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7 15:06




싸인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간담을 서늘케 하는 드라마입니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과정에서의 스릴넘치는 연출기법도 긴장감이 크지만, 건드리는 사건들이 너무나 굵직한 이슈들이었기에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싸인 7회를 보면서 가슴이 쪼그라는 불안감을 느꼈던 이유는 드라마에서 정치적으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느꼈던 과거사, 그리고 현대사의 국가간 불평등에 대한 답답함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해소시켜줄 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에서 다루기에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과감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참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겁이 더 나기도 합니다. 
이명한과 대권주자 강준혁 의원의 거래선으로 그 범위를 촉소하기는 했지만, 이번 미군총기 살해사건과 일본에서 발견된 한국인 백골사체는 핵폭탄급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한미일 3자회동을 앞둔 민감한 시기라는 말로 가상 시나리오라는 장치는 깔았지만, 3자회동보다는 주한미군 지위협정인 SOFA와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와 직결돼 있는 중요한 사안들입니다. 몇부의 에피소드로 대미감정, 대일감정과 정치적 이해타산을 깊게 다룰 지는 의문이지만, 소름끼치게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카타르시스가 싸인의 승부수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대물이 넘지 못했던 장벽과 다시 마주한 싸인, 정치권의 후각이 이 드라마에 안테나망을 뻗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네요. 장항준 감독이 연출 일선에서 물러나 대본 집필에 몰두하겠다는 것이, 부디 외압에 의한 것이 아니기만을 바랍니다. 
미군이 쏜 총에 맞고 죽은 조폭의 죽음을 조폭간의 싸움으로 인한 사망으로 조작해 달라는 대권주자 강준혁 의원, 권력과 야합하는 이명한 국과수 원장과 과학적 진실만을 정의로 삼는 윤지훈 법의관의 싸움은, 단순히 국과수를 중심으로 한 정의 싸움만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미군 범죄에 대해 소심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명한)과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법과 국가의 무력함에 분노하는 여론(민심-윤지훈)간의 대립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국가간의 민감한 사안을, 드라마에서 살인사건으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한국드라마 소재의 일보진전을 의미합니다.
미군 총기사건을 보면서 떠올린 사건이 두가지였습니다, 2002년 미군장갑차에 깔려 희생된 미선, 효순이 사건과 2~3년전으로 기억되는데, 동두천에서 술에 취한 미군이 총기로 민간인을 위협했던 사건이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 당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장갑차 운전병들은 아시다시피 우리 법정에 세우지도 못했고, 미군법정에서 무죄를 받고, 미국으로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한국 국내법보다 SOFA규정이 우위였습니다.
동두천에서 주한미국이 시민을 총기로 위협하고 폭행했던 사건, 기억나실 겁니다. 이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미군의 거부로 증거물인 총기도 압수하지 않고 돌려 보내 버렸습니다. 폭행을 당한 피해자와 목격자도 있었던 명백한 범죄사실에도 구속수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국민들은 장갑차 사건을 다시 떠올리며 분개했지만, 미군은 자국으로 소환돼 버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다지 성공적인 작품이었다는 평은 듣지 않았지만, 송중기, 장근석이 나왔던 이태원 살인사건도 연상이 되더군요.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대학생이 의문사했던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제가 영화는 보지 못하고 영화평만 봐서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여튼 미군과 관련되었던 씁쓸한 사건들이 떠오르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범죄에 미군이 개입이 되어있으면,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져 왔습니까? 조기에 수습하거나 은폐되기도 했고, 미군장갑차 사건의 미군은 본국으로 소환되어 버렸습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분노와 황당함과 망연자실까지 느끼고, 힘없는 나라라는 허탈감에 치를 떨며 분을 삭혀야 했습니다. 촛불을 들어도 소용없었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 정밀 재검사에 착수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어야 했고, 수사결과가 나오면,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혹은 주한미연합 사령관의 "유감스런 일이다. 한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브리핑만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불공정 SOFA규정에 항변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아침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점심에는 신사참배를, 저녁에는 욱일승천기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대일무역 협박을 서슴지 않고, 시시때때로 독도가 지네 땅이라고 심심하면 실언을 해대는 나라지요. 종군위안부의 시위 앞에서도 헤죽거리면서 웃고 지나가는 뻔뻔한 놈들이고, 오히려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며, 철도랑 도로를 깔아줬다고 위세를 떠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드라마 싸인을 보며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더군요. 과연 이 사건을 드라마로서 잘 풀어갈 수 있을까? 또다시 국민들을(시청자) 허탈감과 분노를 주게 할 것인가 싶어서 말이지요. 이 사건은 드라마 싸인에서 이명한을 무너뜨리기 위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싸인을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훌륭한 전개이며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정치는 많은 경우, 특히 대외관계에서 국민들의 분노했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까놓고 그들의 힘이 세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의 국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함부로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정치인이라고 왜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분노하기에 앞서 냉정해야 하고, 국익을 두고 부지런히 계산기부터 두드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입니다.
속으로 분개하면서도 계산기부터 두드려야 하는 정치인들은 그래도 이해라도 갑니다. 문제는 드라마 속 이명한과 강준혁 의원같은, 권력이 우선인 인물들이 문제지요. 국익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워 독도도 넘겨줄 수 있다는 뿌리없는 정치의식을 가진 사람들 말입니다. 국익이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당연한 권리주장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분들이 문제지요. 권력을 위해서는 자국민 한 두 사람은 쓰레기처럼 처리되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 말입니다.
조폭들, 분명 사회악이고 사회적으로 없어져야 마땅한 부류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총부리앞에 '꽥' 소리 한번 못하고 개죽음을 당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쓰레기라고 분류되는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살인자에 대한 처벌은 응당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살해자가 미군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이름 앞에 쫄 수밖에 없는 사람, 쓰레기같은 부류로 처리되었다고 조폭간의 싸움에 의한 타살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쓰레기 같은 인생도 억울하게 죽을 이유는 없었다고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사람이, 드라마에서는 법의관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윤지훈과 이명한의 대립을 정치적 시선으로만 해석한다면, 드라마 속 사건들의 의미는 퇴색됩니다. 단순한 정치적 싸움이 아닌 이유는 자국민을 지켜주는 자주독립법, 대한민국의 자주권을 윤지훈으로부터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윤지훈이 믿는 국과수의 신념은 과학적 증거가 말하는 진실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진실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윤지훈의 소신이지요. 국과수를 최고의 과학수사기구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명한은 국과수의 이익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인과 같습니다. 진실이 도구로 쓰여서는 안된다는 윤지훈과 상충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민감한 문제를 과감하게 드라마 속에 던진 것은 인기가수 서윤형의 죽음을 둘러싸고, 조작의 배후인 이명한과 강준혁 의원를 잡기 위한 그물망같은 드라마적인 장치이기는 하지만, 윤지훈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진실들은 시청자에게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카타르시스가 될 듯 합니다. 대미관계, 대일관계를 국민정서나 감정이 아닌, 과학적 사실로 접근하는 방식은, 법의학 드라마라는 범주를 이탈하지 않아 더욱 돋보이는 매력입니다. 과학적 진실을 입증하는 속시원한 한 방, 이 드라마에 바라는 궁극적인 바람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