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가 알고 있는 비밀을 동이도 알고 동이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인물들이 알게 되었지요. 서용기, 차천수, 감찰부 궁녀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람 숙종에게 이 사실이 발고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이와 연잉군 지키기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져서, 임금 바보만들기가 이렇게 식은 죽 먹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숙종에게 알리지 않은 인현왕후의 마지막 동이와 연잉군 지키기도, 비밀을 알게 된 동이가 내의녀의 신원을 확보하려는 모습은 무엇을 위해서였나 잠시 의구심이 들더군요. 물론 인현왕후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세자의 비밀을 폭로해 조정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무리수이지만, 세자의 신체적 비밀은 동이나 인현왕후가 안고 가서는 안되는 비밀입니다.
인현왕후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세자를 위해, 그리고 장희빈에게 스스로 비밀을 폭로할 기회를 준 것은 인현왕후의 성정에 비춰본다면 그럴 수도 있을 일이라 짐작되지만, 동이의 사람이기 전에 임금의 신하된 자들이 임금의 귀를 막는 모습은 심히 억지스러운 설정입니다. 결정적인 증험을 잡는다고 내의녀를 찾을 게 아니라, 어의를 불러 세자 윤을 진맥하게 하는게 순서일 것입니다. 장희빈 사가의 남의원이 진맥할 수 있는 세자의 상태를 조선 최고의 난다긴다 하는 어의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일도 아니고 말이지요. 엄밀히 따지면 동이나 동이파 모두 숙종의 신하 중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장희빈과의 대결구도로만 놓고 장희빈 타도의 도구로만 끌고 가는 것은, 드라마에서 숙종 바보만들기와 진배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장희빈과 장희재의 입장에서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의녀를 찾아 입을 봉해야 하겠지요. 더구나 오늘 내일 하는 인현왕후의 병세는 가히 천우신조라 할 수 있었으니, 장희빈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리는 없었겠지요.
적통을 낳아주지 못한 인현왕후는 평생을 죄인의 마음으로 중궁전의 중전자리를 지켜야 했지요. 중전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음에 오히려 숙종에게 죄스러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는 인현왕후의 마지막 숙종과의 이별장면은 마음이 찡해집니다.
한번도 여인으로서 인현왕후를 품어주지 못했던 숙종의 뒤늦은 후회, 인현왕후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는 숙종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은 편하게 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네요. 물론 드라마에서지만요. "중전이 나를 많이 원망했을 게야. 나는 중전을 그저 정략에 의해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네. 그것이 궐이고 정치니까. 그래서 중전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못했네. 중전을 한 번도 따뜻하게 마음으로 보듬어 주지 못했어. 한 번도...". 인현왕후의 처소상궁 안상궁에게 고백하는 숙종의 늦은 고백을 누워있던 인현왕후도 다 들었을 듯 싶더군요.
장희빈이 수명 다해가는 인현왕후를 찾아가 방백을 하는 장면은 끝없는 권력에의 야욕과 인현왕후에 대한 한가닥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 손으로 죽이기 전에 그냥 아무 말없이 죽어주세요" 라고 빌었으니 말입니다. 장희빈의 의중이 그러거나 말거나, 장희재와 윤씨부인은 궁에 무당을 불러 인현왕후에게 방술로 저주를 내리는 모습은 장희빈에게 더러운 짓에 직접 손을 담그지 않는 모습으로 면피를 시켜주고자 하는 의도처럼 여겨지더군요. 하기야 죽어가는 사람에게 어서 죽어 주십시오 라며 마음으로 비는 것이나 무당의 사술을 쓰는 것이나 그게 그것이지만 말입니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인현왕후, 그녀에게 궁은 철저하게 정치적 힘겨루기의 장소였고, 고독하고 외로운 곳이었지요. 장희빈과 평생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인현왕후, 폐서인이 되어 안국동 사가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버려진 채 살았던 비련의 중전으로 늘 연민을 가지게 되는 인물입니다. 드라마 동이에서의 인현왕후에게는 동이라는 좋은 벗도 만들어 주었고, 깨방정 숙종의 회환의 눈물도 보고 갔으니, 기존의 인현왕후보다는 아주 조금 더 행복하게 그려준 듯합니다.
박하선의 인현왕후는 동이라는 인물에 밀려 뒷방 그림처럼 앉아있던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강단있고 의리가 강한 여인으로 그려졌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인현왕후에게서 부각되었던 온화한 모습은, 극의 비중때문인지 많이 비춰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하선의 절제있는 인현왕후의 모습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회 귀에 거슬린 부분이 있었는데요, 한예조와의 갈등때문에 우여곡절 속에서 방송을 기적적으로 내보냈다는 기사는 봤는데, 윤과 금이 손을 잡고 창포를 찾으러 다니는데, 뜬금없이 트로트 노래가 나와서 놀랐어요. 그런데 인현왕후의 가슴 절절한 죽음을 보여 준 엔딩장면에도 같은 노래가 나오더라구요. 궁중음악은 둘째치고,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런 배경음악은 급한 편집의 실수였는지,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쌩뚱맞은 노래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꼈나요?;;
연잉군과 세자에 대한 부분은 따로 글을 올리려고 생각을 정리 중인데, 두 왕자의 모습에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복선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도토리를 주우며 배운 굶주린 백성들의 쓰디 쓴 눈물에 대한 운학선생의 가르침은 훗날 영조의 민생정책에 반영되는 산교육들이 될 듯 하더군요.
