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웠던 이경규, 그러면서도 웃겼던 이경규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보인 것이 남자의 자격이었습니다. 어리광섞인 짜증이 늘었고, 귀찮고 싫은 것은 어리광 섞인 진심짜증을 내면서도, 제작진의 말을 듣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질은 변화하지 않았는데, 성격은 변화한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지요. 승승장구에서 5년만에 부활한 비밀이 성격 변화였다고, 그 스스로가 진단했던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되더군요. 독불장군 이경규가 경규옹이라는 애칭을 받게 된 변화는, 그가 느끼는 세월의 무게였다는 말이 새삼 숙연하게 합니다.
성격을 변화한 것은 그가 선 자리의 책임때문이었음이 이경규의 말에서 읽혀지더군요. 그동안은 자기가 잘나서 그 자리에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선배라는 위치에 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이제는 사랑, 봉사, 희생, 정,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때라고 깨달은 순간, 이경규는 변화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경규로 변화한 겁니다. 제작진에게 반기를 들지않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관계로 사람들과 융화되는 것이 즐거웠다고 하지요.
이경규에게 대상을 안겨준 남자의 자격팀은 무한도전 평균이하의 남자들처럼 특출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저마다 잊고 싶은 사연들은 하나씩 있는, 체력도 형편없고 딱히 예능인으로서 인기도 없었던 멤버들이었지요. 하다못해 20년 가까이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진행하며, 국민MC의 자리에 있었던 이경규는 날개없는 추락을 했었던 침체기에 있었던 시기였고요.
김성수에게는 불편한 지적일 수도 있지만, 김승우와 캐릭터가 겹치는 것과 김성수에게 동료 수발이 가장 중요하다며, "같은 자리에 앉았다고 메인MC와 동급으로 생각하고 있느냐?"고 지적하는 말은 김성수에게는 피같은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승승장구의 중심역할을 하는 김승우와 같은 컨셉으로 진행을 하는 김성수를 보며, "왜 저기 앉아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이경규가 그 핵심을 말해 주더라고요. 보조MC들은 토크쇼를 다큐쇼로 만들지 않는 양념같은 역할을 하지요. 이기광과 김성수에게 자유롭고 과감하게 톡톡 쏘는 양념들이 되라는 말은 30년 예능선배로서 좋은 충고였습니다. 승승장구 이경규편을 보면서, 이경규의 예능의 정석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도 했던 이유였어요.
김성민이 구속수감되기 전에 문자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면서, 이경규에게는 자기때문에 대상을 못타게 될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하지요. 이경규는 김성민의 구속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지만, 잘 잡혀갔다. 안 잡혀갔으면 계속했을 것이고, 재기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잘된 일이다"이라고 칼같이 잘라 말하더라고요.
빨리물어 빵 코너에서 폭탄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듣기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강호동과 유재석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이경규의 재치에 빵터지기도 했습니다. 세간에서 다 인정하는 규라인이 이경규-강호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강호동을 씨름판에서 예능으로 이끌어 준 인물도 이경규였고, 대상수상에 누구보다 강호동이 축하해 주는 모습도 보였지요. SBS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강호동이, 연거푸 이경규를 번쩍 안아 존경의 예를 표한 것도, 두 사람의 끈끈한 인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기도 했고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렸겠지만, 저는 이경규의 됨됨이와 개그감이 함께 녹아있는 발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강호동과 유재석을 다 좋아하는 제 귀에는 이경규가 두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같은 무게로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강호동의 카리스마 진행과 유재석의 배려가 넘치는 진행은 두 사람의 대별되는 진행스타일이지요. 강호동을 아끼는 이경규는 강호동이 욕을 많이 먹어서 오래산다며 장수할 것이라고 응원을 해주었고, 유재석은 이경규나 강호동같은 독설스타일의 진행자에게는 적이라는 말로 유재석의 인간성을 최고로 띄워줬습니다.
