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야. 이렇게 휘청거리는데... 온몸이 산산히 부숴져 버린 듯 두렵다.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가듯 혼미해진다. 강한 전류가 온몸을 휘감는 듯 짜릿하다. 심장을 쥐어 짜는 듯한 이 강한 전율을 언제 느껴 봤던가... 샤워기의 물이 그의 손길같다. 심건욱, 거부하고 싶은 이름, 불길하다. 위험하다.'
빗속에서 전해지던 심건욱에 대한 기억들을 씻어내고 싶은 태라, 샤워를 하고도 씻겨지지 않은 기억은 욕정인지, 부도덕한 생각에 대한 죄책감인지, 혹은 심건욱에게 빠져들고 싶은 태라의 감춰진 욕구인지, 태라는 산산이 부숴지고 있습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방울들처럼 말이지요.
남편과 잠자리를 원하는 태라, 그러나 재판준비로 예민한 박검사는 태라를 거부합니다. 채워지지 않은 욕정은 태라의 머리 속에 심건욱을 불러 들이고 맙니다. 촉수처럼 태라를 휘감는 심건욱의 뜨거운 손길이 태라의 전신을 타고 흐릅니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상상처럼 말이지요. 태라에게 그날 밤은 유난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독했습니다.
*남편 박검사가 잠자리를 거부하자 홀로 어두운 거실에 서있던 태라를 보니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어째 글이 19금식으로 써지는지...;; 이글을 미성년자가 읽으면 안되는데 이런 생각을.. 에고, 난감;;;
건욱을 찾아 밀실로 온 모네의 눈을 피해 구석으로 피하는 건욱과 태라, 태라는 감전된 듯 꼼짝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 심장이 뛰네"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려는 태라를 거칠게 끌어 당기는 건욱을 거부하지 못하는 태라, 이어지는 키스신은 강렬한 불길같습니다. 뼈까지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유혹, 태라는 건욱의 덫에 빠져들고 맙니다. 숨막히도록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치명적인 중독, 그 유혹의 덫에서 꼼짝할 수 조차 없는 태라입니다.
유부녀인 태라가 심건욱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저는 유부녀인데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홍태라의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법과 돈의 정략결혼이었어요. 매사가 모범적이고 순종적이었던 태라는 부모의 뜻을 거역한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중매시장의 일등신부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쇼파 위의 쿠션 하나도 반듯하게 놓여 있어야 하는 깔끔하고 완벽한 성격의 태라가 불륜이라는 일탈행위에 빠져든다는 것은 태라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녀를 깨어나게 한 것은 정숙함이라는 기준에 억눌려 있었던 욕정과 20살 모네에게서 보여지는 열병같은 사랑에 대한 갈구였어요. 타락과 육체적 탐닉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건욱의 복수이유와 태라의 고독을 알아 버렸기에, 흔들리는 태라의 감정은 일회성 쾌락도 원초적 본능이라는 말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가장 좋은 표현이 '강한 이끌림에 의한 치명적 사랑'이라는 말밖에 쓸 수 없겠네요.
건욱에게 비친 재인은 부숴지기 쉬운 유리가면을 쓴 욕망의 슬픈 모습이에요. 태성에게 접근하는 재인마저 건욱의 또 다른 복수 시나리오인지, 재인에 대한 연민인지 아직은 불투명합니다. 가면을 쓴 홍태성을 건욱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연극하는 재인을 보며 속물적인 그녀의 욕망을 엿보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건욱에게서 느껴지는 질투와 연민의 표정은 사랑과 복수의 중간지점에서 고민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순수함을 버리고 욕망을 키워가는 재인을 지켜보는 건욱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건욱은 재인을 붙들지 못합니다. 재인을 붙드는 순간, 건욱의 복수극 또한 막을 내려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악마이길 선택한 심건욱, 그는 철저하게 나쁜남자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듯이 말이지요. "내가 가려고 하는 것은 어디일까? 천국일까? 지옥일까?" 그는 지옥을 선택했군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지요. 그가 알고 있는 지옥으로 가는 티켓이 홍태라를 산산히 조각내는 것이고요.
재인의 동생 원인에게 "사랑같은 것 믿지마. 그래도 믿고 싶으면 누가 너를 사랑하게 만들어"라고 말하는 대사를 들으며, 잠깐 궁금해 졌어요. 건욱을 둘러싼 세 여자들 중에 누가 건욱을 가장 사랑하고 있을까? 하고요.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 태라, 질풍노도의 순수한 첫사랑 모네, 기대고 싶은 편안한 사랑 재인 중에서요. 색깔은 다르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죽을 만큼 사랑하고 싶은 남자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잠시나마 아들이라고 사랑해 주던 아버지가 아들이 아니라고 비정하게 빗속으로 내몰아 버린 날, 건욱은 이때부터 세상에 사랑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는지도 몰라요. 밀양의 옛집을 찾은 건욱이 비극이 일어나기 전 행복했던 어린 태성(건욱)으로 돌아가 여전히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촉촉해지는 눈을 보니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제게 심건욱은 나쁜남자이기 보다는 불쌍한 남자로 다가오거든요.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홍태성(김재욱)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비극으로 치닫는 심건욱의 복수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 오는지도 모르겠어요. 건욱의 복수극이 끝나더라도 '태성아, 밥먹자'라고 불러 줄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없기에 말이지요.
