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안방을 점령한 드라마 찬란한 유산이 47.1%의 시청률로 아쉬운 종영을 했는데요, 막장없는 소재로 시청률 대박을 내며 가문의 영광에 이어 착한 드라마 신드롬을 일으키며 올 상반기를 결산했습니다.
이승기, 한효주, 문채원, 배수빈 등 풋풋한 젊은 신인들을 내세운 찬란한 유산이 이렇게까지 사랑받게 될 줄은 사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너무나 뻔할 거라는 스토리의 진부함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그 진부한 속에서도 찬란한 유산은 진부함을 깬 몇가지 공식들로 오히려 신선한 드라마로 탈바꿈했습니다. 바로 장숙자 사장의 유언장과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악인을 통해 드라마가 아닌 현실같은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이었지요. 또한 찬란한 유산은 새로운 여주인공 상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드라마의 진부함을 깼습니다.
찬란한 유산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많은 분들이 훌륭한 글로 정리해 주셨기에 여기서 재삼 언급할 필요는 없겠고, 다만 다른 분들이 언급하지 않은 우리사회의 수많은 숨은 장숙자 사장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장숙자 사장은 기업인으로서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끔 짧은 기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의 기업인들에게 바라는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장숙자 사장에게 유산은 그녀의 인생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그 인생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은 얼마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던 안철수 교수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다음으로 찬란한 유산은 새로운 여주인공 상을 제시했습니다. 첫 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찬란한 유산을 시청하면서, 그리고 찬란한 유산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한가지 재조명해야 할 캐릭터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요, 바로 한효주 고은성이라는 캐릭터입니다. 고은성을 캔디, 신데렐라라고 캐릭터를 분석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요즘 드라마를 보면 고은성같은 여주인공은 하나같이 캔디나 신데렐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캔디나 신데렐라에 비유되는 드라마는 대부분 어려운 환경의 여주인공이 잘 생기고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그 남자들의 조건이 하나같이 부잣집 도령들이라는 점입니다. 최근 꽃보다 남자에서의 금잔디가 바로 대표적인 캔디형에 신데렐라지요. 사실 꽃보다 남자는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남들이 그렇다고 하는 말만 들었을 뿐이고, 저는 원작 만화를 읽었는데 원작과 많이 다르지 않다면 금잔디는 캔디형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금잔디의 경우는 캔디 혹은 신데렐라에 비유하는 것에 별 이의를 달고 싶지 않은데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에게 그런 비유를 하는 것에는 동의가 안되더군요. 물론 캔디나 신데렐라처럼 고운 심성, 밝은 성격, 꿋꿋함 등의 비슷한 공통점이 있지만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은 캔디형이나 신데렐라의 성격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는 인물입니다.
고은성은 캔디나 신데렐라가 아닌 이유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첫재, 성장환경입니다.
고은성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유복하게 자랐고, 아버지 고평중은 중견건설업체를 하는 소위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어려움없이 살았고 유학까지 다녀 온 엘리트입니다. 콩쥐 팥쥐나 신데렐라의 경우 공통점은 착한 여주인공이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새엄마가 배다른 딸들을 데리고 오면서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왕자님과 결혼하게 되는 포맷인데, 고은성의 집의 경우는 아버지가 재혼한 것은 맞지만 배다른 자매 유승미의 구박이나 새엄마로부터 학대받은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둘째, 심성입니다.
캔디나 신데렐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않으면서 갖은 모함 속에서도 복수를 하겠다거나 자기 생각을 내세워 대들거나 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오히려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혼자 삭이고 좋은 친구들 속에서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성격이지요. 그런 반면 고은성에게서 볼 수 있는 착함은 무슨 일이든 져주는 한마디로 바보에 가까운 착함이 아니라 반듯함에서 나오는 착함이라는 점입니다. 할머니를 도와주는 것도 어려움에 처한 가엾은 할머니를 도와야한다는 반듯한 측은지심에서 비롯한 것이었지요.
신데렐라는 새엄마에게 대꾸도 못하고, 시키는 일만 묵묵히 하면서 동물 친구들에게 처지를 하소연 하는 소극적인 성격인데 비해, 고은성은 새엄마에게도 할말은 해대는 당찬 성격입니다. 쫒겨날까봐 납작 엎드려 소리도 못내는 겁쟁이의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갈 곳도 없으면서 당당하게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와버리는 대차고 강인한 심성을 가졌지요.
셋째, 사랑의 방식입니다.
캔디나 신데렐라의 경우는 전형적인 남자 의존형이지만 고은성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고 하지않아 오히려 주위 남자들, 즉 준세나 환이가 다가가기 더 힘들게 하는 철저한 자립형 성격이라는 점입니다. 사랑도 철저하게 신데렐라나 캔디와는 다른 유형을 보입니다. 캔디나 신데렐라는 선택을 받는 피동형의 사랑을 했다면, 고은성은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는 능동형 사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은성이 캔디나 신데렐라와 사랑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랑을 선택하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만약 고은성이 캔디나 신데렐라의 캐릭터라면 박준세라는 멋진 완벽남에 의해 선택받는게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은성은 백마탄 왕자님 박준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삐딱남에 철부지 선우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우환이 먼저 고은성에게 다가오지만 재벌손자라는 선우환을 '어이구 감사'하면서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완전하게 선우환에게 가 있음을 확인하고 스스로 선우환을 선택했지요. 심지어는 선우환을 택하고도 자신의 공부와 은우를 위해 과감히 유학을 떠나기도 합니다. 선우환에게 기다리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고은성은 박준세나 선우환에게 선택 받고도 오히려 차버리는데 이런 고은성에게 캔디나 신데렐라에 비유하는 것은 고은성 입장에서는 무지 자존심 상하는 비유가 될 것입니다.