이경규의 생각을 더 깊이 볼 수 있었던 말은 경쟁프로그램을 언급할 때였습니다. 강호동과 유재석에 대한 비교와 같은 맥락으로 저는 이해가 되더군요. 900회를 진행했던 자식같은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을 떠나면서, 이경규는 마치 오랜 직장을 떠나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순간 그때의 허탈하고, 서운하고 씁쓸했던 감회가 생각나는지 이경규의 얼굴에 잠시 서글픔이 드리워지기도 했는데요, "독식은 좋지 않다. 공생이 좋다. 균형이 좋다"는 말로 정리를 하더군요. 강호동이 대상을 수상하면서 유재석의 경쟁자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은 말이라면서, 함께 가자고 했던 말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어느 프로가 되었든지 시청률이라는 부담과 높은 시청률에 대한 욕심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경쟁이 없는 프로는 도태되기가 더 쉽다는 뜻도 포함되었기에, 단순히 이경규가 인기를 위해 두루뭉실 좋은 말로 포장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요즘 1박2일을 보면 일요일 예능독주 프로그램이라는 나태한 무사안일주의가 눈에 띄고 있어서, 저는 이경규의 말이 더 와닿더군요.
티내는 것은 엄청 좋아하는 경규옹이 개그로 웃겨주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라스트 주자 이윤석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경규의 오른팔, 왼팔, 오른발, 왼발, 충복이라는 말로도 비유되는 국민약골 이윤석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남자의 자격 마라톤편은 기록의 싸움이 아닌 자기와의 싸움을 보여 준 프로젝트였기에, 1등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완주에 있었지요. 쉰이 넘은 노장 이경규보다, 국민약골 이윤석이 해내는 것을 라스트로 보여주고 싶었던 이경규의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속깊고 멋진 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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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 2011.01.12 13:12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깊은 생각까지 유머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이경규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정말 우리나라 예능을 위해 좋은 방향으로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사자비 2011.01.12 13:15 신고
다른 이웃분의 글에서도 보긴 했지만 조금 이해가 부족했는데
초록님이 아주 상셍히 적어주셔서 상황을 잘 알게 되었네요.
성향이 다른 쪽에 서 있다는 것을 표현한 말일 뿐인데 지나치게 과잉반응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차제가 놀라운 일이네요.
유재석의 방향과 규-강 의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 자체를 표현한말이
어떻게 기사에는 자극적으로 쓰이게 되는지. 일부러 논란을 만드는 듯한 인터넷찌라시기사들을 보면 이건 뭐 한심하다 못해 저질이라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구요.
참 저도 마라톤편 잘 보았었지요. 정말 그때부터 아마 제가 남격을 본격시청하게된듯 합니다. 평소에 이경규가 재도약을 위해 얼마만큼의 각오를 하고 남격에 임하는지 알수 있게 해준 에피소드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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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휴 2011.01.12 18:15
저도 어제 보았는데 이경규옹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버럭하는 것이 진짜 화내는 것 같아서 전 조금 보기싫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이 가식이 아니라 그의 성격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의 진정성이 느껴지더군요~ 30년의 노하우~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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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비 2011.01.13 01:33
항상 그럿듯이..배려가 엿보이는 좋은글입니다..
저두 오랜만에..이경규씨때문에 승승장구를 다운받아 보았네요..
그저 감탄만 나오더군요...입담으로는...당대 세손가락안에 들겠구나..그러면서도..삶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멋진 개그 차암..잼나게 보았읍니다...
그런데..전 김성수씨에게..메인엠시와 같은자리에 있다고 동급으로 생각하느냐..는 이경규씨의 말...누리님 말에 일면 동의 하면서도...
또한..김승우씨에 대한 경고로도 보였읍니다...메인엠시라고 자리에 앉아있기만하지...얼마나 하는게 없으면.. 무시당하는건지...잘좀해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이경규씨의 원맨쇼로 진행된...승승장구는...다른회차는 안봐서 모르겠지만...
김승우씨는 ..왜 메인엠시라고 앉아있는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제작진의 노고가 느껴지더군요...그나마..시청률이 나오는 이유..
승승장구 컨셉도 좋고..게스트섭외도 상당하던데...
여하튼...프로그램 시청도 하지않고...자극적인 기사제목에 악플부터 다는분들..
유재석씨..의 가장커다란 약점...극렬과격한 재석씨팬들이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