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6 01:27





덕만의 신분이 이제 곧 드러나게 될 암시와 함께 미실과 덕만이 정치와 백성에 대해 주고 받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서 선덕여왕의 인기도 상승하고 있는데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방법으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설정에 재미를 붙였나 봅니다. 덕만이 천명의 첩자로 미실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반전의 미학에 감탄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미실이 덕만이 천명의 첩자로 접근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또 다시 시청자들을 보기좋게 한방 먹였네요. 미실이 이렇게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임을 재삼 강조해가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지난회 미실이 위천제를 지낸후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며 우물에서 계시를 공개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미실의 동생 미생은 이번에는 과학적 실험을 접목한 깜짝쇼를 준비합니다. 계시가 조각된 불상 부양쇼였습니다. 물론 미생이 시도한 것은 과학적인 실험정신이 뛰어난 발상이기는 합니다. 우물에 콩을 채워두고 물을 흘리면 콩의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에 높아진 수위로 그 위에 올려놓은 물체가 위로 올라오게 된다는 추론은 분명 설득력이 있지요.
미생이 과학에 조예가 깊다는 대목도 수긍이 갔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물 위로 떠오른 것은 크기가 꽤 커보이는 불상이었습니다. 작은 불상이나 석판 조각이었다면 오호 하고 탄성이 나올뻔 했는데 부양되는 불상을 보고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신라는 불교국가입니다. 신라시대의 불상들은 지금도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불상이 흔했습니다. 우물에서 불상이 떠올랐다는 설정은 불교가 중흥한 신라에서는 있을법한 하늘의 계시라고 받아들여 질 수 있지요. 민심도 동요가 컸을 것이구요. 문제는 불상이 떠올랐다는 것이 아니라 불상의 크기와 재질입니다. 당시 제작된 불상들은 대개가 무거운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자연석을 깎아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큰 불상이었다면 그 무게가 꽤 나갔을텐데 조그만 우물에서 불려진 콩의 팽창으로 그 큰 불상이 들어올려졌을까요? 실험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불상의 무게에 콩이 짓이겨져서 오히려 원래 있던 수위보다도 더 깊숙이 가라앉지 않았을까요? 과학적인 드라마라는 세인의 평가가 저에게는 무색하게 여겨졌습니다. 차라리 조그만 불상이나 돌판을 들어올렸다면 모양새가 그럴듯 했을텐데 말입니다. 신라시대에 플라스틱처럼 가벼운 재질의 인공돌이 개발되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소품으로 등장해 주신 불상은 그냥 보기에도 흔들거릴만큼 가벼워서 작은 아이라도 충분히 들어올릴 수 있어보이더군요. 뭐 드라마가 의도하는 것은 전달되었으니 이 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죠. 너무 따지고 들면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민심을 이용한 협박 수단이 비슷해 보입니다. 바로 사실을 조작한다는 것이지요. 위정자들의 조작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귀가 맞는지 여부에 달려있지만 일단 한번 보여주기만 해도 민심을 휘어잡는데는 성공이 쉽습니다. 미실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까지 믿을 정도의 두려움, 그것이 바로 미실의 힘입니다.
사다함이 전해 준 책력으로 미실은 극심한 가뭄으로 도탄에 빠진 신라에 비를 내리게 합니다. 비는 자연현상이었지만 미실은 그 정확한 때를 예견했던 것이고 비는 결국 미실이 내린 기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미실은 천녀로서의 예우까지 받으며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미실은 하늘의 뜻, 즉 천관을 읽었고 백성에게는 하늘과 통하는 사람으로 각인된 것이지요.

'하늘의 뜻'
이처럼 권위와 무게감,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말이 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말입니다. 하늘의 뜻을 읽는 미실이 예지만 해주는 신녀였다면 백성들에게 당연히 떠받들여지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지만 미실은 권력을 함께 취했습니다. 떠받들여지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하늘의 뜻을 이용한 미실은 백성들과 관료들에게는 대적하기 힘든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미실은 안심하지 못합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미실은 평생을 옥죄어 온 미실만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북두의 별이 일곱에서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이가 오리라는 하늘의 예지, 그것입니다. 미실이 이 하늘의 뜻을 무시해버렸다면 미실은 지금처럼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겟지요. 미실은 북두의 별에 대한 계시와 싸우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권력을 강화시키면서 강해졌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실은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하늘의 뜻을 이용합니다. 미실의 두려움이기도 한 그 하늘의 뜻을 말입니다. 여기에는 사다함의 매화, 즉 책력의 공헌이 컸지만 미실에 대한 두려움 조작, 그 힘의 원천은 미실이 두려워하는 그 하늘의 뜻이었지요. 미실의 두려움의 실체는 북두의 별에 담긴 하늘의 뜻이었고 미실도 그 두려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하의 미실도 하늘 아래 인간인 것입니다. 

미실의 두려운 존재에 정면대적을 하고 나온 이들이 천명, 김유신, 덕만입니다. 미실은 이들 세사람의 기운을 읽습니다. 미실은 이들과의 싸움을 즐기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어겨버린 순리, 즉 하늘의 뜻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덕만에게 하늘의 뜻이라는 것은 없다고 자위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의 뜻이 미실의 뜻이라며 두려워 하는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지요.
하늘의 뜻이라는 진실은 미실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실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 졌고 미실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합니다. 미실 역시 하늘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을 이용해서 백성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두려움으로 장악한 미실은 철저하게 정치인이었던 겁니다.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지만 뛰어난 정치인이지요. 그런데도 미실은 천명과 김유신, 그리고 덕만을 경계하며 쳐내려고 합니다. 미실이 부정하고 싶은 하늘의 기운,  미실이 지금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두려움의 기운, 하늘의 뜻이 이들에게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힘을 이용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에 대한 두려움도 조장해 온 미실이지만 정작 미실의 두려움에 대한 아킬레스건은 미실의 오늘을 있게 한 하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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