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며, 사대부가 근간이 되고 체제를 유지해 간다고 생각하는 좌상대감과, 대동세상을 꿈꿨던 정조의 국가체제에 대한 가치관은, 기존 질서의 유지라는 '수구'와 새로운 조선의 건설이라는 '진보'와의 대립입니다. 선과 악의 대립은 권선징악의 잣대로 시시비비가 가려질 문제지만, 수구와 진보의 대립은 사상의 틀을 깨는 일이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조직과 권력, 지지세력이라는 힘이 필요할 수 밖에 없지요. 좌상을 중심으로 한 기존질서 세력의 결속이나 정조의 새 인재를 찾는 과정처럼 말이지요.
금등지사에 담긴 비밀과 진실은 금등지사가 아닌 금등지사에 담긴 뜻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 새 항아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 말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기존의 틀속에 갇힌 인물들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정조가 잘금 4인방에게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는 이들에게는 당파의 틀, 구 시대적인 틀이 없었기 때문이죠. 정조는 성균관 복시시험을 주관하면서, 선준과 윤희를 보고 알았습니다. 정조가 낸 시제 인(仁)과 지(知)를 넣어 출사의 뜻을 답하라고 했을 때, 윤희의 답안은 자신이 거벽을 하기 위해 과장에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이었고, 정조가 분노했었지요.
그때 윤희의 답지는 "거벽하려고 과장에 들었습니다. 관원이 될 만큼 어질지 못하기에 출사할 자격이 없다"라고 적혀 있었지요. 정조는 거벽을 세운 자가 누구였느냐고 진노했고, 이 때 이선준이 자신이 윤희를 거벽으로 세웠다고 밝혔지요. "깊은 심덕을 지녔으나, 한미한 가문과 당색으로 과장에 서지 않겠다 하여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이지요. "만약 김윤식의 필력으로 합격하지 못한다면, 실력이 아닌 가문과 당색이 인재를 얻는 기준이라면, 그것이 진정 이 나라 조선의 오늘이라면, 소생 또한 출사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도성에 자자한 이선준의 실력, 생각마저 반듯한 이선준은 정조가 세우고 펼치고 싶은 새나라를 위한 인재였지요. 그리고 그런 이선준의 눈에 비친 김윤식(윤희)이라면, 그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여겼고, 윤희의 거침없는 답변을 통해서도 정조는 알았지요. 이들이야 말로 조선의 미래라는 것을 말이지요. 한 마디로 멋진 주군의 눈을 뿅가게 했던 인물들이었다는 것이지요.
조선의 왕들 중 암행을 가장 많이 나갔던 왕이 영조와 정조였다는 것을 보아도, 백성에 대한 위민정치의 이상이 차고 넘쳤던 왕들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윤희가 금등지사를 찾기 위해 종묘를 갔을 때, 그곳에 금등지사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금등지사가 있던 처음 자리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위패가 모셔진 자리였지요. 규장각의 학자들과 밤을 세워가며 한글 창제에 몰두했던 세종, 과학을 비천한 학문으로 여기고 멸시했던 사대부들, 한문을 숭상하는 사대주의자 사대부들의 거센 반말을 무릎쓰고, 백성을 위한 글을 만들었던 세종은 시대를 앞선 군왕이었습니다.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것을 실천했던 세종의 신위 아래에, 처음에 금등지사를 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성균관 스캔들 18강을 보면서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금등지사가 존재하는가? 존재했을 수도 있고, 꾸며낸 허구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드라마 속에서의 금등지사는 기록된 문서라기 보다는, 썩은 조선, 변화를 두려워 하는 정체된 조선을 이끌고 있는 당쟁정치를 경계하는 위협수단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금등지사가 세상에 밝혀질 것을 두려워 하는 이들은 수구주의자 노론들이에요. 이들은 조선의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수백년을 누리고 온 사대부라는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지요. 때문에 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온 세상이 와해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느날 걸오가 윤희를 나무위로 데리고 가서 했던 말이 있었지요. "여기 오면 반궁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 인간이 알려줬어. 성균관의 문은 임금이 있는 궁이 아니라, 조선에서 가장 천하다 멸시받는 반촌을 향해 나 있다는 것". 걸오에게 그 말을 해줬다는 한심한 인간은 걸오의 형 문영신이었고, 당시 문영신은 성균관 장의였었지요. 그리고 김승헌박사와 함께 금등지사를 운반하다 죽었던... 걸오의 말에서 힌트를 찾으면 배움이 향하는 곳 성균관, 반촌을 향해 나있는 성균관의 문이 금등지사가 숨겨져 있는 비밀장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나라의 시작은 백성에게서 시작되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지요.
