 한 파레트 안에서 보여줍니다.
모네의 순수한 사랑 앞에서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심건욱이 되고, 태라에게는 지능적인 유혹으로, 어설픈 작업녀 문재인에게는 동네 꽃거지 심건욱의 모습을 알뜰살뜰하게 보여줍니다. 츄리닝에 쮸쮸바 빠는 심건욱은 만화방에 가는 동네 백수처럼 찌질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태라에게 향하는 눈빛은 도도한 여자를 유혹하는 강렬한 남자의 모습입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심건욱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그가 목표로 한 복수도 한걸음 더 다가서게 하는 독특한 연출방식은, 미스테리같으면서도 심리극의 치밀함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심건욱 안에 존재하는 세 이름
"나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부모님이 불러 주신 이름 최태성, 해신그룹이 강행한 이름 홍태성,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한 이름 심건욱... 나도 가끔 내가 누군지 모른다"
한밤중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이름이 세개가 있다는 나레이션은 심건욱이라는 남자의 정체성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심건욱이라는 남자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세 사람은 심건욱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심건욱뿐만이 아니라 시청자도 그의 진심과 거짓을 파헤쳐야 합니다. 또한 그가 선택하고 싶은 진짜 이름까지도 드라마를 통해 알아가야 합니다. 그가 비밀의 방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포스트잇 메모장들처럼, 지금부터 우리는 이 심건욱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메모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심건욱에 대한 정보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지름길 찾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심건욱이 펼치는 심리게임은 화면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드라마 장치 중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보는 것이 심건욱의 집이에요. 심건욱의 집은 두개의 방이 있습니다. 회전문 안에 있는 그의 비밀의 방과 비밀의 방과 연결된 다른 공간이 그것이죠. 마치 심건욱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듯 회전문을 사이에 두고 한 공간에 배치된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회전문은 심건욱의 심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보여지고요.
복수와 연민, 예기치 못한 우연과 치밀한 계획, 중독과 해독, 분노와 사랑, 순수와 타락, 욕망과 욕정, 순수함과 잔혹함의 경계에 선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심건욱의 심리가 회전문이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겟지요. 저는 심건욱이 이 회전문을 통과하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 때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하곤 합니다. 나쁜남자 심건욱의 캐릭터와 상당히 비슷해 보이거든요.

스무살 모네의 순수를 자극하다
김남길의 강렬한 눈빛은 첫회부터 저를 사로잡고 그 속에 풍덩 빠져들게 했는데, 시청자인 저보다는 드라마 속 세여자가 심하게 빠져들고 있네요. 심건욱의 완벽한 1인 3역은 세여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에서 그 특별한 매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살 순수한 모네에게는 터프함과 섬세함으로, 그 나이에 한번쯤 꿈꿀 수 있는 이상형으로서의 '오빠'로 접근하지요. 모네의 전화도 일부러 받지 않으면서 모네를 애타게 하다가, 뜬금없이 캠퍼스에 나타나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모네의 때묻지 않은 순수를 건드려 줍니다.
"난 부잣집 아가씨의 장난감이 아니야. 넌 당당하고 거침없을 때가 제일 예뻐. 나 때문에 불안해 하고 숨기려고 애쓰고, 힘들어 하지마. 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라며, 모네의 순수를 자극하지요. 난 네가 부잣집 딸이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난 그렇게 비굴스런 사람은 아니라고... 나 때문에 힘들어 하지 마라. 내가 널 잊으면 되니까... 스무살 모네에게 이 터프하면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남자는 바로 하트뿅뿅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가버리는 심건욱의 뒷모습을 보며 모네의 마음은 이 남자의 뒤를 벌써 따라가 버립니다.
심건욱은 모네 또래의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첫사랑의 열병을 철저히 계산하고 있는 것이지요. 터프함, 당당함,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상대가 부잣집 딸이라는 속물적인 계산없는 남자, 모네의 나이에 가장 빠져들기 쉬운 남자입니다. 계산없이 순수하게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을 부르게 하지요. 심건욱은 모네의 심리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미리 덫을 쳐두는 것도 있지 않았어요. 모네의 연습실 엘리베이터에서 "모네야, 좋은 사람 만나, 너만 바라봐 주는 사람 만나" 라고요. 모네에게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남자로 만들어 가는 심건욱의 순수한 사랑 1단계 기술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위험한 덫, 태라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다
심건욱의 또다른 사랑의 기술은 홍태라(오연수)에게 치는 덫이에요. 태라에게 심건욱은 모네와는 달리 도발적이고, 공격적으로 접근합니다. 태라가 누르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 열정을 건드려 주는 것이지요. 모네에게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하면서, 태라에게는 일탈에 대한 뜨거운 열병을 앓게 합니다.
모네때문에 건욱과 만나기로 한 태라는 건욱이 들어서는 모습에서부터 그에게서 눈을 떼지를 못합니다. 자석처럼 태라의 눈을 이끄는 남자, "우리 모네랑 어쩔 작정이세요?"라는 질문에 건욱은 밑도 끝도 없이 "첫사랑 해보셨어요?" 라고 되받아 줄 뿐입니다. "첫사랑을 해봤다면... 그땐 상대가 누구든 중요하지 않죠. 그 감정에 몰입돼 버리니까, 열병처럼 들끓으니까..."
태라가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는지 아닌지는 태라의 입을 통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랑없는 결혼을 했다는 것만이 유추될 뿐이에요. 태라가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 혹은 열병같은 사랑의 경험이 없었던 여자라면, 건욱의 말은 오랜시간 잠자고 있던 태라의 원초적 감정을 뒤흔듭니다. 이성을 잃고 싶지 않는 태라는 끝까지 건욱을 만나러 온 것이 모네때문임을 강조하며 버텨보려 합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다소 속물적인 질문을 하지요. "원하는 것 있으면 내 방식대로 얻을 거예요. 아무도 간섭할 수 없어요. 그게 당신이라도..."
그게 당신이라는 말에 '쿵' 태라의 심장이 또다시 뛰지요. "당신이 장난삼아 건드릴 때마다 걔는 아파" 태라의 말은 모네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모네를 핑계삼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당신은? 당신은 아파본 적 있어요? 누구때문이든 간에 한번이라도 아파본 적 있어요?"  한시도 눈을 떼지않고 태라에게 고정되어 있는 건욱의 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지만, 치명적인 이끌림이라는 그물에 던져진 태라에게는 힘이 들 뿐입니다. 그녀 손목을 잡고 "따뜻하네" 라고할 때, 이미 태라는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뭔지 모를 뜨거운 열기가 한낮의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처럼 태라 속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태라는 심건욱이라는 남자가 쳐 둔 덫에 발을 딛고 맙니다.