나쁜남자는 인물의 현실성, 사건의 개연성, 스토리의 치밀성에서는 거리가 멀다보니 드라마일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건욱의 태라를 향한 도발적이고 위험한 유혹도, 유부녀의 일탈행위도 그 도덕성에 삿대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게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건욱과 태라의 갤러리 밀실에서의 숨막히도록 뜨거운 키스신처럼 말입니다. 드라마라기 보다는 진한 물감 냄새가 풍기는 유화 그림 한 작품을 감상한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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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쓰 2010.07.09 13:10
초록누리님 글이 최고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김남길씨 오연수씨 연기는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감독님의 세련된 연출도요.
건욱과 태라의 농염한 러브씬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은
(태라가 유부녀이고 건욱의 복수의 수단일지라도 말이예요)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감독님의 실력때문이겠죠.
그래서 매 회 더더욱 놀라게 된답니다.
이래서 좋은 배우와 감독의 역할은 크고 중요한 거구나~ 하고요. -
누리님 글에 중독 ^^ 2010.07.09 13:35
오연수가 저리 연기를 잘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답니다.
차가운 이성과 몸서리쳐지는 짜릿한 욕망사이의 감정을 정말 제대로 전달해 주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무표정 사이에 언뜻 언뜻 드러나는 어떤 갈구..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묘지에 왔던 그 나이든 남자는 누구일까요??
제가 그 남자야.. 하고 생각했던 그 사람일 것 같아 점점 궁금해지네요. .그들의 관계가..ㅎㅎ
나쁜 남자.. 한정된 공간에서 비극을 향해 치닫는 것 같아 사실은 마음이 좀 불편한 드라마입니다. 비록 복수이지만 한때는 누나이고 동생이었던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도, 증오인지 아니면 부러움인지 모를 태성을 보는 눈길도, 비록 파양시키긴 했지만 자신의 자식들에게 보이는 그 부모의 사랑도... 뭐랄까? 모두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처럼 여겨져서 누리님 말씀처럼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한편의 잘 꾸며진 연극을 그저 감상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곤 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이 드라마에는 깊이 빠져 들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ㅎㅎ -
친구세라 2010.07.09 17:11
마지막에 누리님께서 덧붙이신 내용에 완전 공감해요.
그래서 그만큼 완전 확 빠져들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에게 커스만큼은)
그만큼 조금더 객관적으로 연기나 연출 화면들을
감탄하며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드라마 나쁘진 않은것 같아요.
이 드라마도 신언니처럼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야 제대로된 평가가 가능할 듯 해요
(모든 퍼즐 조각이 다 맞추어져야..)
저도 참 다 불쌍한것 같은데
또 진심으로 눈물지어질 정도는 아닌
(앞부분의 내용과 일맥상통한 이야기겠죠)
암튼 정말 누리님 리뷰.. 드라마를 더 쫄깃하게
생각하고 넘어가게 해주시는.. 항상 감사드려요~♡ -
감정적인 이해 2010.07.12 20:01
드라마가 이해는 되는데 감정적으로 이해될뿐 어떠어떠하기때문에 어떠어떠하다. 어떤드라마다 어떤장면이다라고 딱 명확하게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게끔 이해되곤 했어요.
장면하나하나, 눈빛하나하나에 일일히 반응은 하는데 그 반응하는 이유나 느낌, 의미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랄까요ㅋㅋㅋㅋ
그런데 이글은 마치ㅋㅋ 제가 감정적으로 이해한 것들이 곧이곧대로 언어로 표현된 듯한 착각을 주는 글입니다ㅋㅋㅋㅋ
아 좋으네요ㅋㅋㅋ 바로 이런거였어요ㅋㅋㅋㅋㅋㅋ
이토록 압도적인 감정적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건 역시 배우들의 (특히 김남길ㅋㅋㅋ) 연기 탓이겠죠ㅋㅋ
김남길은 정말..연귀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눈빛을 중심으로 온 몸이 '난 진짜 심건욱이야' 라는 태도로 절 바라보는 것만 같아요ㅋㅋㅋㅋ -
하늘벽 2010.07.14 10:49
정말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특히 9회) 생각했던 부분들을 액기스만 쏙 잘 써주신듯해서 심히 공감이 되네요..
감정이입에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전 희한하게도 나쁜남자의 캐릭터 전부에게 공감이 간답니다.
건욱은 말할것도 없고, 속물적이면서도 자기도를 넘지않는 재인이나 측은한 태성이,뼛속까지 최상위층의 권위에 사로잡힌 신여사나 나쁜남자에게서 벗어날수없는 태라,모네까지..
암튼..
19금(?)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외설적으로 보이지않는건..
연출방향과 특출난 연기자들의 호연때문이라 생각되네요..
미세한 감정연기까지 표현해내는 김남길과 오연수씨의 연기는 정말 매회마다 감탄을 하게 됩니다.
오늘 10회를 하게 될텐데..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블로깅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