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6회를 보고 나니 '혼'이 단순히 공포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드라마 '혼'의 1부는 윤하나와 신류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낸 공포와 복수를 다뤘습니다. 죽여야 할 인물도 대부분 그들이 가한 만큼 처절하게 공포를 느끼게 하며 죽였거나 백도식의 아들 백종찬(학생회장)처럼 아예 공포 속에 살게 하는 복수를 했지요. 여기까지는 권선징악의 잣대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 나쁜 놈들, 잘 죽었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복수도 거의 이루었고, 신류도 하나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혼'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나가기를 고집합니다. 신류가 말하는 악의 씨앗에 대한 싹쓸이 작업이 아직 시작되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이제부터 저는 고민을 하면서 드라마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신류가 던진 악의 씨앗을 싹쓸어야 한다는 화두에 아직 저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거든요.
공포라는 범주 속에는 두려움, 무서움 등도 포함되지요. 우스개 소리처럼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집에 혼자있을 때면 가끔 벽장문도 두들겨보고, 뭐가 튀어나올까봐 소리도 안나게 살짜기 열어보기도 한답니다. 매일 아이들과 북적거리며 사는 집인데도 가끔은 왠지 무서울 때도 있거든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짧게 혹은 길게 공포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감정이 오래가지 않은 것은 그 공포가 찰나를 통해 전달되고 그 상황만 지나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으슥한 밤길,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듯한 발자국 소리, 예기치 않은 곳에서의 물체의 등장(갑자기 골목길에 사람이 나타난다던가 고양이가 지나가는 경우와 같이) 등등 실생활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간접 경험을 통해 상상해보면, 불빛을 감추고 적의 공습을 피해 참호 속, 혹은 집안에 숨어서 총소리를 듣을 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피해 은닉해 있을 때는 꽤 긴 공포를 느끼겠지요.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지만 나치를 피해 다락방에 숨어 적었던 '안네의 일기'는 공포 속의 일상을 담은 유명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곰곰이 이 공포를 주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니 대부분이 형체가 없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으슥한 길 자체가 우리를 두렵게 할까요. 뒤에서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 자체가 무서운 것일까요? 아니지요. 골목길은 밤에도 낮에도 골목길이지 밤이라고 혹은 인적이 없다고 갑자기 길이 거꾸로 솟아서 덮친다거나, 스멀스멀 연기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뱀으로 변해서 목을 조여오지도 않습니다. 그냥 길이거든요. 발자국 소리도 그냥 소리에 불과한 거구요. 총소리도 소리일뿐이지 당장 우리 심장을 향해 날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감을 통해 이런 상황 속에 있다면 온몸의 털이 솟거나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혼'은 초반에서는 비교적 훌륭한 영상으로 시청자들을 시각적으로 흥분시키는 데에도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3, 4부에 이르면서는 이렇다할 특수분장이나 끔찍한 영상물은 점점 화면에서 사라져갑니다. 영상물을 통해 스릴을 느끼고 싶은 분들은 점점 시시해져간다는 말을 하시겠지만, 저는 드라마 자체는 더 무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이제 영상, 즉 시각적인 무서움을 자극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공포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으니까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류는 윤하나에게 동생 두나가 빙의되어 괴력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를 조종해 범죄자들을 처단해 갑니다. 하나는 자신이 '무의식'속에서 살인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조종한 신류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에 '의식'을 꼭꼭 숨겨버립니다. 그리고 하나와 엄마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두나의 죽음을 담은 CCTV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백도식 변호사의 지시였지요. 그리고 병원에 있던 하나의 엄마는 딸 윤하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죽게 됩니다. 신류의 도움으로 유체이탈을 통해 하나의 의식을 깨우는 방식을 취해서 말이지요. 하나는 엄마의 죽음을 보고 또 다시 살인자를 죽여버립니다.