금등지사의 유무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성균관의 문에 금등지사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지만, 18강을 보면서 금등지사는 없다라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더군요. 정조 역시 금등지사를 찾는 과정에서 김승헌의 서찰에 담긴 뜻을 곱씹어 보게 되지요. 정박사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 깨우침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과인은 그 밀지가 성균관 박사 김승헌이 남긴 마지막 수업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 배움이 향하는 곳, 나라의 시작.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라는 말을 하죠.
김승헌은 재주많은 딸아이가 재주를 펼칠 수 없는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한이었어요. 성균관에서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수많은 유생들, 그곳은 자신의 재주많은 딸은 하늘이 두 조각이 나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어요. 조선의 사회가 그러했기에요.
금등지사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조선을 여는 대들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배움이 향하는 성균관은 조선의 미래를 담은 요람이지요. 미래 관원들을 키우는 곳, 학문과 이상을 키우고 배움을 펼치기 위해 내딛는 첫발, 그곳은 반촌으로 연결되는 가장 낮은 사회였습니다. 임금이 있는 궁궐이 아니라, 백성들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임금을 섬기는 관원이 아닌, 백성을 섬기는 관원이 되어야 하며, 그 시작이 인재양성과 배출의 핵심기관 성균관에서부터 시작되고, 구심점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백성의 고혈로 공부한 유생들의 빚, 그 고혈을 갚는 길은 백성들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 손 호호 불며, 마루에서 글공부를 하던 딸 윤희를 위한 세상이기도 했었고 말이지요.
* 이 글은 금등지사의 비밀에 대한 생각정리입니다. 성균관스캔들 드라마 속에 흐르는 감동과 메시지가 너무나 가슴벅차게 전해와서 정리해 봤어요. 재미있는 드라마 리뷰는 다시 올릴게요. 한꺼번에 얘기하기에 할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선준과 윤희의 사랑, 걸오의 마음과 윤희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 김승헌의 딸에 대한 마음 등등은 드라마 내용리뷰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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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2010.10.27 14:33
요즘 성스를 못보고있는데...어제...또..또 초반부 보다가 잠이 들어버려서 못봤네요ㅠㅠ후
이렇게라도 드라마를 보고있는것같아서 항상 감사해요ㅋㅋ
잘보고갑니다~~~ -
건강천사 2010.10.27 15:52
그들 4인방의 아품을 치료할 수 있는 금등지사,
앞서가는 영조와 정조의 백성을 위한 길,
신분과 권력으로 한 시대를 조종했던 기득권 사대부의 다툼을
잘 그렸는 것 같습니다. 로맨스와 함께 말이지요~ -
김승윤의 마지막수업 2010.10.27 15:53
정조와 정약용의 대화중 마지막 수업이란 대화에서 금등지사는 없을수도 있단 생각이 드네요.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 정조가 원하는 바일지도 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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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arang 2010.10.27 16:40
결국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걸오의 형과 윤희의 아버지가 치룬 것이고요. 그리고 그러한 희생을 치루고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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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2010.10.27 20:31
역사적사실을 떠나서 성균관스캔들안에서도 금등지사만 찾으면 마치 세상이 달라지는것처럼 그려놓았던데 조금 웃기더군요. 금등지사야 사도세자의 명예와 명분론 뭐그런거나 다름없는데 그걸 찾는다고 모든게 달라집니까? 게다가 어제보니까 종묘로 여주인공이 찾아가던데 종묘를 지키는사람이 한명도 없는것처럼 아주 쉽게 들락날락거리더군. 믹키유천도 마찬가지구요. 왕의 위패를 모시는곳인데 저렇게 쉽게 들락날락거리다니 웃음밖에 안나왔습니다. 아무리 드라마라해도말이죠. 거기다 홍벽서그사람도 눈만 봐도 유아인이 아니라는거 뻔히 드러나던데 참 웃기지도 않더군요. 역사적사실을 어느정도 묵과해준다고해도 그렇지 정도가 너무 심해서 짜증이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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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영아 2010.10.27 21:55
^^ 옳은 말씀이시네요. 금등지사를 통해 가르쳐 주고싶은 것들은 후세가 바꿔가고
노력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유아인이 앞에서 지키고 있는데 포옹하고 있을시간이 있느냐는둥 유아인이 아니네 맞네 하는 글보다 훨씬 보기좋네요 ^^
좋은글 잘보고갑니당~ -
유쾌한하루 2010.10.28 04:19