심건욱이 모네에게는 순수성을 자극한다면, 태라에게는 그녀가 억누르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합니다. 홍태라같은 여자는 본능적인 사랑마저도 사회적 위신과 체면으로 억누르는 인물이에요. 태라가 해신그룹의 장녀라는 설정과도 맞아 떨어지는데, 태라는 어려서부터 집안과 사회적 체면에 대한 교육 속에 홍태라는 어떤 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인물로 자랐을 겁니다. 사랑도 허락되어야 했었을 것이고, 결혼도 집안끼리 정략적으로 이루어진 케이스였을 겁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같은 수준의 사람끼리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것이 강요된 결과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 박재훈 검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불편한 태라의 표정은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어보이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그녀와 박검사를 이어주는 것은 딸 소담이 뿐이고, 그녀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소담이라는 듯 태라는 소담이에게 올인하는 모습입니다. 깨고 싶지 않은 결혼의 이유가 딸인 여자지요.

1인3역 김남길의 심건욱, 치밀함이 돋보이는 완벽한 캐릭터
저는 태라와 건욱의 관계가 가장 흥미로운데요, 홍태라 역의 오연수의 절제된 카리스마와 눈빛연기가 참 매력적입니다. 드라마 나쁜남자에서 김남길과 함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배우가 홍태라 역의 오연수입니다. 가늘게 떨리는 눈, 불안과 초조, 도도와 오만, 냉정과 열정 사이를 짧은 순간순간 교차시킬 수 있는 배우가 흔하지 않은데, 오연수가 그런 눈빛을 가졌더군요.
감정을 읽히지 않으려는 듯 경계하는 눈빛, 누군가 그녀의 눈빛을 읽으려 하면 그 자리에서 묵사발 당할 것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가 살아있는 눈빛입니다. 감춰진 욕정이 꿈틀대는 듯한 관능미까지 오연수의 도발적이면서도 방어적인 눈빛에 숨어있는 것 같더라고요. 오연수와 김남길이 함께 나오는 장면은 두 사람의 불꽃같은 눈빛대결에 팽팽한 긴장감까지 도는데요, 마치 호랑이와 사자의 기싸움을 보는 듯합니다.

나쁜남자에는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김남길은 심건욱의 비밀스런 캐릭터를 완벽하게 하나로 보여주며, 깊은 고독이 묻어나는 표정만으로도 심건욱이라는 남자의 마성에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김남길은 세 여자를 대하는 표정도 각기 다르게 표현하지만, 목소리까지도 색깔을 조절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건욱이 모네, 문재인, 그리고 홍태라와 대화하는 대사톤은 미묘하게 상대방의 캐릭터에 부합하는 색깔로 조절까지 합니다. 모네에게는 따뜻하게, 문재인에게는 툭툭 던지듯이, 그리고 홍태라에게는 끌어 당기듯이 말이지요. 그런 다양한 변신을 한 작품에서 섬세하게 표현하는 김남길은 팔색조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글에서 나쁜남자 속 사랑 세가지를 모네의 순수한 사랑, 태라의 위험한 사랑, 재인의 우연한 운명적 사랑으로 나름대로 분석했는데요, 드라마 나쁜남자의 치명성은 이 세가지 사랑의 색깔이 빨강 노랑 파랑색으로 선명하게 분리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배우로서의 김남길의 매력도 있지만, 심건욱이라는 인물의 복합성을 김남길이 마치 1인3역을 해내듯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세가지의 눈빛만으로도 각기 다른 세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김남길은 확실히 심리묘사가 탁월한 배우입니다. 한 캐릭터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들과는 너무나 대조되어서 볼때마다 감탄사가 자동으로 나오게 되더군요. 종영한 다른 드라마의 남자주인공과 비교해 보면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 드라마를 죽이고 살리고의 향방을 가름한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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