'혼' 6회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가 예전 동생 두나와 재잘거리며 즐거웠던 모습을 떠올리며 신류에게 "이제 다시는 저 때로 돌아갈 수 없겠죠" 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신류가 처단하고 싶은 것은 사회악입니다. 그는 절대 악인은 결코 개선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뇌구조가 다른 인간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이런 류의 싸이코패스들은 없애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악의 처단 방식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상징적인 인물로 악의 축을 백도식(김갑수)라는 인물로 등장을 시킵니다.
그런데 저는 백도식에 흥미를 가지다 보니 '그가 한사람(1인)인가?'라고 묻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볼 수있는 인물이 백도식이지요.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땅값을 올리기 위해 길바닥에 나앉게 되어도 철거민을 향해 구사대를 풀고, 돈과 권력이면 죄값도 가벼워지는, 그저 한번 쳐다봤다고 아무 이유없이 지나가는 행인을 찔러버리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행했다는 일련의 차량방화사건, 떠들썩했던 여성 성범폭행자 발바리사건,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이르기까지 악몽에 가까운 범죄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처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요. 저는 공포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붙잡히기 전에는 사회를 활보하는 '이름없는 얼굴없는 공포'입니다. 그리고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혹시라도 연쇄범이 내가 사는 동네에 나타났다고 하면 정말 밤이, 아니 낮도 무서워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만행에 분노하지요. '잡으면 죽여버리고 싶다' 는 분노가 치밀게 되는 것입니다.
'혼' 2부는 이러한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심을 건드려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가 점점 무서워집니다. 우리 사회에 나랑 함께 숨쉬면서 살고 있는 숨은 얼굴들, 무형의 공포들 속에서 저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줄 악인들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할지 저도 두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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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雀 2009.08.22 12:16 신고
공감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초록누리님은 참 맛깔나게 글을 잘 쓰시네요.
나중에 수필 같은 거 써보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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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2009.08.22 13:12
10부작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아쉬운 작품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담아보이려 하다보니 구겨 넣은 듯한 인상이 좀 남네요. 연출자가 절친이라 잘되길 바라는 작품인데... 조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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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가르다 2009.08.22 14:26 신고
혼을 안 봐서 잘 모르겠구.
장르가 다양하더는 건 좋은 듯.
시청자들의 선택이 그만큼 넓어지는 거니까요.
김갑수씨의 악역은 정말 기대해 볼만할 듯.
워낙 연기가 좋으신 분이라... -
영웅전쟁 2009.08.22 14:27 신고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일어나는 즉,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질환이지요,
아마 이를 분류한다면 육체적 충격에 따른 정신적 충격 쯤 되나 봅니다.
저는 묻고 싶답니다.
심정적 충격에 따른 정신적 충격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
재미없지요 ㅎㅎㅎ
음...
초록누리님이랑은 남다른 인연이 있는데...
글을 보면 가끔 남다른 감흥이 일어난답니다.
글을 참 잘 쓰시지만
정리와 핵심 부문을 터치하시는
남다른 능력은 탁월하신데....
TV 리뷰에 한정된 포스팅을 하시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재능을 죽이고 계신듯 하다는 ...
주말이군요.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
특이한드라마 2009.08.22 14:52
공포영화나 폭력영화는 절대 안 보는 제가 이걸 보고 있습니다. 귀신들이 무섭기보다 측은하고, 그들이 아닌 권력을 쥐고 사회악을 조종하는 인간들이 더 무섭거든요. 현실에서 사회악이 벌을 받을 수 있다면 좋지만 그건 요원한 거 같고..ㅠ ㅠ 그래서 이거 보면서 어떻게 결과가 날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역시 이런 사회성 있는 드라마는 마봉춘이 제격이야 란 생각을 해가며... 모처럼 좋은 드라마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10부작으로 끝난다니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한두회 더 연장될 수도 있다고 들었었는데..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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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혼을 보다 2009.08.22 16:12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2부에서는 사회악과 싸우다가 결국은 악이 되어버리는 신류(이서진 분)의 파국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혼이 야심찬 드라마에다가 메세지도 충실한 것은 절감하는데, 여타 미국 드라마, 일본 만화등의 흔적이 너무 강합니다.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멘탈리스트, (아주 약간이지만) 라이 투미 (Lie to Me)의 흔적이 보이구요, 결정적으로 일본 만화 데쓰 노트(Death Note)의 냄새가 강하게 납니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인용되었던 니체의 "악마와 싸울 때는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바라보는 순간, 심연도 당신을 본다"는 경구도 단어만 약간 바꿔서 재인용하고 있구요 (신부님이 신류에게 하시는 말씀),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마찬가지로 이 대사는 앞으로의 극적 전개의 복선이기도 합니다. 즉 악과 맞서 싸우던 주인공이 점점 악으로 물드는 거지요. 데쓰 노트 역시 딱 그런 이야기이구요. 노트 대신 귀신들린 소녀로 무장한 라이토가 바로 신류입니다.