한시대를 변화시킬 원동력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싶은 더나은 세상을 열망하고 희망하는 마음에 있다는것을 가슴깊게 느끼게하는 좋은 드라마인것같습니다...매주 가슴을 울리는 멋진대사들은제가슴에 오래 남을것같습니다..좋은글 잘읽고갑니다..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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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론 2010.10.28 18:31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저도 숨겨진 위치를 반촌을 향한 성균관의 문을 의심했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셨었다니 반갑네요. 금등지사는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말...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중요한 건 그 숙제를 푸는 과정이고 그 숙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거겠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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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등지사 2011.09.14 12:20
저는 최근이 되어서야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방영 당시에는 웬지 로멘틱 퓨전사극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아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았죠. 그런데 막상 이 드라마를 실제 보니 당시의 엄격한 신분제도, 그리고 붕당정치하에서의 젊은 청춘들의 개연성있는 모습들을 세밀하게 다뤄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가슴속에 남았던 것은, 성리학의 원칙에 따른 덕의 정치를 강조했던 조선의 정치가 실은 이 성리학의 원칙을 명분으로 삼은 치열한 당쟁으로 서로의 정적을 죽이고 죽였던 피로 얼룩졌던 역사가 되어버렸다라는 것이죠. 이것때문에 조선지대의 지배적 이념이었던 유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굳어지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이것은 유교의 잘못이 아니라 그 유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려했던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는가 합니다. 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원칙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기꺼히 버릴 수 있었던 선비정신이 그립기만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부재상황이죠. 그저 남아있는 것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논리밖엔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정말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선비정신이 아닐까요?
저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유고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꿨습니다. 근대화를 방해했던 케케묵은 보수사상이었던 유교가 실은 그렇지 않으며 동물적인 힘의 논리가 아닌 진리와 정의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선인들이 가다듬어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금등지사 2011.09.14 12:28
저는 유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누구나 잘 알고있을 온고이지신이라는 한자성어를 알고 있습니다.
옛걸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익힌다라는 뜻일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역사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500년간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는 결코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이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볼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화를 면하고 근대국가로 발전한 일본이야말로 온고이지신을 잘 실천한 유교문화권 국가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화혼양재라는 근대화시기의 표어는 바로 온고이지신과 다를게 없습니다. -
금등지사 2011.09.14 12:41
조선을 망국에 이르게 한것은 성리학이 아니라 그 성리학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활용했던 유자의 탈을 쓴 거짓 유자들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대화 시기 일본인들은 유학의 정도가 낮아 고작 생각해낼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무신정권이 아닌 존황, 천황이 친정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미 1392년에 유교의 원리에 따른 조선왕조가 탄생했습니다. 또 일본인들의 유학은 그저 충만이 강조되는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한국의 성리학은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맹자의 사상도 아우르고 있었죠.
만일 조선시대 지금 서구에서 발양한 민주주의와 같은 주장이 나왔다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건 논리적으로 뒷받침이 되거든요. 유교의 경전에는 민심은 곧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고 따라서 민은 곧 하늘이다. 그러므로 민이야말로 천자다. 따라서 왕정은 페지되고 백성에 의해 선출된 이가 국가의 최고원수가 되어야 한다. 이런 논리도 가능합니다. 이것을 억누르는 것은 유교의 원리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배계급의 힘에 의한 억압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