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6 11:39




인생은 아름다워는 잔잔한 감동 속에 우리가 무관심 혹은 무시했던 부분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해보게 하는 가족드라마이자 큰 의미의 사회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리뷰글을 쓰기 전에 오늘 있었던 개인적인 이야기 한토막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휴일 오전이라 조금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동영상에 올라 온 드라마와 무한도전을 다운로드 걸어 두고, 딸아이와 조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인데, 동네 역사가 200년은 넘은 오래된 동네입니다. 때마침 그곳에서는 Bread and Honey Festival이 한창이어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더라고요. 주택가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스 크림 가게까지 걸어가야 했지요.
길거리에는 밴드의 음악이 흥겨웠고, 축제일이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 하와이언 티셔츠를 세트로 입고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들로 북적북적 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연례행사로 하는 축제인데, 모르고 나갔는데 행운이었지요. 평소에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일이 드문데, 저는 자연스럽게 딸아이의 손을 잡고 혼자서 흥분해서 "우리 잘 나왔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딸아이가 제 손을 뿌리치는 겁니다. "엄마, 손은 빼고 걷자구요" 이러면서요. 전 아무 생각없이 "왜?"이러면서 다시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겁니다. 옆에 있던 조카 왈 "이모 여기서 그러시면 레즈비언으로 봐요". 허걱! 예전에 딸아이도 한 번 그런 말을 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제 차림이 짧은 청 반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얼굴을 반은 덮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니, 그냥 보기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어요. 제가 몸도 날씬한 편(자랑질 죄송;;)이라 가까이서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나이가 짐작이 되지 않았을 터라, 충분히 그런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외국에 나와서 알게 된 게 외국 사람들은 동성끼리는 손을 잡지 않고 다닌 답니다. 여기서는 동성끼리 손을 잡고 다니면, 동성애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네요. 그러고 보니 쇼핑몰을 다닐 때도 젊은 학생들을 많이 보는데, 여학생들도 손을 잡고 다니는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동성애가 화제가 되어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가면서 딸아이 학교 친구 중에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 아이가 집에서도 커밍아웃을 했는지 였거든요. 딸아이는 "그걸 제가 왜 물어봐요? 우린 그런 깊은 얘기는 안나눠요. 사회의 시선이니 그런 고리타분하고 무거운 얘기는 안해요. 그냥 똑같은 얘기해요" 이러더라고요. 딸아이가 말하는 똑같은 얘기라는 것은 이성친구들이 누구 사겼는데 어땠느니 저땠느니 하는 같은 얘기들이라는 겁니다. 동성애자들과는 특별한 얘기를 할 것 같다는 제 편견이 부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회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경수를 맞이하는 태섭의 가족들의 모습처럼요.
인생은 아름다워 태섭의 상대역인 경수가 처음으로 폭풍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처음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태섭의 가족들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정말 미치도록 싫어서 우는 모습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수와 함께 우는 태섭이 역시 같아 보였고요. 
민재의 요리작품사진을 찍으러 온 경수, 경수가 태섭의 상대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병태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기에 병태와 가족들의 반응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김수현 작가는 어떤 식으로 경수까지 병태의 집에서 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특히 병걸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맥빠질 정도로 감동은 없었어요. 맥빠질 정도의 무덤덤한 반응, 그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그것이 경수에게는 호들갑스러운 환영인사나 경수에게 "자네를 인정하네" 라는 말보다 더 감동스러웠으리라 생각들더라고요. 여느 이성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말처럼 "태섭이랑 잘 지내달라는 부탁밖에는 할말이 없다"는 병태는 어렵게 "자네 부모님은 받아들이셨느냐?"고 물을 뿐이었습니다.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에도 쉬운 일 아니라고 이해해 주라며 경수를 안타깝게 여길 뿐입니다. 병태 역시 태섭을 받아들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지금도 병태의 마음에 미련이 남아 있음을 병태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사진 작업을 끝낸 경수에게 민재는 늘 그래왔듯이 씻고 가라고 말합니다. 병태는 일하러만 오지 말고 가끔 들러서 밥도 얻어 먹고 가라며, 집에 데리고 온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에게 할 수 있는 인사를 하지요. 경수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던 것은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은 병태네 가족들의 태도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들은 경수를 인정한다, 아니다를 떠나 태섭의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로 대하듯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주었을 뿐이에요. 자연스럽다는 것, 그것은 경수를 인정해 준다는 것보다 따뜻한 위로였고, 경수나 태섭이와 같은 제 3의 성을 가진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나 인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봐주는 것,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당하지 않는 것, 그것을 경수는 민재와 병태를 통해서 받았기에 경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병걸 삼촌이 "너도 게이냐?"며 무례한 말을 하지만 경수에게는 병걸의 말이 더 이상 충격적인 상처도 되지 못했을 거예요. 이미 경수는 그보다 더 심한 말들을 가족들에게 매일같이 들어야 했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도 괴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경수가 받은 상처는 끔찍했습니다. 동생은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경수 가족들은 경수를 받아들이지 못했고요.
경수가 태섭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하는 말이 동성애자들의 심정을 대변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라도 집에서 이해받아서 다행이다. 너랑 나 탈출구도 없이 몰리면 길은 하나 뿐이야. 한 날 한 시에 세상 하직하는 것, '동성애자 동반자살' 신문 한 귀퉁이에 가사 나는 거지"
경수의 대사를 들으며 이것이 동성애자들의 보이지 않는 현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사건들 중에 동성애자여서 받는 스트레스때문에 죽었을 사건들도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사회적 통념과 편견이라는 것이 어느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수는 태섭을 인정했다는 병태 가족들이 어쩌면 별종들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막상 병태네 집에 와서 칼국수를 먹으면서 그들은 경수나 태섭을 특별하게 대하지도 않았고 일부러가 아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대해주는 것을 보고 경수가 속으로 오히려 당황했을 지도 몰라요. 창살 없는 감옥, 출입구조차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 경수는 비로소 자신에게도 숨쉴 수 있는 창문 하나 쯤은 달려있고, 자신이 갇혀있는 감옥에 자물통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것도 느낍니다.