인현왕후의 죽음으로 드라마의 스토리가 새로운 전개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갈 듯 싶은데요, 인현왕후의 죽음을 분수령으로 장희빈의 중전자리 되찾기와 세자 지키기를 위한 동이와의 마지막 접전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인현왕후가 죽은 같은 해 사약을 받은 장희빈이었으니, 장희빈의 최후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지요.
세자지키기와 중전의 자리 탈환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사르게 될 장희빈, 귀한 마음을 품는 성군의 자질을 가르칠 동이, 두 사람의 교육 차별성을 보는 재미도 클 듯싶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아들들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반드시 왕위에 올려야 할 명분과 목적을 가진 사생결단의 싸움이기에 피를 부를 수밖에 없을 듯 싶습니다. 역사는 장희빈의 피로 기록되었지만 말이지요.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동이에게 질 수 밖에 없는 장희빈, 그녀의 권력에의 야욕이 빚은 참담함이 비운의 슬픈 경종을 만든 듯 싶어 씁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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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순이 2010.09.07 10:13
인현왕후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박하선이란 배우를 동이에선 이제 못본다는 아쉬움도 있네요
정말 그 트로트는 어떤 의미인지 ㅡㅡ;;
장희빈은 장희재덕에 될일도 안되는듯해요;; (실제로 역사에서도 장희재가 저리 아둔했나 싶을정도;;) -
앨리스^^ 2010.09.07 13:26
초록누리님 덕분에 드라마 한 편 보고 갑니다. 다행히 결방을 면했네요. 모두들 고생많았겠어요~
근데 숙종이 세자의 병을 모르는 모양이죠? 쯔쯧..그런, 무리수를.....
일개 국왕을 너무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 좀 그렇네요.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너무 심하게 '동이' 위주로 전개하고 모든 것에 엮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얼개만 튼튼하다면, 모든 사건을 '동이'와 엮지 않고도 인물들과 사건들이 살아날텐데.
덕분에, 너무 심하게 동이 위주에다 다른 인물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 느낌이네요.
그렇다고 미실만큼의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오늘에라도 숙종이 알고 수습되었음 좋겠어요. 끝까지 모른다는 거는 여엉....
병을 알고 세제로 책봉하는 것이 더 설득력있지 않나요? -
누이 2010.09.07 15:10
글 잘읽어습니다 늘 감사히 받기만 하는 독자입니다 죄송...
근데 읽다가 기존의 글들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있어서
- 제 목구멍에만 걸리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
처움으로 댓글 드립니다
저도 극을 보다가 좀 밝지 않나 하는 점은 느끼긴 했습니다만
난데 없는 트로트!!! 라는 선생님의 표현이 콕 박히더군요
발라드나 국악 혹은 서양 고전음악은 괜찮은데 트로트가 감히...
그런 생각에서 표현하신것은 아니겠지요?
이산에서도 장윤정의 노래가 쓰였지만 지금같은 분위기는 아니였기에 괜찮았던건지...
선생님의 독자이기에 그런 생각을 가지시진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드리는 것은 혹시 하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 믿음이 부족함을 나무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
늘 건강 하시길...-
초록누리 2010.09.07 15:20 신고
ㅎㅎㅎ아이구,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동이가 원래 새로운 궁중음악을 선보이겠다는 기획의도에서 어긋났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은 곡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특히 인현왕후의 죽음 후에 나온 멜로디가 너무 밝아서 말이지요.
트로트를 폄하하는 생각은 단 0.00000000001%도 없답니다.
그리고 트로트도 음악 하나의 장르이고, 제가 즐겨부르는 장르이기도 한데(노래방에서의 제 선곡 노래도 대부분이 트로트랍니다ㅎ) 감히 라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설마 오해하시진 않으셨지요? -
누이 2010.09.07 17:54
답글 감사드립니다...
감히라는 생각이 당연 없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간 선생님의 글을 읽어왔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글을 드렸던건 장르로 지칭하시기에 그랬던거였습니다 뜬금없는 트로트...
선생님께서 얘기하신것처럼 장학원이 배경으로 나왔었으니 애잔한 해금 선율이 담긴 궁중음악이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그리 분위기로 설명해주셨담 좋지않았을까 하는 선생님에 대한 애독자의 기대감이었음 이해해 주십시요
평소에는 즐기면서도 여전히 격?이낮음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은것도 사실이기에...(선생님이 그렇단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시길)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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