넷째, 고은성은 백마탄 왕자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박준세와 선우환을 백마탄 멋진 왕자에 비유한다면 누가 왕자님이 될 것인가? 대답은 단연 박준세이지요. 물론 선우환의 조건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진성식품의 후계자이고, 부잣님 도련님이니 조건상으로는 고은성의 어려운 처지를 살려줄 수 있는 왕자의 조건은 갖췄지요. 하지만 고은성이 만난 선우환은 근사한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망나니에 가까운 철부지였지요. 그에 비하면 준세는 완벽한 조건에 좋은 심성, 깊은 이해심까지 갖춘 재덕을 겸비한 그야말로 멋진 왕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고은성은 박준세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신데렐라나 콩쥐가 하룻밤 무도회에서 첫눈에 반한 왕자의 구혼에 두말없이 '땡큐'하며 따라 나선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이지요.
저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떠올렸습니다. 평강공주와 온달공주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속의 평강공주와 온달공주는 딱 고은성과 선우환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동화에서 평강공주는 어려서 울보였지요. 그래서 자꾸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부모님의 말에 어려서부터 자신의 남편은 바보온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커서 결혼할 때가 되자 평강공주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어려서부터 자신의 배필이라고 믿었던 바보온달을 찾아가 결혼을 하였지요. 그리고 바보 온달에게 글공부를 시키고, 고구려의 훌륭한 장군으로 만듭니다. 철없는 선우환이 고은성을 만나 사람되고 철들어 가는 모습이 동화 속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스토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드라마가 여성들이게 캔디 혹은 신데렐라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캔디나 신데렐라에게 보이는 착한 심성, 밝은 성격 등의 긍정적인 모습도 많지만 건설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에 비하면 평강공주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입니다. 우리 드라마에서 보다 많이 보여주어야 할 여성의 모습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평강공주여야 할 것입니다. 고은성은 능동적이고 당당하게 사랑을 찾아 간 평강공주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지요.
좋은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함께 했던 시간이 마냥 행복했고,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준 제작진들과 특히 작가선생님께 참 많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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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인문학 2009.07.27 13:19 신고
전 인제 스타일을 보고 명품에 대해서 한번 써보겟어요.
저 사실 명품 좋아하는 남자라..ㅋㅋㅋ 요즘 구찌 벨트에 눈돌아가고 있는 중..ㅋㅋㅋ -
영웅전쟁 2009.07.27 13:28 신고
저는 한숨돌립니다 이제...
집사람 숨도 안쉬고 보는지라
방영시간 30분전부터 저는 완전 돌부처 ㅠ.ㅠ
꼼짝하면 집사람 왕 짜증 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멋진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
빛무리~ 2009.07.27 14:10 신고
찬유에 마지막회 리뷰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주셨군요.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능동적인 상상력으로 늘 재미있게 써 주시는 초록누리님~
은성이는 평강공주가 맞네요. 환이는 바보(?)왕자님이었구요 ㅎㅎ
그런데 저 같으면 준세를 택했을 것 같아요. 저는 늘 그렇거든요.
다른 드라마를 봐도 준세 같이 자상한 캐릭터는 늘 여주인공에게서 결국은 버림받고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며 싸우기도 많이 하던 남자 주인공이 선택받더라구요.
저는 친구같은 사랑도 좋지만, 든든한 나무 같은 사랑이 더 좋아서
늘 버림받는 남자 편에 서 있었지요.
만약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라면... 선우환은 이미 품절남이 되었지만
박준세는 아직도 찬란한 싱글로 남아 있는 셈이네요.. 이얏호~~~ ㅎㅎㅎ
이미 드라마가 끝났으니, 어떤 운 좋은 여자가 그를 잽싸게 채어가는 모양은 안 봐도 되겠죠?
하여튼 다행입니다. 다행이예요 ㅎㅎㅎ-
초록누리 2009.07.27 14:26 신고
딸래미 내일까지 에세이 써야하는데 찬유 마무리 꼭 해야한다고 밀어내고 썼답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저도 현실에서라면 준세를 택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매력은 환이가 더 있지요. 20대 나이에서라면 환이같은 캐릭터 충분히 매력있지요. 준세는 너무 편한 아저씨 같다고 할까?
그래도 역시 준세 좋은 남자지요..그래서 우리딸한테 단단히 일러 두었답니다. 혹 준세같은 남자 있으면 바로 확 잡으라고요..ㅎㅎ
좋은 주말되세요. 참 성당 일 하느라 힘들었겠다. 푹 쉬세요. 안나자매님. 저녁에 화살기도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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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엔.. 2009.08.14 16:22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이해하지만 너무 드라마를 사랑하신 나머지 모든 이유를 스스로 만드신 거 같이 보여요... 준세가 아닌 환을 택한 이유도 여지껏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그랬듯이 완벽하고 자상한 남자가 아닌 뭔가 힘든 사랑을 택하는 것은 기존의 포맷을 답습했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리고 계모와 배다른 자매에게 학대받은 흔적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거는 아버지 사고가 있기 전이고.. 그 이후에는 굉장히 많이 핍박 받았던데요.. 다른 드라마는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셨는데 이 드라마에 대해서만 애정이 느껴져서요. 진부한 소재였던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환이네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된 것도 환이와의 사랑과 문채원의 질투 및 악녀로의 변신을 꾀하도록 작위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