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3 09:12




조선의 궁중역사에서 장희빈만큼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그리기에 매력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희빈은 그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희대의 요부, 당파싸움의 정치적 희생양, 악랄한 악녀, 낮은 신분에서 최고를 꿈꿨던 야심가 등 장희빈이라는 인물은 해석하기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는 인물이기에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는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인물이지요. 때문에 드라마 동이에서 이병훈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될 장희빈이 어떤 인물일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점점 특색없는 장희빈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감독과 작가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든 동이는 코믹멜로 궁중사극의 범주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장르입니다. 숙빈최씨, 인현왕후, 장희빈의 연결고리인 숙종이 깨방정 코믹왕으로서 드라마의 재미를 담당하고 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왕의 코믹화가 오히려 시청률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으니, 이병훈표 숙종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 고증이나 한 나라의 군주로서의 숙종에 대해서는 결코 성공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숙종의 인기에 힘입어 동이에서의 숙종같은 인물이 궁중사극에서 자주 등장하게 된다면 그리 반가울 같지는 않지만요.
애초부터 숙종은 코믹왕 캐릭터로 승부수를 띄웠고, 왕으로서의 숙종이 아닌 드라마 속 한 캐릭터로서 이병훈감독과 지진희의 새로운 숙종만들기는 성공적입니다. 덩달아 숙종과의 달달한 연애를 하는 동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요. 초반 동이의 오지랖 탐정놀이와 천하무적 동이로 인해 호감도가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러브모드의 본격돌입으로 주인공이 관심을 받는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승은을 입기 일보 직전인 동이와 숙종의 사랑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캐릭터의 혼란이 온 인물이 장희빈이에요. 초반부 탐정천재 소녀에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수호천사들이 나타나 도와주는 동이에 반해, 우아하고 절제된 장희빈은 주인공인 동이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고 매력적이었던 게 사실이에요. 비주얼로도 한효주보다는 이소연이 사극에 더 어울리는 얼굴이었고, 표정이나 목소리도 한효주보다는 장점이 더 많았지요.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갈수록 매력이 반감되는 인물이 이소연의 장희빈이에요.
동이는 정통사극도 정치사극도 애정사극도 아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혼합한 짬뽕사극입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동이와 숙종의 캐릭터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지요. 오직 정통사극의 범주를 이탈하고 있지 않은 인물이 인현왕후와 장희빈 정도입니다. 하지만 동이와 숙종의 사랑이 무르익어 갈 즈음해서 장희빈의 캐릭터가 애매모호해 지면서 질투의 화신으로 변하고 있는데요,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질투에 눈멀어 진실을 버리는 장희빈은 제게는 별로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지난회에서 장희빈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했어요. 작가의 손에서 장희빈이 새롭게 그려질 지, 지금까지의 모습처럼 어정쩡하게 숙종과 동이를 질투해서 홀로 눈물이나 머금는 장희빈으로 쭉 그려갈 지는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반가운 변화를 읽었어요.
장희재가 내금위에 압송되어 고문을 받고 있다는 것과 폐비의 일과 관련한 증험을 숙종이 손에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된 장희빈은 야심한 시각에 숙종의 처소를 찾아 옵니다. 장희빈이 숙종에게 담담하게 자신과 오라비는 죄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을 보면서, 장희빈이 밉다기 보다는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이가 가져온 증험만 믿고, 임금의 손으로 직접 교지를 내려 중전의 보위에 올려 준 자신의 말은 믿어주지 않는 거냐며 숙종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지요. 엄연한 당신의 부인인데 부인말은 안 믿느냐면서요.
장희빈은 마지막까지 숙종이 주는 기회를 뿌리치고 맙니다. "옥정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실을 말해 준다면 그 죄는 덮을 수 없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널 용서할 수 있다"며, 사실을 말해 달라는 숙종의 사사로운 청마저 외면하는 장희빈입니다. 하지만 장희빈은 전하께 용서받을 짓을 하지 않았다며, 숙종이 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숙종이 건네는 화해의 손을 거절하고 맙니다. 
장희빈의 실수는 숙종의 마지막 말을 거절한 것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장희빈이 원했던 것은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숙종의 마음이었어요. 장희빈의 사랑관이 명확해지는 부분이지요. 독점욕이 바로 장희빈의 사랑색깔이에요. 누구와도 나누지 않겠다는 장희빈의 독점욕은 결과적으로 숙종과 등을 지게 되면서, 그녀는 치열한 정치싸움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남인들의 뒷배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자신이 전면으로 나서서 지휘하는 모습으로 말이지요.
