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6 08:23




'내 마음이 들리니?' 8회 엔딩장면은 봉우리와 봉마루의 절절한 고백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오빠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마루(장준하), 봉우리의 고백을 듣는 마루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고 맙니다. 식물원에서 본 아버지, 동주를 마루로 오해한 우리에게, "마루는 내가 잘 아는데, 맨날맨날 화내서 잘 때만 내가 이렇게 봤는데, 마루 아냐, 마루 아냐". 봉영규만이 기억하는 마루의 얼굴을 설명해 줄 수 없는 답답함에, 자신의 머리만 쥐어박는 아버지였어요. 너무 그리워서, 너무 미안해서, 너무 아파서, 지워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바보아빠 봉영규...
그런 마루를 우리가 또 흔들어댑니다. "야, 너만 내 오빠하기 싫어? 나도 네 동생하기 싫어. 니가 오빠냐, 무슨 오빠가 그따구야. 왜 온댔으면서 안 와.. 시계 갖고 기다리라며, 오빠 올테니까... 근데 왜 여태 안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쁜자식아, 봉마루 닭대가리 소똥 말똥 개미똥 육시랄...".
당장이라도 내가 그 나쁜 오빠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루(준하)입니다. 의사선생님 속에 자신을 감추고 우리에게 눈물로 사과하는 마루였지요. "우리야, 미안해...미안해 우리야..".
수채화처럼 투명해서 더 예쁘고 아픈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는 혼자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 차동주와 봉마루(장준하)가 그러하지요. 봉마루의 아픔은 이전 글에서 한번 언급을 했기에 이번 글은 차동주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소리없는 세상에 사는 동주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외로운 아이지요. 어머니 태현숙은 동주의 닫힌 말문을 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고, 아버지 태회장의 죽음과 동주의 청력을 잃게 한 원수, 우경그룹을 손에 넣은 최진철에 대한 복수가 더 중요합니다. 동주에게 우경을 되찾아 주는 것이 태현숙의 목표입니다.
태현숙은 동주가 청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핸디캡이 될까봐 철저하게 그 비밀을 감추려고 하죠. 우경의 후계자로서 주주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봐,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동주의 잃어버린 청력보다 중시합니다. 엄마로서 아들이 듣지 못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아플지, 저 역시 엄마이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속상해 합니다. 태현숙이 남편 최진철의 흉악한 간계를 몰랐다면, 어쩌면 동주를 이렇게 외롭게 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동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태현숙을 보며, 저는 이상하게 차동주의 깊은 외로움이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다른 사람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입술을 읽고 대화하는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음에도 피아노 연주까지 해도, 그것은 엄마 태현숙에게 위로와 안심이 될뿐입니다. 동주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음악인지, 자기가 연주한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동주에게는 그래서 더 슬픈 피아노입니다.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뿐이니까요.
차동주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16년 동안 지켜봐왔습니다. 장준하와 엄마의 다정한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기만 하면서 말이지요. 동주도 두 사람사이에 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은 동주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비밀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다가서지 못하는 동주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어려서 들었던 바람소리를 생각하며 바람소리를 입으로 만들어 냅니다. 쏴아~. 강아지가 지나갑니다. 강아지의 울음소리를 또 기억해 내지요. 왈왈~. 아무리 기억하고 소리를 내보아도, 동주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는 어떤 소리였지? 기억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손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의 대화를 느낄 뿐이지요.
준하형과 어머니가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동주에게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그들에게 비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듣지 못하는 동주를 위해 그들은 동주가 있든, 없든 오해를 살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동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죠. 동주는 그런 어머니와 준하형이 눈물날 정도로 고마우면서도, 답답해서 소리라도 빽빽 지르고 싶을 정도로 싫습니다. 엄마와 준하형을 보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아프게 확인될 뿐입니다. 동정을 받는 것 같아서 자신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수호천사로 귀가 되어주는 준하형, 자기와는 하지못하는 이야기를 준하형과 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어머니에게서 거리감을 느끼는 동주입니다. 엄마를 빼앗긴 것같은 질투심을 표현할 수도 없는 차동주지요. 다른 사람과 똑같다고 말해 주면서도, "들을 수 없는 동주 너는, 들을 수 있는 준하랑은 다르잖아" 라며, 어머니의 심리적 박탈감을 위로받으면서도, 너때문에 곁에 두는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동주는 슬픕니다. 어머니에게 동주의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어둡고 깜깜한 칠흑같이 두려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저를 사랑해주는 엄마가 필요해요"라고, 소리치고 울어도, 어머니는 동주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우경그룹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을 들려줄 뿐입니다.
그런 동주에게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같은 사람들, 아니 친구들이 나타났습니다. 봉영규와 봉우리 부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입니다. 꽃이 하는 말을 듣고, 꽃과 대화하는 남자 봉영규, 차동주는 처음으로 자기처럼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사람을 봤습니다. 자신을 집나간 오빠 봉마루로 오해하는 작은 미숙이 봉우리의 아빠 봉영규를 보며, 처음으로 차동주가 웃었습니다. 지적발달장애로 어린아이의 세상에서 사는 아버지의 소리를 들어주는 여자아이 봉우리를 보며, 동주는 또 웃습니다. 자기랑 닮은 사람을 만나서 너무나 신기하고 기쁜 동주입니다.
봉영규와 봉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다른 기준으로 듣는 인물들이지요. 자리를 옮기면 잠을 자지 못하고 병치레를 하는 꽃들에게, 봉영규는 새이불을(흙) 덮어주며 잘자라고, 함께 있어 주겠다고 토닥여 줍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꽃인데, 꽃이름이 매발톱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너무 여리고 약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서운 매의 발톱처럼 꽃잎을 그렇게 틔웠나 봅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세상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에게 까칠하고 냉랭한 모습으로 방어하는 동주자신처럼 말이지요. 
봉영규와 봉우리는 꽃잎이 흩날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바람결에 손을 내밀었던 차동주와 같은 눈을 가졌습니다. 눈으로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동주의 자신의 말을 들어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리없는 침묵의 세상, 입술을 보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답답한 슬픔을 봉영규와 봉우리는 봐 줄 것도 같습니다. 깊이 묻어둔 마음속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너무 외롭고 무서웠다고, 그리고 지금도 무섭고 외롭다"는 말을 말이지요. 

*눈물가득님께 메모 남깁니다. 제글을 자주 읽으시는 독자분이신데, 오랜만에 댓글 남겨주셔서 반가웠어요. 그렇지않아도 많이 궁금했는데...아들이 벌써 돌이라니 세월 참 빠르네요. 아들 이름이 시우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블로거도 아니시고, 어떻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서 여기에 글 남깁니다. 이 글 읽으시면 방명록이나 댓글에 비밀글로 연락처를 좀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아기 돌 선물을 꼭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시우에게 돌 축하한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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