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정치 공부를 하고 온 강태산이 다시 민우당 대표로 복직하고 민우당이 대한민국을 초일류 국가로 성장하는데 이바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대표연설을 했는데, 쓴웃음만이 나더군요. 당리당략과 공천권에 움직이는 구태의연한 정당은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태산의 의지를 믿을 시청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더군요.
고현정에게는 이 드라마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무너져 버린 서혜림이라는 캐릭터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끝까지 도덕교과서처럼 알맹이없는 대사만을 주었던 드라마 대물은 마지막 퇴임 연설마저도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국민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떠나게 되어 기쁩니다.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여러분들의 보다 나은 살림살이와 인간적인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신성한 국회에서 참담한 난투극이 벌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첨예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법률 하나가 여러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정치가 썩었다고 다 똑같은 인간들이라고 욕하고 외면하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싸우는지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 진흙땅 속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여러분의 권리를 지켜내는 것인지,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같이 고민해야만 합니다. 정치인은 미워해도 정치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정치를 사랑해 주셔야 합니다".
마지막 말에서 저는 들고 있던 펜을 던져버릴 뻔 했습니다. 정치를 사랑해 달라?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습니다. 정치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무위의 정치라는 표현도 있는데, 백성들을 배부르게 하고 법률을 정비하고 많은 정치적인 일들을 했지만, 국민들은 정치를 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조차 못했다는 은유적인 이야기입니다. 왕이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왕 노릇을 잘했구나"라고 흡족해 했다지요. 왕이 정치를 하지 않고 두손 두발 들고 놀았겠습니까? 정치를 했는데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요. 바로 이것이 백성을 위한 정치의 참모습은 아닐런지요?
드라마가 산으로 가게 된 이유는 재차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라고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고현정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었던 서혜림의 캐릭터는, 서혜림도 고현정도 누구도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서혜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열혈검사 하도야 마저도 검사의 칼을 버리고, 곰탕집 국자를 들게 만들어 버렸으니, 아무리 해피엔딩을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마지막회에서나마 벌여놓은 일들을 뭐하나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었더라면,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참담하게 느끼는 박탈감은 덜했을 겁니다. 정치혐오증을 조금이라도 치유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 싹 가실 정도였습니다. 드라마는 판타지가 아닌 이상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현실이 이런 것이었다는 생각만이 들었던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도 한 사람도 없고, 법적 책임을 물은 사람도,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도 없었던 해피엔딩이 정말 해피엔딩이었을까요?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듯, 드라마 대물에서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호그룹 김명환 회장은 외국으로 내뺐다가 잠잠해지면, 슬쩍 들어와서 재기하면 될 것이고, 오재봉 의원은 출소 후에 별 하나 달았다고 정치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또다시 뱃지를 달게 될 것입니다. 전과자들이 수두룩한 국회에 전과자 하나 더 추가했다고, 국회가 전범집단으로 매도되지도 않을 것이고 말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고현정의 연기에 신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는데, 고현정은 대물에서 연기자의 신명이 없었어요. 그녀의 연기력이 그것밖에 안되었을까요? 아니죠. 보여줄 게 없었어요. 제작진이 의도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취임한 후 청와대 집무실에 첫 출근을 한날, 고현정은 샛노란 자켓을 선택해서 입고 나왔습니다. 대사와 정치적 소신, 교과서 같은 국가관만을 반복하게 하면서 서혜림 속에 보이는 캐릭터를 죽여갈 때, 그녀는 의상 하나로 드라마 대물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했습니다.
*저의 따뜻한 이웃님들과 독자님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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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똘이찌니 2010.12.24 13:39
어제 좀 짜증나더라구요.
완전 급하게 결말 맺는게 뻔히 보이고~
모임도 안나가고 결말 방송 사수 했는데.. 허무 하더란...
역시 보는 눈은 다 같은가봐요.
^^
초록누리님 내일은 크리스마스랍니다.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 -
고리 2010.12.24 21:47
4회 이후로 이 들마는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주구장창 혜림의 각종 연설을 통해서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막방에서 역시 퇴임연설이 있었는데, 썩었다고 욕하고 외면하지 말고 정치를, 미래를 지켜내달라는 당부.. 그나마 남은건 이것 하나뿐이다는 생각였습니다....
리뷰를 읽으며 누리님 분노가 극에 달해졌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총체적 난국에 처해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랑 이 들마 결말이랑 하등 다를게 없다는 것에서의 분노인 거겠지요......
고현정씨의 연기력에 대한 믿음 하나로 끝까지 달려온 저이기에 하단 부분의 묘사에서 대리만족해 버렸습니다....ㅠㅠ
시크릿가든을 쓰고 있는 김은숙 작가가 했다면 좀더 촌철살인적인 대사나 묘사가 만들어졌을까나요??? 한국 들마 작가들은 ‘멜로’는 세계화를 만들 정도로 강한데, 전문 들마는 3류조차도 못되고 있네요.... 외압의 문제가 아닌, 작가들 깊이의 부재, 철학의 부재로 해석하고 있는 전, 이런 엉성하기 짝이없는 부실들마 만들면서 전국민에게 시청하라고 하는 그 배짱에 놀라울 뿐입니다.
축복받은 밤이라는데... 멋진 저녁 되세요, 초록누리님.^^ -
kangdante 2010.12.25 09:24
처음에는 제법 신선한 내용으로 기대를 했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만화같은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실망한 드라마..
끝내 시청을 중도하차한 드라마였습니다..
아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