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으로 무대를 옮겨 온 나쁜남자의 본격적인 퍼즐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서서히 조여오는 곽형사의 매서운 수사가 심건욱의 정체를 향해 마지막 퍼즐조각을 맞춰가고 있기에, 심건욱의 비극적인 슬픔이 감지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쁜남자 심건욱의 복수와 사랑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네요.
깨져버린 유리가면의 의미
류선생이 말했지요. 유리가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리고 유리가면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것을 유리로 만든 것이라고...
일본에서 어렵게 구해 온 유리가면은 홍태성의 손에 의해 깨져 버렸습니다. 가면이란 무엇인가를 가리는 기능을 할 때 가면이라고 할 수 있기에, 투명하게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리는 유리가면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감정을 읽히고 싶지않은 게 우리 인간들이지요. 인간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는 얼굴표정, 말투, 글 등 몇가지의 방법이 있겠지만 좀처럼 숨기기 힘든 것이 표정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속 유리가면의 의미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숨기고 싶어하는 무의미한 방어수단이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같아요.
나쁜남자 속 인물들은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인물들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다혈질적인 갤러리 관장 신여사나 순수한 모네, 그리고 담백하다고 할 수 있는 문재인을 제외하고는, 가면을 쓰고 무도회장에 나타난 인물들 같아 보이니까요. 그들이 쓴 가면이 곧 유리가면이에요.
태성의 손에 박살나 버린 유리가면의 의미는 이들이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감정의 폭주를 의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진 유리가면처럼 솟구치는 감정을 폭발시켜 가고 있는 심건욱과 홍태라, 그리고 홍태성을 보면 말이지요.
태라가 엘리베이터에서 건욱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것을 상상하는 장면은 그녀가 이미 치명적인 사랑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지요. 상상만으로도 홍태라는 그녀를 가로막았던 체면과 도덕적 이성적 잣대였던 가면을 깨버렸던 거예요. 사랑없는 결혼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홍태라의 말초적 본능이 심건욱에 의해 깨어나고 있는 거지요. 산산히 부숴진 유리파편들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욕정으로 꿈틀대고 있는 홍태라입니다. 억제하지 못하는 본능을 절제와 폭발을 넘나들며 보여준 오연수의 연기, 정말 좋더군요.
곽반장이 최선영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선영이 있는 납골당을 찾아 태성이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닐 수도 있대. 그런데 왜 이렇게 기쁘냐?" 라며 우는 장면이 있었지요. 홍태성이 일본으로 날아가 약으로, 그리고 하룻밤 여자를 사서 잊고 싶은 기억, 그것은 최선영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이었겠지요. 자기때문에 죽은 것이 아닐 수도 있음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울 줄 알았는데, 결국은 그 죄책감을 놓지 못하는 홍태성입니다. 사랑함에도 선영을 지켜주지 못했던 죄책감은 홍태성이 영원히 떨치지 못할 그의 십자가겠지요. "만약에 네가 죽는데 그 자식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내가 가만 안 놔둬"라며 우는 홍태성을 보며 심건욱과 절망적일 정도로 악연으로 이어진 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좋아한다며 건욱의 복수를 말렸던 최선영이었기에 건욱의 해신그룹과 홍태성에 대한 분노는 더 커지기만 합니다. "나, 멈추지 않을 거야. 해신그룹과 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해줄 거야. 모든것이 다 끝난 후에 그 때 벌 받을게. 지켜봐, 누나". 건욱이 태성의 아픔을 알았더라면 증오의 질주를 멈출 수 있었을 지, 이들은 이렇게 서로 보지 못한 유리가면 뒤의 감정들을 읽지 못하고 복수와 분노를 향해 달릴 뿐입니다.
건욱과 재인의 슬프도록 아픈 키스
태성이 신여사 앞에서 유리가면을 박살내 버리자 누구보다 놀란 것은 재인이었어요. 유리가면을 손에 넣고도 태성의 방에 두고 왔던 것은 재인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재인은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태성이 집안에서 겉돌고 있음을 알아버렸어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슬픔이 태성을 망가지게 하고 있고, 그 화해를 태성이 직접 하게 해주고 싶었지요. 신여사가 원하는 유리가면을 가지고 와서 감동을 주게 하는 방법을 말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알 수 없는 태성에 대한 감정때문이었어요. 막상 자신이 작업을 걸어 보려 했던 홍태성이 일본에서 유리가면때문에 티격태격했던 틱틱거리는 남자였음을 알게 된 재인은 태성이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허울때문이 아니라 홍태성의 모습 자체로도 관심을 가지고 싶었어요. 배 위에서 막무가내로 키스를 퍼부었던 홍태성, 우동집을 뛰쳐나가 자신을 안고 울던 홍태성, 그에게는 특별한 아픔이 감지되는 재인이었지요.
그런 재인을 향해 따귀를 날리는 신여사의 행동은 재인에게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자신과 너무 달랐다는 것에 충격적입니다. 유리가면을 위해서라면 간이고 쓸개고 빼줄 듯이 자신을 극구 칭찬했던 신여사는, 저까짓 유리가면 열개라도 깰 수 있고, 필요하면 돈주고 사면 된다며 "네가 감히 내 아들 무시해, 네 따위가 뭔데? 라며 멸시를 줍니다. 재인이 사귀던 남자, 돈많고 집안좋은 여자랑 결혼시키면서 자신에게 돈봉투를 내밀었던 재인의 과거애인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건욱은 자신의 마음이 재인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어요. 재인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달릴 때 자신의 허리를 꼭 껴안는 재인과 이대로 지구 끝까지 그냥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해신그룹이고, 누나고 다 잊고 재인을 뒤에 태우고 멀리 멀리 달려 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더군요. 유리가면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주차장으로 재인을 불러 홍태성을 우연스럽게 만나게 해주면서 씁쓸하게 돌아서면서, 저 여자가 웃을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았어요. 건욱은 재인이 실컷 욕하고 싶은 홍태성이 돼주고 싶습니다.
우는 재인에게 키스를 해주는 건욱의 눈에서도 한줄기 눈물이 흘렀지요. 저는 건욱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왜 건욱이 우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건욱은 재인이 관심가지는 진짜 홍태성이고 싶은데, 홍태성이 아닌 자신때문에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건욱은 재인에게 늘 묻습니다. 왜 홍태성이냐고요. 선배감독집에서 남자팬티를 들고 서있던 재인의 모습, 어설프게 커피를 들고 작업걸던 재인, 돈 많은 남자 꼬셔 보겠다고 남자집 청소며, 빨래며 순진스럽게 하던 바보같은 문재인이 좋습니다. 나 심건욱은 안되는 거냐고 묻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건욱은 여기서 또 멈춰 버리겠지요.
*예고편에 문재인과 홍태성, 그리고 심건욱과 홍태라의 뜨거운 장면들이 보였는데, 와... 예고편만으로도 다음주 한주가 길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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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2010.07.02 13:12
김남길씨 연기에 저 또한 몰입이 되어서...
한 시간도 채 안되는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들에게 어찌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는 사람들을 홀리던지...
심건욱= 김남길.
덕분에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게 됩니다.
주연배우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게 이래서 중요한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