제가 유감인 것은, 그런 여타 작품들을 재료로서 이용하여 혼이라는 드라마를 요리했다면 그 재료를 제대로 가공하지 못해서 재료의 날맛이 너무 강하게 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욕심이 과해 재료를 너무 이것저것 집어넣은 면도 있고요. 물론 재료들 자체가 양질인데다 요리에 들인 정성만큼은 확실하기에 기본적인 맛은 납니다만 뭔가 아쉽죠. 특히 백도식을 너무 악인으로 그려놓은 것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악한 백도식인 말한 "정의는 법을 이길 수가 없다"는 이 사화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백도식이 너무 나쁜 놈이다 보니까 그 당연한 진리가 아주 파렴치한 똥배짱이 되고 말았으며 이에 대항하는 신류는 절대선이 돼버린 겁니다. 이래놓고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하려는지...-
초록누리 2009.08.22 16:26 신고
저는 신류를 절대선이라고 생각한 적도 쓴 적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백도식이나 신류나 결국은 악마적 본성(아, 이런 것은 다음 포스팅 주제로 쓰려고 한 것인데..;;) 암튼 그런 인물이지요.
절대선이라고 생각한 것은 신류 자신이지요.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그런 신류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묻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갈지 저도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지적하신 데스노트에 관한 관련글 제가 포스팅해서 올린 글 있으니 보시면 도움되실 겁니다.
글 제목이 ['혼' 이서진에게서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보인다]입니다.
해박하신 지식을 가진 님의 방문에 감사드리고, 여러가지 지적해주신 부분들 정말 유용한 자료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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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yrint 2009.08.22 17:25 신고
저는 무서운 건 안보는데... 이것도 재미있나요? ㅋㅋ
이서진의 연기는 멋있을 것 같아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배우인데...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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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새얀 2009.08.22 23:05 신고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셔서 2번이나 읽었습니다^^. 에궁...공포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혼을 즐겨보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혼만의 관전포인트는 잘 못잡은 것 같아요..ㅠㅠ 혹시 팁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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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웨이브 2009.08.23 11:16
인간의 감정을 구성하는 칠정은 현실속에서 끝없는 욕망(5욕)의 굴레를 만들어 내는가 봅니다. 결국 우리의 생각, 행동, 더나아가 이들로 구성되는 삶이란게 결코 이 범주를 벗어날수 없는 문제겠지요.
이런 점에서 오욕칠정은 인간 자체이고 이것이 빚어내는 다양한 변주곡이 곧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오욕칠정이라는 모순 덩어리를 일정하게 제어할 필요성이 제기됐을 겁니다. 욕망과 감정의 일정한 통제를 통해 오욕칠정이 빚어내는 지나친 갈등과 부딛힘을 조절해야 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의 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과 악의 개념이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특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막연한 선과 악의 개념은 법이라는 성문율이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불문율 즉 교리나 정의 등으로 규율화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저도 간혹 보고 있는데, 이런 철학적 고민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던지게 하는 드라마라는 생각입니다. 너무 진지했나요. ㅋㅋㅋ.