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은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다른 색깔을 덧칠하기도 하며 완성을 해가지만, 이미 완성된 그림을 부분부분 소개하면서 전체그림을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49일은 후자의 경우로 소재만큼이나 그 전개가 독특합니다. 대본이 다 나오지 않았음에도, 소현경 작가의 머리 속에는 이미 완성된 대본과 필름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거든요.
특히 14회 엔딩장면은 충격이었지요. 카페에 들어선 송이경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강민호가 송이경을 부르자 "왜요, 강민호씨"하는데, 심장이 쪼그라드는 전율을 느꼈다지요. "누구세요?"가 튀어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작가는 이전에 던져두었던 여러가지 복선과 암시들을 "왜요? 강민호씨"라는 대사를 통해 환기시켜 주더라고요.
삶과 죽음이 갈리는 49일이라는 시간은 찰나처럼 짧은 시간입니다. 죽을 날 받아놓은 신지현에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더 짧게 느껴지겠지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순도 100%눈물을 담으라는 미션을, 절반이나 시간을 허비하고 겨우 한 방울만 받았을 때, 조급증 화병으로 나가떨어져 버리고 포기해 버릴 수 있을 시간입니다. 40여일이 남았을 때 한방울의 눈물도 얻지 못했던 신지현이 초조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드라마는 신지현의 하루를 한달처럼 길고 묵직한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도 신지현은 더 느긋하고 여유로워집니다. 오히려 오지랖 넓게 다른 사람의 일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요. 물론 아버지와 회사일은 신지현과 관계된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명보다는 아버지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몸을 빌어 산 송이경의 아픔에 눈을 돌리고, 송이수로 밝혀진 스케줄러의 간절한 일에 관심을 더 보이지요. 그런데 신지현과는 대조적으로 강민호와 신인정은 시간이 갈수록 조급하기만 합니다. 비밀을 가진 사람들, 특히 나쁜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초조해 하고 두려움이 더해지듯이 말이지요.
어딘가에 부모님말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지현은,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송이경의 삶에 눈을 돌리지요. 자기처럼 단 한사람이라도 송이경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아준다면, 송이경이 그렇게 시체처럼 살 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신지현이 송이수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이유이기도 하지만, 스케줄러가 송이수였다는 것은 신지현에게도, 스케줄러에게도 믿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스케줄러 송이수와 신지현 역시, 오다가다 단순히 49일 여행자로 만난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도 합니다.
신지현도 한강이 자신이 송이경에게 빙의되었음을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버지에게 써둔 편지를 한강이 읽었으면서도 모른척 가방에 다시 넣어주고, 아버지가 수술을 받으라고 설득한 사람이 한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현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핑크장미를 병실에 꽂아둔 사람도 한강이었고, 잠시 질투작렬하게 했던 핑크장미의 주인이 자기였다는 것이 좋은 지현입니다. 마음을 감추는 것이 마음을 모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했던 한강이, 지현에 대한 마음을 감추느라 그동안 힘들어했다는 것도 이제는 알 것같은 지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현이만 보면, 틱틱거리고 화를 냈었다는 것도 말이지요.
위기에 처하는 신지현을 살릴 송이경, 마지막 눈물의 주인공
여기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대해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송이경이 신지현을 돕고 있습니다. 마지막 눈물 주인공이 송이경이 될 것이라는 강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리뷰글<스케줄러 정일우, 저승사자의 눈물이 지현을 살릴 수 있을까?>에서 저는 눈물 세방울의 주인공은 한강, 서우, 송이경을 점쳤어요.
그런데 10회 엔딩에 신지현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는, 신지현의 눈물이 첫방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지적해 주었다고, 작가가 제대로 뒷통수를 쳤다고 썼답니다<지현의 눈물,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삶의 가치는 시작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와 이유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죠ㅎ. 첫눈물방울이 한강의 것으로 밝혀지는 것을 보고는, 작가가 마련한 반전이 존경스럽더라고요. 오밀조밀하게 엮은 개연성 장치에 대해 또 한번 놀랐답니다.