이로써 장희빈은 숙종과도 결별을 하고 맙니다. 진실을 인정하든 부정하든 멀어진 숙종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이 없는 장희빈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요.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저를 이렇게 만드신 것은 전하십니다"라는 장희빈의 방백을 들으면서, 장희빈은 결국 질 수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랑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점욕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장희빈이 그런 모습입니다. 인현왕후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견주어 보니 장희빈과 인현왕후처럼 대조적인 사랑관을 가진 인물도 없어 보여요. 이 두 사람이야 말로 빛과 그림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장희빈이 과신했던 것은 자신이 차지한 중전이라는 자리가 갖는 권력의 힘이었어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우매함 중의 하나가 올챙이적 시절 생각못한다는 것인데, 장희빈의 경우가 그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희빈이 중전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목표가 결국은 숙종의 사랑이 아니라 내명부의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이었던 것이지요.
장희빈이 숙종과 마음으로 결별을 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드라마 동이에서의 장희빈의 캐릭터가 오락가락 한 이유를 어렴풋이 찾을 수가 있었어요. 장희빈을 권력과 사랑 두마리 토끼를 쫓는 인물로 그리다보니 오히려 캐릭터가 약화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장희빈이 처음에 잡으려고 했었던 것은 권력이었어요. 중전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진실을 버렸고, 그녀의 목숨과도 같았던 자존심마저 버렸어요. 장희재가 내의원을 매수해 인현왕후에게 모함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동이가 장희빈을 찾아와 진실을 말해 달라고 소란을 피울 때, 그녀는 자존심을 버려 버렸습니다. 자신때문에 감찰부에 끌려 간 동이를 구하기 위해 감찰부로 직접 찾아가 조사를 받기도 했던 그 당당함을 버렸지요. 그것은 숙종에 대한 사랑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야욕때문이었어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숙종이 동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장희빈은 다시 사랑을 잡기 위해 비열함이라는 옷을 입게 됩니다. 물론 장희재를 내세워서 말이지요. 한데 인현왕후를 폐위시킬 때는 정치적 명분이라도 가졌던 장희빈이었지만, 동이를 없애려는 모습은 오로지 질투의 힘밖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장희빈이 질투의 화신이라는 매력없는 인물로 퇴보해 버린 것이에요. 
숙종의 처소를 나와 장희빈이 "저를 이렇게 만드신 건 전하이십니다" 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장희빈이 과거의 장희빈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장희빈이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보다는 숙종을 정치적으로 압박해 가는 인물로의 변신할 것같아 사실 반갑기도 했어요. 곧 끌려 나오겠지만 교태전 보료에 앉아서 떠나간 님 마음이나 생각하며 질질 짜고 앉아 있는 장희빈은 그다지 매력이 없거든요. 
그래서 생각난 게 있는데요, 예전에 숙종과 동이가 상평통보 주전소에 가서 구리와 주석의 품귀현상을 조사하고 다닌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남인들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사건이 오리무중이네요. 예컨데 이런 비리들에 장희빈과 그 뒷배인 남인들을 적당히 엮어서 장희빈을 정치적 인물로도 그려갔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희빈이 교태전에 앉아서 동이 잡겠다고 부리는 꼼수들이 너무 치졸스러워서 말이지요. 궁중에서 독극물 사건이야 가장 좋은 소재이기는 하지만, 탕약음모 사건이 너무 반복되다 보니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명성대비 탕약사건, 인현왕후 탕약사건, 게다가 장희빈 자작독살극까지 너무 약재 사건이 많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차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녀가 사랑한 사람이 임금이라는 것이 그녀의 불행이라면 불행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장희빈이 사랑에 대한 독점욕이 조금 덜했더라면, 그렇게 파멸의 길을 가지는 않았을 지도 몰라요.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속 장희빈이 보여주고 있는 사랑 독점욕은 캐릭터의 망가짐까지도 가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에 대한 독점욕보다는 차라리 권력에 대한 집착에 더 충실한다면 질투의 화신이라는 장희빈이라는 캐릭터의 약점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때문에 질질 짜는 장희빈에게 인간적인 연민은 들지만, 장희빈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매력은 반감되는 게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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