커밍아웃 이후 처음으로 경수는 똑같은 사람에게 대하는 태섭의 가족을 통해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서러움을 함께 느꼈을 듯 싶더군요. 감사하면서도 왜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서 당연하게 사람으로서 받아야 할 대우마저도 감사해야 하는 자신이 또다시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는 경수를 부둥켜 안고 함께 우는 태섭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고요. 
아직은 많이 어려울 지도 몰라요. 경수나 태섭이와 같은 성적소수자들을 편견없이 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요. 하지만 그들을 위해 창문 정도는 만들어 줘야 하고, 적어도 자물통은 채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를 통해 태섭도 민재도 병태도 눈물을 흘렸지만 경수의 눈물을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 왔어요. 경수에게는 태섭의 가족은 확대적인 의미로 사회의 시선이었고, 비록 그 작은 사회안 역시 성적소수자가 있었기에 경수에 대해서도 관대한 시선을 보여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경수의 입장에서는 가족 아닌 타인의 집단으로부터 이해를 받는다는 것은 큰 의미에서 포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적소수자의 가장 큰 바람은 특별하게 배려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해 혹은 인정해 준다는 일종의 동정심의 시각도 아닐 겁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의 대상이나 질타의 대상이 되지 않고, 또한 심리적 죄인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런 대우를 처음으로 받아봤기에 경수가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수의 눈물이 지난 주 태섭의 커밍아웃으로 흘린 눈물과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그런 성적소수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3
  1. 2010.06.06 13:2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둔필승총 2010.06.06 22:01 address edit & del reply

    허걱!!! 모녀가 손 잡는 걸 오해하는 나라, 나쁜 나라 아닌가요? ^^;;;

  3. 잘봤습니다 2010.06.07 00:49 address edit & del reply

    잘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