인정과 호텔에 갔던 날, 호텔로비에 떨어져 있던 구슬이 송이경의 구슬신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것에 경악한 강민호, 송이경을 의심하는 신인정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져 송이경의 뒤를 밟기 시작했지요. 송이경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서 송이경의 얼굴을 빵꾸날 정도로 째려보는 강민호의 표정을 보고, 어찌나 긴장되던지 간이 콩알만해 졌답니다. 강민호의 이름을 부르는 송이경을 보고는 더 놀라버렸고 말이지요.
또한 송이경이 지현이 쓴 편지를 봤을 가능성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주위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는 송이경이었지요. 방안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환청까지도 들리기 시작했지요. 심지어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현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흘렸는데, 그날 신지현은 송이경에게도 한통의 편지를 썼었지요. 다시 돌아와 편지를 없애버렸을 수도 있지만,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것 같습니다. 송이경은 방에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을 가지면서 자신의 방을 둘러보는 일이 잦아졌어요. 지현이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3일간 강민호의 집에 있으면서, 송이경의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때, 어쩌면 송이경은 지현의 편지를 발견했을 수도 있을 것같더군요.
그리고 또 한사람, 이상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어디선가 봤던 사람입니다. 진안에서 쓰러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자기 이름을 또렷하게 부르던 남자, 송이경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던 여자가 호텔에서 보고 있었던 남자 얼굴입니다. 전생의 기억이 아니었고, 꿈도 아니었던 겁니다. 진안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이경씨, 나에요. 강민호"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순간, 호텔에서 봤던 여자가 "오빠"라고 부르자, "인정아" 라며 그 여자에게 가버렸던 남자였죠.
그리고 또 한 남자, 송이경의 집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카페에 찾아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는 뭐가 못마땅한지, 화난 듯이 가버렸던 남자가 그곳으로 데려가 줬습니다. 이수랑 벚꽃놀이와서 타로점을 봤던 그곳...이수가 함께 살 팬션 이월애를 지어주겠다며 장미꽃을 주고 청혼했던 날, 가장 행복했던 그날 그곳으로 말이지요. 꿈이라 생각했던 일, 꿈에서도 이수에게 오지말라고 했지만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쓰러질 때 봤던 그 얼굴, 이수는? 이수도 그곳에 있었다는 말일까? 어떻게? 죽었는데...송이경은 이 모든 일들이 왜 자기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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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모카라지생크림가득 2011.04.29 15:01
정말어제 남자인 제가 소름이 돋아 심장이 쪼그라 드는줄알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명장면이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8회 이수 이경 까페씬과 함께요.
잔잔하면서도 삶을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라서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수, 목요일 49일하는 시간에는 우리가족은 말한마디없답니다...ㅎㅎ
초록누리님의 예리하고 명쾌한 글은 또하나의 즐거움을 안겨주시는 군요.
기다리는 즐거움을 갖고 다음방송일을 기다리겠습니다. 5일 6시간 59분 남았군요.
글 잘읽었습니다. 다음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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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2011.04.30 02:48
드라마 초반에 초록누리님이 눈물 세방울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일지 추측하는 글을 읽고 난 뒤, 아 언젠가는 진짜 송이경이 신지현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14회 엔딩이었네요 >_< 마지막 대사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뭐랄까 미드 24의 니나마이어스급의 반전을 느꼈다고 하면 좀 오버하는 거겠죠? ㅋㅋ 오늘 한강이 신사장님 설득하는 장면에서 너무 찡했고, 스케줄러가 진짜 송이경에게서 뒤돌아서며 보였던 그 눈빛 연기에 가슴이 저릿했고, 강민호가 말도 안되는 궤변 늘어놓으며 자기를 합리화 할때 분노의 주먹을 쥐었네요!!! 이번주는 초록누리님의 드라마 리뷰가 많이 올라와서 참 좋아요!!! ^-^* 팬으로서 너무너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